[1] 최연소 연대장 탄생
백골병단의 신화는 국군내에 여러 경로로 퍼졌다. 그래서 채명신 중령의 명성은 육군 장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파랗게 젊은 20대 중반의 채명신으로서는 명성에 알맞는 처세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채명신에게 육군본부 요직을 제의한다 해도 그가 수락할 리 있었겠는가.
육군본부 인사국에서는 채명신 중령에게 보직 제의가 있었다. 우리나라 첫 유격전을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비정규전 분야의 주요직을 맡아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채 중령은 그 제의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책상머리에서 펜이나 굴리면서 사무를 보는 일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더욱 그를 압박한 것은 백골병단 대원 소수가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사무직은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전방 전투부대에 보내 주십시요. 어느 사단이나 개의치 않겠습니다"
인사국장은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육군본부 근무를 마다하니 의아해 하면서도 채 중령의 군인정신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무렵 영천전투 등에서 채 중령의 직속상관이었던 김용배 준장이 제7사단장으로 양구 북방 전선에서 전투중인데 채 중령 소식을 듣고 채 중령의 전입을 육군본부에 신청해 왔다.
채 중령은 그 소식을 듣고 인사국장을 찾아가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인사국에서는 즉각 7사단으로 발령했다.
7사단에 부임한 채 중령은 일단 전황파악을 위해서도 당분간 부연대장 근무를 택했다. 사단장 또한 5연대 부연대장으로 부임했으면 하는 의중이었다. 그리하여 제5연대 부연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전선은 동부는 속초 이북이었고 중부와 서부는 양구와 임진강 사이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5연대장은 공교롭게 사단장과 한글 이름이 같은 김용배 대령이었다. 연대장은 채 중령이 도착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던 상관을 대우 하듯 극진히 맞이했다. 채 중령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오히려 부담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그렇게 된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단장이 채 중령의 전입을 요청한 것도 바로 5연대가 골치거리였고 문제가 많은 연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대를 싸울 수 있는 연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채 중령과 같은 지휘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5연대는 원래 부산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전쟁 발발하자 전선에 투입된 후 초전에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한다. 그후 영천전투가 전개될 무렵 재편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후 전투에서 발생했다. 싸우는 족족 패하기만 하고 '총소리만 들려도 도망간다' 해서 사단내에서는 5연대를 '왔다갔다 연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고 있었다. 더욱이 연대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던 것은 역대 연대장 대부분이 불행한 결과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재편 된지 겨우 1년 밖에 안됐는데 연대장이 6명이나 바뀌었다면 알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모두 작전에 실패해 불명예 퇴진 당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팔다리가 날아가는 중상으로 후송되는 따위였다. 그래서 장교들은 '7사단 5연대에 가면 죽는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연대 장병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그런 연대에 명성이 날리는 채명신을 부연대장으로 맞으니 연대장으로서는 아마 천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채 중령은 이런 상황을 파악한 후 군기확립과 함께 전투에 승리하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연대장과 협의하여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무자비한 훈련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 무렵 큰 전투가 없었기 때문에 장병들은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5연대의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다. 이제는 훈련이 됐다 싶었는데 연대장 김용배 대령이 적 포탄에 의해 전사한 것이다.
채 중령이 애써 일으켜 놓은 장병들의 사기가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육군본부는 5연대장으로 하갑청 대령을 발령 했다. 그러나 끝내 부임해야 할 연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면 죽을텐데 왜가느냐'며 처벌의 길을 자청한 것이었다.
5연대장이 1개월이나 공석이 되자 김용배 사단장은 채명신 중령을 연대장으로 발령해 줄 것을 육군본부에 건의 했다. 그러나 육군본부가 순순히 응할리 없었다. 당시 육사2기가 연대장을 하고 있는 시기에 3기 4기도 아닌 5기를 연대장으로 올리자 이곳저곳에서 반발했다. 그러나 사단장 김용배 준장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연대장으로 오려고 하는 놈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육사 기수가 무슨 상관인가. 적임자라면 임명 해야지"
육군본부는 할 수 없이 육사 2,3,4기를 마침내 초월, 1951년 8월 1일부로 채명신 중령을 육사5기 가운데 최초의 육군대령 진급과 함께 제5연대장으로 정식 발령했다. 채명신 대령은 그때 나이 2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