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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선한 양심을 갖는 습관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Yxm_WXf3P_w?si=uMbDnE-lW7yVhIHN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13일
선한 양심을 갖는 습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 사도행전 24장 16절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에게 주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속성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형성됩니다.
주의 명령은 어렵지만 우리가 즉시 순종하면 영적인 차원에서 쉬운 것이 됩니다.
양심은 내가 아는 최상의 것에 마음의 초점을 두는 기능으로서, 사람마다 양심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양심은 영혼의 눈으로서 하나님을 향하거나 스스로 최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향합니다.
만일 내가 꾸준하게 하나님을 뵙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내 양심은 항상 하나님의 완전하신 율법을 소개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합니다.
문제는 내가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어기지 않고 잘 지내려면 나의 양심이 예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된 상태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상황 가운데 마음의 영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로마서 12장 2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당신의 귀는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성령의 세미한 속삭임까지 들을 만큼 예민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4장 30절)
주님은 천둥 같은 음성으로 오지 않으십니다.
주의 음성은 너무나 세미해서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내면 세계를 언제나 하나님께 열어두는 끊임없는 습관입니다.
만일 내면 세계에 시비가 있으면 당장 그 일을 멈추십시오.
"내가 왜 이것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라는 의문을 품으면 당신은 잘못된 길에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말할 때는 절대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헛된 모험을 걸고 하나라도 허락하면 양심을 어긴 일로 인해 하나님과 내적 교통이 불투명하게 됩니다.
양심에 꺼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면 세계의 시력이 맑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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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12일
경건 습관이라는 우상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베드로후서 1장 8절
처음에 습관을 만들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습관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덕이 있고 인내하며 경건해지는 것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깐의 단계일 뿐입니다.
의식하는 상태에서 멈추면 우리는 영적 자만의 굴레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의 습관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 습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까지 주님의 생명 속에 잠겨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아직 공급되지 못한 덜 채워진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극히 단순해야 합니다.
당신의 작은 습관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등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경건 습관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대신에 서서히 습관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습관이 우상이 됩니다.
이때 하늘 아버지께서 얼마나 분노하실지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지금은 기도하고 있으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어요. 이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정한 시간이랍니다."
아닙니다! 이러한 경우 경건의 시간은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 당신의 습관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아직 당신에게는 부족한 성품들이 많습니다.
그 약점을 인정하고 성품을 다듬는 훈련의 기회를 갖으십시오.
사랑은 눈에 보이는 습관이 아닙니다.
사랑은 습관이 보이지 않는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사랑의 연습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랑하는 자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거룩을 의식한다면, 이는 당신에게 부족함이 있고 하나님과 거리가 있으며 그분과 진실한 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뭔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유일한 생명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생명입니다.
그분은 어디에서나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평안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불편한 것이 있습니까?
그 특별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당신의 주님이 되게 하십시오.
그때 당신의 삶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진실한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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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11일
훈련해야 할 사랑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베드로후서 1장 7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막연합니다.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보다 어떤 한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그러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속에 무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쉽습니다.
그 다음에는 베드로가 언급한 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첫 번째 일은 위선과 겉모양을 부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스러워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분의 속성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심을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과 같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라" (요한복음 15장 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도무지 귀히 여길 수 없는 여러 사람들을 너에게 데리고 오겠다. 너는 내가 네게 보여준 것과 똑같은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은 하룻밤 사이에 금세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노력했지만 곧 지쳤습니다.
"너희를 대해 오래 참으사...." (베드로후서 3장 9절)
내 속을 들여다보고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다루어 오셨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되 나의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 이기심, 경박함, 잘못들도 - 사랑하셨다는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세상으로 나아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은혜 가운데 성장하면 불끈 하는 순간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화가 치밉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동의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주 예수님과 일치되어 당신을 통해 그분의 생명과 향기가 항상
흘러넘치게 하겠습니까?
자연적인 사랑이든 영적인 사랑이든 사랑은 공급을 받아 개발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발적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훈련에 의해 유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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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10일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너희 믿음에 덕을 ..... 더하라
- 베드로후서 1장 5,7절
"더하라"는 우리가 뭔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거룩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습관이나 성품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걷도록 무력을 행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이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구원을 우리도 이루어야 합니다.
"더하라"는 뭔가를 하는 습관에 빠지라는 뜻입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어렵습니다.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은 자신에게 명령해 가야 할 길로 가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 그 길을 의심하는 습성을 경계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음을 강하게 먹고 말씀대로 당장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당신의 결단을 절대로 재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 머뭇거리면 은혜로 서 있는 당신의 발판이 위험해집니다.
주도적으로 나아가십시오.
의지적으로 발걸음을 당장 떼십시오.
뒤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십시오.
지나온 다리를 태워버리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신 일을 불가피한 일로 만드십시오.
우리는 만사에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찾으려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위기가 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한 습관이 만들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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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9일
이상입니까, 비전입니까?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잠언 29장 18절
이상과 비전(묵시)은 다릅니다.
이상은 영적인 영감이 없지만 비전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신을 정의하면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도록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개념으로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근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는 곳에는 올바른 삶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전은 순종하고자 하는 도덕적(영적) 동기르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져서 당신에게 이상만 있는지 아니면 비전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하늘이 무엇을 위해 있겠는가!"
"묵시(비전)가 없으면", 즉 우리가 일단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우리는 무절제해지고 제멋대로 행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던져버리고,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도 거부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살아간다면, 이는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며 비전을 잃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비전에서 나온 것입니까?
주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하실 것을 기대합니까?
우리의 영적 안목에 신선함과 활력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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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8일
믿음의 인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 요한계시록 3장 10절
인내란 지구력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명궁수의 손에 있는 활과 화살처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볼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조준하고 활을 당기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말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고 과녁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활을 당기고 쏘십니다.
주님의 손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지금 인내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믿음의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다릴 것입니다." (욥기 13장 15절)
믿음은 연약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사실 위에 힘차고 담대하게 서 있는 확신입니다.
비록 당신이 지금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은 주님을 압니다.
믿음의 파선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영원한 진리를 지적으로 붙들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믿음은 당신의 삶의 최상의 노력으로서 하나님만 철저하게 신뢰하는 가운데 당신 자신을 과감히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가 그분만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주께 걸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접촉되지 않은 영역, 즉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는 이러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러한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일들을 당해도 조금도 요동함이 없이 견딜 수 있는 생명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위대한 로맨스가 될 것이며 언제나 놀라운 일을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권능의 중심부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우리 각자를 훈련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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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7일
제자의 조건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 누가복음 14장 28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용이란 우리가 치를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치르실 비용입니다.
그 비용은 나사렛에서의 30년 생활이고, 3년간의 공생애 기간 중에 받으신 비방과 미움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으신 말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이요 마침내 갈보리에서 당하신 십자가 죽음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모든 시간과 영원이 접목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비용을 계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침내 그분을 향해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비웃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말씀하신 것이 누가복음 14장 26-27, 33절인데, 그 의미는 주께서 주의 위대한 나라를 세우는 데 사용하실 사람들은 주께서 이미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해 놓으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가복음 14장 26절).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에 사용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오직 주님을 인격적, 열정적, 헌신적으로 훨씬 더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의 조건은 엄격하지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세운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점검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시험하는 불로 당신의 공력을 점검하실 때 혹시 주님의 기초 위에 당신 자신의 나라를 세운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까?
보통 자신의 기업을 세우려는 때는 대규모의 놀라운 사업들을 이루는 때이며, 이때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 함정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결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건축가이신 예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를 취하실 뿐입니다.
온전히 주님의 사업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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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Qn3YvMjVEBk?si=vy0pui1JAGII9_ck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6일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갈라디아서 5장 1절
성령에 속한 사람은 "이것저것을 믿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당신에게 다가서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의 기준에 맞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으라고 강요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주님을 믿도록 요청받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40절)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제시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양심의 자유함을 제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을 누린다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유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통치를 깨달음으로 인한 자유함입니다.
언제나 당신의 삶을 예수님의 기준에 의해서만 평가하십시오.
오직 예수님의 멍에만 메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가 아닌 다른 멍에를 다른 사람의 목에 메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관점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습성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끄집어내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한 자세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한 자유함은 우리 양심 가운데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자유함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옳은 것을 행하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인내와 온유로 당신을 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키지 마십시오.
진리는 진리로 서게 하고 절대로 진리를 위해 변론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지 "사람들로 네 사상과 의견에 따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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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구원,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Z8aGIUT7rME?si=g3s9vZ2eRtGs4lO3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5일
구원,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베드로전서 4장 17절
주님의 사역자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생각이지 사람의 생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측량할 수 없는 심연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이지 사람의 체험이 아닙니다.
체험은 단지 구원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절대로 체험을 선포하지 말고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을 선포하십시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도적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심판의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사실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설교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은 그 설교가 모든 사람들을 심판 가운데로 이끌고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령이 각 사람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되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하신다면, 주님은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계명이라서 순종할 수 없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고려하지 못하셨다고 하나님을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려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죽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성령께서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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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대리적 중보 기도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Gpx3W3hg4?si=sMbtWhYdwctS6j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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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대리적 중보기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히브리서 10장 19절
다른 사람을 향한 개인적인 동정심을 가지고 주의 보좌로 나아와 그들을 위해 우리가 청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중보 기도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 죄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것입니다.
중보 기도의 최대 장애물인 영적 완고함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에 동감하게 되면서 속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속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선하고 덕스러운 것들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의해 발생되는, 다른 사람을 향한 영적 무관심과 나태함은 우리로 하여금 중보 기도를 할 수 없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일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합니다.
이러한 중보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자신의 인간적 연민을 영광스럽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와 일치시키셨다는 사실로부터 우리의 모든 동정심과 관심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리적 중보 기도란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인간적인 연민을 버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인간적 연민을 고집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관심으로 대치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을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전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충만합니까?
내 방식을 고집합니까, 아니면 주님과 일치하기로 결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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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능력 있는 중보 기도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OQkGkxFbXgc?si=--8XVgXJ_dg_4M4U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3일
능력 있는 중보 기도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에베소서 6장 18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다보면, 그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위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서서히 이끌고 계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거를 불쌍히 여겨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일치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는 사라지고 대신 그들을 향한 동정심과 배려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질책하는 행위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능력 있는 중보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장 많이 파괴하는 것은 개인적 동정심과 편견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중보 기도의 열쇠입니다.
주님과 일치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도 죄보다는 동정심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심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그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 즉시 우리는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생동하는 중보 기도는 자기연민과 거리가 멉니다.
중보 기도자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중보 기도에는 자신을 고려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를 통해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치됩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분별력을 주신 이유는 중보 기도를 위한 것이지, 남의 결점을 차자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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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인내의 능력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qt6mlaC43U4?si=zrV9xT4PZa_bdVPF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2일
인내의 능력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하박국 2장 3절
인내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인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는 어마어마한 강한 바위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이 인내의 근원입니다.
주를 볼 때 도덕적 영감(자발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을 얻습니다.
모세는 의무감이나 어떤 이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인내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여"(히브리서 11장 27절) 참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어떤 명분이나 특별한 관심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주님을 바라보는 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를 볼 때마다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큰 의미와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현실 속에서 예수님께 광야의 시험을 주신 것처럼, 만일 우리에게도 영적 시험을 주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면 인내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내의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아가게 됩니다.
영적으로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를 위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더욱 구원의 잔을 마시리라" (시편 116편 12-13절)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만족을 찾기를 원합니다.
"이제 다 되었어. 충분해. 나는 온전하게 거룩해졌어. 나는 잘 인내할 수 있어."
그러나 영적 자만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멸망의 길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립보서 3장 12절)
체험한 것만 붙들고 있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영감을 얻으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얻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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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신앙의 표준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iPLzY3eOdiI?si=Ndobrp-nw6u6aPaM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5월 1일
신앙의 표준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고린도후서 5장 7절
한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의식하며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시면 우리는 슬픈 기색을 띄고 고난과 역경에 대해 말합니다.
주의 사역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눈에 띄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영적으로 눈에 띄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시고 놀라운 영감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도 당신은 일상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흘러넘치는 영감과 함께 금빛 후광을 띈 성자처럼 빛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이 자신을 특별히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금테로 된 후광을 쓰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비정상적이며 일상적인 삶에 맞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일을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미완성 천사가 아닙니다.
다만 위로부터 거듭났기에 이 땅의 모든 요란함을 이기고 거룩하게 설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만일 희귀한 영감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원한다면, 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던 특별한 순간들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순간들을 끊임없이 재현하시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영감이나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놀라운 깨달음이 임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곳에 계셨는데 나는 왜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특이한 순간들은 갑작스러운 영감의 순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순간들에 의해 곁길로 빠질까 염려하십니다.
어떤 특별한 영감의 순간들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우리의 표준은 평상시에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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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30일
사랑의 자발성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고린도전서 13장 4절
사랑은 미리 생각해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특이한 방법으로 터집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특성에는 수학적인 확실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악한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믿을 거예요."
사랑의 특성은 자발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앞에 표준으로 세워놓지 않아도 주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아 주관하시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표준에 따라 살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떤 특별한 감정에 끌린 것도 아닌데 주를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는 내 안에 자발적인 참된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한 모든 일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본질이 판명됩니다.
사랑의 샘은 하나님 안에 있지 우리 안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 넓게 부어질 때 비로소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주께 증거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저절로 우러나는 사랑이야말로 주를 향한 참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어떤 일들을 행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이같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사랑의 샘이 성령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5절)
[4월 29일] 불확실성의 은혜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xFjU4OQUl4?si=WENYF0zkeQNAKT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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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9일
불확실성의 은혜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 요한일서 3장 2절
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삶의 속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의 속성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신을 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 어디에서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상식은 말합니다.
"그래,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안전할 텐데."
그러나 우리는 결코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가정해볼 수 없습니다.
확실성은 상식적인 생활의 표지입니다.
은혜로운 불확실성은 영적인 삶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은 보통 슬픔의 한숨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벅찬 기대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단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께 자신을 내려놓고 주께서 맡기신 가장 가까운 의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그분은 언제나 깜짝 놀랄 일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특별한 관념을 주장하고 옹호하려고 할 때 우리 안의 믿음은 죽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믿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마태복음 18장 3절)
영적인 삶은 어린아이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다음에 무엇을 하실지에 대해 불확실할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믿음만 확신할 경우 자신만 고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을 향해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되면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오히려 저절로 넘치는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지 "나에 관한 너의 신념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어떻게 오실지 알 수 없는 것이 영광스러운 불확실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십시오.
[4월 28일] “이 정도는 괜찮겠지”를 거절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kCwjdEJ0Cr4?si=qD1lbNeBHvY9x_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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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8일
"이 정도는 괜찮겠지"를 거절하십시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 예레미야 45장 5절
이것은 주를 의지하는 자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비밀입니다.
"내가 너로 생명을 얻게 하리라."
자기 생명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한다"는 말은 당신이 어디로 가든 심지어 지옥이라 할지라도 전혀 해를 받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반드시 재산과 소유물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축복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면, 삶 속에서 위대한 것들이라고 불렸던 것들에 더 이상의 관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연합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철저한 포기의 시험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추측을 주의하십시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허락하는 것은 당신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실제로 신뢰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내려놓음이란 주님께 질문하련느 사치마저 거절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완전하게 헌신한다면 주께서 당장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사람이 삶에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삶을 노략물로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당신은 이 땅에서 가장 놀랍고 기쁜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사로잡아 당신에게 무한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아직 그 자리까지 가지 못했다면, 이는 불순종 때문이거나 당신이 단순해지기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4월 27일] 선물보다 주님을 구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NPsbY_lb-qY?si=iVV443ecPw4jrn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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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7일
선물보다 주님을 구하십시오!
네가 너를 위해 큰일을 찾느냐
- 예레미야 45장 5절
당신은 당신에게 위대한 일들이 발생하기를 바랍니까?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대사를 이루시기를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님의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는 데 관심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그분을 알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큰일들은 임시적으로 왔다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임시적인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당신이 원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은 가장 쉽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유가 단지 물질이라면, 당신은 온전한 헌신의 첫 단계에도 들어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성령을 구했지만 주님은 제가 기대했던 쉼과 평강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꼐서는 곧바로 그 이유를 지적하십니다.
"너는 주님을 전혀 구하지 않는구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구할 뿐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물질을 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장 8절)
그러면 왜 구합니까?
주님을 알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위해 위대한 것을 구합니까?
"오, 주님! 성령 세례를 제게 부어주소서."
만일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면 이는 당신이 주님을 향해 완전히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여전히 주님께 순종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며 또한 왜 그것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임시적인 것들, 지금 이곳에서 당신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영원한 것들에 관심이 있으신 주님은 언제나 궁극적인 완성을 위해 일하실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됨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4월 26일] 잘못된 믿음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hJ8_nAcoB7c?si=rVNQRcnvh4Cokg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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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5일
잘못된 믿음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창세기 22장 2절
사람의 성품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결정합니다. (시편 18편 25~26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끔찍한 시련으로 인해 그 당시의 전통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그의 믿음을 정결케 하실 수 없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전통으로부터 우리를 끄집어내실 것입니다.
제거되어야 할 잘못된 믿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데려가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는 마귀의 거짓말이요 하나님의 참된 속성을 왜곡시키는 내용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최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방해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전통을 퍼뜨릴 수 있다면 모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에 대한 더 나은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 우리로 시련을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졌던 믿음의 강점은 하나님을 위해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와 반대가 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면 밀고 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신념을 위한 헌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신념의 종이었다면 그는 이삭을 죽이지 말라는 천사의 음성을 마귀의 음성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광신자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진실되면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당신을 이끌어서 모든 역경을 지나게 하시고 주를 더 깊게 알 수 있는 내빈실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의 신념 및 잘못된 전통적인 믿음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시험하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와 같은 장담을 하지 마십시오.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당신과 죽는 자리까지 가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3절)
아브라함은 그러한 단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진실했으며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정화하셨습니다.
[4월 25일] 최상의 상태를 우상으로 만든다면 | 주님은 나의 최고
https://youtu.be/kbCVVSyx-lk?si=TCUcieLk08sb2w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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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5일
최상의 상태를 우상으로 만든다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디모데후서 4장 2절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때를 얻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때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말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가 하고 싶든 아니든 기회를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우리 대부분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쓰임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병약해져서 초자연적인 영감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영감을 받았다고 느끼든 아니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빠지는 가장 큰 함정은 자신의 예외적인 영감의 순간들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영감과 통찰의 순간을 허락하시면 당신은 "나는 이제 하나님을 위해 항상 이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항상 그런 상태로 머물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들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신이 선택한다고 해서 그러한 순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예외적인 영감의 최고 상태에만 머물려고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견딜 수 없는 귀찮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의식할 수 없는 예외적인 영감을 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최상의 상태를 우상으로 만든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멀어지실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께서 맡기신 가장 가까운 책임을 행할 때까지, 또한 주께서 허락하신 예외적인 드문 순간들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4월 24일] 영적 방종에 대한 경고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wZ0pZ20Vrw8?si=xAVHjVbd4G5QC5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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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4일
영적 방종에 대한 경고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 누가복음 10장 20절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에게 올무는 세속이나 죄가 아니라 영적 방종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종교적 유행이나 흐름을 취해 영적 성공에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그런즉 우리는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13장 13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공적인 사역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한 가지로만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업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는가를 계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모든 것이 잘되어간다고 흥겨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가 기초를 놓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보다 그를 제자화해야 합니다.
구원과 죄씻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입니다.
주의 제자로서 우리의 사역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때까지 그들의 삶을 제자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한 사람의 영혼이 주의 영으로 단순히 각성된 수백의 영혼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영적으로 우리와 같은 자들을 재생산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사역자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표준적인 삶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 똑같은 그 표준을 재생산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역자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주의 영이 함께하는 제자가 되는 대신 잔소리 많은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공동체에서도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명령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께서는 제자됨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언제나 "만약"이라는 말로 시작하셨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강요가 아닌 선택입니다.
[4월 23일] 우상이 된 사역 | 주님은 나의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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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3일
우상이 된 사역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 고린도전서 3장 9절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집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예배합니다.
사역자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집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예배하는 자녀는 삶의 다른 부분들, 곧 정신적, 도덕적, 영적 활동으로 인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덕스러운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그 마음이 집중되지 않은 자녀의 특징은 목까지 일에 묻히게 됩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탈진해 쓰러집니다.
자유함이 없고 삶의 기쁨이 없으며 신경과 생각과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 사람에게 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설 때, 곧 우리의 모든 마음이 하나님께만 모아질 때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다스림만 남게 됩니다.
사역을 위한 부담이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하는 유일한 부담은 오직 하나님과 가장 깊이 살아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막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죄씻음을 받은 후 누리는 자유함은 주의 자녀들이 삶을 짓누르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자유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한 가지를 위해 자유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곧 철저하게 주님께 동역자로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느 곳에 두실지에 대해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잘 맞는 여차여차한 일을 하시겠지'라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우리의 가장 큰 한 가지 목표는 우리에게 맡기신 그 사역에서 우리의 온 마음과 뜻을 주님께 부어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손이 무엇을 하든지 주님만을 위해 온 맘 다해 섬기기 바랍니다. (전도서 9장 10절)
[4월 22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uCl2sNhv1IU?si=ictUzzOgYwprQo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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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2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 고린도후서 3장 18절
하나님의 종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모를 만큼 홀로 서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초기 단계에서는 실망이 찾아옵니다.
불꽃이 되어주던 사람들이 서서히 꺼져가고 우리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스스로 외롭게 서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디모데후서 4장 16-17절)
우리는 꺼져가는 불꽃이 아니라 영원히 타오르는 빛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큰 도움이 되던 사람'이 떠날 때 우리는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땅히 떠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모습과 신조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막는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거절하십시오.
말씀을 가르칠 때마다 먼저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려고 주의한다면, 항상 주의 영광이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사역자란 끊임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들이요 그 후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의 특성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영광이 자기에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출애굽기 34장 29절)
우리가 부름을 받은 이유는 우리의 의심을 나열하기 위함도 아니요,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개인적인 신앙 체험의 황홀함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닙니다.
사역자의 삶의 비결은 언제나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4월 21일] 이제 주님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a9Ut8-FCbFI?si=rvqtCKMZETeALf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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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1일
이제 주님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 요한복음 14장 9절
빌립은 엄청난 신비의 계시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예수님께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너무 복잡한 우리로 인해 놀라십니다.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쓸모없는 의견들입닏.
단순할 때 우리는 어리석지 않게 되고 항상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비는 미래에 발생할 일들 가운데 있지 않고 '지금'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나중에, 어떤 격변적인 사건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비는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순종하는 데 꺼리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요한복음 14장 8절)
이 떄 주님은 당장 대답하십니다.
"여기 그분이 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네가 찾는 그분이 있다."
주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하나님 자신을 보여달라고 부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이미 그들 '안에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현상을 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자녀는 이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달라거나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인 경험이 우리 인생 속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질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
내 마음이 근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예수님을 아프게 하나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믿는다면 정말 그 믿음에 따라 살고 있습니까?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들을 용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쓸모없는 병적인 질문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모든 일들이 그분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일 만큼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중이 아니라 항상 지금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장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월 20일]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합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BCIUkay7QCU?si=9x3tU2orVz8nAY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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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0일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고린도후서 1장 20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오판할 가능성을 경고하기 위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이 비유는 자연적 재능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사건과 관계됩니다.
우리는 영적 역량을 교육 또는 지능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영적 역량은 하나님의 약속(성령)에 의해 평가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만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우리는 하인이 주인을 비방한 것처럼 주를 비방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제가 일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에 이제 이 상태로는 당신께 충성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성령과 관련해 절대로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결코 자연적인 능력의 한계를 끌여들여 핑계치 마십시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드러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인은 자기가 한 일을 모두 정당화시키면서 모든 면에서 주인을 정죄했습니다.
"당신의 요구는 당신이 내게 주신 것에 비해 말도 안 됩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한 적은 없습니까?
걱정은 정확하게 하인이 의미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주꼐서 저를 곤경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신 것을 압니다."
육신적으로 게으른 자는 언제나 "나는 좋은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라고 불평하고,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하나님을 헐뜯습니다.
게으른 자는 언제나 자기 나름대로의 핑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일들 가운데 우리의 역량은 성령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평가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들을 당신에게 이루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대답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4월 19일] 작은 일에도 깨어 있으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wIdXHo48Rw?si=_HCYV5K_8XoGy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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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19일
작은 일에도 깨어 있으십시오!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 열왕기상 2장 28절
요압은 큰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했고 진실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고 야망이 많은 압살롬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끝에서 그는 비열한 아도니야를 지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길로 빠졌다면 누구든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큰 위기를 통과했다면 아주 자주 작은 일에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을 신경 쓰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엄청난 위기를 지났는데 어찌 세상적인 것들에 빠지겠는가."
유혹이 어디에서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마십시오.
위험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 있습니다.
커다란 영적인 사건을 치른 후에는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 작은 것들이 당신을 넘어뜨릴 것입니다.
당신은 크고 강한 시련에서는 하나님께 충성해 왔습니다.
이제 그 밑의 암류에 신경을 쓰기 바랍니다.
두려움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샅샅이 살피라는 의미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계속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경계하지 않은 장점들은 두 배로 약한 약점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이 경계하지 않은 장점들을 통해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장점 때문에 무너졌지 그들의 약점 때문에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보호를 받으라" (베드로전서 1장 5절)
이 방법만이 유일한 안전을 보장합니다.
[4월 18일] 준비된 사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VBYSowr2o8A?si=852GGzatmLII-u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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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18일
준비된 사람
여호와께서 그를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출애굽기 3장 4절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 대부분은 안개 속에 갇힌 사람처럼 되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대답했고, 이는 그가 주님의 부르심에 준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준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며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하나님께 말씀드리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주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은 부름이 왔을 때 그 상을 놓치지 않고 낚아챕니다.
우리는 무언가 붐을 일으키는 어떤 큰 기회를 기다리다가 그때가 오면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신속하게 부르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기를 누리시는 곳에 함께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의무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준비는 지극히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상관없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든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듯이 우리도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떤 의무가 주어지면 주를 향한 사랑으로 그 의무를 다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주님과 함께 일하신 것처럼 주님도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을 기대하십니다.
즐거운 의무이든 궂은 의무이든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우리를 두실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처럼 우리와 주님도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 22절)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예비하십시오.
준비된 자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뒤늦게 준비하느나로 꾸물거려서 되겠습니까?
타는 떨기나무는 준비된 영혼을 둘러싼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타오릅니다.
[4월 17일]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trhltxc41BA?si=E6B8FuM9pGw29Z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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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17일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 요한복음 21장 7절
힘과 뜻을 다해 무조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던 위기를 지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의지의 위기입니다.
외적으로 여러 번 상황적인 위기를 당할지라도 내 의지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 자신을 내려놓는 깊은 위기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심지어 외적인 것을 내려놓는 것이 내적으로는 철저하게 뭔가에 얽매여 있는 조짐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린 적이 있습니까?
이는 감정이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감정은 단지 이러한 의지적 활동의 포장지일 뿐입니다.
만일 감정을 앞세우면 당신은 결코 의지적 해결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하나님께 묻지 말고, 얕든 깊든 깨달은 것에 대해 실천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만일 풍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면 당신의 주관적인 확신이나 논리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직 주님과의 관계만을 유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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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WOPZnTGB3UA?si=I5B52vQmDVZSZvuO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16일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하십시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 요한복음 12장 36절
우리의 삶에는 최상의 상태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만일 이렇게 항상 최상의 상태에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들은 그 상태에 머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최상의 상태를 느끼지 못할 때, 목표로 삼고 살아갈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그 절정의 순간에 계시되었던 그 기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깨달음의 시간에 당신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그 감정들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또한 영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상태였던지!"라고 말하며 우쭐해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기도회 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뭔가 하라고 보여주셨으면 "네, 하겠습니다"라고 말만 하지 말고 실천하십시오.
박차고 일어나서 몸에 박힌 게으름을 떨쳐버리십시오.
게으름은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그리워하기만 할 때 생깁니다.
우리는 최상의 상태에 이르렀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궂은' 날에도 우리가 최상의 상태에서 보았던 비전에 따라 살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한번 좌절했다고 해서 동굴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다시 시도하십시오.
당신이 되돌아갈 다리를 불사르고 당신의 두 발로 일어나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당신이 내린 결정을 재고하지 말고 단지 그 결정이 최상의 빛에 거할 때 내린 결정인 지만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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