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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입니다>
<한국대중가요사>는 순전히 두 달 쯤 전에 본 책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덕분에 읽게 됐다.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를 읽고 나서 쓴 글을 잠시 들여다보니, <한국대중가요사>를 왜 사서 보게 됐는지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글쓴이는 ‘노랫말의 사회적인 힘’에 대하여 약간 거부감이 있는 것도 같다. 이영미가 쓴 <한국대중가요사>가 노래를 지나치게 ‘사회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려 한 점이 아쉽다는 말을 군데군데 남겨 놓은 걸 보면 그렇다. 덕분에 난 <한국대중가요사>를 덜컥 사버렸다. 안 그래도 전부터 사려고 벼르기는 했으나 미뤄놓았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우리 대중가요를 뭘 얼마나 사회성 있게 해석을 했기에 저리도 불만이 많은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를 읽고 쓴 글 가운데(2007.7.4.)
그렇다. 노래를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사회’라는 눈으로 해석한 내용을 보고파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스무 살 넘어서는 ‘노래방’과 ‘텔레비전’에서만 주로 만나고 있는 ‘대중가요’의 역사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쩜 대중가요에 ‘제대로 된 역사’가 있기는 한 걸까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책 머리말을 보면서 이 책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는 대중가요를 ‘예술’의 한 종류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 방식이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눈으로 ‘대중가요’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예술사를 비롯한 예술 연구가, 인류가 지녀왔던 존재해온 모든 예술행위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예술 연구란 쉽게 말해 ’예술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를 밝히고 정리하는 것이 임무인데, 여기에서 ’예술‘이라고 칭하는 것에 고급예술과 서민예술, 비서구적인 예술, 전문창작의 결과물만이 아닌 일반 수용자의 예술체험이 모두 포함되고 고려될 때, 예술 연구는 또 한 단계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글쓴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삶 깊숙한 곳에서 엄연히 예술로서 작용하고 있는 대중가요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서술의 틀과 맥락을 지닌, 관점 있는 대중가요사’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글쓴이의 ‘서술의 틀과 맥락을 지닌 관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대중가요, 특히 대중적 인기를 누린 대중가요는 그들 작품이 당대 이를 선택한 대중들의 사회심리, 욕망과 조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와 예술적 관습이 만나는 지점을 ‘양식’으로 보았다. 양식을 단지 이러이러한 형식적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세상에 대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가장 중점을 두어 서술하고자 하였다. (…) 예술이 창작자로부터 나와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바는, 단순히 즐거운 소리이거나 앙상한 메시지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체취이다. 그래서 예술은 전달되기보다는 감염感染된다는 말이 더 적절한 듯하다.”
대중가요는 노랫말과 곡이 만나 하나의 노래가 된 것이겠으나 이 책에서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고 있다. 그래서일까 악보 비중도 높고 노랫말만 나오는 곳도 꽤 많다. 왜 그런가 하니, ‘대중의 의식이 주로 언어예술 면에서 비교적 구체성 있고 정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게 글쓴이의 설명. 워낙 ‘노랫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한테는 정말 맞춤인 서술 관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난 이 책 내용을 아주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난 ‘노래’를 정말 좋아하지만, ‘성인’이 되고나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들은 ‘진짜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확실한 근거 없이 ‘상업성’이라는 것만으로 내가 ‘대중가요’를 너무 매몰차게 낮추어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중가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노래방’에 가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대중가요를 불러왔고, 텔레비전에서 음악프로라도 볼 때면 립싱크를 하며 춤을 춰대는 댄스가스들을 넋 놓고 쳐다볼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난 ‘대중가요’에 대한 나의 이중성이 자주 마음에 걸렸다.
이 책을 보면서 대중가요를 대하는 나의 이중성을 조금 열어 놓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대중예술은 상품이자 예술이며,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다.’는 글쓴이의 생각을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더 굳어진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대중가요(大衆歌謠)’는 ‘널리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대중가요는 근대 이후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되면서 나름의 작품적 관행을 지닌 서민들의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민예술의 대표 주자라 할 ‘대중가요’의 특성과 한계점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대중가요는 서민대중들의 경험과 관심사, 인식과 정서, 욕망 들을 드러내는 서민예술인 동시에,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 경제 체제와 튼튼하게 결합하고 있는 예술이다. (…) 서민문화가 지배문화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대중예술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대중가요의 이런 속성 때문에 대중들은 대중가요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억압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들은 어떻게 대중가요 속에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일까? 서민예술이 갖는 특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서민예술의 창작자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자신이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작품에 쏟아 부으려는 태도를 갖지 않으며, 수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수용자들이 바라는 바를 고려하여 창작한다.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작품은 서민예술로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서민예술 작품은 작품, 수용자, 세계, 양식의 네 가지가 주요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 (*고급예술 작품 분석에서는 작품, 작가, 세계, 작가의식이라는 네 가지가 주요한 고려 대상이다.)”
우리가 평소에 ‘예술’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이나 화랑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값도 비싸고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대중가요로 대표되는 서민예술은 그렇지 않다. 다가서기도 쉽고 값도 싼 편이다. 이렇게 고급예술과 서민예술은 받아들이는 처지에서도 사뭇 다르기만 하다. 아래 설명처럼.
“고급 예술 작품의 향유가 마치 큰 지적인 긴장과 때로는 고통스러운 각성을 동반하는 행위로 정신노동이나 교육에 버금가는 행위라면 서민예술 작품의 향유는 편안하고 즐거운 행위이며 긴장을 풀고 위안을 받는 행위이다. (…) 서민예술의 향유는 비교적 익숙한 규칙을 지닌 예상 가능한 작품을 통해 향유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예술행위다.”
그러니까 서민예술의 재미는 낯섬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온다는 것. 딱 들어맞는 설명인 것 같다. 다만 여기서 잘 새겨야 할 것은, 글쓴이가 비록 ‘고급예술’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으나 그 예술이 ‘서민예술’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관점들을 따라 우리 대중가요 역사를 죽 따라가 보니, 정말이지 모든 노래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1900년 초반 유행창가가 음반으로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신민요, 트로트, 이지리스닝, 포크, 록, 발라드, 댄스음악에 이르기까지 숱한 여정을 겪으며 1990년 후반에까지 이른 과정들이 논리정연하게 정리가 된다.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대중가요史’다. 대중가요를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여다봤으면 좋겠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비록 가수 스스로는 그냥 좋아서 노래를 불렀을지 모른다. 아마 많이들 그랬을 테지. 지금도 그러할 테고. 하지만 결국엔 그 ‘좋아하는 마음’ 조차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용자 다수의 욕망과 경험’에 맞닿는 것이었고, 그것을 표출한 것이 그들이 부른 노래들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목조목 예와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특히 ‘트로트’와 ‘포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와 닿았다.
“현재의 지식인 혹은 고학력 대중들은 양색의 대중가요에 비해 왜색의 트로트 가요를 싫어하는 취향을 지니고 있으며, 트로트의 왜색성은 바로 그러한 취향을 합리화하는 데에 좋은 구실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이들의 트로트 가요에 대한 혐오의 근저에는 왜색이라는 역사적 평가 이전에, 1960년대 이후 이 양식이 지니게 된 하층민과 저학력의 냄새에 대한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인다.”
트로트에 대한 이런 글은, 내가 트로트를 바라보는 ‘눈’을 점검하도록 도와주었다. 트로트가 처음에는 개화한 도시인이 즐긴 '새로운 음악'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새로웠고. 김민기로 대표되는 ‘포크’에 대한 건 늘 궁금하기만 했는데 이 책에서 작게나마 그 궁금증을 해결한 듯 하다. 그 시작과 내용들, 그리고 ‘민중가요’가 생기는데 미친 영향까지.
신세대 대중가요를 다룬 부분에서는 ‘발라드’를 조금 덜 다룬 듯 하다. 하지만 댄스나 발라드나 내용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신세대 대중가요의 경향을 읽는데 무리는 없다고 보인다. 오히려 발라드 노래들은 내용이 너무 비슷해서 한두 가지만 언급해도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1990년대 초에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소재를 벗어난 노래들을 이 책에서 많이 엿볼 수 있다. 넥스트, 공일오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노래가 그 대표 주자다. 글쓴이는 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높이 평가는 하지만, 결국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함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비판적 노래들이 냉소적이거나 차가운 문명비판에 그치는 까닭을 분석한 것인데, 새겨둘 만한 내용이다.
“이들의 자아 탐색은 상투화된 결론(나는 할 수 있어, 나날이 새로워야 한다, 나는 나의 개성을 찾아야 해)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자아는 타인과 사회로 관계 짓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로 관계 지음으로써 그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을 이들은 거부하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적 태도 역시 거부한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자신의 욕망과 가치 기준을 내세우며 서로 자신이 고유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해결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들은 이러한 혼란스러움과 복잡함 역시 그대로 드러낸다. 이들의 가사가 거의 산문화 되고, 의미가 분절적인 것은 이러한 혼란스러움과 복잡함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이 책은 1998년에 나온 책을 2006년에 다시 펴낸 것이다. 하지만 내용은 1998년 딱 거기까지에 멈춰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의 대중가요사는 담겨있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난 10년간 대중가요의 흐름은 어땠을까. ‘대중가요’에 대한 수용자로서 갖는 경험이 너무 적어 그 경향성을 끄집어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오로지 ‘돈’과 ‘인기’ 때문에 노래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 댄스가수들만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온통 ‘사랑’만 나오는 노래들. 게다가 ‘퇴폐성 짙은’ 사랑 노래들은 또 얼마나 많이 들리는지! 하지만 그 조차 내가 너무 좁게 바라본 것이리라. 1970년, 80년대에 노래를 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꾸준히 노래하고 있고, 젊은 가수들 가운데서도 ‘진실 된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돈’ 벌자고 ‘노래’하는 ‘가수’도 직업은 직업이니까.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을 자유는 나한테 있겠으나, 그들을 ‘가수’로 인정하지 않을 권리는 나한테 없지 않겠는가. 대중가요도 분명 ‘예술’이라고 나도 인정하기로 했으니, 어찌됐든 대중가요를 하고 있는 그 가수들을 ‘예술가’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지금 내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뒤에 내가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8년에 이 책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글쓴이는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세기말을 어떻게 보내고 21세기의 새로운 할 말을 어떤 양식으로 어떻게 가지고 나올지 현재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1970년대나 1990년대처럼 새로움으로 치고 나올지, 1980년대처럼 이전까지 경향을 종합하여 아우르는 방식으로 나올 것인지조차 짐작하기 힘들다. 아마 그것은 21세기가 어떤 사회적 변화를 거쳐 새로운 단계로 돌입할 것인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보아왔듯 대중가요의 경향은, 일정한 정치경제적 한계 내에서나마, 당대 대중의 사회심리와 정확하게 조응하며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 때는 짐작하기 힘들다고 했던 21세기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는 과연 어떤 양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지금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이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21세기 대중의 사회심리와 정확하게 조응하며 흘러가는, ‘서민예술’다운 면모를 제대로 갖추는 대중가요 양식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