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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일로 詩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골드
드디어 로마를 향하여 (바티칸 市國에서 입국 절차를 받다.)
6.24일 호후 네시경 우린 끼안티 와인어리를 떠나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로마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버스 차창에 비친 농촌의 풍경이 흡사 우리 농가와 같다는 말을 난 여러 차례 이 여행기를 통하여 밝힌바 있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되지 않았는데 난 이 버스길이 끼안티에서 로마로 가는 길이 아니라, 꼭 목포에서 서울로 도보 로 가는 서해안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비록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Italian grass 때문이었다. 지난 5월 목포에서 강화도까지 도보여행을 완주한 효림과 함께 10여일 그와 동행한 서해안의 농촌길이 떠올랐다.
그 도보여행길에서 난 처음으로 이 Italian grass에 대하여 현지 농부들에게 배웠다. Italian grass는 목초(牧草)다. 3개월 정도면 웃자라서 수확이 가능한 경제성이 있는 작물이다. 우리 정부는 2014년까지 가축 사료의 90%이상을 자급자족한다는 목표로 이 종자를 수입하여 농민들에게 재배를 권장하고 전량 매입해 주어, 농민들이 정부와 계약하여 납품한다는 제법 수지가 맞는 농사라는 말을 농민들한테 들었는데 그 Italian grass의 원산지를 이곳에서 본 감흥이 어찌 새롭지 않겠는가.
이 곳 이태리의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 따라서 여름엔 소나 양을 방목해 키우고, 이 Italian grass를 여름 철에 수확하여 건초를 만들어 겨울에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리라.......
Italian grass의 본향은 우리의 농촌처럼 밭에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초원에서 저절로 자라는 종자란 것을 알게 되었다. 단위 면적이 협소한 우리의 논밭에서 본 이 목초를 이처럼 푸른 평지의 초원에서 바라보니 나그네의 여심이 한결 평온해졌고, 저 평화로운 초원에서 잠시 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버스가 끼안티를 출발하여 3시간 정도 달리니 로마시 외곽이었다. 그곳에 삼천년이 넘은 옛 로마의 산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를 뿐 아니라 현재도 그 성채에서 시민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의 산성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기원전의 로마 시민들과의 모든 삶의 방식이 아마 대동소이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 이천년이라는 시차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조각의 흰구름이 일어 나 떠오르고 이내 소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천년 고도 로마시 외곽엔 양들을 사육하는 목장이 많았다. 우리가 안양이나 일산등에 이런 목장이 있다면, 공휴일이나 주말엔 가족이나 연인등의 나들이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부러운 생각 뿐이었다.
로마 시내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 우린 이번 여행길에 처음,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동안 근 4일이상을 파스타나 스파게티같은 이태리 현지식에 식상한 원우들이 한식 한끼라도 먹게 해달라는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전형적인 한국 식당이었다. 이 식당의 주변에 관광버스가 몰려있었고, 손님들은 모두 한국인 뿐이었다.
된장국과 제육볶음, 김치, 양상치, 풋고추등이 차려져 나온 밥상이었다. 그런데 맛이 영 아니었다. 남도의 그 유명한 한정식집 사장님들과, 내노라 하는 맛집 사장님들이 말없이 그래도 오랫만에 먹어 보는 이 백반을 달게 먹고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한국식당들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들을 상대로 하는 한밭식당보다 더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이었다. 관광회사에 고객들을 데려다 준 리베이트를 물고, 물가가 비싼 현지에서 수익을 낼려면 어쩔 수 없이 질이 좋은 식사를 제공키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이건 말이 아니었다. 아마 이런 밥상도 이곳 물가를 감안하면 한 20,000원은 넘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태리에서 레스토랑 개업은 우리처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여서 신규 시장 진입이 어려워 할수없이 새로 식당을 오픈하려면, 남의 가게를 사야하는데 권리금이 10억 정도는 줘야 괜찮은 가게를 얻는다니..... 세계의 현지 레스토랑 시장에 개인사업자들이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돈이 있다면 지리산 자락에서 편히 살고 볼 일이다. 정부가 유능한 개인사업자를 발굴 전폭적인 지원과 육성을 아끼지 않는 정책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정부에서 한식의 세계화 운운하며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또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어떻게 바뀔런지 모른다. 한식 세계화의 길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후 8시가 넘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 날 밤은 그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고, 몹시 피곤하여 이기진 사장이 한잔 먹자는 속삭임도 뿌리치고 그냥 잠이 들어 오랫만에 숙면을 취했다.
6. 24 간밤에 일찍 잠들어 숙면을 취해 기분이 상쾌하였다. 6시에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다. 이태리 도시 곳곳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도 아름들이 노송이 우거져 있었는데, 생김새가 좀 희극적이다.
시내길을 서서히 걷다가 난 이태리에 와서 처음으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길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처럼 제복을 입은게 아니라 그냥 평복차림으로 담배꽁초를 쓸어담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청소를 한다는 사실이 좀 신기해 보였다.
호텔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간단한 식빵과 우유, 그리고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먹고 로마 시내 견학길에 올랐다.
로마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 우린 로마시에 통행세를 물어야 했다. 고도(古都) 로마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한 교통혼잡을 이유로 소형 승용차는 면제를 해주지만, 우리 같은 대형 관광버스에겐 통행세를 물린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통행세를 내러 간 사이 난 이 한가한 전철역을 디카에 담았다. 출근을 앞둔 한 로마 시민이 한가로히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시민의 머리위에 서 있는 로마의 소나무들을 보라. 로마의 소나무, 아니 이태리의 모든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몸통의 가지를 모두 처내고 머리만 잘 손질한 모습이었다.
송이 버섯 모양 같기도 하고, 우산을 받쳐든 키 큰 아저씨 모습 같기도 하고, 파마 머리의 여인네가 차렷 자세로 서있는 모습같기도 하였다. 우리의 산하에서 자라는 소나무와는 그 모양새가 사뭇 달랐다.
한국의 미는 단순하고 조촐하다. 그리고 일본처럼 造山造水의 인위적인 미를 배척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가장 이상적인 조경미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정원중에서 그 품격을 으뜸으로 치는 소쇄원을 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수용하여 만든 정원이 아닌가?
우린 한그루의 소나무라도 그 소나무의 가지를 잘 치지 않는다. 우린 소나무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라는 걸 사랑한다. 정 2품 소나무에서 보듯이...... 소나무의 줄기나 등이 어쩔 수 없는 생장조건에 시달려 굽어지는 괴이한 괴목이 되거나, 목재로서는 쓸모없는 기형목으로 자라나도 우린 그 괴목이나 기형목이 오히려 더 상품가치가 높은 분재나 조경수로 사랑받는다.
이에 반하여 이곳 이태리의 소나무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몸통의 가지들이 잘려나가고, 우습게도 머리채만 무성하다. 밋밋한 몸통과 머리채만 있는 괴이한 식물이란 생각이 들어 약간 우스웠지만, 부러운 것은 이 소나무들이 로마의 가로수로서 로마시내를 감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티칸 시국에 도착하였다. 인산인해의 관광객들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이드가 겁을 주었으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알아 보니 오늘은 교황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어서 교황을 뵈올 수없어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우린 기다리지 않고 곧장 바티칸 시국의 입국절차를 받았다. 입국절차라는 것이 소지품을 검색대에 넣어 검사 받는 것으로 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간편한 입국절차였다.
이 작품은 조각가 아르놀도 포모도르가 1990년에 만든, 한 구안에 또 하나의 구가 있는 구 안의 구(球)이다.
<오늘의 바티칸 시국>
4.4헥타르 정도의 면적(약 135,000평)을 가지고 있는 바티칸 시국은, 영토 의 면적뿐만 아니라, 거주민 수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다. 바티칸 영토의 경계선은, 성벽과,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둥글게 이어 주는 트라베르티노 대리석 기둥들까지이지만, 바티칸의 법적 관활권은 바티칸 시국의 영토를 넘어서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는 로마시내와 시외의 일부지역 에도 미친다.
바티칸 시국은 '라테란 조약'에 의해 세워졌는데, 이 조약은 1929년 2.11 교황 청과 이태리 사이에 맺어진 조약으로, 교황청이 카톨릭 교회의 최고 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확실하게 하고자 교황청을 국제적 공적 권리를 지닌 국가로서 비준한 조약이다. 이를 위해, 이 조약의 서언에는 ' 국제사회에서도 절대적이고 확실한 독립성과 명백한 주권을 교황청에 보장하기 위해...' 라고 명시하고 있다.
바티칸 정부 형태는 절대군주제로서, 시국의 대표는 바로 교황이다. 그는 입법, 행정, 사법상의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권한은 교황 자리가 비어있는 공석 기간 중에는 추기경단에 위임된다.
입법권은 교황뿐만 아니라, 5년 임기로 임명되는 의장 추기경과 의원 추기경 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서도 교황의 이름으로 행사된다.
행정권은 각 위원회의 의장에게 위임되고, 이 위원회 의장은 행정수반의 자격 으로 행정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행정수반은 사무총장과 사무자장의 보좌를 받는다.
사법권은 바티칸 시국의 법적 규범에 따라 만들어진 조직 또는 부서에 의해 교황의 이름으로 행사된다.
바티칸 시국은 고유한 자기 국기를 가지고 있고, 주화도 자체 제조하는데 현재 제조하는 주화는 유로이다. 또한, 자신의 우표도 발행한다. 바티칸에는 1861년에 생긴 일간지 ' 오세르바토레 로아노'가 발행되고 있고 1931년부터 전 세계에 여러 언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바티칸 방송국도 있다.
현재 바티칸에 살고 있는 사람은 대략 800명이고 그 중 450명은 바티칸 시민 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바티칸 시국에 잠시 또는 계속 거주한다 할지라도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티칸 시국과 교황의 안전과 방어를 위해서는 1506년에 생긴 스위스 근위대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스위스 근위대 복장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 고 한다. 또한 바티칸 시국의 모든 경찰 업무와 안전업무를 맡고 있는 젠다르메 리아(호위대) 가 있다.
이 글을 바티칸 시국에서 산 한글판 바티칸 책자에서 옮겨 적으면서. 거대한 종교의 권력화를 실감하였다. 세계 문명을 지배하는 기독교를 대신할 새로운 종교의 출현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바티칸 안뜰의 솔방울 모습이다. 이 거대한 청동 솔방울은 고대 로마시대의 작품으로 권력과 부를 상징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내에 있는 그 유명한 시스틴 소성당 천정과 벽면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최후의 심판에 관한 재밌는 야사는 다음회에 기술한다.
바티칸 안뜰 구경을 마치고 비오 클레멘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니 팔각형의 안뜰에 이 라오콘 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 유명한 라오콘상은 기원전 2세기 아게산드로스(Hagesandros), 아타나드로스(Athanadodos)와 폴리드로스(Polydoros)작의 그리스 청동 원작을 기원 후 1세기 로마시대에 복사한 것으로, 1506년 로마의 에스켈리노(Esquilino)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이 작품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대단한 관심을 끌었고, 후에 율리우스 2세가 사들여 바티칸에 소장하게 된다. 이 라오콘 군상은 트로이이 사제 라오콘이 그리스인들의 선물인 목마 속에 숨겨져 있는 속임수를 트로이인들에게 알렸기 때문에, 아테네 여신의 분노를 사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바다에서 나타난 뱀에 희생이 되어 죽게 되는 장면이다. (이상 바티칸 시국에서 산 한글판 바티칸 책자에서 인용함)
이 라오콘 상은 우리가 중고생 시절에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것이었다. 세계 최대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이 라오콘상의 근육속 실핏줄이 하도 섬세하여 혈관 속의 피가 아직도 돌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이 일었고 더군다나 이 작품이 이천년 전 로마시대의 작품으로서 미켈란젤로도 경탄해 마지 않았다니 대단한 조각상임에는 틀림없었다.
미(美)의 신(神)인 이 아폴로상은, 아마도 긴장한 한 손에는 활을, 내려놓은 한 손에는 화살을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신 고전주의 시대에 완벽한 조화와 최고의 기술의 표본으로 간주되었던 작품이다. (이상 한글판 바티칸 책자에서 인용)
미( 美)의 신(神)의 상이라기 보담 너무 인간적인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건강미가 넘치는 호남형의 친근한 사내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유명한 '벨베테레'의 반신상은 기원 전 1세기의 원작으로 아테네의 조각가 아폴로니오(Apollonio)의 사인이 있다. 이 반신상은 르네쌍스 시대와 신 고전주의 시대에 매우 찬양받왔던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이상형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매우 발달되고 힘이 있는 근육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이 상은 자살을 기도하는 그리스 영웅 아이아체(Aiace) 라고 알려졌다. (이상 한글판 바타칸 책자에서 인용)
당시 교황은 이 작품이 보기 흉하다고 미켈란젤로에게 좀 고쳐보라고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이상 더 완벽한 조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다.<끝>
2009.7.19 작성 골드리버
다음 이야기
바티칸 시스틴 소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고/이태리 여행기 제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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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첫번째 사진...초원에 동그랗게 말려 있는 것이 그 이태리안 그라쓰인가? 저기도 그것을 비닐에 싸서 사료로 숙성시키던가? 소나무는 우리와 품종이 다른것 같네. 우리나라 소나무는 끝이 쭉 뻗어 있는데, 사진의 소나무는 끝을 오무리고 있는것 같네.
거긴 여름에 거의 비가 오지 않는데, 따라서 비닐로 씌우는 그런 일을 하지 않더군
머리속에 이태리에 대한 지식을 가득담아 갑니다..더운날 게시물 올리시냐고 고생 많으셨습니다..감사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옛 교황들은 우리 불교 태고처럼 부인을 두고 아이까지 낳으면서, 차마 그 아이들을 자기 아들이라 못하고, 조카라고 하면서 그 아들들이 교황의 뒤에서 정치에 간여했던 사실상의 봉건전제국가의 황제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