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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산 내리면서 조망, 어상천 주변
새 한 마리가
마당에 내려와
노래를 한다.
지구 한 귀퉁이가
귀를 기울인다.
--- 박두순, 「새」에서
▶ 산행일시 : 2011년 11월 12일(토), 오전에는 흐리고 안개, 오후에 갬
▶ 산행인원 : 14명
▶ 산행시간 : 8시간 14분(휴식시간 포함, 중식과 이동시간 37분은 제외)
▶ 산행거리 : 도상 17.3㎞(1부 9.2㎞, 2부 8.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29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0 -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務道里) 통불사(通佛寺), 산행시작
09 : 16 - 왕박산(王朴山, 597.3m)
09 : 45 - ┣자 갈림길 안부, 조을치(曺乙峙)
10 : 07 - △567.8m봉
10 : 16 - ┣자 갈림길 안부, 문영월치
10 : 49 - 일자봉(660m)
11 : 19 - 가창산(歌唱山, △819.5m)
12 : 41 ~ 13 : 18 - 흙다리, 나무농원, 1부 산행종료, 중식 후 장장골로 이동
14 : 23 - 방산미(芳山美) 마을
15 : 12 - 714m봉
15 : 51 - 삼태산(三台山, △878m)
16 : 17 - 누에머리봉(864.2m)
16 : 59 - 719m봉
17 : 41 -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滿宗里) 노은치(爐銀峙), 산행종료
18 : 08 ~ 19 : 50 - 제천, 목욕, 석식
21 : 56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통불사 주변의 간벌한 소나무 그 나이테, 나이테가 촘촘한 해는 무척 가물었으리라
▶ 왕박산(王朴山, 597.3m)
왕박산 들머리인 통불사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송학면 근처에서 38번 국도를 빠져나가 양
지방아다리를 맴돌다 다시 38번 국도로 올라 유턴하여 절골 가는 길로 잘 들었는데 맞닥뜨린
철길 아래 굴다리 높이가 2.0m로 우리의 카운티 25인승 버스는 통행불가. 송학면까지 어서
가서 철길 건널목 건넌다.
절골 지나 쭈욱 들어간다. 화장세계 불국토(華藏世界 佛國土)의 불이문(不二門)이라는 통불사
일주문이 나온다. 화장세계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한 정토를 말한다고 한다. 딴은 그렇다. 우
리가 가는 산은 늘 그랬다. 일주문 옆으로 차가 지날 수 있다. 일주문 지나고도 한참을 더 가
야 통불사다. 통불사 앞 주차장에 내려서 선 채로 통불사 전경을 훑어보고 오른쪽 왕박산 방
향표시 따라 임도를 오른다. 임도에서 둘러보는 통불사가 대찰이다.
왕박산이 둥그스름하니 빤히 보인다. 그렇지만 ‘왕박산 0.5㎞’라는 방향표지는 덕담수준이다.
직선거리로 도상 0.64㎞이고, 등로로는 도상 0.94㎞에 이른다. 간벌하는 소나무 숲 임도를 돌
아 잡목 쳐낸 소로로 든다. 산 사면은 자작나무와 밤나무를 의욕적으로 혼식(混植)하였는데
가꾸지 않아 두 수종 다 잡목에 치여 어렵게 버티고 있다. 사면 비스듬히 한 피치 오르면 평벤
치가 놓여있는 안부가 나온다. 배낭 벗어놓고 왕박산 정상을 다니러간다.
가파르다. 나이 탓일까. 단숨에 오르기에는 숨차다. 왕박산 정상. 헬기로 날랐다는 충청북도
표준의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조망은 좋을 듯한데 오늘은 박무가 잔뜩 끼여 옆의 무등
산(無謄山, 620m)과 조을치마을 건너 652m봉이 제법 유곡심산(幽谷深山)으로 보인다. 왕박
산의 유래가 적혀 있다.
요지에 덧붙이자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면서 이성계가 고려의 왕씨 일가를 처형
하자 고려의 왕족으로 승지(承旨)벼슬을 지낸 왕을규(王乙規)가 화를 피하기 위해 이 산으로
숨어들어 성씨를 그의 외갓집 성씨인 의흥 박(義興 朴)씨로 고치고 살았다 하여 그 후로 이 산
을 왕박산이라 부른다.
2. 통불사 주변의 소나무 숲
3. 왕박산 정상에서 조망
4. 앞은 왕박산 자락, 그 아래는 조을치마을
5. 솔체꽃
6. 등로, 소나무 숲길
7. 등로
▶ 가창산(歌唱山, △819.5m)
왕박산 내려 야트막한 봉우리 3개를 넘으면 조을치다. 산허리로 질러가려고 고랭지 밭두렁으
로 돌아 생사면을 냅다 치는데 잘못 판단했다. 형극의 길을 자초한 것이다. 가시덤불 헤치기
도 버거운데 간벌한 나뭇가지를 비키느라 오르락내리락 하니 실거리는 오히려 더 멀다. 주등
로가 걷기 이리 편한 것을.
┣자 갈림길 안부. 돌탑이 있다. 영진도엽에는 조을치로 나와 있다. 충북 제천 서무니에서 강
원도 영월 토교리(土橋里)로 가는 재로 지형이 조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월로
가는 관행(官行) 길이었다고 한다. 지난여름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보았던 솔체꽃(Scabiosa
mansenensis)을 돌탑 뒤 풀숲에서 본다. 이곳은 여태 8월 더위였나 보다.
봉봉 오르내리기 잦다. 푹신한 낙엽 길이다. 왼쪽으로 652m봉으로 가는 ┤자 능선 분기점 지
나고 △567.8m봉이다. 삼각점은 낡아 ┼자 방위표시만 남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는 이 △567.8m봉 직전이 조을치다. 다시 한 차례 쏟아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 문영월재
다. 왕박산에서부터 오른발은 제천 땅을, 왼발은 영월 땅을 밟고 왔는데 문영월이라니 새삼스
럽다. 이정표에 여기서 가창산까지 3.6㎞다.
날이 궂어진다.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오더니 어느새 온 산을 덮는다. 안개 속 부는 바람이 제
법 차다. 비로소 시절이 초동만추임을 느끼게 한다. 안개 속 원근농담의 소나무 숲이 운치 있
는 풍경이다. 산릉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넘는다. 인적 흐릿한 펑퍼짐한 사면의 등로를 산행표
지기들이 안내한다. 영춘기맥 길이다.
넓게 자리 잡은 무덤이 나오고 선두가 서성이는 틈을 타서 얼른 가쁜 숨 돌린다. 사면 쓸어 도
드라진 능선 잡고 제천한빛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일자봉’이라는 표지판을 본다. 산 하나를 거
저줍는다. 산을 깎아내린 지금은 폐광한 광산을 지난다. 얼마나 깊은지 내려다본다. 등로에는
녹슨 구조물이 설치된 채 그대로 있다.
안개가 더욱 짙다. 시정거리 벗어난 안개 속 두런거리는 말소리로 일행 간 앞뒤 간격을 가늠
한다. 공제선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더 오를 데 없으면 가창산 정상일 것. 이슥하니 오른
다. 왼쪽 사면의 까마득한 협곡을 흘끔 보고 도니 가창산 정상이다. 사방 조망이 가렸다. 삼각
점은 조망만큼이나 판독불능.
고려가 망하자 왕족인 왕씨가 왕박산에 숨어들어 살았다는 것에 이어 그 왕족을 모시는 사람
들이 왕족의 어린이를 안거나 업고 어르며 더러는 무등을 태우고 춤을 추었던 산이 무등산이
고, 자장가 등 노래를 부르며 왕족의 어린이를 돌보았던 산이 가창산이라 한다.
영월 토교리(土橋里) 흙다리(영진도엽에는 ‘흑다리’로 표시되어 있음)로 내리는 것이 제천 석
교리(石橋里) 돌다리로 내리는 것보다 산세가 더 실할뿐더러 더 멀다. 하여 흙다리로 간다. 적
공을 탕진하여 뚝 떨어져 내리다 그 기세로 추동하여 716m봉을 오른다. 충청북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들어간다. 평원을 간다. 사면은 울창한 낙엽송 숲. 낙엽은 다 지고 열주만 무수하다.
나지막한 봉우리 넘고 또 다른 716m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 꺾는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 소양강댐을 사력댐으로 완공한 정주영 회장님의 말씀이다. 우리
는 한술 더 떠 곧바로 길을 만들어 나아간다. 발목 거치적거리는 질긴 가시덩굴이 쫙 갈렸다.
발을 끌다가는 걸려 엎어진다. 발을 높이 치켜 올려 걸어야 한다.
승연 님과 스틸영 님이 앞장서서 가시덩굴의 서슬을 눅여놓아 내리기 한층 수월하다. 가시덩
굴 벗어나서 산기슭의 물푸레나무 숲 지나고 달맞이꽃 빈 줄기가 대숲처럼 빽빽한 묵밭으로
내린다. 도깨비바늘 풀도 있었다. 농로로 나오자 완전 고슴도치가 되었다. 뜯어내는 것이 아
주 일이다. 예전에 대간거사 님이 그냥 두어도 두세 시간만 지나면 도깨비바늘이 기력을 다하
여 저절로 떨어진다고 했는데 우선 당장 따가움을 견디기 힘들다.
농로 양옆의 나무농원이 엄청 넓다. 나무농원의 컨테이너 막사 앞 너른 공터로 두메 님에게
차 몰고 오시라 부탁한다(도시락을 차에 두고 왔다). 찬바람 불어 겨울모드로 접어들었다. 버
너 불 피워 볶고 삶고 데우고 끓인다. 이리 만복이니 비육(肥肉)을 염려해야 하는 계절이다.
8. 등로
9. 등로
10. 가창산 오르는 길
11. 가창산 오르는 길
12. 가창산 정상에서, 솔잎 님과 사계 님
13. 가창산 산릉
14. 흙다리 가는 길
15. 삼태산 둘레 길 주변
16. 삼태산 둘레길
17. 대전리 주변
▶ 삼태산(三台山, △878m), 노은치(爐銀峙)
2부 산행. 삼태산 들머리로 이동한다. 방산미 봉암사로 가야하는 것을 차에서 내리고 보니 창
령사지 입구 장장골이다. 저 앞의 산릉만 넘으면 방산미이려니. 간다. 들길을 걷는다. 우리 오
지산행의 체면을 고려하여 ‘삼태산 둘레길’이라고 명명한다. 수확하여 빈 대궁만 남은 고추밭
과 배추밭 이랑을 지나고 이제는 쇠한 환산덩굴 덮은 밭두렁도 오르내린다.
이런 길일까? 이미자의 ‘아씨’가 생각나는 길이다. 이 곡의 작사자는 틀림없이 이런 데를 와서
보았으리라.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길옆에조차 석리(石理)도 고운 크나큰 수석(壽石)들이 무리지어 있다. 묵은 임도로 올랐다가
잡목 헤치며 잡석 쓸어내리고 개울 건너니 산이 아름다운 동네라는 방산미(芳山美)다. 장장골
에서 여기까지 1시간 넘게 걸렸다. 임도 따라 돈다. 벌목하는 전기톱 윙윙하는 소리가 메아리
로 울리고 트랜스포머의 손길인 백호(Back Hoe)는 통나무 모으느라 바쁘다.
벌목한 지능선을 잡는다. 백호가 간 데까지는 우리도 단숨이다. 벌목지대 넘고 바위 성글고
불뚝 일어선 수직사면이다. 잡목 붙들어 매달리다시피 하여 오른다. 철봉 턱걸이 혹은 늑목을
오른다. 되다. 길기도 하다. 714m봉 아래 능선에 진입하여서는 철푸덕하고 쓰러진다.
삼태산이 눈으로는 가깝지만 발로는 멀다. 낙엽 덮인 돌길이 허방 딛을까 조심스럽다. 찬바람
이 무딘 오름이다. 팔 걷어 부친다. 827m봉 오르고 삼태봉은 한 피치. 내쳐간다. 삼태기 3개
를 엎어놓은 놓은 모양이라는 삼태산 그 정상. 두어 평 되는 공터다. 삼각점은 영월 24, 1995
재설. 장장골에서 초로봉(草露峰, 575m) 오르는 유혹을 뿌리치고 둘레길로 돌아서 온 것은 현
명했다. 노은치까지 갈 여력이 있어서다.
이정표에 누에머리봉까지 0.3㎞. 그러나 실제로는 도상 0.74㎞다. 평탄하여 0.3㎞ 시간으로
간다. 수직굴인가? 굵은 밧줄로 가드레일 만들어 비켜가게 하였다. 누에머리봉이 삼태산 정
상 노릇한다. 탁자와 벤치가 있고 정상표지석도 3개나 있다.
노은치를 향한다. 직진은 바위절벽이다. 오던 길로 10m 정도 뒤돌아 동쪽 사면으로 내린다.
가팔라 밧줄이 길게 달려있다. 잡목 헤치고 전망바위에 들려 어상천 뭇 산들 들여다보고 다시
내리쏟는다. 주춤하다 암봉을 통째로 돌아내리면 용바위골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안부. 우리
는 직진하여 719m봉을 오른다. 사면 들려 더덕 수 수를 건지는 뜻밖의 손맛으로 가뿐하게 오
른다.
17시. 삼태산 능선에 팔광처럼 걸렸던 해는 흐지부지 사라졌다. 어둑하다. 719m봉 내리는 길
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갈잎 낙엽 수북하다. 1급 슬로프로 손색이 없다. 속속 미끄러
져 나자빠진다. 아예 미끄럼 타고 내린다. 469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마루금을 잡기가 어
렵다. 눈보다는 사면 누벼 발로 잡는다.
469m봉. 뒤돌아보는 719m봉이 거벽이다. 해마 님 헤드램프 앞세우고 연호하여 선두의 자취
를 확인한다. 우리 차의 불 켠 헤드라이트가 보인다. 코츄브의 불빛이 아니래도 반갑다.
18. 대전리 주변
19. 방산미 임도
20. 벌목중인 삼태산 지능선
21. 삼태산 누에머리봉에서
22. 삼태산 누에머리봉
23. 삼태산 내리면서 조망
24. 노은치로 내리기 전 469m봉에서 바라본 719m봉, 왼쪽 뒤는 삼태산
첫댓글 56회 이세진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주도 어김없이 산행을 떠나셨군요???
남들은 산 정상 하나, 산 봉우리 하나 넘기도 힘드는데
이번주는 3개의 산 정상을 정복 하셨네요....
저는 이 앞 전주(6일)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중앙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고,
이번주(13일)에는 상암동에서 스포츠서울 마라톤대회에 참석해서
완주하고 돌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