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용인청소년수련관을 산책하다 8시에 버스를 타고 안홍택목사와 김대성님과 함께 두부집으로 이동해 푸짐한 아침상을 받았다. 9시경 출발해 독립기념관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마사키 다카시 선생이 도착했고 오츠보 미키오가 다시 합류했다. 김경미팀장의 안내로 추모의 자리로 이동하는데 이미 MBC SBS 지역 미디어 등에서 취재차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막을 들고 추모의 자리에서 묵념을 하고 기념 조형물 주변을 돌았다. 추모를 시작하자 비가 거세가 내려서 선조들께서 흘리시는 눈물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가미 세이죠 대표 발언을 하고고 다시 이동해 총독으로 온 이토오 히로부미가 일본에서 가져다가 자신의 후암동 집에 옮겼다가 1909년 10월 26일 사망 후 일본군사령부로 이전되었다는 이토오 히로부미 신사탑과 1940년 홍성에 세워졌던 황국신민서사비를 방문했다. 표지판에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김경미교육부장은 전시관이 아니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곳이라 따로 안내를 해 주었다고 한다. 제2 전시관으로 이동해 취재진의 카메라를 받으며 일본어 안내를 들으며 다녔다. 100년평화네트 운영위원장으로서 인터뷰도 했다. 다케우치목사의 소개로 오사카에서 왔다는 대학생 5명과 인사를 나누게 되어 함께 점심까지 먹게 되었다. 선배인 나가노 이와오씨가 매년 3-4차례 독립기념관을 방문한다고 소개했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김주현관장과의 간담회로 회의실에서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독립기념관 운영과 관련해 연간 1백만명이 방문하고 그 중 2만명이 외국인이고 일본인이 절반이라고 소개했다. 최형묵목사가 향후의 비전을 담은 동아시아 평화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공감을 해 주었다. 독립기념관 앞에서 김관장과 함께 다시 기념촬영을 하고 떠났다. 예산 출신인 상하이 한구공원 폭탄 투척사건의 윤봉길의사 기념관과 충의사로 달리는 중 김승국대표는 25일 세미나를 위해 잠시 돌아가고 혼자 동행하게 되었다. 윤의사는 일본으로 송환되어 1932년 시즈오카에서 처형되었는데 시즈오카시 매장지에 기념석이 세워졌고 예산과 시즈오카시 간에 교류가 계속되고 있단다. 특히 윤봉길의사가 회장이었던 월진회가 의거 후는 물론 현재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다니 끈기가 느껴진다. 기념관에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포함해 시기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귀한 사진들 그리고 최근의 관련 일본 출판서적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과거사를 현재의 교류의 계기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통역을 위해 18년전 예산에 결혼해 정착한 오가와씨가 수고해 주었다. 그녀는 도쿄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보석회사에 근무하는 등 잘 지냈는데 통일교를 접하고서 한국으로 결혼을 결정하고 왔다니 그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칭찬도 했다. 이어서 만해 기념관으로 갔는데 시간이 종료되어 문이 닫혀 생가를 방문했는데 설명해 줄 수 있는 해설사의 도움으로 만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해는 친구인 최남선이 친일로 돌아서자 그의 집 앞에 멍석을 깔고 곡을 했단다. 자신이 알고 있는 친구 최남선이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포섭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질타하면서 사찰로부터도 멀어져 친구들의 도움으로 머물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비타협적인 자세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제말기 식량배급을 거부해 영양실조로 죽었다니 그 덕분에 한국 불교는 정신적 지주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나는 길에 김좌진 장군 기념관은 자동차로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문당리 친환경농업마을에 자리잡은 환경농업교육관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지역에서 반빈곤운동을 하는 미우라 슈니치와 동료 추지시타 요시아키, 전직초등학교 교사인 후나키 사치코 세명이 최형묵목사의 승용차로 도착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윤옥경사무국장이 김포와 인천공항에서 수고해 주었다. 교육관에는 이상선 참여자치연대 대표를 비롯해 인근 지역 활동가들이 와 주었다. 2층에 마련된 환영의 자리에서 당진의 초등학생 사물놀이 공연에 감동했고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의 고대사에서 지역사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해박한 역사지식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1층 식당에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각자를 소개하고 맥주와 막걸리와 소주를 권하면서 대화하고 우호를 이어갔다. 문화해설사인 오가와 데루요씨가 늦은 시간까지 훌륭하게 통역을 해 주었다. 그녀의 헌신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2시를 넘겨 마무리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주문된 국밥으로 식사하고 일부는 홍성풀부생협 박상우 도농교류총괄팀장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돌아보기도 했다. 김지훈집행위원장이 끝까지 수고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