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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市間賣藥肆에 惟有肥兒丸하고 未有壯親者하니 何故兩般看고 兒亦病親
(시간매약사 유유비아환 미유장친자 하고양반간 아역병친
亦病에 醫兒不比醫親症이라 割股라도 還是親的肉이니 勸君亟保雙親命하라
역병 의아불비의친증 할고 환시친적육 권군극보쌍친명)
시장에 있는 약 파는 가게에 오직 아이를 살찌게 하는 약은 있고 어버이를 튼튼하게 하는 약은 없으니, 이 두 가지를 무슨 까닭으로 보는고, 아이도 병들고 어버이도 병들었을 때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은 어버이의 병을 고치는 것에 비하지 못할 것이니라. 다리의 살을 베어 부모 병을 고치는 일이 있더라도, 이는 도로 어버이의 살이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빨리 양친의 목숨을 보전케 하라.
⋇ 賣藥肆(매약사) : 약을 파는 가게.
⋇ 壯親(장친) : 어버이의 몸을 튼튼하게 함.
⋇ 何故(하고) : 무슨 까닭으로. 무슨 까닭에.
⋇ 兩般(양반) : 두 가지.
⋇ 醫(의원 의. 치료하다) : 병을 고침.
⋇ 割股(할. 넓적다리 고) : 넓적다리 살을 벰. 옛날 어떤 사람의 아버지가 병이 났는데 사람의 살이 약이란 말을 듣고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달여 드렸다는 말이 전해 짐.
⋇ 還是(환시) : 이는 도리어. 곧.
⋇ 亟(빠를 극) : 빨리.
⋇ 親的肉(친적육) : 부모의 살
⋇ 雙親命(쌍친명) : 어버이의 목숨.
(해설)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도록 소중한 두 사람이 무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과연 누구부터 구하여야 할까? 그리고 먼저 구하여야 하는 이유는? 어쩌다 한번 씩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던지는 愚問(우문)도 있다. 누가 더 소중하고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란 자체가 모두 숭고하고 소중한 존재이지 누가 더 소중하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와의 관계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 주었으며, 나를 바르고 정직하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온갖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질 해 준 노고와 은혜를 감사해야 할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부모를 말함이다. 이리 채이고 저리 차이는 家禽(가금)들도 길러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에게는 재롱을 떨고 무조건 따르며 배반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그러나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기에 가끔은 잊고 지낸다. 편안하고 소위 말하는 잘나갈 때에는 오로지 자기가 잘난 탓이라며 하늘이 높은 줄, 땅 넓은 줄 모르고 세상 무서운 것 없다며 설쳐댄다. 부모의 은공과 기원은 까마득히 잊은 채로. 그러다 급전직하 하여 추락하면서 최악의 상태에 빠져 허우적일 때이거나, 위급한 상황 등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찾게 되는 것이 바로 부모이다. 정작 부모가 기뻐하고 뿌듯하게 여기는 시간에는 외면을 하고 자기가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위로를 받아야 할 다급한 때가 되어야 만이 의지하고 편안히 쉴 자리로 선택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식이 잘 되건 못되건, 즉 어느 상황 어느 모습이건 늘 똑 같은 모습으로 가슴에 안는 것이 부모이다.
세월은 천하장사라도 비켜가지 않는다. 늙으면 아무리 천하를 호령했던 사람도 그 호기가 수그러지고, 제 아무리 어여쁜 여자라도 그 미모가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는 늘 청춘이고 정정하리라 믿지만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것, 늙어가며 기력이 약해지고 잦은 병치레와 경제력의 상실은 노화를 더욱 촉진하며 외로움과 무기력감에 빠져 의지력이 약해지며, 그와 반비례하여 잔소리와 쓸데없는 간섭은 심해진다. 자신의 존재감을 그것으로 나마 부각시켜보려는 안간힘의 발로인데,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나고 귀찮으며 자주 반복되다보면 싫증나게 만들어 멀리하려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를 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잔소리와 간섭이 아닌 오랜 경험에서 나온 충고요 생활 속에 지혜가 담긴 금과옥조 같아 도움이 되고 귀담아 듣고 실천하면 이익이 된다고 생각을 바꾸면 말 속에 담긴 사랑을 깨달게 될 것이다. 자식에게 쏟는 정성과 애정을 부모에게로 돌려야 하는데, 잘 안 된다. 흔히 말하는 말로 "살아서 효도해야지 죽은 뒤에 무엇을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이다. 斷指(단지)와 割股(할고)를 실천했던 옛 효자들의 교훈을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노후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보살피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 불편함이 없도록 사전에 조치하고 늘 찾아가서 뵙는 정성이 필요하다.
마음이 중요하다 말을 하지만 정작 필요로 할 때 옆에서 부축하고 말벗이 되어주며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함께 먹고 마시며 야외 등으로 나들이도 하는 등의 살을 맞대는 행동이 필요하다. 외롭고 고독하여 사람이 그리워지기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크고 화려하며 요란스러운 일시적인 이벤트성 보다는 소소하고 작지만 지속적이고 친근하며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오히려 효과적이며 원하는 것이 된다.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한다는 것이 안정과 외로움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정이 약이 되는 것처럼.
邯鄲學步(한단학보)
- 한단에서 걸음걸이를 배운다는 뜻으로 자기의 본분을 버리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다가 두 가지를 다 잃음을 이르는 말임. 동류로 邯鄲之步(한단지보) -
옛날 燕(연)나라의 소년이 趙(조)나라의 서울 한단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본받다가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자기 나라에 돌아오니, 한단에서 배운 걸음걸이도 제대로 안되고 자기의 본디 걸음걸이도 잊어버렸다고 함.(출전 莊子 秋水篇)
(且子獨不聞夫壽陵餘子之學 行於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今子不去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 차자독불문부수능여자지학 행어한단여? 미득국능 우실기고행의 직포복이귀이 금자불거 장망자지고 실자지업 - 그대는 수능의 젊은이가 한단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웠던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그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도 전에 원래의 걸음걸이도 잊어버리는 바람에 엉금엉금 기어서 집에 돌아 왔다 하지 않는가. 지금 그대도 여기를 떠나 돌아가지 않으면 장자의 도를 알기도 전에 그대 본래의 지혜를 잃고 결국 그대 자신까지 잃게 될 것이요.) ※ 邯(고을 이름 한), 鄲(서울 이름 단), 匍(길 포), 匐(길 복).
“公孫龍口呿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 공손룡구거이불합 설거이불하 내일이주 - 공손룡은 열린 입을 닫지 못하고 혀가 당겨 말도 못한 채 곧 도망치듯 가 버렸다.” ※ 呿(입 벌릴 거)
金沙寺(금사사) - 鄭澈(정철) -
十日金沙寺(십일금사사) 열흘 동안 금사사에 있노라니
三秋故國心(삼추고국심) 고국생각에 삼년이나 된 것 같구나.
夜潮兮爽氣(야조혜상기) 밤이면 조수에 상기가 분명하고
歸雁送哀音(귀안송애음) 남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는 슬픈 소리 보내오네.
虜在頻省劒(노재빈성검) 오랑캐 군대가 있어서 칼을 자주 보게 되고
人亡欲斷琴(인망욕단금) 님은 없으니 거문고줄 끊고 싶구나.
平生出師表(평생출사표) 평생토록 제갈량이 지은 출사표를
臨亂更長吟(임란갱장음) 난세를 당하여 큰소리 내어 다시 읽어 보네
22-6. 富貴에 養親易로되 親常有未安하고 貧賤엔 養兒難하되 兒不受饑寒이
(부귀 양친이 친상유미안 빈천 양아난 아불수기한
라 一條心兩條路에 爲兒終不如爲父라 勸君兩親如養兒하고 凡事莫推家不富하라
일조심양조로 위아종불여위부 권군양친여양아 범사막추가불부)
부하고 귀하면 어버이를 봉양하기 쉬우나 어버이는 항상 편치 못함이 있고, 가난하고 천하면 아이를 기르기 어려우나 아이는 배고프고 추운 것을 받지 않는다. 한 가지 마음과 두 가지 길에 아들을 위함이 마침내 어버이를 위함만 같지 못하느니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님 봉양하기를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이 하고, 모든 일을 집이 넉넉하지 못한 데만 미루지 말라.
⋇ 未安(미안) : 마음이 편안하지 못함.
⋇ 凡事(범사) : 모든 일.
⋇ 莫推(막추) : 미루지 말라.
(해설)
가정은 부귀와 빈천에 따른 양면성을 지닌다. 재물이 많고 넉넉하면 자손이 귀하거나 형제
간의 다툼이 잦고, 빈천하면 먹고 입는 것에 구애를 받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돈독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빈천하더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최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입고, 먹는 것에 대하여도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큼은 최상
의 것을 주려고 한다. 비록 남보다는 못 하지만 자신이 처한 능력의 한도 내에서 할 수 있
는 최고를 고집한다. 자식의 성장과 함께 자신이 처했던 환경을 벗어나 남처럼 성공적인 삶
을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봉양함도 의례적인 의무로 한다면 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아무리 진수성찬으로 차려 내어도 받는 입장에서는 무언가 빠진 서운함과 먹어도 마음
이 편치 않아 거북하게 느껴지며 조악하더라도 화기애애하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상차림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온갖 정성과 진정이 담긴 상차림은 눈으로 보고 먹는 것이 아니라 마
음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에게는 그렇지 않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 먹는가
건강과 지능발달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아무리 비싸고 구하기 힘들더라도 무슨 수를 쓰던지
확보하여 삼시 세끼도 부족하여 틈틈이 먹이며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임에도 가장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늘 청춘으로 계실 것이다 라는 착각이
한 몫을 한다. 늙어 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자식이
커가는 것에 비례해 늙어간다는 것을 잊고 지낸다. 부모는 서운함과 바라는 바를 속으로 삭
이지 내색을 하지 않지만 자식은 그대로 표현을 하기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자식이 될
수밖에 없다. 미리 헤아려 챙기고 원하는 바를 감지하는 것도 결국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신경을 쏟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하는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농담 속에 진담이 있다고 슬쩍 던지는 말이지만 그 속에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담겨있고, 간절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살지 않고 떨어져
지내는 경우에는 그러한 기미를 알아채는 것조차도 어렵다. 그래서 평소에 자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일이 예방이 중요한데, 건강도 한번 실기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원상태로
회복되기 어렵다. 특히나 노령의 경우에는 장기간을 요하며 투병기간도 길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만성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의료
비의 지출이 증가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행이.
면역기능도 떨어지고, 재생능력도 현저히 감퇴한 노령의 부모를 모시는 것이 힘들지만 자식
키우는 정성의 반이라도 신경을 쓴다면 그리 무심하지도 그리 소원하지도 아니한 효자노릇
한다고 칭송 받으리라. 나에게 베풀어 준 은혜의 반이라도 갚아야 한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미루지 말고 즉시 실천하여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인 부모 돌아가시기 전에 최선을 다했노라 후회하지 않노라 말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하겠다.
采薇之歌(채미지가)
- 백이와 숙제 형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지내다 죽을 적에 부른 노래. -
周(주)나라의 武王(무왕)이 殷(은)나라를 누르고 임금이 되었을 때 은나라의 伯夷(백이)와 叔
齊(숙제) 형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지냈는데, 그들이 죽을 적이 읊었다는 노래임.(출전 史記 伯夷叔齊列傳)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吁嗟徂兮 命之
衰矣 : 등피서산혜 채기미의 이포역포혜 부지기비의 신농우하홀언몰혜 아안적귀의 우차조혜
명지쇠의 - 저 서산에 오름이여 그 고사리를 캐도다.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꿈이여 그 잘
못을 모르는 도다. 神農(신농), 虞舜(우순), 夏禹(하우)의 도가 홀연 사라짐이여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오호라 가고 또 감이여 천명이 마침내 쇠하고 마는구나.)
※ 采(캘 채), 薇(고비 미), 吁(탄식할 우), 嗟(탄식할 차), 徂(갈 조).
妬妻論(투처론)
우리 옛 선비들은 한가하게 사랑방에 모이면 곧잘 지식유희를 즐겼다. 이를테면 한국역사를 통틀어 각 분야별로 베스트1을 뽑은 것도 그런 지식유희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테면 재상 베스트는 황희요, 풍류 베스트는 林白湖(임백호), 풍채 베스트는 金麟厚(김인후), 미인 베스트는 紫洞仙(자동선)…하는 식으로, 한데 시샘을 뜻하는 투처 베스트로 오른 여인은 예외 없이 정승 H씨 부인이었다. 중종 때 여인으로 아버지도 정승이요, 남편도 정승이며, 아들도 정승인 역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인이 역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투가 심한 여인이었다는 것이 익살스럽다.
“錦溪筆談(금계필담)”이라는 조선조 후기의 문헌에 H씨 부인이야기가 이렇게 쓰여 있다. 결혼한 이튿날 투기심이 강하다는 신부의 마음을 떠보고자 신랑은 술을 따르는 예쁜 계집종의 손목을 짐짓 잡았다. 신부는 못 본 체하고 물러가더니 서실에 앉아 있는 신랑에게 보를 싼 상자를 드렸다. 열어보니 그 상자 속에는 그 계집종의 손목이 잘린 채 들어 있었다. 부인의 질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근엄해야 한다 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아 오다가, 그로써 부인의 투기가 잠잠해지자 미소를 띠며 이제까지 근엄한 이유를 고백했다. 이에 “나를 속임이 어쩌면 이다지 심하오.”하면서 대어들어 수염을 움켜쥐고 한낱 남김없이 뽑아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옛날에 질투가 심하면 가문재판을 열어 손가락을 자르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장안에서 이 투기 때문에 손가락을 잘린 여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 종으로 하여금 그 손가락을 얻어갖고 오라 시켜 여자로서 마땅한 행세를 하다가 희생되었다고 정중하게 조문을 하기까지 했다. 질투란 남성 상위시대에 여권신장을 위한 영예로운 훈장이라던 보브와르의 해석을 상기시키게 하는 맹렬여성이기도 하다.
서양의 투처하면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와 문호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를 연상한다. 사람들 앞에서 남편에게 물벼락을 씌우거나, 손님들 앞에서 남편에게 식탁을 뒤집어 씌웠다던 크산티페다. 소피아 톨스토이는 결혼 일 년 후에 이렇게 쓰고 있다.
“톨스토이는 너무나 딴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오늘따라 나의 젊음이 복받쳐 발꿈치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싶다. 한데 그이는 펜이라는 도구로 원고라는 딴 여자와 춤을 추고 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앙탈을 부렸다. 원고를 갈기갈기 찢고만 것이다.”
인도의 정신적 영웅 마하트마 간디의 아내도 투처였던가 보다. 최근 런던에서 경매된 간디의 서한에서 “이제까지 만난 여인 중에 가장 독살스런 여자.”이며 자신의 생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한다. 소크라테스, 톨스토이, 간디하면 도덕군자라는 이미지가 상통하고 있다. 군자와 여자의 실존과는 극한적으로 배치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이규태 코너 1986년)
22-7. 養親엔 只有二人이로되 常與兄弟爭하고 養兒엔 雖十人이나 君皆獨自
(양친 지유이인 상여형제쟁 양아 수십인 군개독자
任이라 兒飽煖親常問하되 父母饑寒不在心이라 勸君養親을 須竭力하라 當初衣
임 아포난친상문 부모기한부재심 권군양친 수갈력 당초의
食이 被君侵이니라
식 피군침)
어버이를 받들고 섬기기에는 다만 두 사람인데 늘 형과 동생이 서로 다투고, 아이를 기름에는 비록 열사람이나 된다 하여도 모두 자기 혼자 맡느니라. 아이가 배부르고 따뜻한 것은 어버이가 늘 물으나, 어버이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어버이 봉양하기에 모름지기 힘을 다하라. 당초에 입고 먹는 것이 그대에게 빼앗김을 입었느니라.
⋇ 只(다만 지. 뿐) : 단지. 오직.
⋇ 不在心(부재심) : 마음속에 있지 아니함.
⋇ 被君侵(피군침) : 그대에게 빼앗김. 그대에게 침탈(侵奪) 당함.
(해설)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문제로 떠오른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가 보다. 건강하여도 그러할진대 중병에 걸려 몸조차 가누질 못하거나, 치매에 걸려 있거나 하는 경우에는 형제자매간에 심각한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 핵가족화와 맞벌이부부가 대세인 현재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희생하여야 하는데, 요양원이라든가 실버타운 같은 시설에 맡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때 문제가 발생한다. 노후대비가 전무한 세대로 재산마저도 자식들에게 모두 물려준 상태라면 별 볼일이 없는 존재가 되어 방치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독거노인의 대부분이 그러한 경우라 하지 않는가. 자기 자식은 끔찍하게 귀여워하고 불면 날아갈까 온 정성을 다하지만, 늙어가는 부모에 대하여는 소홀하고 어쩌다 한번 얼굴이라도 마주할 때면 신경질과 짜증을 부리며 “내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느냐.”며 오히려 반발하며 가슴에 멍을 남기기 일쑤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추세가 그렇다는 말이다. 자신이 자랄 때 부모가 쏟은 정성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남과 비교하여 못해 준 것과 서운했던 감정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일수록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늘 시끌벅적하게 마련이다. 손이 귀한 집안은 다툴 상대가 없기에 자랄 때는 대가족을 부러워 하지만 상대적으로 독선적인 경향이 강하고 고집스러움과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타협하거나 양보할 줄 아는 배려가 약한 취약점이 들어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아픈 추억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칭찬 등은 희박한 대신에 늘 부정적인 말만 듣고 자라기에 그에 대한 반발심이 강한 에너지로 화하여 칠전팔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반면에 곧이곧대로 받아 들여 삐딱 선을 타는 경우에는 살아생전에는 화합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는 평행선을 타기도 한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嚴父(엄부) 밑에 효자 난다.”는 말처럼 부모의 언행과 행동이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알려하면 그 친구와 부모를 보라 했듯이 부모가 부모에 대하여 열과 성을 대해 효도를 하였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열쇠가 된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도 말하는데, 실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자식에 쏟는 정성과 기대를 부모도 똑같았을 터인데 그것을 깨달게 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흘러가야 한다. 風樹之嘆(풍수지탄)이 달래 나왔겠는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뒤늦은 후회를 많이 하는데 안타깝지만 알면서도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삶이란 사이클에 기인하는 이유도 있다. 즉,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며, 성가시키기까지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게 만든다. 잠시라도 쉬는 시간에 뒤도 돌아보고 좌우도 살펴보아야 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내 코가 석자인지라 한 눈 팔 시간을 불허한다.
자식에게 쏟는 정성과 기대치를 잠시 부모에게로 돌려보자. 늘 청춘이실 것 같았던 부모의 늙으심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나를 보물처럼 아끼고 애지중지하며 오늘에 내가 있도록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셨던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그 은혜를 왜 잊고 살아왔는가. 살아 온신 날보다 살아가실 날이 적은 부모가 남은여생을 평안하고 안락하게 영위하시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의무이며 답이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韓信匍匐(한신포복)
- 한신이 엎드려 기다의 뜻으로, 큰 뜻을 가진 자는 눈앞의 부끄러움을 참고 이겨냄을 이르는 말임. -
한신이 젊었을 때 市井(시정)의 불량배에게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가는 욕을 당했으나, 그것을 참고 이겨내어 후에 큰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출전 十八史略)
(淮陰韓信 家貧釣城下 有漂母見信饑飯信 信曰 “吾必厚報母”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 吾哀王孫而進食 豈望報乎?”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 因衆辱之曰 “若雖長大好大劒 中情怯耳 能使刺我 不能出我胯下” 信熟視之 俯出胯下匍匐 一市人皆笑信怯 : 회음한신 가빈조성하 유표모견신기반신 신왈 “오필후보모” 모노왈 “대장부불능자식 오애왕손이진식 개망보호?” 회음도중소년유모신자 인중욕지왈 “약수장대호대검 중정겁이 능사자아 불능출아과하” 신숙시지 부출과하포복 일시인개소신겁 - 회음의 한신은 집이 가난하여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며 살았다. 빨래하던 아주머니가 한신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밥을 먹였다. 한신이 “반드시 아주머니에게 크게 보답하겠습니다.”라 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화를 내며, “대장부가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서, 내 왕손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밥을 준 것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느냐?” 회음의 백정들이 사는 마을에 한신을 업신여기는 소년이 있었다. 무리의 숫자가 많은 것을 믿고, 한신에게 말하길 “너는 비록 키가 크고 칼 차기를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겁쟁이일 뿐이다. 죽일 수 있으면 나를 찌르고, 그렇게 못한다면 내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 한신이 자세히 바라보다가, 몸을 숙여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오자 저잣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신이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 漂(떠돌 표), 饑(주릴 기), 屠(잡을 도), 侮(업신여길 모), 怯(겁낼 겁), 胯(사타구니 과).
在俄京思鄕(재아경사향) - 閔泳煥(민영환) -
宜家未信有賢方(의가미신유현방) 의사마다 병 고친 다는 것 믿을 수 없고
先養眞元得自强(선양진원득자강) 제 마음 제가 다잡아야 몸도 편하니
飮餐無節添新崇(음찬무절첨신숭) 먹고 마심 절조 잃어 새론 빌미 보이고
憊勞難誇任小康(비로난과임소강) 애쓰고 괴로움 많아 배길 수 없네.
長生靈藥三山遠(장생영약삼산원) 불사영약 구하려니 三神山(삼신산) 먼데
濟衆神草百草香(제중신초백초향) 여러 중생 살리는 법 하도 많다네.
擧世皆知爲已學(거세개지위이학) 세상사람 제 병의 뿌리 빼어 내려면
欲蘇痼瘼適陰陽(욕소고막적음양) 근본 이치 어김없이 지켜야 하네.
※ 俄(갑자기, 기울 아), 憊(고달플 비), 誇(자랑할 과), 痼(고질 고), 瘼(병들 막).
22-8. 親有十分慈하되 君不念其恩하고 兒有一分孝하되 君就揚其名이라 待親
(친유십분자 군불념기은 아유일분효 군취양기명 대친
暗待兒明하니 誰識高堂養子心고 勸君漫信兒曹孝하라 兒曹親子在君身이니라
암대아명 수식고당양자심 권군만신아조효 아조친자재군신)
어버이는 십분 그대를 사랑하나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식이 조금이라도 효도함이 있으면 그대는 나아가 그 이름을 드러내려 한다. 어버이를 대접하는 것은 어둡고 자식을 대하는 것은 밝으니, 누가 어버이의 자식 기르는 마음을 알 것인고,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질없이 자식들이 효도한다고 믿거든, 자식들의 어버이가 되고 어버이의 자식 됨이 그대 몸에 있음을 알지니라. (그대는 자식의 어버이도 되고 어버이의 자식도 됨을 알지니라.)
⋇ 十分慈(십분자) : 충분한 사랑.
⋇ 一分孝(일분효) : 조그만 효도.
⋇ 揚其名(양기명) : 그 이름을 들어냄.
⋇ 誰識(수식) : 누가 알 것인가?
⋇ 高堂(고당) : 부모.
⋇ 漫信(만신) : 부질없이 믿음.
⋇ 君身(군신) : 그대의 몸.
(해설)
孝經(효경)에서 효의 시작과 끝에 대한 언급은 부모로 시작하여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들어내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모든 일의 시작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부모에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의 도를 논할 수 있겠는가 라는 잘못됨과 근본이 바르지 못한 사람의 政事(정사)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효의 실천은 자자손손 대물림하며 명망을 드높이지만 어느 순간 삐끗하면 누수가 생기기 시작하며, 그 동안 튼튼하게 쌓아왔던 전통과 관습이란 제방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고루하게 지키는 것보다는 큰 줄기는 변화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은 그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들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랑할수록 더 엄하고 가혹하다시피 몰아 부치며, 놀라게 성장하는 자식을 먼발치에서 뿌듯하게 바라보지만 정작 앞에서는 더 잘하도록 몰아 부친다. 아픈 만큼 성장하는 것이란 믿음에 미리 어려움과 고독함 그리고 괴로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시키는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내 부모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한계점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과 반항에 직면하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적성에 맞지를 않아 즐겁게 임하지 못하기에 회의가 깊어져 탈선과 방황을 하며 매사에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어떻게 조화롭고 슬기롭게 이끌어 갈 것인가 고민되는 부분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는 부모처럼 살지 않을 거야.”말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고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그토록 입에 달고 살았던 그 말이 자신에게 되풀이 되고 있음을 자각하며 깜짝 놀라게 된다.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핏속에 도도하게 흐르는 유전자는 바꿀 수가 없는 것,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부모의 노고와 은혜를 상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후회는 한 번이면 족하다. 가슴에 서리서리 맺히게 만들지 말고 작던 커다란 것이건 그 동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는 전환점이기를. 사나이는 살아생전에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하는데, 한 번도 울지 않는 강심장으로 버티려 들지 말자. 유한한 삶의 궤적 중에 굴곡이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시달렸어도 언제나 버리지 못하고 버릴 수도 없는 天緣(천연)을 거역하거나 거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해도 빛이 나지 않는 것이고, 욕망은 무한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때론 회의와 짜증과 괴로움도 동반한다. 그 순간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은 것보다도 더 강한 후회를 남기게 되며, 그 시간 또한 길어질 것이니 이왕에 할 것이면 만사를 제쳐 놓고 최선을 다함이 바람직하지 아니할까.
전통과 풍속의 변화가 눈부시게 바뀌다 보니 자조적인 말로 “늙어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벌어 놓은 것 모두 다 쓰고 죽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의식의 변화도 있지만 사회적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던 관습의 변화는 기부문화와 함께 점차 희석되어 가며 봉사와 나눔이 확대되며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착되어 가는 등 선진국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초고령화사회를 눈앞에 두고 그에 걸 맞는 새로운 사업으로 실버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직은 소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는 제도적 한계가 있지만 점차 국가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의 보완이 병행되면서 그 범위 또한 확대되리라. “그 동안 번 돈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모두 쏟아서 제일 시설 좋은 양로원으로 가야겠다.” 라는 말이 절로 공감되는 현실이 되고 있다.
截髮易酒(절발역주)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꾼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모정의 지극함을 이르는 말. -
東晉(동진) 때 가난한 선비 陶侃(도간)의 집에 어느 날 손님이 찾아 왔는데 가난하여 대접할
것이 없자, 그의 어머니가 머리를 잘라 술을 사다가 대접하였다고 한다.(출전 晉書 陶侃傳) ※ 截(끊을 절), 侃(강직할 간)
(陶侃 字士行 本鄱陽人也 侃早孤貧 爲縣吏 鄱陽孝廉範逵嘗過侃 時倉卒無以待賓 其母乃截發得雙 “髟皮” 以易酒肴 樂飮極歡 雖僕從亦過所望 反逵去 侃追送百餘裏 : 도간 자사행 본파양인야 간조고빈 위현리 파양효염범규상과간 시창졸무이대빈 기모내절발득쌍 “표피” 이역주효 악음극환 수복종역과소망 반규거 간추송백여리 - 도간은 자가 사행이고, 본시 파양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다가 훗날 관리로 살아가게 되었다. 파양 땅의 효심과 염치의 모범으로는 逵(규)가 일찍이 도간보다 빼어났다. 때 마침 규가 갑자기 도간을 찾아오자 가난하여 대접할 수 없자, 도간의 어머니가 양쪽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술과 안주로 바꾸어 대접하였다. 규가 급히 떠나게 되자, 도간은 백 여리나 함께 하며 전송하였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몽촌)
※ 鄱(고을 이름 파), 逵(한 길 규), 髟(머리털 표), 肴(안주 효).
어린이 수신책
한 친지의 아파트를 오르내리면서 다른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상 체험을 한 일이 있다. 그 아파트 줄에 사는 아이들이면 낯선 어른인데도 타고 내릴 때면 먼저 타고 내리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여타의 아파트 아이들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한 아파트에 살아온 어른일지라도 인사는커녕 엘리베이터도 강아지처럼 뽀르르 먼저 타고 강아지처럼 헤집고 먼저 내린다. 이 같은 요즈음 아이들의 상식에서 탈피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물어보니 의외로 간단하였다. 반상회 때 어머니들끼리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기로 한 것 이외에 아무런 뭣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이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백지다. 부모나 선생들이 그 백지에 버릇을 그려주지 않았기에 버릇이 들지 않았을 따름인 것이다. 버릇은커녕 눈먼 애정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길러 백지를 오염시키는 작은 폭군들을 양산해 놓고만 것이다.
옛 우리 조상들은 가문별로 또 서당별로 수신책을 정해놓고 예닐곱 살 때부터 버릇을 가르쳤다. 율곡 선생은 자녀들을 위해 “小兒須知訓(소아수지훈)”과 서당의 서생들을 위하여 “學校模範(학교모범)”이란 수신책을 펴내고 있다.
근세 사람인 李擎根(이경근)이라는 이의 “顧菴家訓(고암가훈)”에 보면 자신은 60이 넘도록 행실에 어긋남이 있으면 80이 넘은 노모로부터 종아리를 맞았다 하고 근력이 떨어져 매치는 힘이 약해진 것을 느꼈을 때 노모를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까지 적고 있다. 아무리 개구쟁이인들 그 대목을 읽고 수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어진다.
실학자 李德懋(이덕무)가 가문과 동네사람들을 위해 지은 수신책인 “士小節(사소절)”은 방대하고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 밥을 먹을 때 씹는 소리를 내지 말고 상추쌈 먹을 때 눈을 부라리지 말며 신을 신을 때 뒤축을 꺾어 신지 말라, 어른이 드나들 때는 반드시 일어서서고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배꼽 위를 올려보지 말며 어른이 등을 긁으라 하거든 손을 호호 불어 데운 다음에 긁어드려라. 말끝마다 죽겠다느니 죽느니 하는 말을 쓰지 말고, 종이나 개를 큰소리로 꾸짖지 말며 남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들지 말라.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남의 몫보다 내 몫을 적게 하라 - 등등. 이같이 하여 우리 선조들은 어릴 적부터 인격체로서 기반을 닦아 올렸던 것이다.
지식 주입에 여념이 없어 증발하고 없는 이 수신교육을 포항의 한 사학인 제철학원 산하 4개 초등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부활시켜 이목을 끌고 있다. “바른 가정교육” “깨끗한 생활”등 수신과 공공생활의 덕목 교과서를 편찬, 전 학년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다. 우리 한국교육의 가장 아픈 치부에 손을 쓴 것이 된다. 보다 연구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면 한다.(이규태 코너 1990년) ※ 擎(들, 받들 경), 菴(풀이름, 암자 암), 懋(힘쓸 무).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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