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창시한 파성 설창수(5)
파성의 웅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오늘은 지난 10월 3일 제58회 개천예술제를 기해 4,50년만에 귀향하여 '서제'에 참석한 '남강문우회'이야기를 해볼까 한다.이 동아리는 학생시절 진주에서 문학병을 앓다가 직장 따라 생업 따라 진주를 떠나 살았던 사람들의 문학 모임이다.
최근에 조직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동아리인데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고 이번처럼 개천예술제때 진주를 방문하는 것이 큰 행사가 되는 그런 특별한 단체이다. 이번에는 진주예술재단 최용호 이사장의 초청 형식으로 귀향하여 3일 오후 5시 최이사장이 베푸는 장대동 환영 만찬장에서 저녁을 먹고 다같이 도보로 진주성 서제 장소로 이동하여 감격적으로 서제에 참례했다.
왜 파성 이야기를 하는데 남강문우회가 끼어드는지 의아해 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에 남감문우회의 회칙 제2조 를 적어 드리면 곧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남강문우회는 설창수 선생께서 깊이 일군 문향 진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문학인의 모임으로 문예창작으로, 남강가에서 품었던 청운의 꿈을 더 다지고 빛내며 아울러 우정을 두터이해, 참되고 즐겁게 살아가고자..." 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파성이 가꾼 문향 진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단체가 개천예술제를 방문한 것이다.
이들 회원들은 개천예술제 3회때부터 10회(1960)때에 이르는 그 기간 동안에 백일장에 입상한 사람들이고 파성과 동기가 주관했던 '영문嶺文'을 통해 신인으로 데뷔했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 나온 시인, 작가들이거나 그 어우름의 문청들이 밖에 나가서 전문적으로 문학을 했던 분들도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고 서울이나 경기도 등에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원 명단을 들쳐 보면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보인다. 박용수, 정혜옥, 이영호, 이유식, 최용호, 정재필(회장), 성종화(감사), 김상남(부회장), 허일만(총무), 정재훈, 손상철, 강남구, 정옥길, 홍성실, 송영기, 정원주, 이문형, 송민수, 정대수, 황소지, 김덕남, 이종호, 김충남, 최철훈, 조선열, 선영자, 최만조, 김창현, 정태범, 김달호, 이숙남, 함순자, 김용빈, 한영탁, 서관호, 강석호, 강동주, 정목일, 이영성 등이다.
이들 중 20명이 진주를 방문했는데 서제에 참여하고 이어 천수교 밑 부교를 건너 민속주점에 들어가 새벽 3시까지 축제를 즐겼다. 다음날 아침에는 필자가 회원들을 제일식당으로 초청했는데 밤새워 마신 술의 끝이었지만 해장국과 해장 막걸리로 시장통 밥집의 정서를 유년의 햇살처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식사 후 공식 일정으로 칠암동 파성댁을 방문하고 작가 김보성과 추억의 필름을 함께 돌렸다.
이야기가 이만큼 왔으므로 몇 분 회원들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 그중 박용수는 시인이자 우리말 사전 편찬자이다. 현재 한글문화 연구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말 갈래사전' '우리말 역순 사전' 등을 내었고 '우리말 전자 사전' 편찬에 힘을 쏟고 있다. 이번에 와서 필자를 보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뜸 "삼촌은 잘 계셔?" 라고 놀랍게도 발음이 또록 또록했다. 귀먹고 말까지 먹어서 늘 필담으로 일관했는데 어째 이리 말이 분명해졌는가? 나랏말을 사랑하여 챙기고 배열하고 매만지는 가운데 언어 감각이 살아났단 말인가. 필자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개천예술제 백일장 심사를 하던 중에 이번에 박용수 시인이 온다고 말하자 작년도 제전위원장 신일수 교장이 "참 반갑다" 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중학을 졸업하고 서라벌 사진관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박시인이 와서 사진 기술 일체를 습득해 갔지요." 했다. 순간 필자는 "참 진주는 골목이 좁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짧게 끊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