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떼쓰는 아이와 주걱턱
빌은 마리우폴 장군의 경호병으로 장군의 집에 기거를 했었다.
그때 장군의 딸은 빌과 동갑내기로 인류역사학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리브네’는 출중한 미모와 이름처럼 버드나무 같이 가는 허리를 가졌지만 아버지를 닮아 스케일이
크고 호탕했다.
특별히 연구를 위해 여행을 자주하는 리브네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빼곡하게 기록한 기행을
머리에 입력시키려고 되새김질을 하듯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대역이 되었는데 바쁜 아버지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마침 오데사 장교의 추천으로 경호병이 된 체르노빌은 장군의 허락 하에
시간이 나면 밤늦도록 들어주는 임무까지 부여 받았다.
빌은 점차 인류역사학과 여행지의 매력에 빠져 듣기에 최적화 된 학생의 모습으로 묻고 답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리브네는 때론 선생님 같고 때론 친구 같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자
빌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빌을 유혹한다거나 사사로운 감정은 없이 오로지 이야기 꾼 일뿐이었다.
빌은 짝사랑의 미미한 감정이 움트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호병보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못 오를 버드나무.
그를 향한 야릇한 마음을 주체 할 수 없었다.
농부의 아들로 마을 대장간과 자동차 정비공 출신에 어쩌다 특등 사수가 되어 장군의 경호원이 되었다.
또한 흠이라면 백선의 흉터를 지니고 있어 무엇으로 비교 하여도 흑과 백인 리브네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여기에 계속 머물면 자신이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봐 그녀를
포기했다. 그날 바로 장군에게만 보고를 하고 경호병을 그만 두었다.
핑계 아닌 핑계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부와 마을 대장간을 하며 돈을 모으면 차를 사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핑계로 대었다. 그녀는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그림으로만 남겨둔 한때 이루지 못할
사랑이었다.
가끔 리브네가 생각 날 때면 그가 들려주었던 입력된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나왔다.
자신이 입은 부상으로 절름발이가 될지도 모르는 추가된 약점이 그녀처럼 요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아픈 상처로 다가왔다.
‘두 번째 사랑도 이렇게 끝나는가.’
합스부르크 가문이야기는 요하나를 완전히 떠나보내려는 특등사수의 사정권 안에든 표적 이었다.
“요하나. 신성 로마제국 교황과 황제들이 서로 견제하며 싸우는데 교황들은 세력이 커지는 황제들을
길들이기를 하고 파문을 시켰거든? 그러자 대를 이을 황제가 오랫동안 없었지. 고민 끝에 교황은
알프스지역에 귀족 하나를 황제를 세웠는데 루돌프 1세라는 사람은 야심가로 꿈이 컸어.
그래서 주변국 오스트리아 공국과 여러 공국들을 자기 영향권 아래에 두었는데 그걸 지속 시키려고
오스트리아 공국과 다른 공국에 사는 남매와 사촌 삼촌도 가리지 않고 결혼 시키자 문제의 주걱턱
유전병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합스부르크 턱’ 가문이 되었지.”
“합스부르크 턱?”
“그 가문은 ‘근친결혼’의 제도를 몇 백 년이 넘게 유지했는데 유전병의 부작용으로 자녀를 낳으면
열 명중에 겨우 두세 명만 살아남고 어려서 죽는 불상사를 겪었지만 혈족왕족 집착으로 ‘근친결혼’
제도를 고집 했다가 주걱턱으로 멸문을 했다는 거야.”
“근친결혼? 주걱턱으로?”
“그래. 남매가 결혼을 한다는 게 합리적이지 못하고 주걱턱으로 후손이 끊겨 멸문을 했는데
유전병이 정말 무섭지?”
“웅. 진짜 그 유전병으로 후손이 끊어졌다는 거야?”
요하나는 후손이 끊겼다는 말을 하며 눈이 동그래졌다.
숲정이는 사람이 귀한 곳이기에 장로와 어른들로부터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 듣고 자랐다.
그래서 전통 목걸이를 만들어 축복 메시지를 담아 주었는데 후손이 끊겨 숲정이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마치 신이 떠났다는 것처럼 인식하는 숲정이 가족들이었다.
벤과 요하나는 서로 자신이 숲정이의 후손을 이어 믿음의 명문 계보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근친결혼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빌은 놀란 요하나를 보며 이때다 싶어 벤과 요하나를 이어 주고 자신이 물러날 마지막 말을 던졌다.
“요하나. 하지만 걱정 마. 요하나는 벤과 남매도 아니고 합스부르크 왕족처럼 아주 가까운 삼촌 조카나
친족 사이도 아니잖아?”
“웅~”
요하나는 싫은 표정의 내민 입술로 ‘웅~’하고 대답을 했다.
빌은 요하나의 토라진 표정과 입술로 자신의 말뜻을 간파했다고 믿고 천천히 백선의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요하나 내 팔의 백선이 보이지?”
“웅.”
“요하나와 벤 둘 중에 나처럼 이렇게 이상한 유전병만 없다면 합스부르크 병은 물론 어떤 병에 걸려
후손이 끊기는 일은 없을 거야. 두 사람이 숲정이마을을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믿음의 후손,
우수한 혈통의 계보를 이으려면 아이를 많이 나야 하잖아? 둘 다 순한 양 같아서 아주 우수한 혈통의
자녀들이 많이 태어 날거라고 나는 믿어.”
“.......”
“하지만 나는 벤과 달라. 신도 믿지 않고 이렇게 커다란 백선이 팔에 있는데 이것이유전이 되어서
태어난 자녀가 요하나처럼 예쁜데 이 백선 자국이 얼굴이나 여기저기에 있다고 생각해봐.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어. 나도 처음에 요하나 앞에서 백선을 감추려고 긴팔 옷을 입고 있었잖아?”
“.......”
요하나는 빌의 말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들을수록 빌이 자신을 떼어 놓으려는 말로만 들려 입술이
점점 토라져 나왔다. 하지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떼쓰는 아이를 선택했다.
“아니야 난 유전이 뭔지도 모르고 그런 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런 병이 있다면 빌의
부모님에게도 백선이 있을 건데 없지? 빌은 지금 나를 떼어 내려고 지어낸 거짓말을 하는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면 증거를 대봐. 그런 말을 마리우폴 장군의 딸에게 들었다는데 그 여자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 혹시 빌이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 했다가 백선 자국이 유전병이라 싫다고 버림받았어?
그래서 나도 싫다고 할까봐서? 그게 아니라면 거짓말이야 나를 떼어 내려고 하는 거짓말.”
요하나는 또 그렇게 떼를 썼지만 빌은 버드나무 ‘리브네’를 보내듯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보내야 했다.
하지만 빌도 순진하게 떼를 쓰는 요하나의 말에 넘어가 리브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말았는데
리브네의 짝사랑 이야기는 감추었다.
“아니야~ 경호병으로 장군님 댁에 기거를 했을 때 동갑내기 장군님 딸 리브네가 어느 날 내 팔을 보고
합스부르크 병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이 전부야 내말을 믿어. 나는 장군의 경호병의 편안함과 안락한 삶도
실 증 났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동차 정비공과 여행을 핑계로 차를 타고 떠돌이 집시처럼 돌아
다녔잖아. 난 또 그렇게 살지도 몰라. 그러니 나를 포기해 요하나.”
반반의 거짓말로 요하나를 달랬다. 하지만 요하나는 막무가내 떼쓰는 아이처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말도 빨라지며 마구 쏟아냈다. 연금술사 빌이 거꾸로 되었다. 요하나의 제련으로 녹아 버릴듯했다.
“아니야 난 백선이 자랑스러워 아이에게 유전되면 어때. 그건 신께서 아이에게 주시는 특별한 그림이야.
언젠가 꼭 필요한때 적재적소에 쓰시려는 신의 계획이 있는 신의 최고의 문신이야.
빌의 백선도 오데사 장교님이 발견해서 죽음에서 구한 백선이잖아.
그리고 벤과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결혼도 생각 한적 없고 친척자매의 좋은 관계일 뿐이야.
그러니 약속해줘. 완치가 되면 꼭 나를 찾아온다는 약속. 나는 그 대답을 듣기 전에는 빌의 곁을
떠날 수가 없어.”
빌은 요하나를 보내려면 기어이 양심까지 속이는 거짓말을 또 해야 했다.
“요하나 알았어. 언젠가 내가 꼭 찾아갈게. 되도록 빨리. 그럼 됐어? 수선화 아가씨가 목마르기 전에
시들기 전에.”
“아니야 난 수선화가 아니라 해바라기라니까? 마른땅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좋아요 약속 했어요 손가락 걸어요.”
“어? 그럴까?”
어정쩡한 거짓 약속의 손가락을 걸고 빌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울컥 마음이 아파와 요하나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요하나는 꼭 돌아온다는 약속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빌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고마웠어. 그동안.”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우리는 진행형이니까.”
“어?”
“그리고 빌이 꼭 돌아 올 거라는 믿음의 정표를 주고 싶어요.”
“정표? 뭔데?”
요하나는 퉁퉁 부은 빌의 얼굴을 잡고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빌은 정표라는 말에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저만큼 보내고 있었다.
오데사를 따라 주상절리를 가는 날이 왔다. 루카스 일행과 빌의 부모가 찾아왔다.
모두 빌의 손과 무릎상처에 손을 얹고 빠른 쾌유를 위한 기도를 했다.
빌은 위로의 기도에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요하나는 기도보다 헤어지는 슬픔이 더 컸다.
기도가 끝나자 이자벨라가 물었다.
“빌 올해 몇 살이지요?”
“예 스물다섯 살입니다.”
이자벨라는 빌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요하나와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리사는 빌과 요하나를 이어주려는 생각을 알고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놀라며 말했다.
“앗차 루카스~내 정신 좀 봐요.”
“뭔데 그렇게 놀래요?”
“그날 다 챙겼다고 생각 했는데 숲정이에 두고 온 것이 있어요.”
첫댓글 목요 소설인데 날짜를 착각하고 하루 먼저 올렸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 주려는 마음 일까요?
즐독 하시며 더위를 떨쳐 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