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의 50년 지기 벗인 전 국립 현대 미술관 관장 이셨던 석남 이경성 선생이 돌아가셨다 몇일전 아버지의 제자인 김학균 화백과 선생이 돌아가시기전 선생으로 부터 아버지에 대한 글을 받아 놓자고 말을 하였건만 우리의 바램과 틀리게 가신것이다 진작에 찿아 비웠어야 하는것인데 우리가 너무 무관심 하였던것같다
선생을 마지막으로 본게 작년 이맘때 였던것 같다 인천 시립 박물관 보수 개관식에서 선생의 기념관을 박물관안에 석남 기념관을 만들때 였다 당시 인사를 여쭐때 선생께서 10여년전에 타계하신 아버지의 회고담을 말씀하시면서 선생 자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하시면서 평창동으로 유희강선생의 자제와 함께 방문을 해달라고 부탁을 주셨건만 차일 피일 미루다 선생님의 가시는길을 못본것이다
재수해서 대학1학년 시절 날좋은 5월에 세종로에 있던 국립 박물관을 땡땡이 쳐가며 친구와 둘이 방문 한적이 있었다 선생을 뵈러 간것이 아니라 순전히 땡땡이 치러간것인데 그곳 돌계단에서 친구와 담배를 피며 잡담을 하던중 그곳 책임자로 계셨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것이다 얼마나 무안햇던지 ....... 선생께서는 우리를 안내 하셔 구내 식당에서 점심까지 사 주시고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부모님 안부와 친절 하시게도 얼마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용채도 주셔 그 돈으로 남대문에 나가 친구와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후에 병상에 계셨던 아버지를 몇차례 찿아 주셨던 기억과 오셔서 아버지가시기 전에 전람회를 열어야 되지 않게냐고 하시면서 열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셔 후일 동생이 전람회 개최를 말씀 드렸더니 친절 하시게도 책자에 권두사로 축사까지 써 주시고 개막당일 오셔서 또 한번의 축사도 해주셔 자리를 밫내 주신 일이다
미국에서 영면에 들어가신 다음 인천에 오신다 하니 이번엔 선생에 대한 마지막 예를 바쳐야 겠다 아울러 몇분 남지 않으신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찿아빕고 인사를 드려야만 겠다 늘 마음엔 있지만 말뿐인 현실을 탓하면서.......................
우문국 50년 예술세계 권두사 중에서 우리들은 해방직후 인천 예술인 협회 문총 인천지부 그리고 문총 구국대등을 번갈아 가면서 같은 미술부 회원으로서 그 어려운 시기를 거쳐 온 것이다 이렇게 인천 문화계에 살면서 여러가지 일도 하였지만 (중략) 내가 창설한 인천 시립 박물관과 도서관은 우연히도 동지였던 유희강 장인식 우문국 형등 으로 바톤을 바꿔가며 경영해왔다( 이하 생략)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요 가셔 유희강 선생님 와 장인식 선생님 그리고 박세림 선생님 이렇게 인천 초창기의 문화로 맺은 네분의 인연을 다시 맺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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