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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
윤구병(1943-), 보리출판사, 2024년 02월 24일,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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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중요한 ‘뭣’이 우주(세계)이기도 하고 자아(인간, 영혼)이기도 하다. 그러면 흰두이즘을 이어받은 범(梵)과 아(我)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태극의 음양(陰陽)으로부터 건곤일척(乾坤一擲)이라는 의미에서도 있듯이, 하늘과 땅의 문제로 보이지만, 인간에 비추어서 보면 황제(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거리는 하늘(황제)과 백성(인민)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이원론적인 대립을 길항관계(l’antagonisme)로 사고 하는 것이다.
터전의 공동생활에서 함께 하는 이들을 이항관계가 아니라 다곱관계로서 다항체이다. 다항체의 합의와 협약으로서 조화중항의 추구가 공화제로 가는 길이리라. 8천만의 합의에서 입말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입말로부터 문자로 기록하기 좋은 것들이 많다. 원자 개념을 톨로, 파동 개념을 결로, 빅뱅을 큰펑으로 표현하는 것, 시간의 경과에서 어제, 이제, 아제로서 아제를 살리는 것, 때로 시간을 데를 공간으로, 등은 일반화가 가능할 것이다. (57OM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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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성과 변화, 생물계의 발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것을 수학과 물리학을 이용하여 설명하게 되면 뭔가 빠진 것 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서술이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추리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 같다. 왜 존재론과 우주형상론에서는 생성론과 우주발생론에서와 달리 설명할까. 단순히 공간적 사유와 시간(지속)적 사유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근원적 또는 원인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존재론의 연장선 상에서 수학과 물리학적 관점으로 우주와 자연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생물의 여러 방향으로 변화와 진화가 있듯이, 그리고 지구상에서 사회의 조직화의 다양한 모습들의 문화를 펼치고 있으나, 저자는 이야기를 줄였다. 그럼에도 도덕과 종교 차원을 끌어들여서 생성론과 지속론을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더, 이것은 추측인데, 저자는 99.9…에 대해 매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수의 나누기 문제와 분할의 문제의 연결에는 아마도 10진법과 60진법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수학 책들에서, 여담처럼 이용하는 이야기가 있다. 파트모스의 요한(사도 요한이 아니라 한다)이 쓴 “묵시록”에서 666을 악마의 수로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원통 항아리의 곡식량과 사각형 되박이의 곡식량의 차이에서 오는 고민이 들어있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장사꾼으로서 유대인이 전투적 전통에서 온 10진법의 옹호에서 온 오해라고 한다. 유태인 이전에 수메르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수학적 관심은 이미 토지에 생산(기후)과 토지의 분배에 의한 농사를 위하여, 60진법의 분배로 계산하는 공동체의 고민을 했다고 한다. 수학사에서는 농사에서 생산과 분배에서 60진법이, 그리고 곡식이든 고기이든 교환에서 대상의 수로서 산수의 10진법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한다. 공정한 분배의 세상이 먼저이고, 재물을 모으는 교환이 다음이라고 하는 견해가 문화사를 보는 관점에서 흥미롭다. 10진법이 문명사관에 닮았다면(여기에 신학과 네오스콜라가 들어있다고 본다), 60진법은 문화론에(조화중항을 이룰 조율과 공감을 실행하며) 닮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30, 59UMH)(1:40, 59UMI)
[참조: 이 책을 읽은 뒤 이야기: https://cafe.daum.net/milletune/S5wU/7 ]
-*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2024)*-
목차
1부 7
1 없는 힘(됨)과 있는 힘(함) 9 / 2 빛과 어둠의 역사 13 / 3 빛과 소리 16 / 4 영원회귀의 역사 19 / 5 공간에서 시간으로 22 / 6 삶의 힘 25 / 7 주름을 빚어내는 바람의 힘, 삶을 빚어내는 결의 움직임 28 / 8 유전의 역사35 / 9 생명의 역사38 / 10 양자 요동과 천체의 교란 43 / 11 그늘 바람과 볕 바람 46 / 12 어둠 속에서 흐르는 삶의 결, 50 / 13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53 / 14 삶의 크기 57 / 15 한뉘바람 60 / 16 우주 기상학 63 / 17 인류가 빚어낸 도시 문명 66-67 / 18 필연에 맞서는 우연의 힘 68 / 19 형이상학으로 본 우주의 역사73 / 20 우연과 자유 77
2부 85
21 시간과 공간 87 / 22 인간 정신에서 일어나는 혼돈 89 / 23 사랑의 힘 91 / 24 기억의 역사 94 / 25 믿음의 역사96 / 26 정보와 소통의 발달사 98 / 27 톨, 덩이 진 힘 104 / 28 있음과 없음의 사이 106 / 29 함과 됨의 흐름 110 / 30 톨로 뭉쳐진 시공간과 결로 풀리는 시공간 115 / 31 살미와 주그미 118 / 32 깊이와 널리 121 / 33 두루 훑기 124 / 34 1과 0, 127 / 35 삶톨의 슬픔과 결의 꿈 129 / 36 모를 누리의 꿈 132 / 37 둥글뿔(원추) 135 / 38 바람 138 / 39 때와 데 141 / 40 eiπ+1=0 144 /
* 맺는 말
* e의 iπ제곱+1=0의 풀이
* 추천하는 말: ‘모롬사랑’이란 말씀에 귀가 번쩍: 변택주
부록: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 이 책에 나오는 우리말
****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2024)*** 내용중에서
1부 7
1 없는 힘(됨)과 있는 힘(함) 9
이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드시(필연)’는 없다. 어쩌다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다. 일을 벌이는 놈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우주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양자 요동의 역사를 쓰는 것이나, 먼지의 역사를 쓰는 것이나, 천체의 역사를 쓰는 것이나, 허공의 역사를 쓰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다. 이 우주 안의 역사는 어쩌다 그렇게 쓰이게 되는 것뿐이다.(11)
5 공간에서 시간으로 22
데모크리토스에서 에피쿠로스를 거쳐서 루크레티우스에 이르는 동안 고대 원자론자들이 무한한 수의 원자와 무한히 펼쳐져 있는 공간으로 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우주론의 밑돌을 놓고, 이와 대조적으로 플라톤이 티마이오스편에서 수학적으로 측정가능한 정삼각형과 직각삼각형으로 산술 중항과 조화 중항까지 동원하여 평면 우주룰 설계한 뒤로 현대 물리학자들은 수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이 두 우주론을 절충하기 시작했다. (22)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데미우르고스가 4원소를 구성할 때 사용하는 비례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들이 있다. 비례중항(산술 중항)은 ἀναλογία(아날로기아)와 μεσότης(메소테스, 중앙의 값)으로 설명한다. 이에 비해 조화중항(기하중항)은 우주 혼을 조율할 때 휘포노이아(ὑπόνοια, 숨겨진 뜻, 속 뜻)[ὑπεναντία(휘페난티아, 대립되는, 적대하는)]로 또는 우주의 음정에 따라 ἁρμονική μεσότης(아르모니케 메소테스, 조화로운 중항), 즉 아르모니아(ἁρμονία)라고 설명한다. - 휘포노이아(ὑπόνοια) ‘속뜻’ 또는 ‘알레고리(비유)’를 의미하며, 이는 수학적 비례인 아날로기아[분석]와 달리 쓰인다.] - [일반적으로 비례(기하)중항: ἀναλογία(아날로기아)로서 4원소(불, 공기, 물, 흙)의 결합방식이다. 조화중항: ἁρμονική / ὑπεναντία (아르모니케 / 휘페난티아) 우주 혼의 수열을 음악적 음정(옥타브, 4도, 5도)으로 조율하는 중항을 의미한다.] [ὑπεναντία(휘페난티아, 상반된)와 ἀρμονική(아르모니케, 조화로운)는 고대 그리스 수학 및 음악 이론에서 '조화 평균(la moyenne harmonique)' 또는 '조화 비례'를 뜻하는 핵심 개념인데 – 아르키타스(Archytas, 전435-전347) 이전의 초기 피타고라스 학파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조화평균(la moyenne harmonique)'을 '휘페난티아(반대평균)이라 불렀다. / 피타고라스 학파의 필롤라오스(Philolaus)나 아르키타스 같은 학자들은 기존에 ‘휘페난티아’라고 불리던 평균에 ‘아르모니케(조화평균)’라는 새 이름을 붙여 정착시켰다. 중세의 교육(3학 4과) 문법학 논리(변증)학, 수사학, / 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에 이어진다. (59UMG)]
그러나 양자 수준에서도 입자는 겉과 속을 지니고 있었다. 입체를 평면으로 환원하는 작업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전자와 그 각 운동이 밝혀지고, 양자역학의 성과는 현대 기술공학에 혁혁한 공헌을 했다. 우주선을 우주 공간에 쏘아올려 살눈(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천체를 관할 할 수 있었고[전파망원경으로], 전자 현미경으로 미시세계의 크기를 한껏 넓혀 농을 수 있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우주를 재편할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홀로그램과 사이버 공간 같은 말은 그런 믿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 구조역학의 승리는 새로운 학문인 구조주의를 낳았고, 이 구조주의는 기능주의를 포섭하여 구조기능주의라는 말까지 낳았다. (23) - [수학의 발달이 거대 우주와 미시 물질까지 로그계산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생명에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리라, 그 방향과 생명의 탐구방향을 다를 것이다.]
철학에서는 베르그송과 하이데거가 각각 사유와 운동(1934), 존재와 시간(1927)을 쓰고 물리학에서는 시공 연속체가 운위된다. 시간은 틈새가 넓다. 우주론적 시간, 지질학적 시간, 생명진화의 시간, 계통발생과 개체발생의 시간, 천체 형성의 시간, 미생물 존속의 시간, 염기서열 배열의 시간, 양자 생성과 소멸의 시간 ……. ‘시각’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갈래는 천차만별이다. 여기에 연속(succession, 계속)과 지속(durée duration)까지 덧붙는다. (24) - [일반적으로 벩송과 하이데거의 대비는, “시간의 자유의지”로 영역된 DI(1889)의 영향으로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을 썼다고 한다. 존재를 다루는 한 시간에서 생성과 발산은 별개가 될 것이다.]
6 삶의 힘 25
우주적 친화력은 물질만 공유하는 게 아니다. 이 친화력이 보편적이라면 그 힘은 온 우주에 깔려 있어야 한다. ... 이 순간 나름으로 한껏 귀를 열어 우주의 화음, 생명력이 부르는 합창 소리를 듣는다. (27) -[생명의 함성]
9 생명의 역사 38
그들이[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내뿜는 힘은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다. 구슬꼴의 몸에서 줄기가 생기고 그위에 둥글게 쫓판이 피어나듯이 보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결들을 지워 낸 어설픈 그림일 뿐이다. (42)
14 삶의 크기 57
(‘이데아는 허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말은 내 스승 철학자 박홍규 선생님의 말이다). (58)
16 우주 기상학 63
나머지 99.999 … ∞ …9의 산이들은 그저 톨이 아닌 결로 이 한뉘[우주]에 굽이치고 있다고 보는 게 옮다. (64) - [갑자기든 생각인데, 999의 문제가 666에 대한 해결책으로 낸 것일까? (59UMG)]
17 인류가 빚어낸 도시 문명 66-67
인류는 저주받아 마땅하다. (67)
18 필연에 맞서는 우연의 힘 68
플라톤의 대화록 티마이오스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를 거쳐 루크레티우스에서 마무리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는 물질에 바탕을 두고 이 우주의 생성을 다루려는 서양 과학의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다. (69) - [논의 방식의 이중성은 수학과 과학의 발달의 두 방향과 방법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19세기에 이르러 생물학의 등장에서 달리 생각하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20 우연과 자유 77
되풀이됨(repetition)과 다름(difference), 이것은 질 들뢰즈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두꺼운 책을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말았다. 되풀이는 기억의 최소 근거다.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되풀이 해서 저됨(자기동일성)을 드러낸다. (77) - [들뢰즈의 서장은 동일성인데 비해 결론장은 정체성일 것이다.]
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에서 이미 주어진 것(data), 정보, 기억[추억],유전, 이러저러한 과학적 성과보다 아직 주어지지 않은, 그러나 주어질지도 모르는 것(다투라 datura로 부르자), 사랑, 상상력, 우연과 자유의 선물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83) [훌륭타, 이쁘다, 덕분이다 등이 소중하다.]
2부 85
21 시간과 공간 87
오죽하면 ‘있는 것은 하나로 있다’는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철석같이 믿은 그 제자 제논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치밀한 논증을 통해서 ‘시간이나 공간? 그딴 거 없어!’라고 잘라 말했을까. 이 논증을 깨려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베르그송이나 러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애를 써 왔지만, 내가 보기에 어떤 이론도 이 주장을 명쾌하게 깨뜨린 것 같지 않다. (88) - [벩송이 모든 수는 하나다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박사학위 논문 DI(1889)을 썼다. 그리고 EC(1907)에 ‘하나가 있다’는 것이 착각이라고 한다.]
24. 기억의 역사 94
이렇게 반복(repetition) 하는 데에서 기억이 생겨난다. 기억은 우주적이다. 질서 있는 우주(cosmos)는 기억과 함께 생겨난다. (94) 우주의 역사는 기억의 역사다.(95)- [지구의 기억은 지층일 것이고, 생명체의 기억은 유전자일 것이다.]
25. 믿음의 역사 96
되풀이 되는 현상은 믿음을 낳는다. 물질현상과 마찬가지로 생명현상도 믿음의 산물이다. 인간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철 바뀜(계절의 순환)은 자연계의 질서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믿음은 기억의 산물이다. (96) ... ‘모든 것이 바뀐다.(Patn ta rhei, Πάντα ῥεῖ)’는 믿음만이 바뀌지 않는다. (97) - [흄은 이질 반복을 동일반복으로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함과 됨의 우발적 결합이 드러나는 마당이다. (96) -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인간 지성이 만든 용어 또는 개념에 가깝다.]
29. 함과 됨의 흐름 110
여기서 ‘온on ὤν’은 그리스 말에서 온 것으로 ‘있는 것’ 또는 ‘인 것’을 뜻한다. (112) - [ὤν « étant, ce qui est » + λόγος (logos) « discours, traité ». ]
사는 게 먼저고 아롬사랑(철학)은 그 다음이다(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 이때의 삶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온 누리가 삶의 터이자 흐름으로보아야 한다. 크건 작건 모든 흐름은 이어져 있다. (114)
30 톨로 뭉쳐진 시공간과 결로 풀리는 시공간 115
사람이 이 우주 안에서 특별한[특이성] 생명체 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우주에 대한 발언권을 독점하고 있는 생명체라고 우기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116) - [오만, 불교가 말하는 탐진치, 즉 탐만치이다.]
31 살미와 주그미 118-120
우리에게 살미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온 누리를 샅샅이 뒤지더라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모르는 것을 덮어 두고도 살 수 있다면 그러는 게 더 좋다. 왜냐하면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앎은 군더더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려고 배우고 그래서 죽는 날까지 배운다. 앎아롬이 삶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지, 삶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아롬은, 그리고 그것을 뒤좇는 짓은 그야말로 삶을 낭비하는 대죄를 짓는 짓이다. 우리는 갖은 삶의 가닥을 추스르면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를 알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몸 놀리고 땀 흘려 일하지 않더라도 먹여 살릴 만하다. (119-120)
34 1과 0, 127
1 → ∞ → 0 (↓) + → - 됨(확산, 냉각 entropy)
0 → ∞ → 1 (↑) - → + 함(축소, 가열 extropy)
열역학 제1법칙. 1=1, 0=0
열역학 제2법칙. ‘1 → ∞ → 0’ 맞다. (127)
이 우주에 어디에서나 통하는 제1법칙은 없다. 겪음(경험)에 바탕을 둔 생각(기억)이 새로운 꼴을 빚는 힘(됨)으로 드러날 수 있으나, 창조(creatio)는 외가닥 힘만으로 빚어지지는 않는다. 사랑(올날의 바람)의 힘(함)이 곁들여져야 한다. 베르그송은 이것을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로 부르고 사랑의 힘을 ‘엘랑비탈(l‘élan vital)’ 또는 ‘엘랑 다무르(l‘élan d‘amour)’로 불렀다. (128)
36 모를 누리의 꿈 132
사람붙이가 살눈(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좀누리’라고 부르고, 사람 눈이 닿지 않는 너른 누리를 ‘한누리’라고 부르고, 사람 눈길이 미치는 그 사이 세계를 ‘사이누리’ 또는 ‘샛누리’라고 부르자던 말은 이미 지난 덧붙임에서 했던가?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실눈 뜨고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 열리는 맘눈(심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는 ‘모를 누리’[내재의식 또는 무의식]라고 부르자. (132)
38 바람 138
‘아니까 사랑한다’ 아니라 ‘모르니까 사랑한다’로 바뀌고 있다. 처음부터 그래야 했다. 그러나 생각이 앞섰고, 그 생각이 지나쳐서 사랑을 업수이 여겼다. 그러나 아롬사랑(철학, philosophie)이 물리ㆍ수학에 주춤주춤 밀려나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형이상학을 물질과학으로 둔갑시키면서 소크라테스의 모롬사랑(‘나는 내가 무얼 모르는 것만은 안다’)을 깔아뭉개고 엉터리 형이상학을 정밀과학으로 내세우면서 한때 철학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다시 모롬이 전 우주적 시공 속에서 차츰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때를 맞았다. (139-140) - [앎의 추구는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이고,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39 때와 데 141
※ 맹갈 때(인위적 시간)와 맹간 데(인위적 공간) vs 제때와 제데. 기계의 시간과 생명의 시간. 샛누리(중간세계)에서 인간의 시공간과 자연의 시공간. (141) - [어린 시절, 나의 고향에서 ‘맹글다’가 표준말이었다.]
40. eiπ+1=0 144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나는 eiπ+1=0이라는 오일러의 공식이 아인슈타인의 E=mc2라는 공식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공식이라고 본다. e는 이른바 자연 상수, i는 허수, π는 원주율이다. 그러니까 ix π는 복소수이고, e의 iπ제곱은 –1이된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여러 뜻이 감추어진 채 드러나 있다. 원의 한점에 직선이 스칠 때 우리는 그것을 접점이라고 부르고 이접점에서 원의 반지름을 이루는 선과 그 원을 스치는 선은 직각 90˚을 이룬다. (144)
음수 하나(-1)와 양수 하나(+1)가 수렴되는 데칼트 좌표쌍의 중심점은 0(zero)이다. 1이 유비버스(이것은 하나가 되어 도는 우주의 표상이다)의 극점인 원의 테두리에서 맞닿아 있다면(접속 contact을 이루는 사태가 우연 contingency이라면) 0은 중심에 놓여있는 극점이다. 수렴은 0에서 끝나고 확산은 1에서 끝난다.이 두 점 사이에서 흐러거나 자리잡은 떼데(시공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 우주 안에서 멈추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안에는 ‘하나’는 없다. ‘하나’는 빠져있다(-1). eiπ은 ‘하나가 빠져있다(-1)’는 말을 돌려서 말한 허깨비 공식에 지나지 않는다.그리고 이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우연히, 어쩌다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지 필연성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식이기도 하다. (146)
* 맺는 말 148
믿음에 머리를 숙일 것인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머리를 굴릴 것인가는 사람종자(사피엔스)에게는 ‘골라골라(선택지)’다 그 어느 것도 고르지 않겠다고 고개를 젓는 사람은 ‘나 몰라(불가지론)’라는 딱지가 붙는다. 어느 듯 하루살이가 된 나 같은 늙은이는 그 어는 것이든 가릴 처지가 못 된다. (149)
**. eiπ+1=0의 풀이 150
- [거대한 수레가 굴러간다. 중심점은 나아가는 동안에 내내 평균을 유지하면 거의 자신은 자전만 하면서 앞으로 간다. 그런데 원주의 한점은 거대한 바퀴가 굴러가면서 한번은 진흙에 점을 찍고, 그리고 평균점을 지나 상위로 올라가면서 마루(하늘)에 점을 찍고 다시 평균점으로 내려오고, 그리고 평면 밑으로 내려가 흙을 밟을 차례가 되고 반복한다. 수학사는 평균 위의 올라가는 움직임을 상층/주류(manorité)라 부르고, 평균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을 심층/백성(minorité)라 부른다. 대중(인민)의 삶을 심층이라하고 권력의 삶을 상층이라고 하는 것은 원을 데카르트 좌표에 넣어서 y축을 상부를 상층 그리고 y축의 하부를 심층이라 부르는 것과 같고, 또한 x축을 0이라는 중심추를 좌우로 나누어 좌편을 심층(-), 우편을 상층(+)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양측을 모순처럼 여기는 논리는 정태적이고 우주론적 사고이며, 양층 뿐만 아니라 4방향의 운동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는 동태적이고 우주발생론적 사유를 한다고 한다. (59SLA)
# 추천하는 말: ‘모롬사랑’이란 말씀에 귀가 번쩍 : 변택주 170-177.
* 부록: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 이 책에 나오는 우리말
# 덧글*
윤구병의 다양체
삶에서 9형제와 변산공동체
입말
우리말 철학
‘뭣’을 올바로 제기, 있다 와 이다
누구나 군자(성불, 성자, 성인, 현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실증을 주로 천문학과 물리학을 설명하는 수학에서 찾는다. 생명에 대해 이야기를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생명 즉 의식의 기원과 확장 또한 수렴과 발산,
(7:10, 59SLA)
책1943윤구병2024우주A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