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 주일- 영안(靈眼)
인도에 가면 많은 인도 여성들의 미간(眉間)에 붉은 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절에 가면 모든 부처상의 미간에 보석이 박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여인의 화장이요 부처의 치장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제 3의 눈(the third eye), 곧 지혜의 눈(the eye of wisdom)이라고 하고 불자들은 혜안(慧眼), 즉 지혜의 눈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이 혜안이 없으면 사람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 담화’(요한복음 14장-17)의 시작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당신을 배신(13,21-30)하고 당신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이며(13,31-35),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否認)할 것(13,36-38)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Μὴ ταρασσέσθω ὑμῶν ἡ καρδία· πιστεύετε εἰς τὸν θεὸν καὶ εἰς ἐμὲ πιστεύετε”: 요한 14,1) 하고 말씀하십니다. ‘산란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ταράσσω’는 마치 바다가 폭풍우에 휩싸여 모든 것이 휘저어진 상태, 근심과 걱정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어지럽고 어수선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사도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κύριε, οὐκ οἴδαμεν ποῦ ὑπάγεις· πῶς δυνάμεθα τὴν ὁδὸν εἰδέναι;”: 5절)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οὐδεὶς ἔρχετ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εἰ μὴ δι᾽ ἐμοῦ. εἰ ἐγνώκατέ με, καὶ τὸν πατέρα μου γνώσεσθε. καὶ ἀπ᾽ ἄρτι γινώσκετε αὐτὸν καὶ ἑωράκατε αὐτόν”, “ego sum via et veritas et vita”: 요한 14,6-7)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시고(요한 1,18; 12,45; 14,9 참조),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가르치시기 때문에(1,17; 4,23-24; 8,31-32; 17,3 참조),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14,6). 이러한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분(예수 그리스도)은 성부 하느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진리요 생명’이시며, 인간이 되심으로써 ‘길’이 되셨다. 이것은 진리와 생명에 이를 수 있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면 된다. 그 길 자체가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어나서 그분을 향해 걸어야 한다!”(S. Agostina, Tract. in Joann., 9)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κύριε, δεῖξον(dei/xon: show, point out; reveal, explain; prove는 뜻을 지닌 dei,knumi의 명령법 단순과거 능동태 2인칭 단수) ἡμῖν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ἀρκεῖ ἡμῖν: 8절]라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τοσούτῳ χρόνῳ μεθ᾽ ὑμῶν εἰμι καὶ οὐκ ἔγνωκάς με, Φίλιππε; ὁ ἑωρακὼς ἐμὲ ἑώρακεν(ἑώρακεν: o`ra,w의 직설법 현재완료형 능동태 3인칭 단수) τὸν πατέρα· πῶς σὺ λέγεις· δεῖξον ἡμῖν τὸν πατέρα; οὐ πιστεύεις ὅτι ἐγὼ ἐν τῷ πατρὶ καὶ ὁ πατὴρ ἐν ἐμοί ἐστιν; τὰ ῥήματα ἃ ἐγὼ λέγω ὑμῖν ἀπ᾽ ἐμαυτοῦ οὐ λαλῶ, ὁ δὲ πατὴρ ἐν ἐμοὶ μένων ποιεῖ τὰ ἔργα αὐτοῦ.: 9-10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유럽의 어느 수도원 경당에 새겨져 있는 글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불행해도 나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당신의 주인으로 삼지 않았고,
나를 진리라고 하면서 나에게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근심을 멈추고 오직 나를 바라보며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