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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공장
편혜영
공장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순식간에 퍼졌다. 첫 번째 결근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공장장은 직원들 중 가장 먼저 출근했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누군가 공장장이 아니라 수위 같다고 빈정거렸고 그 후 공장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수위라고 불렸다. 그는 공장이 자동화되기 이전의 생산직 출신이었다. 그 무렵 근로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역시 기계 덕을 보면서도 기계를 잘 믿지 못했다. 녹 검사부터 진공도 검사까지, 제조 후 표본 검사 수를 두 배로 올렸다. 그러면서도 기계가 일을 다 하고 있어 직원들이 멍하니 빈 깡통만 보며 시간을 때운다고 틈만 나면 잔소리를 퍼부었다. 업무 방식을 일일이 지시하는 식으로 모든 공정을 간섭했다. 명찰을 똑바로 달라며 비뚤어진 명찰을 만지면서 가슴께로 손을 갖다 대 여직원들을 질겁하게 했고 그런 후에는 가슴의 크기를 가지고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퍼부어 모욕을 주었다. 성격이 급해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화부터 냈고 자신의 오해거나 실수임이 밝혀진 후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공장장의 결근 원인을 확인하느라 사장이 직원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공장장이란 늘 평판이 나쁜 법이었다.
전날 함께 야근을 했던 박의 말에 따르면 공장장은 술을 한잔하자는 요청을 박이 거절하자 요즘 젊은것들은 제멋대로라는 비난을 퍼붓고는 사택 쪽으로 걸어갔다.
술 취해서 뻗은 거 아니야?
사장이 박에게 물었다. 그렇게 묻기는 했지만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공장장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취했으나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술 냄새와 함께 가장 먼저 출근해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성실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박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일로 야근을 했나?
야근을 해야 할 만큼 바쁠 리 없었다. 공장 직원들은 대도시 기업체의 사무원도 지키지 못하는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을 준수하고 있었다. 듣기에 불황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가공식품의 위생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졌다. 잊을 만하면 통조림에서 심지어는 손톱의 일부가 발견되었다. 뉴스에 보도가 나갈 때마다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국내 납품 물량이 줄었다. 수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접국의 저가 공략에 맥을 못 췄다.
공장장 님의 개인적인 부탁이었습니다.
박이 대답했다.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사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잊어버렸나 본데, 여긴 공장이야. 개인적인 일로는 수당을 주지 않아.
통조림을 만들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이 대답했다.
하하. 그럼 내가 내 공장에서 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줄 안 거야? 여기서는 통조림만 만들어. 어제도 그제도 그랬고 이십삼 년 전에도 그랬지. 오늘도 내일도 그럴 거야. 이십삼 년 후에도 그럴 거고.
T 국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런 수출 물량이 있는지 생각하는 눈빛으로 사장이 박을 빤히 쳐다보았다.
T 국?
공장장 님 딸이 T 국에서 연수 중입니다.
그랬단 말이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은 사장이 뭔가 쥐고 있었다면 깨뜨릴 것처럼 손에 힘을 주는 걸 지켜보았다.
공장장 놈, 잘도 배웠어.
사장이 중얼거렸다.
자식에게 보낼 통조림이라면 어떤 것인지 잘 알았다. 사장은 오래전 아들 녀석이 U 국에서 유학할 당시, 정기적으로 통조림에 음식을 밀봉하여 보낸 적이 있었다. 갓 담근 김치와 잘 익은 깍두기를, 간장에 자박자박 담근 게장과 조리기만 하면 되는 양념갈비와 불고기, 낙지볶음 같은 것을 깡통에 담았다. 식혜를, 김치찌개를, 아욱된장국을, 볶은 멸치를 밀봉했다. 유학을 하는 동안 아들이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 일을 해 준 것이 공장장이었다. 그렇긴 해도 사장도 아닌 주제에 생산과 상관없이 기계를 돌리고 전력을 소모하고 업무가 끝난 후에 직원을 부려 먹었다는 거였다. 화가 난 사장은, 걱정이 되어 공장장이 묵는 사택에 박을 보내려던 생각을 거뒀다. 공장장은 독신자용 사택에서 혼자 지냈다. 부인은 어학연수 중인 딸을 돌보러 T 국에 가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공장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장은 다시는 공장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며 비서를 겸하는 총무과장을 사택으로 보냈다. 해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각 구역 휴게실에 모인 직원들은 꽁치와 고등어, 양념깻잎 통조림 뚜껑을 따고 집에서 싸 온 말간 쌀밥을 꺼냈다.
이건 수위 스타일이 아니야.
직원 중 하나가 꽁치를 씹으며 말했다. 공장장 스타일이라면 아파서 당장 죽을 지경이더라도 술 냄새를 풍기며 제일 먼저 공장에 나와 있어야 했다. 누군가 별일이야 있겠느냐고 했다가 그래도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말했고 동의하듯 다들 꽁치나 고등어, 깻잎 중 하나를 밥과 함께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보니 수위 생각이 나.
누군가 뚜껑을 딴 통조림을 가리켰다. 공장장은 아침에는 혼자 사택에서, 점심에는 직원들과 함께 휴게실에서 통조림을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 저녁에는 술을 마시면서 통조림을 안주로 먹었다.
왜 그러고 살았대?
누군가 깻잎에 흰 쌀밥을 말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물었다.
누군 안 그러고 사나?
밥을 씹으며 누군가 말했다. 대답에서 비린 고등어 냄새가 풍겼다. 모두들 잠자코 국물이 스민 밥을 꽁치나 고등어 살점과 함께 입에 떠 넣었다. 유난히 천천히 밥을 씹었다. 모두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공장장의 일과와 식사가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열심히 일했고 고분고분 살았지만,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지만, 씹고 있는 통조림의 맛처럼 삶이 너무 자명해진 느낌이었다. 미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나 버린 것 같았다. 지나버린 미래는 공장장의 현재와 다름없을 거였다. 그것도, 믿고 싶지는 않지만, 아주 성공적인 경우에만, 공장장이 싫었지만 딱히 미워할 수 없는 게 그 때문이었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는데 공장장이 싫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복숭아와 감귤 통조림을 후식으로 먹었다. 말랑말랑한 복숭아 과육을 씹으며 누가 경찰에 전화를 할 것인지 논의했다. 그러면서 힐끔 박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니까 혹시 공장장에게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나쁜 일이 생긴 거라면, 그때쯤에는 누구나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이 곤란을 겪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박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박은 야간 근무를 끝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단골 식당에 들렀다. 식당에는 같은 공장 동료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박은 우연히 만난 동료와 합석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근래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박은 여자 주인공이 왜 계속 목에 힘줄이 다 보이도록 악다구니를 쓰는지 음식을 내준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식당 주인은 여자 주인공을 대신해 하소연하듯 사정을 늘어놓았다. 최후 행적의 목격자라고 해서 박이 의심을 받을 건 없었다. 술에 취해 돌아가다가 실족해 다리 아래로 굴러 운 나쁘게 강에 빠지거나 괴한에게 지갑을 뺏기고 죽을 지경이 되도록 폭행을 당하거나 뺑소니 차량에 치여 알 수 없는 곳에 버려지는 사고는 얼마든지 있었고 누구든지 당할 수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 남은 복숭아를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총무과장이 휴게실로 달려왔다. 그는 숨을 고르고 나서 먼저 복숭아 통조림 당액을 들이켰다.
그렇게 마시다가 입술 베여요.
깡통 째 들고 마시는 총무과장에게 누군가 말했다.
내가 이걸 하루 이틀 먹냐?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고 십이 년 전에도 먹었는데.
총무과장이 깡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장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어.
모두들 뚜껑을 잘못 딴 깡통에 입술이라도 베인 듯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랬더니 경찰이, 총무과장이 복숭아 통조림의 당액을 마저 들이마셨다. 누군가 그의 말을 기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 가출일지도 모르니 더 기다려 보라고 했대.
그는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감귤 통조림의 당액을 들이마셨다. 한데서 추위에 떨다 따뜻한 어묵 국물을 먹고 몸을 녹이듯 직원들은 통에 든 당액을 조금씩 나눠 마셨다. 아무도 입술을 베이지 않았다. 마지막 국물을 들이마신 이가 뚜껑을 벌린 빈 깡통을 모아 들었다. 깡통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그게 신호인 듯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
박은 꽁치 통조림 밀봉 담당이었다. 실종된 공장장이 막 임명되었을 당시 잠시 고등어 통조림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때를 제외하면 내내 꽁치 통조림만 만들었다. 담당은 마음껏 바꿀 수 있었다. 비릿하고 짠 내에 속이 메슥거린다면 농산물 라인으로 옮겨 복숭아나 감귤 통조림을 만들 수 있었다. 계속되는 단내에 현기증이 날 정도라면 다시 수산물 라인으로 옮기면 되었다. 원칙은 그랬지만 누구도 담당을 바꾸지 않았다. 교체를 자유롭게 한 것은 공장장이었다. 그는 입사 후 십이 년간 줄곧 꽁치 통조림만 만들었다. 공장 설립 초기였다. 나중에는 길쭉하고 날렵한 것이라면 문방구의 자도 꽁치로 보일 지경이었다. 순전히 꽁치 때문에 일을 그만둘 생각으로 그는 사장을 찾아갔다.
꽁치라면 이제 질색이에요. 차라리 고등어라면 몰라요.
고등어를 떠올린 것은 즉흥적이었다. 고등어는 공장장이 좋아하는 생선이었다. 사장이 비린내를 풍기는 그에게 말했다.
정 그러면 고등어 통조림도 만들어. 다른 데도 그렇게 하잖아.
그는 공장에 남았고 십 년간 고등어 통조림을 만들었다. 2대 사장은 초대 사장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생산 라인을 더 늘렸다. 꽁치와 고등어 통조림을 만드느라 짠 내와 비린내, 기름내가 가시질 않았던 공장에 복숭아와 감귤의 향내가 당액 냄새, 구연산 냄새에 섞여 퍼지기 시작했다. 야근이 많아졌고 직원이 늘었다. 공장장이 된 그는 취임사에서 직원들에게 무엇이든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해서 작업하라고 했다. 취향이라니. 그러니깐 음악을 고르거나 영화를 고르듯이 꽁치나 고등어를, 복숭아와 감귤을 고르거나 얘기였다. 박은 고등어를 골랐다. 취향과는 상관없었다. 꽁치라면 좀 질려 있었다. 박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사람들이 꽁치를 담당했다면 고등어를, 고등어를 담당했다면 꽁치를 골랐다. 오랫동안 꽁치를 만졌던 손의 감각으로 고등어는 통통해서 잘 잡히지 않았다. 고등어를 오래 만졌던 사람들은 얇고 가느다란 꽁치를 자주 놓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꽁치든 고등어든 똑같아졌다. 품목만 달라졌을 뿐 모든 과정이 동일했다. 토막 내고 내장을 다듬고 양념하여 조리하고 밀봉한 후 살균, 냉각 과정을 거쳐 포장했다. 다시 선택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박은 다시 담당을 바꾸었다. 생각해 보니 꽁치야말로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생선이었다.
공장장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가 떠돌았다. 그중 공장장이 한 여직원과의 내연 관계가 탄로날까 봐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었다. 공장장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건 거의 매일이나 다름없었는데, 여직원의 사택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여직원과 공장장이 휴일에 밖에서 만나는 걸 본 사람도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본 탓이었다. 다른 여직원일 수도 있고 그저 닮은 사람일 수도 있었으면 우연히 마주친 친구의 아내일 수도 있었다. T 국으로 떠나기 전이었으므로 공장장의 부인일지도 몰랐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으나 수군거리기만 할 뿐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검었으며 머리가 벗어지고 배가 나왔고 다리가 짧았다. 남색 작업복 양 어깨에는 비듬이 수북했고 기름 낀 머리가 목덜미 부분에서 새의 꽁지처럼 들떠 있었다. 입만 벌리면 생선 비린내나 어린아이 입냄새 같은 달큼한 냄새를 풍겼다. 한마디로 그는 연정을 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소문 속 여직원은 말수가 적고 얼굴이 하얗고 좀 쌀쌀맞았다. 여직원들은 그녀가 자기들과 다르게 생겨서, 남자 직원들은 자기들을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아서 불편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여직원과 공장장이 내연 관계라는 소문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사택으로 찾아갔다는 소문은 맞았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장장의 부인이 T 국으로 떠난 뒤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소문도 틀린 것이었다. 여직원이 공장장을 만난 것은 그 전부터였고 만나지 않게 된 것도 이미 오래전이었다. 소문 속 여직원은 공장장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여직원의 개인적인 문제였다. 이어 횡령설이 나돌았다. 아이를 T 국으로 보낸 후 줄곧 재정적인 압박을 받아 왔다고 했다.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공장에 횡령할 만한 목돈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누구도 적극 해명하지 않았다.
내가 귀국한다고 갑자기 남편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전화로 총무과장에게 남편의 실종 사실을 전해 들은 공장장의 부인이 대답했다. 어학연수를 끝낸 공장장의 아이는 T 국에서 상급 외국인 학교에 진학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를 빠질 수 없었다. 학교를 빠질 수 없는 아이를 돌봐야 했으므로 공장장의 부인은 귀국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단순 실종이 아니라, 총무과장이 겁을 주듯 말했다. 변사 사건이라고 하던데요?
공장장의 부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죽었더라도 마찬가지죠. 내가 간다고 살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시체가 발견된다면 그때 가겠어요.
전화를 끊으며 총무과장은 요즘 들어 자꾸 딸아이를 어학연수 보내자고 조르는 아내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보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신고 후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조사를 시작한 형사는 공장장이 박과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알아냈다. 실종 당일 박이 탈의실에서 공장장에게 대드는 걸 본 누군가가 형사에게 알린 거였다. 형사는 통조림 창고 안 쪽방으로 박을 불렀다. 형사가 박에게 탈의실에서 왜 공장장과 다투었는지, 공장장이 개인적인 일로 야근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지, 그날 통조림을 제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어떤 종류의 통조림을 만들었는지, 공장에서 나와서는 무엇을 했는지, 공장장에게 여느 날과 다른 기색은 없었는지, 공장장과 평소 사이가 어땠는지를 물었고 박이 대답했다.
박의 대답이 끝나자 형사가 쪽방에서 나와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지시는 없었으나 박은 그를 따랐다. 그날 제조한 통조림은 어떻게 했죠?
다음 날 제가 T 국으로 보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개인적인 통조림을 밀봉하는 일은 흔한가요?
박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직원들 누구나 몰래 통조림에 무엇인가를 담아 밀봉해 본 경험이 있었다. 공장의 누군가는 꽁치 통조림 깡통에 반지를 넣어 여자친구에게 주었다. 여자친구가 통조림 뚜껑을 열었고 은색 바닥에서 덜렁거리는 반지를 빼 들었고 손가락에 끼었고 웃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싸구려 장난감을 통조림 깡통으로 포장했다. 원터치로 된 복숭아 통조림 뚜껑을 열면 수가 적고 단순한 레고 블록이나 비행기로만 변신하는 로봇 같은 게 나왔다. 생애 처음 장만한 집 문서를 밀봉해 넣어 두기고 하고 헤어진 연인이 보낸 편지를 넣어 두기도 했다. 고양이를 밀봉한 직원도 있었다.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장터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사 와서는, 그 얘기를 들은 직원들은 분명 길을 헤매는 고양이를 주워 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끓여 국물을 우려낸 다음 헤실헤실 풀어진 고양이 살점과 함께 깡통에 담아 밀봉했다. 나중에 발각되어 시말서를 쓰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공장 사람들은 깡통에 넣어 밀봉할 수 있는 것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장이 금고 대신 통조림 속에 현금을 넣어 보관한다는 소리도 나돌았다. 전월 회계 정산이 끝나는 월초에 사장이 직접 깡통에 지폐 뭉치를 넣고 압착기를 누르고 있는 걸 누군가 봤다고 했다. 그 소문을 들은 사장이 정색하며 화를 냈다고 한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몰랐다.
언젠가 단둘이 남아 T 국으로 보낼 통조림 만드는 일을 돕고 있을 때 공장장이 물었다.
자네는 뭘 해 봤나?
네?
통조림 말이야.
박은 한 번도 통조림에 다른 것을 넣어 밀봉해 본 적이 없었다. 봉인해서 간직하고 싶은 게 있을 리 없었고 밀봉한 물건을 보내 줄 사람도 없었다.
실은 자네한테만 하는 말인데.
공장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딸아이가 유학하기 전에, 키우던 개가 죽었거든. 아이가 계속 죽은 개를 안고 울었어. 여름이어서 곧 냄새를 풍길 기세인데도 묻지 못하게 하는 거야. 안고 자는 걸 몰래 빼 와서 깡통에 담아 밀봉해뒀어. 한동안 아이 방에 뒀지. 처음에는 깡통을 만지면서 울던 아이가 다른 개가 생기니까 그 깡통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더라고.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렸어.
공장장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비밀이야.
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장의 눈에 얼핏 말한 것을 후회하는 빛이 스쳤다. 박은 제법 입이 무겁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침묵을 관심이 없다는 걸로 오해할까 봐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개가 깡통에 들어가던가요?
작은 개였어. 가장 용량이 큰 깡통을 쓰니 딱 맞았어. 자를 필요가 없었지. 잘라야 했을 수도 있지만, 공장장이 그 장면을 상상하듯 눈살을 찌푸렸다. 개 때문에 내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잖아.
공장장이 손에 피가 묻지 않은 것을 확인하듯 손바닥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말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죽으면 곱게 화장을 한 다음에 그 가루를 통조림 깡통 속에 보관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봉분 아래서 흙과 섞여 썩어 가는 것도 싫고 납골당에서 대리석 유골함에 담겨 있는 것도 싫거든. 평생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고 평생 깡통만 만졌어. 깡통 재질이 변하는 거나 뚜껑 여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세상이 점점 살기 편해진다는 걸 느꼈지. 깡통 포장 디자인이 바뀌는 걸 보면서 사람들 취향이 변해 가는 걸 알았어. 사람들 입맛이 달라지는 건 새로 통조림이 생기거나 양념 맛이 달라지는 걸로 실감했어. 말하자면 이 깡통으로 세상을 알아 간 셈이야.
세상이 깡통처럼 텅 비어 있으면 큰일인데요.
박은 곧 경솔하게 입을 놀린 걸 후회하면서도 깡통에 담겨 납골당에 가면 되겠다고 덧붙였다. 공장장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박을 물끄러미 보았다. 박은 그 얼굴을 마주 보면서 공장장과 자신은 서로 다른 계절에 이동하는 철새와 같아서 절대 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럽게 공장장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이 만약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봤더라면 공장장은 자기 이야기를 더 해 주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박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박이 물어보고 공장장이 대답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가정일 뿐이었다.
이렇게 큰 통조림은, 형사가 십 킬로그램짜리 통조림 깡통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물었다. 주로 어디에 팝니까?
수출도 하고 업소로도 나갑니다.
통조림, 좋아하시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싫어하는 쪽입니다.
의외라는 듯 형사가 박을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매일 통조림을 먹과, 십 년 가까이 통조림 공장에서 일을 합니까?
저는 거의 통조림을 먹지 않아요. 맛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지 말란 법은 없죠. 자기가 쓸 리 없는 생리대를 만드는 남자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이 재미있지는 않겠네요?
형사님도 그러시겠지만, 일이라는 게 어떤 부분은 재미있지만 어떤 부분은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래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통조림 만드는 건 뭐가 힘듭니까?
가끔 깡통이나 뚜껑에 손을 베입니다. 그때 기분이 상해요.
그것뿐이라면 일을 재밌어하는 쪽이군요.
비린내와 소금기를 참기 힘들죠. 기름내도 심하고요. 지금이야 밀봉을 하고 있지만 잠깐 내장을 골라내는 일을 맡았는데, 그때는 물컹거리는 건 여자 살이라도 만지기 싫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깡통에 적힌 성분 표시를 읽고 있던 형사가 박에게 눈을 돌렸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지요. 저는 하루 종일 밀봉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꽁치 대가리를 치고 어떤 사람은 내내 생선 배속에 손가락을 넣어 미끈거리는 내장을 빼내요. 하루 종일 생선에 소금을 쳐 간을 하고, 하루 종일 깡통을 박스에 포장하기도 해요.
특별한 건 없군요. 그러면 재미있는 건 뭡니까?
박은 오래전 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험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불쾌해졌지만 자신의 대답을 건성으로 듣는 듯한 형사의 태도에 기가 눌려 성실하게 대답했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형사가 장난하느냐는 눈빛으로 박을 보았다.
여기 있으면 하루 종일 벨트 위로 속을 벌린 깡통이 돌아가는 걸 봐야 해요. 어지럽죠. 빙빙 돌아요. 귀에서는 날벌레가 윙윙거리며 날아요. 자꾸 귀를 후벼 파게 되지요. 귀에 피딱지가 마를 날이 없어요. 어지럽고 윙윙거리고 귀가 간지러운데 매번 골똘히 궁리해야 하는 일이라면 못 했을 거에요. 벨트 앞에 서서 그저 익숙한 각도대로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돼요. 생각이 탈수되고 몸이 기계의 일부가 되어 가는 거죠. 왠지 뿌듯하죠.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형사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첩을 딱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러고는 박에게 공장장 사택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내내 수첩을 펴 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박은 여전히 형사의 기세에 눌려, 언젠가 벨트가 고장 나 멈춘 줄도 모르고 이미 뚜껑을 밀봉한 깡통을 다시 뚜껑으로 밀봉한 적이 있다는 말을 삼킨 채 사택 쪽으로 걸어갔다.
독신자용 사택은 단출했다. 장기 입원 환자용으로 쓰면 딱 좋을 딱딱한 침대와 총무과에서 일괄 구입했을, 톱밥을 압축해 만든 책장과 책상, 천 소파와 서랍장이 가구의 전부였다. 조리 용기는 거의 없었다. 냉장고를 채운 것은 물과 쌀, 술과 먹다 남은 통조림을 덜어 놓은 플라스틱 용기 몇 개뿐이었다. 문을 열 수 있는 수납장마다 꽁치와 고등어, 양념깻잎 통조림과 복숭아, 감귤 통조림이 들어 있었다. 싱크대 위쪽 수납장에도, 일렬로 세 개가 달린 싱크대 아래쪽 서랍에도 그랬다. 옷이 들어 있겠거니 생각하고 열어 본 서랍장에도 세 칸 모두 통조림뿐이었다.
이렇게 어디에나 쌓아 놓고 드시는 걸 보니, 형사가 말했다. 먹을만한가 봅니다.
박이 수납장에 있는 통조림을 하나씩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
직접 드셔 보세요.
나중에 공장장 님이 돌아오면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형사가 말했다.
비밀로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누구나 통조림을 먹어요. 공장에서도 먹고 집에서도 먹어요. 통조림이 월급의 일부니까요.
월급이요?
형사의 말에 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은 늘 어려우니까요. 불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요. 사장님 말로는 군소 통조림 공장이 버틸 만한 불황이 아니라고 하데요. 게다가 요새는 다들 통조림을 믿지 않아요. 유통기한이 그렇게 길다는 것 말입니다. 금방 상하지 않는 것을 불안해하죠. 산 것을 죽여서 가공한 후 죽지 않게 밀봉 처리하는 것, 그러니까 죽은 것을 상하지 않게 가공 처리하여 동일한 상태로 보관하는 것. 이것이 밀봉의 기술의 핵심이거든요. 모두들 그걸 수상하게 생각해요. 상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상태가 지속된다는 거 말이에요. 팔리지 않으니, 우리가 가져가는 겁니다. 월급의 일부로요.
통조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가져간 통조림을 어떻게 합니까?
저는 먹지 않지만 다른 도시에 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은 통조림을 먹어요. 그들에게 줍니다.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주신 통조림 말입니다, 사택을 나와 공장 쪽으로 가려는 박에게 형사가 물었다. 유통기한이 얼마나 됩니까?
제품마다 다르지만 대략 이십사 개월에서 육십 개월 정도지요. 뚜껑에 인쇄되어 있어요.
길게는 오 년이라…… 오 년이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네요.
일종의 가정이지요. 유통기한 이내라면 동일한 상태가 완벽하게 유지된다고 보는 거예요. 유통기한이 지난다는 건 그런 상태가 한 순간 깨진다는 가정이고요. 그래서 확인하지 않고 폐기하지요.
형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차에 올랐다. 그는 며칠 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장장의 실종과 관련된 수사 상황을 알렸다. 실종에 관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에 매진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
공장장은 없었지만 대체로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계는 돌아갔고 통조림은 만들어졌고 기한에 맞춰 납품되었고 선적되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 휴게실로 모이는 것도 같았다. 뚜껑을 딴 통조림을 기준점 삼아 둥글게 모여 앉았다. 통조림 뚜껑을 딸 때는 밥을 먹는 것인지 제조 후 검사를 하는 것인지 잠시 헛갈렸으니 막상 먹기 시작하면 생산과정의 일부라는 듯이 기계적으로 입을 놀렸다. 통조림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직원도 없었지만 내색하며 싫어하는 직원도 없어서 밥을 먹는 내내 모두 묵묵했다. 어느 날은 누군가 통조림에 질렸다며 탕비실에서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 왔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라고 해서 맛이 색다르지도 뛰어나지도 않았다. 찌개를 끓이느라 허기진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밥맛을 잃었다. 기계에서 풍기는 소음과 공장 안에 떠도는 냄새 때문에 미감을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떠들어 댔지만, 다음날 시간에 쫓겨 그냥 뚜껑만 딴 통조림으로 밥을 먹게 되었을 때는 다시 입맛이 돌았다. 모두 통조림의 비리고 짠 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무감하고 무던한 식성이 고마웠다. 먹어야 할 통조림은 얼마든지 있었다. 밥을 먹은 후에는 복숭아와 감귤로 입가심을 했다. 이렇게 매일 통조림을 먹어도 될까? 누군가 물었고 점심뿐이니까 괜찮아 하고 누군가 대답했다. 점심뿐이라면 괜찮을 테지만 그들 대부분이 점심에만 통조림을 먹는 건 아니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서는 꽁치에 신 김치를 썰어 넣고 찌개를 끓이거나 찜을 했다. 꽁치를 다져 넣어 강된장을 만들어 고등어 통조림을 싸 먹었다.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퇴근 후 장을 보러 갔는데 자기도 모르게 공장에서 생산된 꽁치와 고등어 통조림을 장바구니에 담아 버렸다고 한탄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 역시 그런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남들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이걸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른 회사 공장에서 만들어진 꽁치 통조림에서 구두충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날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순전히 의무 때문이었다면 먹지 못했을 거였다. 실종된 공장장의 말처럼 통조림을 먹는 것은 취향 탓이었다.
직원들이 통조림을 가운데 놓고 밥을 먹는 동안 박은 창고 안 쪽방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남는 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 방에서는 온갖 냄새가 났다. 페놀과 아세트산 냄새, 모터에서 나는 기름 냄새, 기계에 엷게 바른 윤활유 냄새, 고무배관 냄새나 장화 냄새, 손질된 생선 내장 냄새, 벗겨진 과일 껍질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냄새 탓인지 짧은 잠 속에서도 공장에서 일하는 꿈만 꿨다. 꿈속에서도 그는 레일 앞에 서서 밀봉을 하고 있었다. 깡통에 자기 손을 넣어 밀봉했고, 빈 깡통 속에 빈 깡통 속에 빈 깡통을 넣고 밀봉할 것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깡통에 넣을 수 있는 것도 넣었고 넣을 수 없는 것들도 넣었다. 사장의 금고나 사장의 머리통 같은 것이었다. 사지가 절단되어 죽어있는 개를 주기도 했고 거대한 백골을 주기도 했다. 이걸 어떻게 넣어요? 라고 물으면 공장장은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을 때 쓸 것 같은 분쇄기를 가리켰다. 그는 거침없이 분쇄기로 가서, 강도를 조절한 후 백골을 넣었다. 가루가 된 백골이 털털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 가루를 모아 깡통 속에 담았다. 백골 통조림은 외양이 같은 수천 개의 통조림에 뒤섞였다.
점심시간은 짧았다. 다시 종이 울리면 직원들은 각 구역의 휴게실에서 나와 다시 꽁치 라인 앞으로, 깻잎 라인 앞으로, 복숭아 라인 앞으로, 고등어 라인 앞으로, 깻잎 라인 앞으로, 복숭아 라인 앞으로, 감귤 라인 앞으로 걸어갔다. 쉬지 않고 흐르는 벨트 앞에서 그들은 꽁치나 고등어를 손질하고 식용염산에 넣어 복숭아와 감귤 껍질을 벗기고, 아세트산을 넣어 가공하고, 통조림 깡통에 뚜껑이 내려와 박히는 걸 지켜보고, 임의로 통조림을 수거하여 내용물을 표본 조사했다.
작은 사고가 있기는 했다. 농산물 가공 라인에서 생긴 일이었다. 퇴근 무렵 한 여직원이 밀봉 과정에서 오른쪽 콘택트렌즈를 통조림 깡통 중 하나에 빠뜨린 게 틀림없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가 그랬어?
졸려서 눈을 비비다가 그런 것 같아요.
왜 금방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라인이 돌아가는 걸 보면 늘 어지러우니까요. 눈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현기증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직원은 일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야 눈에서 렌즈가 빠진 걸 깨달았다. 하루 종일 계속되던 현기증은 어지럼증이 아니라 양쪽 눈의 시력 차 때문에 생긴 거였다. 렌즈가 붙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하루 여직원이 담당하는 라인을 지나간 과육 통조림은 천 개가 넘었다. 갓 생산된 천 개의 통조림이 살균 과정을 마친 후 박스에 포장되기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천 개 중 하나에 여직원이 잃어버린 콘택트렌즈가 들어 있을 거였다. 손톱만 한 콘택트렌즈를 찾으려면 천 개의 통조림을 뜯어야 했다. 뜯어서 다시 깡통에 넣으면 그만이지만 일이 그렇게 쉬울 리 없었다. 밀봉된 통조림은 뜯는 순간 세균이 번식하기 때문에 재포장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박은 남간해하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콘택트렌즈를 찾았다고 말해. 작업복에 붙어 있었다고 말이야.
그러다가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죠?
여직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렌즈는 통조림 속에서 한 달 후에 나올 수도 있고 오 년 후에 나올 수도 있고 영영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 술집으로 납품되면 모르고 지나가겠지. 주방장은 자기가 먹을 게 아니니까 그냥 버릴 거고, 손님들도 취해서 그냥 넘어가거나 주방의 실수로 여길 거야. 혹시 병원 같은 데로 들어가도 용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어. 발각될지 안 될지 모를 일을 기다리는 동안 공장 상황은 바뀔 거고 우리 상황도 바뀔지 몰라. 그렇지 않겠어?
여직원은 한번 봉인이 된 통조림을 열어 볼 수 없는 세계라는 걸 처음으로 이해한 듯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장의 실종이 사 개월로 접어들 무렵에 반품 사고도 있었다. 반품된 고등어 통조림은 공장장이 실종될 무렵 제조된 것이었다. 한 소비자가 슈퍼에서 구입한 고등어 통조림에서 덩어리져 뭉쳐 있는 붉은 것을 발견했다. 소비자는 고등어 피라고 생각했으나 가공 식품에 핏덩이가 있는 게 꺼림칙해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 성분 분석 결과 인혈로 밝혀져 파장이 일었다. 누군가 작업을 하다가 손을 다쳤고, 다친 손에서 흐른 피가 깡통에 새어 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무렵 공장에서 다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를 흘릴 정도로 부상을 입을 만한 공정이랄 게 없었다. 설혹 손가락을 베인다고 해도 저 정도의 피를 흘렸다면 모를 리 없었다. 같은 날 제조도니 통조림은 천사백 개가 넘었다. 일부는 수거되었지만 대부분은 수거되지 않았다. 수거된 것 중 어떤 것에서는 인혈이 많이 발견되었고, 어떤 것에서는 거의, 어떤 것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사장은 제조 중지 명령 기간을 단축시켜 볼 요량으로 이리저리 줄을 대느라 바빴다. 누군가 인혈 얘기를 꺼낼라치면 인상부터 썼다. 과로한 사장의 눈이 인혈보다 더 붉어지고 사장의 화를 받아 내느라 총무과장의 얼굴이 인혈처럼 달아올라 좀체 식지 않을 무렵, 제조 중지 명령 기간이 끝났다.
*
공장장의 짐은 많지 않았다. 작업복과 낡은 속옷, 몇 개의 외출복을 모두 버리고 나니 더 단출해졌다. 남은 짐은 트렁크 하나로 충분한 정도였다. 공장장의 부인은 부엌 수납장과 삼단 서랍장에 있던 통조림을 모두 박에게 주었다. 기념품 삼아 몇 개 담아 준 통조림도 정색하며 되돌려 주었다.
어차피 아이와 나는 통조림을 먹지 않아요. 언젠가 꽁치 통조림인 줄 알고 뜯었는데……
공장장의 부인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는 듯 몸서리를 쳤다.
거기서 죽은 개가 나왔어요. 그때부터 아이는 통조림이라면 질색이지요. 그러고 보니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며칠 후에 소포가 도착했는데 열어 보니 꽁치랑 고등어 통조림이었어요. 겉은 그래도 당연히 김치나 깍두기, 그런 게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안 먹는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걸 보냈을까요?
공장장의 부인이 박을 바라보았다. 박은 묵묵히 부인을 마주 보았다.
언젠가 시체라도 발견되겠죠?
공장장의 부인이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어딘가로 잠깐 떠나 있는 걸 수도 있고……
어딘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걸 잘 아시잖아요.
박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공장장의 부인이 다시 T 국으로 떠난 후, 박은 공장장이 쓰던 사택으로 짐을 옮겼다. 짐이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 않았다. 몇 장의 속옷과 가벼운 옷들이 전부여서 서랍장 두 칸이면 충분했다. 나머지 한 칸에는 가지고 있던 통조림을 넣었다. 통조림이 많지 않아 서랍장은 열고 닫을 때마다 덜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공장장이 남긴 통조림 중에는 유통기한이 넘은 것도 있고 임박한 것도 있고 아직 충분히 남은 것도 있었다. 시간을 들여 통조림을 종류별로 유통기한별로 깡통 크기별로 정리해서 넣어 두었다.
사장은 공석이던 공장장 업무를 박에게 맡겼다. 공장장이 된 박은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했다.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정지된 기계의 전원을 켜는 일은 매번 낯선 개의 잠을 깨우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개가 짖듯 기계가 요란하게 웅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제야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은 가장 늦게 했다. 전원을 끄고 정적 속에 남아 있으면 깡통 속에 잠긴 숨 죽은 꽁치나 고등어가 된 기분이었다. 꽁치나 고등어가 된 기분으로 사택에 돌아가 몸을 절이듯 술을 마셨다. 잠을 푹 자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그를 보고 직원들이 수위하고 놀리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일찍 출근하게 되면서 공복 시간이 길어지고 숙취로 속이 쓰리기도 해서 아침밥을 먹기로 했다. 망설이다가 서랍장에 넣어 둔 통조림을 꺼내 뜯었다. 뼈와 살을 함께 얼마쯤 천천히 씹고 나자 꽁치에 스며 있던 양념이 입안에 퍼졌다. 짜고 비릿한 느낌이 차츰 사라졌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 정도였다. 좀 더 먹자 고소한 맛이 풍기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는 직원들과 어울려 뚜껑을 딴 통조림으로 밥을 먹었다.
어? 공장장 님 원래 통조림 안 드셨잖아요.
함께 점심을 먹기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누군가 박이 꽁치 토막을 입에 떠 넣는 걸 보고 물었다. 박은 꽁치 국물이 스민 흰 밥을 입에 넣으며 씩 웃었다. 밥을 먹은 후에는 직원들과 함께 복숭아와 감귤 통조림을 먹었다. 양치를 해도 입안에 달짝지근한 맛이 남았다. 하루 종일 사탕을 물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퇴근 후에는 사택에 돌아가 통조림 중 하나를 꺼내 김치를 넣고 요리를 하거나 다져서 양념장을 만든 후에 술안주로 먹었다.
서랍장에 넣어 둔 것을 다 먹어, 처음으로 전前 공장장의 통조림을 땄을 때 박은 당황해서 깡통 포장과 내용물을 번갈아 보았다. 몇 개인가 통조림 뚜껑을 더 따 보고 나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통조림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포장과 내용물이 뒤죽박죽이었다. 꽁치 통조림을 따면 꽁치가 나오기도 했지만 고등어나 양념깻잎이 나왔다. 고등어 통조림을 따면 고등어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깻잎이나 꽁치가 나왔다. 과일 통조림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통조림은 T 국으로 보내려고 했던 것인 듯 콩장이나 멸치볶음 같은 게 나왔고 오래되어 곰팡이가 피고 쉰내를 풍기는 물컹해진 감자조림도 나왔다. 무엇이든 뚜껑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내용물을 알 수 없었다. 박은 꽁치 통조림에 들어 있는 고등어를, 고등어 통조림에 든 콩장을, 깻잎 통조림에 든 깻잎을 먹으며 자신이 처음으로 공장장 때문에 웃었다는 생각을 했다.
통조림에서 먹을 것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빨지 않은 채로 밀봉되어 역한 냄새를 풍기는 양말과 속옷 뭉치가 나오기도 했다. T 국으로 송금한 내역서가 여러 장 나왔고 T 국의 딸아이에게서 받은 영어 편지가 두어 통 나왔다. 여러 달 치 급여 명세서와 연금을 받으려고 붓고 있던 적금 내역과 생명보험 약정서가 나왔다. 공장장의 이름이 이니셜로 새겨진 열쇠고리가 또 다른 이니셜로 새겨진 열쇠고리와 함께 나왔다. 신용카드 영수증이 나왔을 때는 꼼꼼히 내역을 살펴보았다. 오래전, 누군가와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본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뭔가 나올 때마다 유심히 보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뜻하지 않게 공장장의 삶에 끼어든 것 같아서였다. 통조림 뚜껑을 딸 때면 겁이 나기도 했다. 여전히 깡통 안에서는 뭔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피 냄새에 섞여 곪은 내를 풍기는 정체 모를 뼈와 살덩어리 같은 게 나온다면, 어쨌거나 공장장은 죽은 개를 밀봉한 적도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박은 고심하다가 그것을 들고 공장으로 가기로 했다. 용량이 큰 깡통을 가져다가 손에 피가 묻지 않게 조심하면서 내용물을 옮겨 담은 후에 압착기로 뚜껑을 내리누를 거였다. 피식 소리가 나면서 깡통 안에 고여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면 썩어 냄새를 풍기던 뼈와 살덩어리는 다시 얼마간 비밀을 품은 채 깡통 속에 고요히 밀봉될 거였다. 그것은 박이 꽁치나 고등어 이외의 것을 넣어 밀봉한 첫 번째 통조림이 될 거였다. 박은 이제 막 천천히 칼날을 움직여 뚜껑을 딴 통조림의 내용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전 공장장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라고.
편혜영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슬 털기」로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아오이 가든』,『사육장 쪽으로』, 장편 소설로 『재와 빨강』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필사하느라 애쓰셨겠습니다,,,,^^
덕분에 좋은 소설 한 편 뚝딱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