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순 고문은 7년 동안 돌봐드리던 이근우 할아버지에게 명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세배를 드렸다. 할아버지가 세뱃돈을 주셨는데 한사코 받지 않고 왔다. “그게 아직까지도 마음이 짠하다. 생전 처음 세뱃돈을 주시는 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헤아려야 했는데. 우선 세뱃돈은 받고 나중에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사드려도 되는 것인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인데...” 지금은 작고한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정 고문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정 고문은 1979년 평택군 송탄읍에서 봉사원을 모집해 신수근, 전금련 씨 등과 함께 적십자봉사회에 몸담았다. 그 때는 3명이 평택으로 다녔다. 1982년 송탄이 시로 승격되면서 10월 12명의 회원으로 청솔봉사회를 발족했다.
정 고문은 청솔봉사회 발족 후 장년봉사회를 발족을 필두로 노년봉사회 등을 발족시켰다. 그 후로 5개 봉사회가 발족되자 지구협의회가 구성됐고 이동준 봉사원을 초대회장을 추대했다. 정 고문은 “송탄지구협의회에 12개의 봉사단체와 300여명의 봉사원으로 발전한 것을 보면 뿌듯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청솔봉사회 회장을 맡았던 10년 동안 월례회를 정 고문의 집에서 개최했다. 정 고문은 손수 점심과 다과를 준비해 회원들을 맞이했고 절약한 일인당 회비 5000원은 그대로 저축했다. 그 적립된 회비로 매년 노인잔치를 개최했고 봄에는 독거노인들과 야유회도 가고 목욕봉사도 했다.
정 고문은 청솔봉사회 부회장을 7년, 88년부터 10년 동안 회장을 역임했다. 청솔봉사회의 노영란 봉사원은 정 고문의 막내며느리다. 노 씨와 친구 등 3명은 정옥순 며느리 3총사 봉사원으로 불리우며 어머니를 본받아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태광중학교 여학생 지원, 효명중학교 급식지원, 신장동 윤락여성 돌봄, 뇌성마비 아동을 정 고문의 호적에 넣고 오산성심동원에 보낸 일 등 많은 봉사를 해왔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 울기도 많이 했다. 가난했던 성육보육원에 10년 동안 떡국 만들어주기, 음성 꽃동네에서 딸의 심정으로 봉사하기, 파주 홀트아동복지회에 엄마의 마음으로 지원하기 등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정 고문은 98년에 팔이 부러졌을 때도 봉사에 참여했다. 부군이 와병 중인데도 남편 병수발을 하며 봉사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또 당시 정 고문은 수많은 봉사의 경험과 리더십 등으로 유명했다. 수원과 부천군청에서 초청을 받아 100여명의 봉사원에게 성공사례를 발표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정 고문의 수많은 봉사의 공로로 각종 상도 많이 받았다. 1991년과 92년에 도지사 표창, 95년엔 적십자 강영훈 총재표창을 받았다. 2005년 한완상 총재로부터 봉사 10000시간 표창을 받았고 1999년에는 국무총리 상을 수상했다.
새해가 되면 80세다. 정 고문은 점점 몸이 말을 안 들어 마음이 무겁다. 압박골절로 허리에 인공뼈 7개를 시술했고, 3층 계단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10개나 부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봉사는 꼭 참여한다. 정옥순 고문은 “건강이 유지된다면 더욱 활발히 활동할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첫댓글 송탄지구협의회 2013 봉사원의 밤 책자에 실었던 기사입니다.
정옥순 고문님!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건강 하셔서 오래오래 적십자인으로 남아 주세요.
신 부장님 따뜻한 소식 감사 합니다.
정옥순 고문님은 우리 친구(초등학교 동창생 김재윤)의 어머님이세요.
지금도 가끔 불러서 밥도 사 주시고 용돈도 주세요. 오래오래 사세요. 어머님!~~
적십자의 산 증인입니다. 만수무강!! ^^
정옥순고문님 존경스럽습니다 대단 하십니다~ 저는 부끄러웁이 앞서네요~
오래 오래 건강하셔요~신연호부장님 마음을 움직이는 기사 잘 보았습니다~
존경합니다. 더 많은 봉사할수잇게 더욱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