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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보이는 사람들 「영국 서식스대학교 인지신경학 교수. 공감각과 뇌의 다중 감각을 연구하며, 공감각 연구 논문만 100편에 달할 정도로 공감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을 통한 과학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 <디스커버리 채널>과 <BBC>의 여러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 출연하였다, 지은 책으로 <인지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안내서>, <사회신경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안내서>등이 있다.」
Chapter01 알록달록한 색소 결핍증 환자
“1812년 게오르게 작스는 독일 에를랑겐의 대학가에서 자신의 놀라운 질병에 대해 서술한 의학 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작스는 색소결핍증 환자였다. 온몸의 털과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순수한 하얀색이었고, 그의 막내 여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산악지대의 작고 외로운 마을인 세인트루프레히트에서 다섯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교육 수준이 높고, 종교적이면서 겸손한 사람이었다. 당시 색소결핍증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보고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흑인 부모 밑에서 하얀 피부의 아이가 태어나면 괴물 취급을 하며 젖을 물리지 않았었다.
게오르게 작스가 놀라웠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의학 학위 논문 말미에서 작스는 자신이 특정 소리, 단어 , 개념에서 주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색을 본다는 사실을 기술했다. 알파벳을 보면 A와 E는 둘 다 빨간색, I,M,N은 하얀색, D는 노란색,S는 짙은 파란색 등으로 나타났다. (숫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편집자).
공감각은 소수의 사람들에서 발견되며, 생물학적 기반을 갖춘 실제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애는 아니며 어떤 치료나 동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뒤늦게 발견된 일이지만 공감각은 색소결핍증과도 관련이 없다. 그리고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각을 갖고 싶어 한다.
이 책은 공감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의 뇌가 감각적 경험을 창조해내는 원리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1. 우리 집에 외계인이 있다.
공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세상을 전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한다. 단어에서 맛이 느껴진다거나 이름에서 색깔을 본다거나 숫자가 공간 속을 미끄러지듯 날아다닌다. 공감각의 정의에는 대부분 정상적이라고 기대하는 감각에 ‘추가’감각이 덧붙여진다는 점이 강조된다.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색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색이 소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는다. 색은 소리와 공존한다. 이것이 바로 공감각을 추가적 감각이라 여기는 이유다.
“저는 제게 공감각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대 중반쯤에 부모님과 숫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죠.”
공감각은 유전으로 대물림된다. 따라서 공감각의 자녀들도 공감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녀는 자신의 이름을 다른 색과 연관 지을 가능성이 크다.
아동기가 지날 때까지는 가족들끼리 서로의 공감각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감각자가 한 가지 유형 이상의 공감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공감각이 공통의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공감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여러 개일지도 모른다. 가족마다 서로 다른 공감각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열 개의 공감각 유전자가 있는데 그 중 몇 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공감각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누구나 공감각자를 한 사람 정도는 알고 지내지만, 그렇다고 자기 주변에 공감각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니다. 누가 공감각자인지 모를 수 있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의 뇌가 유효한 사회적 관계를 150개 정도 유지할 수 있는 용량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수치를 가지고 계산해 본다면 우리는 고전적으로 이야기하는 인간의 오감(시각, 청각, 촉가, 미각, 후각)중 하나에서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을 여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 알고 지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이런 유형의 공감각이 인구의 1퍼센트 내지 2퍼센트에서 나타난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글자에서 색깔을 보았다.
2, 공감각 연구의 흥망성쇠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 색이 없는 빛을 색을 띤 빛의 스펙트럼으로 분리했고, 따라서 색이 빛의 속성임을 밝혀냈다. 뉴턴은 공감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스펙트럼의 일곱 색깔과 서구 음계의 일곱 음정을 서로 연결하는 물리법칙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물론 이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3. 색을 듣는 시각장애인
토머스 커츠포스는 1920년대 오리건대학교의 심리학과 학생이자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점자책을 읽을 때 손가락 끝 아래에서 글자의 색을 보았다. 그가 글자의 실제 색깔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글자에 해당하는 자기만의 공감각 색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하자. 그가 수를 세면 얼굴에서 1m 떨어진 공간에 색을 띤 각각의 숫자들이 배열되었다. 1은 희색, 2는 노란 기운이 도는 탁한 회색, 3은 블그스름한 색 등. 앞이 보이지도 않고,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숫자가 거기 있는 것도 아닌데 큰 숫자를 불러주면 그의 눈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만약 눈이 손상되어 자극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시각을 담당하던 뇌 영역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정상적으로 시력에 이용되던 뇌 영역을 청각과 촉각 같은 다른 감각이 인수한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축적되어 있다. 뇌 영상을 보면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점자책을 읽을 때 정상적으로는 시각에 할당되어야 할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4. 닭고기에 점이 모자라요
Chapter02. 감각은 몇 가지일까
우리가 지닌 감각은 몇 종류일까? <뉴사이언티스트> 2005년 1월호에 수록된 한 논문에 따르면 스물 한 종류, 혹은 열 종류, 혹은 서른 세 종류라고 한다. 아니면 세 종류일 가능ㅅ어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오감,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다섯 가지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숫자들은 대체 어떻게 나왔고, 왜 이토록 의견이 엇갈릴까?
감각을 연구하는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이 질문을 그다지 심각하게 따지고 들지 않는다. 질문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답변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 아기들의 세계
우리 몸(피부, 망막, 내부 장기 등)에 있는 감각 수용기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아기도 엄마의 목소리, 심장박동, 양수의 맛 등을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여러분이나 나와 똑같은 종류의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보는 법, 듣는 법, 맛보는 법 등을 모두 배워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감각과 지각이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감각은 무언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느낌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빨간색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이다. 반면 지각이란 현재 느껴지는 감각을 기존의 모든 감각과 비교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토마토의 지각에는 단순히 빨갛고 둥근 물체를 감각하는 것 이상의 과정이 관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토마토를 보았던 기존의 경험과 비교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신생아에게는 감각은 있지만 지각은 없다.
발달과정에서 아기는 서로 다른 입력에 각각 다른 감각을 할당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것에 부분적으로만 성공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어서도 감각들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유아시절에 경험했던 공감각의 잔재가 남는다.
신생아의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다. 뇌의 신경세포들은 기능하는 동안 작은 전기장을 만들어 낸다. 두피에 전극을 가져다 대면 이런 전기적 뇌파를 감지해서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장치를 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아기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아기에게 소리를 들려주면 청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시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전기적 활성이 나타난다. 마치 소리가 청각적 속성은 물론이고 시각적 속성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더 자란 아동이나 성인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와 유사하게 아이의 손목을 잡으면 촉각의 지각과 관련된 뇌 영역에 전기 활성이 만들어 진다. 만약 이 촉각 자극에 백색소음(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리 같은 소음)이 함께 동반되면 뇌의 반응이 증폭된다. 이런 현상 역시 성인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기에게 입에 물 오돌토돌한 고무젖꼭지를 주고서(아기가 이 물체를 눈으로는 절대 보지 못하게 하고 입의 촉감만으로 그 모양을 느끼도록) 그 다름에는 표면이 매끄러운 고무젖꼭지를 보여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기는 입에 물고 잇는 것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까? 실제로 그랬다. 아기는 촉각과 시각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면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유아는 시각적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촉각으로 느낀 모양과 눈으로 보는 모양을 연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감각적 지식들 간의 뒤섞임이 로크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활기차고 부산할지 모르나, 완전한 혼란만은 아닌 것이다. 이 흥미로운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개별 감각은(혹은 부분적으로 개별적인 감각들은) 통합되었던 초기의 단일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어떤 유전적 영향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감각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을 상실하도록 미리 프로그래밍 된 채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신생아에게서 보이는 정도의 감각 연결 능력을 잃어버린다. 다른 조의 뇌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를 보면 생의 초기에 뇌의 청각 영역과 시각 영역이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은 발달 초기과정에서 상당히 감소한다.
유아들은 처음에는 전 세계의 언어를 구성하는 미묘한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그러다가 자라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맞춰진다. 그 결과 다른 언어에 존재하는 미묘한 소리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고 만다.
일부 사람은 어린 시절의 공감각을 성인까지 유지하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을 상실하거나 변형하는 것인가?
단어에서 색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보통 단어들이 첫 글자 색을 따르는 경우가 흔했다. 예를 들어 A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는 A의 색을 띤다.
숫자 6은 아주 강력한 구토의 맛이 났지만, 숫자 8은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냄새와 맛이 일단 짝지어지면 잊어버리기 어렵듯이 공감각도 일단 자리를 잡으면 떨쳐내기가 무척 힘들다.
2. 청각과 시각이 충돌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각적 착각, 즉 착시를 겪는다. 하지만 다른 감각에서도 착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감각이 공모해서 착각을 일으키는 다중감각 착각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려진 바가 적다.
3. 어둠 속의 식사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식사를 내온다. 런던 지점을 담당하고 있는 에두아르 드 브로이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음식의 생김새를 보고 그 맛을 예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감각들이 갑자기 깨어나면서 마치 그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은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지요.
Chapter 03 변경된 현실
1. 다중감각 지각에서 공감각까지
공감각에는 몇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유전적 요소가 있어 선천적으로 발생하는 형태. 시각장애(혹은 다른 유형의 감각 상실)가 생긴 이후에 발생하는 후천적 형태. 그리고 특정 약물을 복용한 이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다. 이런 원인들은 다중감각 지각을 지배하는 규칙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작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한 가지, 바로 공감각이다.
엄격히 말하면 공감각의 모든 유형이 다중감각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글자나 숫자에서 색이 보이는 것은 시각-시각적이다. 하지만 시각의 서로 다른 측면들이 엮이고 있다(모양과 색). 따라서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연결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이 사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심지어 색을 띠는 글자와 숫자의 경우에도 진정한 다중 감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말로 듣는 글자나 촉각으로 느낀 글자도 눈으로 보는 글자와 똑같은 색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또 다른 감각인 고유수용성감각이 그 색의 공간적 위치를 지각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2. 흰색의 o, 노란색의 쇼팽
공감각자들은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 가서는 왜 특정 존재가 자신이 느끼는 특수한 감각을 유발하는지 궁금해 한다. 내 A는 왜 하필 빨간색일까? 플루트의 음은 왜 하필 황금색 줄무늬일까? 숫자 1은 왜 하필 저기에 가 있을까“ 최근까지만 해도 공감각 연구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모두 헛된 것이라 믿었다.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특이한 색들을 골랐고, 심지어는 가족들 사이에서 무엇이 올바른 색이냐를 두고 의견이 제각기 엇갈리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만 놓고 보면 특정 사물이 특정한 감각을 유발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공감각자들을 충분히 접하다 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등장한다. 알파벳을 생각해보자.
공감각자들 중 43퍼센트는 A를 빨간색이라고 생각하고, 58퍼센트는 B를 파란색이나 갈색으로 생각하고, 29퍼센트는 C가 노란색이라고 생각하고, 49퍼센트는 O가 하얀색이라고 생각한다. 10퍼센트 의견 일치에는 한참 모자라는 비율이지만 글자의 색이 순수하게 무작위로 연결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영어에서는 색을 11가지 기본 명칭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검정색,하얀색,빨간색,파란색,초록색,노란색,갈색,오렌지색,회색,보라색,분홍색). 이렇게 분류하면 모든 상황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각각의 색이 가지는 기본확률은 9퍼센트 정도가 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공감각이 없는 사람들도 똑같은 경향을 보인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A라는 글자가 무슨 색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 대체 무슨 예기를 하시는 거예요?”하지만 아무 색이나 하나 골라보라고 조르면 대략 40퍼센트 정도의 사람은 빨간색을 선택한다. 이들은 자기가 한 대답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질문을 다시 받으면 쉽게 다른 색을 대답할 수도 있다(하지만 이렇게 해도 그중 40퍼센트 정도는 빨간색을 고를 것이다). 이것은 공감각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공감각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선택하는 색이 변하지 않는다.
앞에서 나는 공감각에 적용되는 연합 규칙을 일반인에게 나타나는 다중감각 처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증거중 하나는 공감각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각적 경험과 우리의 정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정상적으로는 무의식적인) 다중감각 연합 사이의 유사성으로부터 나온다.
사이키델릭 세계에는 음악이나 다른 소리에서 시각을 경험하는 공감각자들이 가장 가깝다. 그들의 경험에는 색, 모양, 질감, 움직임이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거칠게 요동치며 흐른다. 때로는 삼차원의 안개 같은 것이 그들을 향해 다가와서 마치 빗속을 걷는 기분이 다르기도 한다. 이런 공감각자들 중 상당수가 음악과 시각 예술에 흥미와 재능을 보이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일러스트레이터 롤프Rolf는 이렇게 말한다.
“공감각은 허공을 떠다니다 귓속으로 들어오는 무언가를 거의 만질 수 있을 듯 생생한 경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콘서트 현장을 찾는 사람처럼 나도 음악 속에 몸을 담글 수 있다. 다만 나는 집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나는 다양한 음악을 즐긴다. 나는 존 레논의 목소리가 항상 빨간 셀로판지처럼 들린다. 꼭 빨간색이어야 한다. 피아노 음악이 담긴 음반을 들으면 아주 좋은 공감각 반응이 일어난다. 나는 음이 높아지면서 피아노 소리가 짙은 갈색에서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무척 좋아한다. 고음이 빠르게 연속적으로 연주되면 마치 별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르페지오 연주 부분으로 접어들면 인쇄된 패턴이 내 눈앞에서 슬슬 풀려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아주 관능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과학이 이런 분명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이 문제를 파고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 가지 설명은 이 자리에서 바로 반박할 수 있다. 바로 음파의 주파수와 색 감각을 일으키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주파수 사이에 특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음악의 음높이가 차례로 내려간다고 해서 빛의 파장이 짧아지는 순서(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순서)로 색 경험이 촉발되지는 않는다. 18세기에는 몇몇 음악가들이 특정 음이 연주될 때 색을 투사하는 컬러 오르간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색은 보통 1672년에 처음 보고된 뉴턴의 색 스펙트럼에 따라 배열되었다. 하지만 이 오르간들은 공감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공감각자들은 소리에서 그런 색 배열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1975년에 래리 마크스Larry Marks는 이런 유형의 공감각에 관한 다수의 역사적 논문을 검토한 후에 음 높이, 그리고 공감각 시각의 명도와 휘도가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음은 더 옅고 밝은 경향이 있는 반면, 저음은 더 짙고 어두운 경향이 있었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환각제에 의해 유도되는 공감각에서도 같은 경향이 발견된다는 증거도 있다. 나는 최근에 자연발생적 공감각자 집단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존재함을 밝혔고 이를 공감각이 없는 대조군 참여자들과도 직접 비교해보았다. 대조군 참가자들은 어떤 시각적 경험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며 그들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그 소리와 가장 어울리는 색을 골라보라고 요청했다. 공감각자들은 똑같은 소리를 들려주면 아주 비슷한 색을 고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대조군은 더 다양한 색을 골랐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둘 사이에 충격적인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했다. 대조군과 공감각자들 모두 음이 높아질수록 색의 명도도 함께 올라가는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즉 공감각자는 음악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통해 말 그대로 색을 볼 수 있었고, 공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추론해내야 했을 뿐이다. 그리고 공감각이 없는 사람은 그냥 자동적으로 음의 높이와 명도를 연결하는 다중감각 규칙을 추론해냈을 것이다.
(비공감각자 들에게서)재채기는 밝다고 생각하는 반면, 기침은 어둡다고 생각된다. 햇빛은 시끄럽고 달빛은 조용하다. 이런 의미 있는 연관은 문학과 시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에드거 엘런 포는 ‘회색 땅거미의 속삭임’이라는 표현을 썼다. 러디어드 키플링는 ‘여명이 천둥처럼 솟아올랐다’라고 했다. 그리고 퍼시 셀리는 ‘잠잠해진 음악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하게 타오르는 빛’이라고 했다.
캐시 먼드락과 다프네 모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에게 검은색과 희색의 튀는 공 두 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끽끽거리는 고음과 쿵 하는 저음을 들려주며 어느 공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기들은 끽끽거리는 소리를 하얀색과 짝 짓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흰 공이 더 고음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이런 규칙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생 후 한 달밖에 되지 않는 아기들조차 음 높이와 시각적 밝기를 짝지을 수 있다.
색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발간색, 검정색, 희색, 보라색, 주황색, 갈색, 분홍색, 회색. 제일 먼저 나오는 항목은 원색에 제일 가까운 색들이다. 하지만 이 색들은 영어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색이 아니다. 영어에서 제일 흔하게 나오는 색은 검은색, 희색, 빨간색이다. 대조군 참가자들에게 색을 알파벳 글자들과 연관 지어보라고 요청했더니, 그들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감각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훨씬 흥미롭게 행동했다. 1969년 언어학자 브렌트 베를린과 폴 케이 는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언어들이 색에 어떻게 이름을 부여하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색에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깁ㅎㄴ색을 나타내는 용어가 몇 가지가 되는지는 문화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었다. 영어에서는 위에 나열했던 11가지 기본적인 색 이름이 확인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불과 2개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두 학자는 어느 언어든 어휘에 새로운 색이 추가될 때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서열은 다음과 같다.
1. 검은색. 흰색 2. 빨간색 3. 초록색, 노란색 4. 파란색 5. 갈색 6. 주황색, 보라색, 회색, 분홍색
E, T, A, O, I와 같은 흔한 글자들은 검은색, 흰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흔한 색을 갖고 K, X, J, Q, Z같은 드문 글자들은 보라색, 분홍색, 주황색, 회색 같은 드문 색을 갖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실험 결과는 공감각자들이 글자와 색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함께 연결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3. 공감각을 끌 수도 있을까
공감각자들은 일반적으로 공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공감각이 꺼진 사람을 이미 만나본 적이 있다.
흥미로워 보이는 성향은 행복할 때 공감각이 더 강화된다고 믿는 공감각자가 더 많았고, 행복할 때 공감각이 약화된다고 믿는 공감각자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무시하면 공감각이 약화되고, 주의를 기울이면 더 강화된다고 주장하는 공감각자들이 더 많다.
Chapter 04 이마 안의 스크린
1. 환상 촉각
제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수류탄이 손에서 터지는 바람에 손을 절단한 사람이 많았다. 그 중 일부는 마치 사고 순간이 고통스러운 메아리로 남아 있는 듯 환상의 손이 수류탄을 영원히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라진 팔다리가 아직도 공간을 차지하며 남아 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디들로의 설명은 그의 수준 높은 통찰력을 보여 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경은 마치 종을 울리는 당김 줄 같다. 줄의 끝부분을 당겨도 종은 울리겠지만, 사실 줄의 중간 어느 곳을 당기더라도 종은 울린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환상지 현상은 줄의 반대쪽 끝, 즉 뇌 자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거의 분명하다. 환상지 현상은 영향을 받는 감각이 시각이 아니라 촉각(그리고 우리 몸이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감각인 고유수용성감각도)이라는 점을 빼면 시각장애 발생 이후에 일어난다고 설명했던 뇌의 재구성 현상과 비슷하다. 뇌의 어느 영역이 정상적인 입력을 받지 못하면(예를 들면 시각 상실이나 팔다리 상실 등으로 인해) 그 부분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 오는 입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환상지의 경우를 보면, 정상적으로는 팔다리에 반응하던 두뇌 영역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촉각에 반응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잇다. 그래서 얼굴을 만지면 얼ㄱ루을 만지는 느낌뿐만 아니라 환상손도 함께 만져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환상지 현상은 한 종류의 감각 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진정한 공감각 사례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장에서 주장하는 핵심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물리적으로는 공간 속에 감각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뇌는 우리의 감각이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공감각은 환상지 현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통증을 치유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자연발생적 유형의 공감각에 비교하면 후천적 유형의 공감각은 불안정한 특성이 있다.
2. 다른 유형의 공간
우리는 고유수용성 감각 코드 덕분에 팔다리가 공간의 어느 위치,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망막에 새겨지는 빛의 패턴에서 유래되어 우리의 팔다리 위치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각적 공간 코드와는 별개의 것이다.
촉각, 통각, 청각 등 다른 감각들도 모두 공간을 코드화 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고무손 착각이나 복화술의 사례처럼 때때로 이런 서로 다른 공간 코드들이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내놓을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서로 잘 일치하는 경향이 있고 유익하게 서로 결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유형의 공간 정보를 결합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당신 앞에 찻잔이 놓인 탁자가 있고 당신은 그 잔을 들고 싶어 한다고 상상해보자. 이는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체 그 찻잔이 어디 있는지를 당신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그 찻잔과 관련된 빛의 패턴은 망막의 한 부분을 자극할 것이다. 망막과 뇌에서 시각 처리를 제일 먼저 담당하는 영역은 시각적 공간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른쪽 공간을 차지하는 물체는 망막의 왼쪽에 비치고, 왼쪽 공간의 물체는 그 반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망막 위에 맺힌 상의 위치만으로는 그 찻잔이 공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잇기 때문에 망막 위에 맺힌 상의 위치도 덩달아 함께 날뛴다. 망막 지도에만 의지해서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가는 날마다 나는 파리를 잡으려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찻잔이 망막 지도에서 왼쪽에 있는지, 가운데나 오른쪽에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위치 정보도 얻지 못한다. 다만 눈과 머리가 공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만약 눈은 20도 각도로 왼쪽을 바라보는 중이고, 머리는 정면을 향하고, 망막에서 오른쪽으로 10도 위치에 찻잔이 있다면 이제 외부 공간에 있는 저 찻잔의 방향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찻잔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것을 들어 올리려면 자기 손이 공간 속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무손 착각을 살펴보면서 논의 했듯이 손의 위치는 눈으로 보거나(손도 찻잔과 마찬가지로 망막 지도 위의 한 점된다). 고유 수용성 감각을 이용함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대부분은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좌표변환이라고 부른다. 실제 지도들을 보면 서로 다른 축척과 원점(지도의 중앙)을 가지며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표상한다. 한 지도를 다른 지도 위에 겹쳐놓으려면 공통의 기준점을 찾은 후에 서로에 맟추어 축적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뇌도 마찬가지 일을 한다. 망막 지도의 원점은 시선의 중앙ㅈ머이고 다른 점들은 이 점으로 부터의 거리와 방향을 표상한다. 하지만 뇌에는 손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도 있다. 여기서는 공간상의 점들이 손으로부터의 거리로 표상된다(손의 위치가 원점이 된다). 일반적으로 좌표변환은 눈, 머리, 몸의 위치를 우리가 현재 바라보고 있는 시각적 세상에 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현재의 시각적 세상 지도는 망막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뇌의 시각 담당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공간처리에 특화된 뇌 영역인 마루엽parietal lobe(두정엽)에 있다. 3. 생각하는 공간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시각적, 공간적으로 생각하는지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전혀 없어서 칙을 읽으면 그냥 이야기만 떠오를 뿐 영화나 그림 같은 것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공감각자든 아니든 이 얘기에 격하게 고개를 저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떤 친구나 상황에 대해서 묘사하면 이런 사람들은 그 친구나 상황을 쉽게 시각화한다. 이미지의 위치 또한 달라진다. 일곱 살 이전의 아동 중 4분의 3 정도는 자기 앞에 있는 공간에 시각적 이미지를 투사한다. 반면 대다수의 사람은 그 이미지가 내면의 스크린 비슷한 곳에 떠올라 마음의 눈으로 본다고 묘사할 것이다. 한 가게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 뒤 그것이 얼마나 명확하고 생생한지 물어보면 공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공감각 경험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생한 이미지와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이미지는 유연성이 있고 의지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친구의 얼굴을 상상할 때 앞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옆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모자를 씌울 수도, 콧수염을 그려 넣을 수도 있고, 얼굴 자체를 아예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반면 공ㄱ마각 경험들은 언제나 확실하다. 예를 들어 A는 언제나 빨간색이고, O는 언제나 하얀색이다. 그럼에도 공감각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생한 이미지 사이에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양쪽 모두 우리 내면의 생각이 펼쳐지는 사례들을 감각적, 공간적 코드에 표상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공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고유의 공간적 속성이 없는 개념에도 공간 코드를 불어넣을 수 있다. 뇌가 어떻게 숫자나 시간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가는 언제나 수수께끼였다. 한 가지 해결책은 추상적 개념에 감각되는 사물의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좀 더 실체가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3과 같은 숫자는 코끼리 세 마리, 세 가지 소리, 세 개의 생각 등 세 개가 모인 것은 무엇이든지 지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개념이다.
파리 대학교의 스타니슬라스 테하네는 우리 모두에게 숫자를 이해 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수직선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뇌가 숫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길이 등의 물리적 차원을 이해하는 방식과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두 선을 보여주며 어느 쪽이 더 긴지 판단해보라고 하면 뇌는 그 차이가 크거나, 두 선의 길이가 짧을수록 정담을 잘 찾아낸다. 흥미롭게도 선 대신에 두 숫자를 제시 했을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 그는 정신적 수직선은 공간적 차원을 가지고 있어서 적어도 서구문화에서는 그 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어있다고 주장한다. 값이 작은 수는 왼쪽에 나타나고 큰 수는 오른쪽에 나타나는 것이다.
숫자가 공간 코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있다. 한 가지 실험을 상상해 보자.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중앙에 숫자가 나타나면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판단해서 왼쪽이나 오른쪽에 있는 단추를 누르는 실험이다(어떤 사람에게는 홀수는 왼쪽, 짝수는 오른쪽 단추를 누르라고 지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반대로 지시했다). 실험 결과 작은 숫자(예를 들면 1 과2)에는 왼손의 반응이 빠르고, 큰 수(예를 들면 8과 9)에는 오른 손의 반응이 빨랐다. 그리고 중간 숫자들은 그 사이의 결과가 나왔다. 마치 우리 몸 바깥에 방향을 가진 수직선이 존재해서 숫자에 대한 우리의 반응 속도를 무의식적으로 편향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었다.
숫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코드화 한다는 증거가 있다.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거나, 과거는 뒤로 지나간 일이라는 등 시간에 공간적 비유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숫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빠른 달(1월, 2월 등)에 대해서 판단할 때는 왼손으로 세는 것이 빠르고, 늦은 달(11월, 12월 등)에 대해서 판단할 때는 오른손으로 세는 것이 빠르다. 마치 자신 앞에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정신적 달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앤드루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특히 날짜를 잘 기억하는데,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축하 인사를 하거나, 누가 자기는 화요일에 태어났다고 하면 그날은 수요일이었다며 나이 속인 것을 들통 나게 만들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그는 달력 계산을 할 수 있다. 즉 날짜를 이야기하면 요일을 알아맞히는 재주가 있다(예를 들어 1972년 2월 2일은 수요일이었다는 등). 그의 이러한 능력은 특정 시점의 날짜들을 암기해놓는 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생일이나 다른 가족의 생일 등인데, 이런 날짜가 고정점으로 작용한다. 암기해두지 못한 다른 날짜의 요일을 맞히려면 그는 주변에 있는 고정점을 하나 고른 다음에 해당 날짜가 나올 때까지 자신만의시간표를 따라 일주일 단위로 공간적 스크롤 해서 요일을 읽어낸다.
‘레이철‘은 지도 만들기의 대가다. 숫자, 글자, 시간에 대해서만 물어본 우리의 설문지에 답한 뒤, 그녀는 다른 많은 것들도 공간적으로 조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숫자, 알파벳, 시간(요일, 월, 하루의 시간, 연도, 역사적 시기마다 개별적인 형태가 존재한다), 백분율, 사람의 키, 신발사이즈, 거리, 무게(킬로그램, 온스, 파운드 등이 모두 따로따로 존재한다), 온도(섭씨, 화씨), 심지어는 환율까지! 그녀는 수고스럽게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을 이용해 4미터에서 5미터 정도 되는 종이 두루마리 뒷면에 그것들을 일일이 다 그려주었다. 그 그림은 아직도 내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다.
“다양한 평면이 존재해요. 수평, 수직, 왼쪽에서 시작하는 것,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것, 허리 높이 위에 있는 것, 허리 높이 아래 있는 것, 내 앞으로 펼쳐저 있는 것 등이요. 알파벳은 위로 꼿꼿하게 서 있는 편이지만 글자의 크기가 다양하고 올라가면서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져요. 그리고 Q R S T 이후로는 내게서 멀어져요. (...)월은 살짝 비틀어지고, 내가 현재 생각하는 달이 무엇이냐에 따라 움직여요. (...)요일)은 몇 가지 형태가 있는데, 우선 장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기본적인 일요일 - 월요일 형태가 있어요. (...) 이것들은 모두 완전히 따로따로 존재하는 평면들이에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이것들이 모두 얼마나 고정적이고 확실한지 갑자기 깨달았는데, 남들은 이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네요.”
그녀의 몸 주위 공간에는 공감각적 순서와 지도들이 어수선하게 모여 있다. 그녀가 이 모든 것들을 뚫고 그 너머를 보려면 시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공감각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공간 형태들도 그녀가 시간, 숫자 등에 대해 생각할 때만 의식으로 들어온다. 의식하는 순간 각각의 공간 형태가 마법처럼 자기만의 위치에 다시 나타난다(마치 우리가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으면 자신의 코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이런 것들을 자기가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오히려 그녀가 새로운 순서를 대할 때마다 뇌가 그것들을 구축해낸다. 그녀의 마루엽은 지금까지 계속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뇌는 주어진 정보로부터 조직화된 체계와 구조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공감각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잉여 정보 소스를 제공해 주고 이것은 그들의 사고 과정 속으로 동화되어 들어간다.
내가 이 책에 담고 싶은 주제 중 한 가지는 공감각이 그저 세상을 지각하는 대안적인 방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대안적 방식이라는 것이다.
4. 원주율의 사나이
대니얼은 리처드 파인만처럼 공감각이 있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서 숫자에서 생기는 서로 다른 공감각적 경험들을 하나의 공간적 풍경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풍경의 흐름을 보면 그는 거기에 해당하는 숫자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대화를 나눠본 공감각자들은 색을 띤 숫자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지어 있는 것처럼 시각화해서 전화번호를 외우는 경향이 있었다. 공감각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전화번호의 심상을 보아서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훈련을 거친 수많은 기억력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공감각자의 기억력도 꼭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종종 사람을 숫자와 동일시한다. 그래서 키 큰 사람을 보면 숫자 9가 떠오르기도 한다(공감각적으로는 이 숫자가 키가 큰 수다). 또한 원주율의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실제 세상의 길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고 호소한다.
Chapter 05 감각을 넘어서
공감각은 특이한 감각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정의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우리 모두가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다중감각 지각에 그 뿌리를 둔다고 주장해왔다.
호주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는 192명의 공감각자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장점으로는 “기억력, 언어, 글쓰기와 언어소통, 미슬, 수학” 단점으로는 “방향감각, 운동, 조종능력/균형감각, 수학”으로 꼽았다.
1. 시각으로 촉각을 느끼다.
여러분은 누군가 뺨을 맞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얼굴에도 촉감이 느껴지는가? 대다수의 경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오’이다. 어쩌면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살짝 망설였을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무언가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발길질을 ㄷ아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움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울 촉각 공감각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 만져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에서 국소적으로 실제 촉각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 흥미로운 유형의 공감각은 촉각이 그 감각적 기능을 넘어 보다 폭넓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뇌의 어느 부분이 가장 활성화되는지 관찰했다. 그리고 거울 촉감 공감각이 없는 12명의 대조굼 참가자를 공감각자인 크리스틴과 비교했다. 대조군 참가자들에게서 나온 결과는 그 자체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이 만져지는 것을 보는 동안 대조군 참가자들은 촉감에 반응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 되었다. 다시 말해 순수한 시각적 자극이 촉각에 특화된 뇌 영역을 활성화시켰다는 뜻이다. 거울 촉감 공감각자인 크리스틴의 경우에도 곁은 결과가 나왔지만, 크리스틴은 이 영역이 어느 대조군 참가자보다도 훨씬 크게 활성화되었다. 크리스틴의 뇌는 마치 의식적으로(즉 공감각적으로)촉감을 경험할 만큼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 같았지만, 여기에서 사용되는 두뇌회로는 다른 사람들이 신체의 접촉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두뇌회로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결과는 사람이 만져질 때만 일어났다. 사물(예를 들면 화병)이 만져지는 것을 봤을 때 크리스틴의 뇌 반응은 대조군과 별 차이가 없었다. 사물이 만져지는 것을 볼 때 크리스틴은 자기가 만져지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사실상 크리스틴과 같은 공감각자들은 말 그대로 타인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공감각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이들은 이 때문에 더 쉽게 비위가 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공감각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즐거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타인의 고통스러운 불행을 보면서 웃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요 저는 그 고통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도 느껴지거든요.
이런 공감각이 있으면 배려심이 많아지고 타인에 대한 공감도 많아진다.
이런 유형의 공감각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공감각은 왜 존재 하는가
호주의 한 공감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중에서는 예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이 2퍼센트인데 반해 공감각자는 24퍼센트가 미슬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왔다. 더군다나 그들은 취미로 미슬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
3. 다양성 만세
[감수의 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공감각 연구자. 김채연
이 책의 저자인 제이미 워드는 10여 년에 걸친 내 공감각 연구 여정에서 만난 동료 연구자이자 때론 영감과 자극의 원천이었다. 그는 공감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공감각 및 관련 주제에 대해 100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해왔다.
감각과 지각,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기관 및 뇌의 기능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준다. 뿐만 아니라 신경 가소성, 기억, 거울뉴런과 공감 등 주요 인지신경과학적 주제들을 아우른다. 이런 과정에서 공감각자 외에도 뇌의 손상 이 후 변형된 경험을 하는 환자, 착시, 정신분열증, LSD와 같이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 환상지 현상 등 특별한 사람들과 특별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공감각은 병이나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으로 여겨진다.
1920년대 오리건대학교의 심리학과 학생이자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점자책을 읽을 때 손가락 끝 아래에서 글자의 색을 보았다. 그가 글자의 실제 색깔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글자에 해당하는 자기만의 공감각 색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하자. 그가 수를 세면 얼굴에서 1m 떨어진 공간에 색을 띤 각각의 숫자들이 배열되었다. 1은 희색, 2는 노란 기운이 도는 탁한 회색, 3은 블그스름 한 색 등. 앞이 보이지도 않고,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숫자가 거기 있는 것도 아닌데 큰 숫자를 불러주면 그의 눈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만약 눈이 손상되어 자극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시각을 담당하던 뇌 영역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정상적으로 시력에 이용되던 뇌 영역을 청각과 촉각 같은 다른 감각이 인수한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축적되어 있다. 뇌 영상을 보면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점자책을 읽을 때 정상적으로는 시각에 할당되어야 할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Review]
책을 읽으면서 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고 흥미를 보이는 어린 손자에게 혹시 공감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피아노를 칠 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할아버지 지금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아무거나 눈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재촉하자 그 애는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손자는 공감각이 없는가 보다.
공감각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는 일반인들 에게도 그리 낮 설지 않다. 피아노 선율에 따라 어떤 시각적 영상이 보인다거나, 숫자나 문자가 일반인들이 보는 시각과 달리 특정한 색을 띠는 등, 하나의 실체에 두 가지 감각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람에게 공감각이 있다고 말한다.
“공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세상을 전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한다. 단어에서 맛이 느껴진다거나 이름에서 색깔을 본다거나 숫자가 공간 속을 미끄러지듯 날아다닌다. 공감각의 정의에는 대부분 정상적이라고 기대하는 감각에 ‘추가’ 감각이 덧붙여진다는 점이 강조된다.”<본문>
공감각은 유형도 다양하지만, 감각 자체가 주는 특별한 느낌은 당사자 고유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는 당사자 스스로만 안다. 시각과 지각을 구분하여 실제로 경험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느낌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전 인구의 약 1~ 2퍼센트인 공감각자들이 있음에도 누가 공감 각자인지 모를 수도 있고 또 자신도 자신이 실제로 공감각 자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는 제게 공감각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대 중반쯤에 부모님과 숫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죠.”<본문>
공감각은 어떤 면에서는 일반인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다중 감각’에 근거하지만 공감각만의 특별한 속성은 다중감각과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주로 유전적이며, 후천적으로 신체의 어떤 부위에 대한 감각상실(시각장애 등) 또는 일시적 현상으로 약물을 복용한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은 기분이 좋으면 더 잘 나타나고, 무시하면 공감각이 약화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더 강화된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이 감각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감각으로 지내는 것이 어쩌면 불편할 수 있다는 편견도 있지만, 그들은 그런 감각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유리한 측면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공감각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에서도 나타난다. 즉, 공감각은 어떤 특정한 분야에 천재적 소질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글자에 대한 특정 색이 보이는 공감각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공감각자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영국 서식스 대학교 인지 신경학 교수이며 공감각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이 책은 공감각에 대한 그간의 연구 자료들이 총 망라된 것으로 유아의 발달과정에서 뇌 신경회로의 가소성, 뇌가 숫자나 길이 또 높낮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든지 감각이 공간적 위치를 자각하는 고유수용성 감각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공감각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게 되면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텔레비전에서 시각으로만 보는 음식에서 냄새가 나고 맛을 느끼는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본문>
“자신이 특정 소리, 단어 , 개념에서 주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색을 본다는 사실을 기술했다. 알파벳을 보면 A와 E는 둘 다 빨간색, I, M, N은 하얀색, D는 노란색,S는 짙은 파란색 등으로 나타났다. 숫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감각은 유전으로 대물림된다. 따라서 공감각의 자녀들도 공감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녀는 자신의 이름을 다른 색과 연관 지을 가능성이 크다.”
“아동기가 지날 때까지는 가족들끼리 서로의 공감각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감각자가 한 가지 유형 이상의 공감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공감각이 공통의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공감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여러 개일지도 모른다. 가족마다 서로 다른 공감각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열 개의 공감각 유전자가 있는데 그 중 몇 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공감각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글자에서 색깔을 보았다.”
“감각은 무언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느낌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빨간색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이다. 반면 지각이란 현재 느껴지는 감각을 기존의 모든 감각과 비교할 때 생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토마토의 지각에는 단순히 빨갛고 둥근 물체를 감각하는 것 이상의 과정이 관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토마토를 보았던 기존의 경험과 비교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신생아에게는 감각은 있지만 지각은 없다. ”
“발달과정에서 아기는 서로 다른 입력에 각각 다른 감각을 할당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것에 부분적으로만 성공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어서도 감각들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유아시절에 경험했던 공감각의 잔재가 남는다.”
“유아는 시각적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촉각으로 느낀 모양과 눈으로 보는 모양을 연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감각적 지식들 간의 뒤섞임이 로크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활기차고 부산할지 모르나, 완전한 혼란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모든 개별 감각은(혹은 부분적으로 개별적인 감각들은) 통합되었던 초기의 단일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어떤 유전적 영향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감각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을 상실하도록 미리 프로그래밍 된 채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신생아에게서 보이는 정도의 감각 연결 능력을 잃어버린다.”
“다른 조의 뇌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를 보면 생의 초기에 뇌의 청각 영역과 시각 영역이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은 발달 초기과정에서 상당히 감소한다.”
“음이 높아지면서 피아노 소리가 짙은 갈색에서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무척 좋아한다. 고음이 빠르게 연속적으로 연주되면 마치 별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르페지오 연주 부분으로 접어들면 인쇄된 패턴이 내 눈앞에서 슬슬 풀려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아주 관능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엄격히 말하면 공감각의 모든 유형이 다중감각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글자나 숫자에서 색이 보이는 것은 시각-시각적이다. 하지만 시각의 서로 다른 측면들이 엮이고 있다(모양과 색). 따라서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연결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이 사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심지어 색을 띠는 글자와 숫자의 경우에도 진정한 다중 감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말로 듣는 글자나 촉각으로 느낀 글자도 눈으로 보는 글자와 똑같은 색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또 다른 감각인 고유수용성감각이 그 색의 공간적 위치를 지각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 |
첫댓글 공감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든 가지지 못한 사람이든, 상호간 배려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