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
제 개인적으로는 오늘 복음을 대하자면 주님 품으로 가신 박석희 이냐시오 주교님이 생각납니다.
오늘 복음 중에 12장 25절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한때 교구청에서 청소년 담당으로 근무했었습니다. 교구청에서는 매일 새벽에 미사를 봉헌합니다. 주교님을 위시하여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가끔은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이 함께 하시지요. 새벽미사 주례는 교구청 신부님들 각자가 정해진 날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주례를 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당번이어서 주례를 했는데, 그날 복음이 루카복음에 나오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미사의 강론을 준비하는데 뜬금없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즉,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서 이순신 장군이란 분을 전면에 내세워서 국가에 충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했던지라 자연스럽게 그분의 어록이 제 머리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강론을 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았을까요?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 왜 이순신 장군이 떠오를까요…” 하고 강론을 시작했었죠. 미사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는데 박주교님께서 “이순신 장군이 예수님을 알았을까?” 하시며 막 웃으셨습니다. 그날 아침식사 식탁의 이야기 거리는 단연 ‘예수님과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라는 말씀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는 말씀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우리는 경험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주님의 역설적인 이 말씀을 듣자면 정말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자분들과 함께 자리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냥 신앙생활이랍시고 할 때는 몰랐는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제대로 해보려고 하니까 힘들다고들 하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나름대로 성경공부도 하고, 신앙강의도 듣고, 피정도 하며 여러 단체 활동을 통해 봉사를 하다 보니 신앙인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잘못 살아온 것 같고 부족한 자신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신자로서 열심히 살려고 해보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신앙생활이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어려움을 느끼는 분은 오히려 깊이 있는 신앙생활에 들어선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머리나 입만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편한 대로 생각하고 자기 편한 대로 믿고, 실제 행동은 없고 입으로만 고백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생활 따로 신앙생활 따로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머리로는 신앙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가슴으로는 깊이 새기고, 입으로는 고백하고, 몸으로는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머리로만 하던 신앙생활에서 신앙생활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며 인간적 갈등을 갖게 되고 힘들어하게 되는 것은 신앙인이면 거쳐가야 할 과정일 것입니다.
밀알이 썩어 싹을 틔우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낮추고 썩어지지 않으면 신앙인으로서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싹은 죽고 썩은 것을 거름삼아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이것은 진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을 어리석다고 여깁니다. 지금 그대로 남기를 원합니다. 이래서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의 근원은 주님이시며, 삶의 모습은 그분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주님 말씀대로 사랑에 입각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기에 고민과 갈등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왕 주님의 길을 따라 걷고자 했으니 철저히 주님의 삶을 따라 사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함창 본당 신기룡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