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11월18일(日)晴
▲금성산(金成山)(수정리-정상-봉수대-비봉산갈림길-수정사-수정리)*사진8컷
해봉산악회(44명)

♠참 고
▲금성산(金成山)---의성군 홈피에서
♠소재지 :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금성산은 의성의 명산으로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해발 531m의 국내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이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召文国)
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 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있으며 해발 671m의 비봉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산행 코스
11:43=수정리 산행들머리
11:53=금학성터
12:27=정상 헬기장
12:55=점심식사
13:25=영니산 봉수대
14:12=비봉산 갈림길 잘록이
14:30=수정사
15:07=산행들머리
15:25=수정리
총 3시간45분
☞☞☞범일지하철역에서 하차하여 시민회관 앞으로 가는 길에 오 회원 부부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당도하니 그동안 바쁜 사업관계로 모처럼 나왔다는
조 사장님 내외분, 자녀 수능시험 뒷바라지로 한동안 뜸했든 박 회원 등,
만원이 되어 정시에 출발한다.
경부고속도로에 오르자 정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산행할 금성산이 사화산이라며
안내방송 한다.
양산 시외버스 정유소에서 이태근 대장외 2명이 승차하여 집행부 2명은 통로에 앉아
'지리산 종주, 설악산 가리봉, 강천산'산행 비디오를 시청하며 달리다 언양휴게소에
들리고 서대구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10시10분, 유학산을 마주보고 앉은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들린다. 탱크와 전투기등을
전시하고 탱크형의 전시관안의 따발총등 북한군의 노획무기등을 둘러보고 지나간
아픈 상처를 회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10시30분, 의성으로 출발한다.
11시15분, 영천이씨 집성촌이라는 수정리 골목길로 들어서 곡예운전하며 가다
칠순 잔치하는 마을회관 앞을 거쳐 산행들머리 '金鶴城址'라고 음각한 석비가
서있는 입구에 도착한 게 11시35분.
일부회원들이 들머리의 주인 없는 감나무에서 홍씨를 따먹다 상견례를 하고
11시43분, 좀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출발한다.
하얀 머리 장년 회원이 답사 산행을 겸했는지 얼마 오르지 않아
해병 마크가 붙은 노란 '천자봉' 시그널을 나뭇가지에 매단다.
![]()
(의성산악회)
11시53분, 좌로 금학성지를 끼고 올라가다 오른편으로 비봉산 자락과 그 아래의
수정사를 캠코더에 담으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비탈진 소나무 숲과 암괴사이의 밧줄을 거쳐
12시05분, 노란바탕의 작은 이정표(금학산성-관측대)지나 바위사이로 오르고
잠시 집단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완만한 흙길의 오름을 거쳐 두 번째 두 가닥 밧줄 길에서 다시 힘을 쓴다.
완만한 흙길에 올라서니 뜻밖에 가족등산객들을 만나는데 꼬마들이 보여
“안녕!”
하고 캠코더에 담으며 인사하니 쑥스러워서인가 웃기만 한다.
12시27분, 펑퍼짐한 헬기장인 정상이다.
![]()
캠코더와 캐넌으로 건너편의 비봉산과 평지 같은 주변을 촬영한다.
이산은 백악기의 화산 폭발 흔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약 7,100만 년 전에
분출한 분화구가 함몰하면서 생긴 칼데라의 밑둥치 부분이 미처 다 깎여나가지
않아, 당시 흘러내린 용암과 화산재로 만들어진 화산암도 표면에 드러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었던 관계로 정상에 1천여평의평지가 있고 여기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인근 지역은 3년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이어져, 가뭄이 지속되면 주민들이 산 정상으로 올라가 몰래 조성한 무덤을 파헤친
곳이 지금도 곳곳에 큰 웅덩이로 남아 있다고 한다.
지리지에 말하기를 동방에 삼태오악(三台五악)이라 하였는데 오명산(五名山)은
동방에 금강산, 서쪽에 묘향산, 남쪽에 지리산, 북쪽에 백두산, 중앙에 삼각산을.
삼태란 우리나라 중추(中枢)가 되는 삼화산(三火山)을 가리킨다.
즉 북에 백두산, 남에 한라산, 중앙에 천진산, 금성산(金城山)의 본명이
천진산(天辰山)이다.
이 산은 보는 위치와 시각에 따라 천변만화의 얼굴을 띤다고 한다.
남쪽에서 보면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비봉산의 봉황과 함께 나란히 날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요,
서쪽의 탑리에서 보면 노적봉의 형상 바로 그 자체이며,
서북쪽 초전리에서 보면 타는 가마의 생김새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의성현내 봉수지에 의하면 영니산(盈尼山)봉수대로 기술하고 있어 한때는
영니산으로도 불러졌다고 한다.
20여m의 오른편으로 정상 석비(金城山 530m)는 그냥 운반하여 세워놓았는지
![]()
흔들리고 잠시 이 대장과 교대로 기념촬영만 하고 하늘색 바탕의 ‘釜山日報’시그널을
바라보며
12시33분, 오른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좌우 소나무 능선 길을 따라 촬영하며 이동한다.
이 대장에게 파헤쳐진 무덤의 위치를 물으니 정상의 왼편에 있다고 한다.
좌측은 급경사, 오른편은 완경사인데 좌우 소나무가 울창하여 제대로 조망이 안대고
오른편으로는 짧지만 여러 형태의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그 중에 흔들바위 등이 있을 법 한데 아무른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오래 동안 쌓인 낙엽이 썩어서인가 밟고 가는 길의 쿠션이 너무 좋다.
뒤따라오는 부녀회원들이 대화를 나눈다.
"올라올 때는 힘들었는데 이제 살 것 같다."
"폭신폭신한 길이 너무 좋다!"
12시55분, 평지 같은 낙엽위에서 회원들 간에 정을 나누며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
준비해간 아버지 기제사 때 올린 시루떡으로 요기를 하고
13시17분, 촬영을 위해 먼저 내리막길로 출발한다.
![]()
(의성산악회)
13시24분, 오른편으로 너덜이 보이는 곳에 흰 말뚝이 서있는데 검은 글씨로
‘영니산 봉수대유지’라고, 뒤쪽에는 의성문화원이라고 써있다.
봉화대 터로 표시해 놓은 모양인데 관리가 너무 허술하여 너덜 돌무더기로만 보인다.
완만한 숲 속 내리막 끝에
13시31분, 잘록이에 내려서는데 조 사장을 비롯한 10여명의 회원이 오른편으로
내려간다.
나머지 회원들은 직진하여 짧지만 바윗길과 무명봉을 넘어 다시 오르는데
뒤따라오든 '칠보산'산행시에 동반 했든 장년 배회원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버스 안에서 본 비디오, 화면도 좋았지만 배경음악이 분위기에 맞아 너무 좋았습니다."
라는 소리에 새삼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13시42분, 턱에 올라 다시 내리막을 탄다.
13시48분, 오른편으로 시계가 트이면서 비봉산 암봉과 그 산자락이 보이고
숲 속 된비알을 주변의 나무를 잡으며 내려간다.
![]()
(의성산악회)
14시10분, 갈림길 잘록이 방향 표지판(금성산-수정사-비봉산)앞에 내려선다.
몇몇 회원들이 멈추어 서있고
이 대장남이 통제를 하며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쉽지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여기서 하산합니다."
단풍은 별로이지만 노란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계곡길이 회원들을 상념에 젖게 하고
바삭 바삭 낙엽 밟는 소리는 회원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14시30분, 신라 신문왕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퇴락하고 있는 수정사(水淨寺)에 도착.
찾아오는 불도들이 적어서인가 너덧 채의 요사는 텅텅 비어있는데 그중의 좌측
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큼직한 모서리 기둥이 시선을 끈다.
몇몇 회원들은 대광전(大光殿)에 들려 재배, 삼배를 올리고 석축대신 돌무더기로
쌓은 축대, 그 한가운데 한사람이 겨우 오르내리는 자연석 돌계단이 특이하다.
맞은편은 우리들이 거쳐 온 능선이 가로막고 앉았는데 답답한 느낌은 나만 일까.
뒤편에 앉은 거대한 범종은 한때 번창했음을 그 덩치로 말해주고 있다.
이어지는 하산코스,
콘크리트 포장길은 오른편으로 금성산의 진면목을 보여주어
![]()
치마바위, 겹치마바위, 로 이어지고 능선위로 날아가는 여객기가 캠코더와 캐넌을
바쁘게 한다.
![]()
우측으로 저수지와 좌측으로 시그널이 매달려있는 비봉산 하산 날 들머리를 담으며
내려간다.
15시05분, ‘金鶴城址’석비가 앉아있는 산행 들머리에 당도하고
계속 내려가다 좌측 개울건너편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감을 따는 회원들을 담고
그 중의 배 회원이 감 세 개가 달린 가지를 기념으로 갖으라며 건네준다.
15시25분, "김기수님의 칠순을 축하드립니다. 2001.11.18."라고 쓴
현수막이 걸린 수정리 회관 앞 도착.
하산하면 대접하겠다든 시골인심의 잔치 집은 이미 파장.
15시40분, 빙계온천으로 출발한다.
15시55분, 산비탈에 자리 잡은 빙계온천(氷溪)도착.
단체할인 3500원으로 온탕, 열탕, 각종 찜질방과 대나무 울타리를 쳐 놓은 노천탕으로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따끈한 어묵탕과 짜릿한 소주잔으로
산행뒤풀이.
17시30분, 붉게 물드는 서산노을 바라보며 부산으로 출발한다.
산행 중에 느낀 몇 가지 문제점을 의성군에 쓴소리와 조언하기로 작심하며
19시58분, 영천나들목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로 달리다 배기사가 동료기사와 통화,
언양I/C에서 국도로 빠지더니 오히려 정체를 찾아들었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고속도로는 원활 소통하여 양산나들목에서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21시30분, 부산T/G를 무사히 통과, 우리들의 삶의 터전, 둥지를 찾아간다.
♠의성군청 홈피의 ‘의성군에 바란다.’에 들어가 고정이 안 된 정상비와 지명유래등의
문의와 쓴소리에 아래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금성산 정상은 화산분출로 인하여 고운 흙으로 되어 있어 정상비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성산은 작지만 산세가 험하여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기가 어려운 실정이지만 검토토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용문 : 금성면 수정리를 지나 용문정 뒤 등산로를 따라 10분정도 올라가면
금성산성터(석성)가 나오며 석성에서 100미터 윗쪽에서 우측 계곡으로 들어가시면
금성산에서 가장 절경이라 할 수 있는 일명 "용가매골(용문)"이 나옵니다.
용문 아래는 옛 조문국의 2궁중 하나인 궁궐터가 있으며 지금도 기왓장 등 흔적이
있습니다.
▲무덤터 : 금성산 정상은 화산이 분출하였던 곳으로 넓은 정상이 모두 주민들이
몰래 무덤을 썼다가 파내어지곤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정상부분 지면이 고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흔들바위 : 금성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200미터 정도 지나면 바위위에 사각형으로
된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흔들면 움직인다고 흔들바위라 합니다.
▲베틀바위, 아들딸바위 : 등산로 출발지에서 수정사 방향으로 올라가시면 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용문지)에서 400미터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시면 길옆에 베틀바위가
나오고, 다시 100미터정도 올라가시면 길옆에 아들딸바위가 있습니다.
▲솟대바위 : 솟대바위는 비봉산 정상(헐기장)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솟대바위로 불리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조문전망암 : 금성산 정상에서 금성면 소재지 방향으로 내려다보이는 절벽으로
되어 있는 바위가 조문전망암이라 하며
▲노적봉 : 아들딸바위를 지나 수정사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좌측 골짜기가 있고
정면에 보이는 바위로 아루어진 봉우리가 노적봉이라 하며 계곡안쪽에는 조문국의
2궁중 하나인 궁궐터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동굴 : 금성산은 70년대 금광개발로 인하여 많은 동굴들이 생겨났으며 곳곳에
십여개의 동굴이 있지만 찾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현재 금성산은 규모는 작지만 화산의 분출로 인하여 산세가 험하여 위에서 설명
드린 몇개소는 표지판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등산객들이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산길이라 설명과는 다소 차이가
시간과 거리 등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