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3,1-9; 로마 8,31ㄴ-39; 루카 9,23-26
+ 찬미 예수님
몇 년 전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을 다룬 ‘암살’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고요, 이듬해에는 ‘밀정’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혹시 보셨어요? 영화 ‘암살’은 TV에서도 자주 나왔던 것 같아요.
저는 동창 신부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보았는데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더라면 독립운동을 했을까? 설마 친일파는 안되었을 거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서 고문당하고 죽었을까, 아니면 마음으로는 독립운동하고 싶지만, 겉으로는 침묵했던 다수에 속했을까?”
저는 이렇게 말했는데요,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묻지 말고, ‘독립투사들이 이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무엇을 하셨을까’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가끔 나눕니다. 내가 박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과연 순교할 수 있었을까? 배교했을까? 아니면 관가에 가서 배교하겠다고 말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주님 죄송합니다’라고 몰래 울면서 기도하고 자책했을까?
지난주에 앵베르 주교님 편지를 읽어드렸는데요, ‘배가 고파 많이 힘들다’시면서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정오가 되어서야 거칠고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딱 한 끼의 식사를 하신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에 전국적으로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무척 귀했는데, 천주교 신자를 고발하면 나라에서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얻으려 이웃을 천주교 신자라 고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앵베르 주교님 역시 배교자의 밀고로 붙잡히셨습니다.
당시 기록인 기해일기에 따르면 참수되어 순교한 사람이 54명, 고문으로 병들어 죽은 사람이 60여 명 있었고, 배교했다가 철회하고 순교한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배교하여 석방되었던 사람도 40~50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중 어디에 속했을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질문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순교자들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어떻게 사셨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답이 나올 테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에서 ‘버린다’(arneomai)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할 것인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인지 날마다 결단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대 꽃꽂이에 해바라기가 있는데요, 해바라기는 항상 해를 향하기 때문에 해바라기라는 말도 있고, 영어로는 sunflower라 하는데, 태양을 닮은 꽃이라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순교자를 잘 형상화하는 것 같은데요, 순교자들은 항상 주님을 향해 당신들의 마음을 두셨고, 삶과 죽음으로 실제로도 주님을 닮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우리가 순교자들의 대표로 기억하는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며 다산 정약용 선생과 자산어보를 쓰신 정약전 선생의 조카이십니다. 정하상 성인은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앵베르 주교님께 신학을 배우던 신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앵베르 주교님과 마찬가지로 기해박해 때인 1839년에 체포되어, 앵베르 주교님과 모방, 샤스탕 신부님이 순교하신 바로 다음 날인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마흔넷의 나이로 순교하십니다. 두 달 뒤에는 어머니 유소사 세실리아도 감옥에서 돌아가시고, 그다음 달에는 누이동생인 정정혜 엘리사벳도 순교하십니다.
정하상 성인은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글을 작성해 두었다가 체포된 뒤 종사관을 통하여 천주교를 박해하던 우의정 이지연에게 글을 올립니다. 재상에게 올린 글이라 하여 ‘상재상서’라 부르는 이 글에서 정하상 성인께서 원하시는 세상이 어떠한 세상이었는지 드러납니다.
성인은 ‘우리 모두 순교하여 천국에 갈 것’이라고 외치신 것이 아니라, 천주교 박해를 멈추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줄 것을 정중하고 단호한 어조로 애절하게 요청하십니다.
“수명을 감하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교의 참됨을 증거하고 천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이오니, 감히 말해야 할 이 시각을 만나 한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도 입을 다물고 죽어 버린다면 산같이 쌓인 회한을 장차 백 대 후세에 이르기까지 폭로할 길 없기에,
엎드려 청하오니, 지금 한 번 밝은 빛으로 굽어보시고,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올바른지 그릇된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정부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바른길로 돌아와,
금명을 풀고 체포하는 법을 거두며,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고 온 백성이 모두 제 고향에 돌아가 제 직업을 즐기면서 함께 평화를 누리게 해주시기를 천번 만번 바라고 또 바라나이다.”
정하상 성인이 바라던 종교의 자유는 성인께서 순교하신 47년 뒤 이 땅에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성인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정하상 성인께서 이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노은동 성당에,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앉아 계시다면, 정하상 성인은 오늘을 어떻게 사셨을까요? 무엇을 하셨을까요? 그것이 우리의 질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살면서 이런 신념을 가지기도 힘든데
귀한 뜻이 오늘 저에게도 전해 집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