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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요한복음 19:25–27 (참조: 누가복음 2:34–35, 마태복음 12:46–50, 마가복음 3:31–35, 시편 22:14–18, 요한일서 3:16)
핵심 명제: 골고다 십자가 사형대 아래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서 있었던(헤이스테케이산) 마리아의 자리는 33년 전 시므온이 예고했던 심장을 관통하는 양날의 대검(롬파이아)을 육체적 모성으로 받아낸 구속사적 수난 동참의 극치이며, 숨을 거두기 직전 예수께서 선포하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와 “보라 네 어머니라(이데 헤 메테르 수)”는 육신의 혈통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보혈로 결속되는 종말론적 새 언약 공동체, 곧 ‘새 가족(참된 교회)’의 거룩한 출산을 확증한다.
1. 서론: 피비린내 나는 해골의 언덕과 십자가 곁의 여인들
요한복음 19장은 온 인류의 죄악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의 절정,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 언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헤이스테케이산 데 파라 토 스타우로 투 이에수 헤 메테르 아우투)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이에ሱስ 운 이돈 텐 메테라 카이 톤 마데텐 파레스토타 혼 에가파)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레게이 테 메트리, 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에이타 레게이 토 마데테, 이데 헤 메테르 수)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5–27)
“헤이스테케이산데파라토스타우로투이에수헤메테르아우투!”
“그리고예수의십자가바로곁에는(파라토스타우로),그분의어머니(헤메테르아우투)가굳건히서있었더라!”
정오부터 시작된 기이한 어둠이 온 땅을 덮쳤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거친 욕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서슬 퍼런 조롱,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의 신음,
그리고 살점이 찢겨 뼈가 드러난 채 여섯 시간 동안 사형틀에 매달려 온몸의 물과 피를 쏟아내시던 아들 예수 그리스도.
3년 동안 주님을 따르며 "죽는 데까지 함께 가겠노라" 호언장담했던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열한 제자는,
자신들도 체포되어 처형당할까 두려워 쥐새끼처럼 어둠 속으로 도망쳐 숨어버렸습니다(막 14:50).
그러나 그 피비린내 나는 공포와 수치, 광기의 사형대 바로 아래,
십자가의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그 사형틀의 발치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서 있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33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강보로 꽁꽁 싸매었던 여인,
어머니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앞에서, 자신이 젖을 먹여 키웠던 거룩한 아들이
벌거벗겨진 채 굵은 쇠못에 박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33년 전 성전에서 백발의 노선지자 시므온이 예언했던 그 묵시: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카이 수 데 아우테스 텐 프쉬켄 디엘레우세타이 롬파이아, 눅 2:35, 6강)!"
그 시퍼런 전쟁의 대검(롬파이아)이, 마침내 어머니 마리아의 심장을 정면으로 관통하여 두 동강을 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제9강은 도망친 남성 제자들과 대조되는 마리아의 거룩한 버팀(헤이스테케이산),
공생애 기간 동안 겪어야 했던 가족들의 불신과 오해의 십자가,
피에타(Pietà)의 현장에서 마리아의 영혼을 꿰뚫은 칼날의 실체,
가나 혼인 잔치(8강)에 이어 다시 선포된 호칭 귀나이(γύναι, 여자여)의 기독론적 완성,
육적 혈연을 깨뜨리고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의 교회 공동체(이데 헤 메테르 수),
그리고 어머니의 육신적 노후까지 책임지시며 율법의 효를 완성하신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을 심층 해부합니다.
2. 공생애의 내면적 고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십자가 아래 선 마리아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마리아와 그 가족들이 통과해야 했던 깊은 영적 갈등과 소외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미쳤다는 소문과 가족들의 출동 (막 3:20–21)
예수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군중을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시자, 나사렛 동네에는 "예수가 귀신 들려 미쳤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의 기록:"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호티 엑세스테)."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은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예수가 성난 군중이나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될까 두려워, 예수를 강제로 나사렛으로 끌고 가 감금하려 했습니다.
(2) 육신의 탯줄을 끊어내시는 주님의 선언 (마 12:46–50)
마리아와 동생들이 집 밖에서 예수를 부를 때,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는 가슴이 찢어지는 선을 그으셨습니다:"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이두 헤 메테르 무 카이 호이 아델포이 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호스티스 가르 안 포이에세 토 델레마 투 파트로스 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2:48–50)
마리아는 이 말씀 앞에서 깊은 실족의 위기를 겪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잉태하고 어떻게 키웠는데, 사람들 앞에서 나를 향해 '누가 내 어머니냐' 부인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아들의 매몰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로 하여금, ‘육신적 혈연관계’라는 좁은 울타리를 부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적 가족’의 차원으로 도약하도록 이끄시는 영적 해체의 수술을 감행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뼈아픈 거절과 낮아짐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참된 십자가의 어머니로 빚어져 갔습니다.
3. 핵심 원어 발음 강해: 헤이스테케이산 파라 토 스타우로 (십자가 곁에 서 있고)
요한복음 19장 25절은 십자가 아래 서 있던 여인들의 모습을 단 하나의 헬라어 동사로 장엄하게 압축합니다:
“헤이스테케이산데파라토스타우로투이에수헤메테르아우투!”
(1) 히스테미(ἵστημι)의 과거완료 시제: 헤이스테케이산(εἱστήκεισαν)
히스테미: 흔들리지 않고 두 발을 땅에 굳게 디딘 채 똑바로 서 있는 상태(To stand firm).
과거완료(Pluperfect) 시제: 단순히 잠깐 스쳐 지나가며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십자가의 끔찍한 처형이 진행되는 그 긴 시간 동안,
도망치거나 주저앉지 않고,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사형틀 바로 곁에 붙박여 굳건히 서 있었다(They had been standing and remained standing)!"는 뜻입니다.
도망친 제자들과 십자가 아래 선 여인들의 대조 매트릭스
| 비교 항목 | 열한 사도 (수제자 베드로와 제자들) | 십자가 아래의 여인들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 |
| 사회적 신분 | 칼을 차고 호언장담하던 건장한 남성들 | 법정의 증인 자격도 없던 연약한 여성들 |
| 위기 앞의 태도 | 체포될까 두려워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침 (막 14:50) | 로마 군병들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끝까지 곁을 지킴 |
| 물리적 위치 | 대제사장의 뜰 바깥, 먼발치, 혹은 숨은 다락방 | 십자가의 피가 튀는 사형틀 바로 발치 (파라 토 스타우로) |
| 행동의 양식 | 세 번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함 (마 26:74) | 피눈물을 흘리며 침묵 속에 끝까지 서 있음 (헤이스테케이산) |
군병들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며 낄낄거리고 있었습니다(요 19:23–24).
언제 폭동 진압의 칼날이 날아들지 모르는 살벌한 처형장 한복판.
남성 제자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으나,
어머니 마리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겪는 수치와 고통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아들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리는 십자가 곁에 온몸으로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4. 피에타(Pietà): 마리아의 심장을 관통한 대검(롬파이아)
어머니 마리아가 올려다본 십자가의 광경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지옥의 극치였습니다.
시편 22편 14–15절의 메시아적 수난 예언이 눈앞에서 생지옥으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히트파레두 콜-아츠모타이)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우-레쇼니 무드바크 말코하이)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아들의 머리에서는 가시관에 찔린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눈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채찍질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등가죽은 거친 십자가 나무 기둥에 쓸릴 때마다 생살이 뜯겨 나갔습니다.
숨을 들이쉬기 위해 발에 박힌 대못을 딛고 몸을 밀어 올릴 때마다,
신경이 찢어지는 극심한 격통에 아들의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그 아들과 눈이 마주친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
차라리 내가 저 십자가에 대신 매달려 죽기를 소원했을 어머니의 영혼 속으로,
33년 전 시므온이 예언했던 그 거대한 전쟁의 대검,
‘롬파이아(ῥομφαία, 눅 2:35)’가 사정없이 파고들어 왔습니다.
마리아의 창자는 끊어졌고, 그녀의 가슴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조각상 '피에타(Pietà — 자비, 연민, 경건)'는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마리아는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아들의 대속의 제사를 온몸으로 지켜보며
묵묵히 그 고난의 쓴잔을 함께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5. 핵심 원어 발음 강해: 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십자가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시던 예수님께서,
마침내 고개를 떨구어 사형틀 발치에 서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 요한을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리고 터져 나온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세 번째 말씀: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레게이 테 메트리, 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에이타 레게이 토 마데테, 이데 헤 메테르 수)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귀나이,이데호휘오스수!”
“여자여(귀나이)!보소서,당신의아들이니이다(이데호휘오스수)!”
'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에 담긴 3대 구속사적 의미
[ 1. 창세기 3:15의 종말론적 호칭: 귀나이 ] ──> 가나 혼인 잔치(요 2:4)의 "여자여"의 완전한 성취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를
'구속사의 언약적 여인(Woman of the Covenant)'으로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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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육체적 모자 관계의 영원한 해체 ] ───────>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육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는 온 인류와 어머니 당신을 구원할 창조주 하나님이자
대속의 어린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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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데 호 휘오스 수 (사도 요한을 가리킴) ] ──> "어머니, 십자가에 달린 나를 보지 마시고,
어머니 곁에 서 있는 제자 요한을 보소서.
이제 저 요한이 어머니의 새로운 아들입니다!"
(1) 다시 선포된 호칭: 귀나이 (γύναι, 여자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 8강)"라고 말씀하셨던 주님.
이제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셨던 ‘그 때(헤 호라)’, 곧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수난의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가 아닌 '귀나이(여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결코 불효나 냉정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온 인류의 죗값을 치르시는 공적인 대속주(Redeemer)로서 매달려 계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고 사사로운 육정의 눈물을 흘리셨다면,
그분의 구속 사역은 한 어머니를 둔 착한 아들의 비극적 죽음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여! 이제 나를 당신의 품 안의 아들로 보지 마십시오.
당신의 영혼을 죗값에서 구원할 당신의 하나님,
당신의 영원한 구원자(소테르, 눅 1:47)로 나를 바라보십시오!"*
6. 핵심 원어 발음 강해: 이데 헤 메테르 수 (보라 네 어머니라) — 새 가족의 탄생
예수님의 시선은 어머니에게서 곁에 서 있던 청년 사도 요한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에이타레게이토마데테,이데헤메테르수!”
“그리고그제자에게말씀하시기를,‘보라!이제부터이분이네어머니시니라(이데헤메테르수)!’”
(1) 제5계명의 완전한 성취 (십자가 위의 효도)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 극심한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도,
남편 요셉을 먼저 여의고 홀로 남아 늙어갈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노후를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율법의 도덕적 요구를 100%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의 봉양을 위탁하셨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아프 에케이네스 테스 호라스 엘라벤 호 마데테스 아우텐 에이스 타 이디아, 27절b)."
(2) 피로 맺어진 새로운 영적 가족: 교회의 탄생
왜 예수님은 친동생들(야고보, 유다 등)이 아직 살아있는데도 그들에게 마리아를 맡기지 않고,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위탁하셨습니까?
당시 예수의 육신의 친동생들은 아직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고 불신앙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요 7:5).
십자가 복음의 거대한 혁명:
하나님 나라의 참된 가족은 육신의 혈통이나 유전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갈보리 십자가에서 쏟아부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새롭게 탄생합니다.
십자가 아래서 마리아와 요한은 단순한 양어머니와 양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피로 묶인 ‘신약의 새 언약 공동체, 참된 영적 가족인 교회의 첫 열매’로 결속된 것입니다!
7. 구속사적 절정: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끊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십자가 아래 선 마리아의 눈물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슬픔과 고난을 당신의 온몸으로 받아내사 온 인류를 영원한 위로와 구원의 반석 위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목도하는 거룩한 성소로 해설합니다.
이사야 53장 3–5절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를 보십시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마리아의 고통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수난 대조
| 구분 | 십자가 아래 선 어머니 마리아 (요 19장) | 십자가에 매달리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고난의 성격 |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육체적·모성적 단장의 고통 |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신 영혼과 육체의 대속적 형벌 |
| 칼날의 정체 | 시므온이 예언한 영혼을 찌르는 칼 (롬파이아) |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의 진노가 쏟아진 심판의 불칼 |
| 희생의 의미 | 메시아의 수난에 영적으로 동참함 (컴패션) | 죄인을 대신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속죄 제물로 바치심 |
| 말씀의 능력 | 침묵 속에 고통을 삼키며 십자가 곁에 서 있음 |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포하심 |
| 최종 승리 | 십자가 너머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예배자가 됨 |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사 교회의 머리가 되심 |
마리아의 심장은 십자가 아래서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옥의 모든 화염과 진노를 당신의 온몸으로 받아내신 분은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마저 외면당하시는 절대적 유기의 흑암을 맛보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당해야 할 영원한 버림받음을 대신 겪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잊지 않으셨고,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성도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피를 쏟아부으셨기에,
오늘 고독하고 상처 입은 저와 여러분은
영원히 고아처럼 버려지지 않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영원한 사랑을 나누는 ‘새 언약의 가족, 하나님의 교회’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수치와 조롱의 현장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서는 '히스테미의 영성'을 회복하라
고난이 닥치고 손해가 찾아올 때, 당신은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는 비겁자입니까?
아니면 마리아처럼 십자가 곁에 묵묵히 서 있는 사람입니까?
교회가 조롱을 당하고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어두운 시대입니다.
도망치지 마십시오!
마리아의 발걸음을 배우십시오:
"헤이스테케이산 데 파라 토 스타우로(십자가 곁에 서 있었더라)!"
사람들이 침을 뱉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발치에 두 발을 굳게 딛고 버텨 서십시오.
영광의 자리뿐만 아니라 수치와 고난의 자리에서도 주님 곁을 지키는 그 사람을,
주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신실한 증인으로 영원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2) 피눈물 나는 슬픔 속에서도 주님의 눈을 바라보며 '영적 피에타'의 예배를 드리라
자녀가 무너지고, 평생 쌓아 올린 꿈이 십자가처럼 산산조각 나는 아픔을 겪고 계십니까?
심장이 찢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롬파이아) 속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내게 이런 비극을 주십니까"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마리아를 바라보십시오.
그녀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 위의 주님을 끝까지 응시했습니다.
그것은 절망의 비명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번제단에 올려놓는 ‘가장 처절하고 거룩한 영적 피에타의 예배’였습니다.
당신의 찢겨진 심장을 주님께 올려드리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눈물을 아시며,
그 십자가의 찢김을 통과한 영혼에게 부활의 찬란한 새 생명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3) 혈통과 기득권을 넘어 피로 맺어진 '새 언약의 가족(교회)'을 서로 품어 안으라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며 마리아와 요한을 묶어주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교회는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동호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맺어진 거룩한 피의 가족입니다.
당신의 곁에 서 있는 연약한 성도를 둘러보십시오.
외롭고 상처 입은 지체, 고아와 과부처럼 신음하는 이웃을 향해
당신의 집 문을 열고 영적 가족으로 품어 안으십시오.
육신의 혈통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고 돌볼 때,
그곳에서 음부의 권세가 결코 흔들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9. 결론: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과 영원한 예배자를 향하여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포하시고 숨을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아들의 차디찬 시신을 수습하여 세마포로 싸서 바위 무덤에 둘 때,
어머니 마리아는 그 무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사흘 동안 깊은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새벽,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소식!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신 후,
감람산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 보좌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예루살렘의 한 어두컴컴한 이층 다락방, ‘마가 요한의 다락방’으로 무대가 바뀝니다.
그곳에는 부활의 주님을 목도한 열한 사도와 여인들,
그리고 과거 예수를 불신했던 예수의 친동생들(야고보, 유다 등)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120명의 무리 한복판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던 여인: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쉰 귀나익신 카이 마리아 테 메트리 투 이에수)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마리아는 더 이상 '예수의 어머니'라는 육신의 보좌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낳았던 아들이자 자신의 창조주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갈망하며
바닥에 엎드려 부르짖는 ‘한 사람의 겸손한 예배자요 제자’로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성령의 강림,
마리아 숭배의 신화를 깨뜨리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증언하는 참된 교회의 원형!
제10강(최종강): 마가 다락방의 기도와 영원한 유산 — 주의 어머니에서 어린양의 예배자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