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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20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한서노회
1. 평형을 뒤집어라
한때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집트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이라는 4대문명의 발상지 한가운데에서 둘 모두를 견제할 수 있는 대등한 힘을 자랑하는 나라였습니다. 그 주변에 있던, 시돈, 두로(페니키아), 암몬, 모압, 시리아 등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의 맹주가 아니었습니다. 아합왕 때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시리아는 물론이고 티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상류지역에서 성장한 앗시리아는 이스라엘을 넘어 이집트까지도 넘보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도 북쪽에서 강한 국가로 성장한 앗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넘어서려 했습니다.
이젠 이스라엘은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했습니다. 끊임없이 큰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겨우 생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력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위상은 몇 년전보다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면 경제 2위의 일본과 이젠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이 된 중국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중에서 정치·경제의 민주화가 가장 많이 늦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젠 더 이상 네 마리 용 중 하나가 아닙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시작한 경제성장이 세계최고의 선진국이 될 때까지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이 10위라고 해도 국민의식이나 기업의식, 정치제도 등의 성장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만 커진 아이처럼, 아니 몸만 비대해진 아이처럼 머리나 팔, 다리의 발육이 늦었던 것입니다.
2. 모순을 분석하라
IMF이후 기업별로 뼈를 깎아내는 아픔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정치에 있어서도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의 모든 부분을 고르게 성장시키려는 힘든 과정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경제에 미국보다 더한 영향을 주는 중국과 힘겨운 두뇌싸움 중입니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 중 하나로 6·25의 폐허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이 새로운 위기앞에 있는 것입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만들어 놓은 비정상적인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 새로운 실험은 이제 우리세대에게 당면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전엔 미국의 눈치만 보고 우방국이 되기만 하면 되었지만, 6자회담이 보여주듯,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 사이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고, 세계의 대한민국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때문에 요즈음만큼 주변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적은 없었습니다. 내달 열리는 미국 대선에 대해서 이번만큼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린 적은 없습니다. 왜냐면 미국이 어떤 정권이 서든 우리는 지지를 표하기면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후진타오가 최고 권력자가 되고, 중국군이 압록강 주변에서 어떻게 훈련을 하는지도 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합니다. 중국의 경제정책이 하나 바뀌어도 세계시장에게 주어지는 충격보다 우리나라에는 몇 배 강력한 충격이 주어집니다. 일본과는 끊임없이 과거사 논쟁을 하면서도 아직 경제적인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러시아도 옛 소련의 강력함은 아니지만 여전히 풍부한 자원과 군사력, 그리고 인구를 가지고 큰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있습니다. -푸틴이후 러시아가 유럽, 특히 독일과 정치, 경제적으로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진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신간들만 보아도 지금 우리의 현실이 보입니다. “후진타오 ... ”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후진타오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그의 성공전략,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책이 가장 큰 인터넷 서점에서 제일 위에 걸려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새로운 시리즈인 미국편도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10위안에 들어있습니다. “10년후”라고 하는 한국의 10년후를 전망한 책도 벌써 몇 달째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습니다. 일이년전만해도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필요한 지침서, 예를 들어 “아침형 인간” “메모의 기술” “...7가지 전략”시리즈, 리더쉽에 대한 책들, 그리고 웰빙이나 건강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였지만 이젠 우물안 개구리였던 시선을 탈피할 필요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 해결의 실마리를 드러내라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누구는 위기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분명 지금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성장을 위한 실험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도 많이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분명 기독교인도 정치나 경제를 읽는 부분에 있어선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말씀을 통한 눈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눈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국제분쟁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보는 눈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15,16장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말씀에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바로 “다윗처럼” “여로보암의 죄” “아합가문의 죄” “산당을 남겨둔 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좀더 역사적인 시선으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모두 쇠퇴의 길에 서 있었습니다. 때로 종교적인 개혁이 일어나긴 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토를 계속 잃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예후, 남 유다의 요아스가 모두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고, 산당을 남겨두었습니다.
이 중에 특기할만한 일은 15장에만 4번의 반역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5: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역모를 꾀하여 백성 앞에서 그를 죽이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15:14 그 때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거기에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15:25 그의 부관인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아르곱과 아리에와 길르앗 사람 쉰 명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켜서,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의 요새에서 왕을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15:30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르말리야의아들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살해하고,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 이십년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모두 북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세상은 위기상황이 되면 반역을 일으킵니다. 우선 위기시에 왕권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런 혼란을 틈타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분명 명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 분명 이전 왕들의 실수와 잘못이었을텐데... 반역한 이들도 결국엔 똑같은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의명분이 아니라 대외명분, 즉 밖으로만 내세울 명분이었을 뿐, 결국은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권력욕을 위한 반역일뿐이었습니다.
세상은 위기상황에서 분열합니다. 위기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미룹니다. 잘한 것은 모두 내 탓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 반대편 탓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위기는 잘못을 진단하고 서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개인의 욕심과 권력욕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남 탓만 하면서 이후 대권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4. Whee 복음을 경험하라
북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반역이 일어난 반면 남 유다는 여전히 다윗왕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아스가 다시 말씀을 중심으로 나라를 개혁한 이후 아마샤, 아사랴, 요담에 이르기까지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산당은 허물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상황은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월요일에 읽은 것처럼 아마샤왕은 기고만장해졌다가 북 이스라엘에게 침략을 당했습니다. 아사랴는 죽을 때까지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15:5) 요담왕 시절에는 시리아의 르신 왕과 북 이스라엘의 왕 베가 왕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15:36) 신앙은 그럭저럭 지켰지만 위기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결국 아하스 왕때에 이르러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버렸습니다. 왜냐면 선진국, 강한 나라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스릴 힘은 하나님이 아니라 강한 힘, 강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증조할아버지는 치욕을 당하고, 할아버지는 나병환자가 되고, 아버지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아합가문의 죄보다도 더한 죄를 저지릅니다.
16:3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하나님을 버리고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의 힘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침략을 받아 성전의 보물을 빼앗겼었지만 이번에는 앗시리아에게 먼저 보물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는 앗시리아 문물을 앞서서 받아들입니다.
10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을 만나려고 다마스쿠스로 갔다. 그는 그곳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세밀하게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11 그래서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보내 온 것을 따라서, 제단을 만들었다.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돌아오기 전에 제단 건축을 모두 완성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에 처음으로 이방신상이 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침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윗 자손 유다 왕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유다 왕 아하스는 세상의 지배자가 앗시리아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앗시리아을 본받으면 자신들도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제단은 가끔 “주님께 묻기 위해” 남겨 놓습니다. 여러분 축복받은 다윗의 자손이었던 아하스가 그것도 요아스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던 왕들의 아들인 아하스가 이런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요?
영향력이 없던 부모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아하스가 볼 때 신앙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겨우겨우 신앙을 지켜나갔지만 자녀에겐 쓸모없는, 심지어는 버려야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부모가 앗시리아 왕에게 성전의 모든 보물을 갖다 바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보다 앗시리아 왕이 더 강해보였던 것입니다.
5. Yeah 결과를 예견하라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습니까?
북 이스라엘이 그러듯 분열하든지, 아니면 유다왕들이 그랬듯 신앙만 겨우 지키면서 세상에 영향력이 없이 그저 무력하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히려 세상 권력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까?
반기독교인 정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아하스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진실을 소유한 양, 교회다닌다면서 자랑하면서도 결국 세상엔 영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1/4이나 있는 우리나라에 물질만능주의, 학벌주의가 팽배한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세상에 영향력이 없으니 나라 전체가,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아하스 왕처럼 선진문물 받아들이는데에만 바쁩니다. 유학을 보내고, 돈을 더 벌고, 부동산 투기를 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말씀은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세상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위기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왕을 치셨으므로”(15:5)
“이 때부터 주님께서는, 시리아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아들 베가를 보내어...”(15:36)
여러분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면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가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오늘 말씀엔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방법들이 올바른 방법이 아님은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솔직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항상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수업을 듣고, 일을 하고, 예배하는 모든 순간의 주인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원하십니다. 아니 세우고 계십니다.
혹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거든, 싸우지 마십시오. 긍휼히 여기고, 또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봅시다. 하나님앞에서 진실된 모습, 말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그저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특별히 오늘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믿습니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