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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井煥의 수필 硏究
-이성과 영성의 사유, 비판적 귀납의 가치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차례>
1. 序論
(1) 연구의 意義와 目的 (2) 硏究의 方法과 範圍
2. 生涯와 文筆家로서의 活動
3. 수필관과 文體的 特性
4.作品分析
(1)沒我的 사랑의 力說 (2) 謙虛한 고백의 自責
(3) 頑强한 어둠의 吟味 (4) 향토의 자연과 交好
5. 結論
1. 序論
(1) 연구의 意義와 目的
도창희는 <隨筆批評 그 限界性>이란 논고에서 ‘문학작품에 비평의 부재는 그 문학을 죽인다.’고 했다. 어느 시대든 비평이 번창하면 창작도 번성하는 법이다. 그래서 창작과 비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모든 생존하는 학문은 모두 비평이 따르듯이 문학도 그 고유한 비평이 엄존한다. 어떤 genre를 불문하고 ‘문학창작에 비평이 빈핍하면 그 문학은 번영하기 힘들다.’라고 하여 수필비평의 중요성을 창작과 결부시켜 언급하고 있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수필이 어느 날엔가 온 문예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오늘이 그 실현의 초기 단계다.’라는 진술을 굳이 차용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수필은 어떤 문학 장르보다 향유 계층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점점 더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柳柄奭은 ‘문학이 점점 전파미디어에 의해 독자를 빼앗기는 현실을 놓고 볼 때, 현대인의 생리에 appeal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수필’이라고 하였다. 이는 현대인들이 간편한 것을 좋아하는데다가 인생 문제에 대하여 그 인격과 체험을 직접 듣고 싶어 하는 욕구에 따르는 자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의 홍수시대라 불릴 정도로 수필이 한국문학 속에서 새로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수필에 대한 비평 분야는 서울을 제외하면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부산 평단의 경우는 수필비평이 비평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
黃井煥 연구는 그가 한국수필문단에 차지하는 위치나 공헌도에도 불구하고 기존연구가 전혀 없는 현실이다. 문학의 불모지라 불리는 부산에서 50년 전부터 수필을 써 오며 수필 문학의 위상 정립뿐만 아니라 수필문단의 화합과 발전에도 기여한 그의 수필을 작가 작품론적으로 접근해 봄은 부산수필문학사에 있어서 의의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자평해 본다. 왜냐하면 황정환은 한국 문인협회 부산지부 수필분과위원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부산수필문협의 고문으로 부산 수필의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반 수필가와는 남달리 특유의 개성적 스타일로 수필을 지금껏 써 온 작가로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수필이 문학권 내에서 서자 취급을 받고 있는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서, 현대인의 생리에 appeal하는 소설적 구성을 지향하는 콩트식 수필만을 고집해 온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연구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本槁는 지금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다루어진 바가 없는 황정환의 수필세계를 조명하고, 평생을 교육자로 신앙인으로 문필가로 살아온 그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硏究의 方法과 範圍
‘글은 곧 그 사람이다.’는 버폰의 지적은 수필문학에 꼭 맞는 말이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규명한다는 것은 그 작품세계를 통하여 그 작가의 개성과 가치를 탐구하는 작업이며, 그 접근 방법은 다양하게 시도되어질 수 있다. 해롤드 시몬슨(Harold Simonson)은 비평을 저울대에 비유하여 가장 좋은 수필비평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비평하는 것’이라 했다. 저울대는 바로 서야 눈금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이런 논거에 따라 수필작품도 비평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본고는 어디까지나 여러 비평의 장단점을 인식해서 작가 · 작품론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비평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는 현학적 첨언으로 修辭의 방식이나 문학적 용어와의 억지 상관을 통해 작품이 아닌 사상의 결집체인 것처럼 과장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작품의 해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재조명함으로써 전달이 용이하고 정확하게 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 만큼, 작품을 지나치게 이론의 굴레 속에 귀속시키는 비평보다는 충실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품에서 발견된 바를 자기 인생 경륜에 비춰 그 실과 허가 인간의 진실을 구현하는 데 과연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제시할 것이며 황정환의 문학적 가치를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비평의 전개를 쉬운 문제로 쓸 것이다.
또 필자는 그의 독특한 문체적 특성을 문학성과 椄木시켜 보고, 또 수필가로서의 작가적 사명이 작품 속에 얼마나 투영되어 있는지도 작품분석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작품 대상은 황정환의 여러 권의 작품집 중에서 수필집이라고 본인이 직접 명명한 2권, 즉 1983년에 나온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에 수록된 작품과 그로부터 10년 후에 나온 <황령산>에 수록된 수필작품을 분석해서 그 특성을 범주화해 볼 것이다.
우선 본격적인 논고에 앞서 황정환의 문필가로서의 활동과 그의 수필관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2. 生涯와 文筆家로서의 活動
작가의 생애에 대한 연구는 그 작가의 문학성 연구에 주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연구 범위의 하나가 된다. 수필은 시나 소설과는 달리 체험의 문학적 형상화이기 때문에, 작품세계의 원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경험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가 현존 작가이기 때문에 그가 남겨 놓은 자전적 얘기를 통해서 그의 생애와 활동을 조명해 볼 수 있음은 크나큰 다행이라 하겠다.
黃井煥은 192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주교 신자로 태어나게 되어, 종교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선친(아호가 夜雨)이 천주교 집안의 김해 김씨와 혼인을 하게 됨에 따라 사천에 있는 그의 정미소에 공소(신도 집회소)가 차려진다. 마침 신도 중에 늘 말이 없고 글만 쓰는 사람이 있어, 그는 어린 마음에 그 청년이 존경스럽다고 생각되어 커서 어른이 되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문학의 씨를 심은 그가 문학청년의 꿈을 꾸었지만 선친이 빚보증을 잘못 서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지게 됨으로써 전 가족이 이리저리 헤어지는 등 불운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형님의 주선으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제2 고등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한다. 이때가 1941년도였으며,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종교와 성직자, 독신주의 등에 대한 저항을 느끼며 갈등 속에서 신학, 철학, 문학관계의 책을 탐독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독서의 결과로 인생을 철학적으로 사색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가 주로 읽은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헤세의 <명상록> 오자키고오도오의 <금색야차> 시마사키도오손의 <파계> 나쓰메소오세키의 <草枕> 아쿠다가와루노스케의 <라쇼오몬>과 <코> 등, 닥치는 대로의 책을 읽는다. 첫 방학을 맞아서는 센다이 근교의 시부다미무라의 이시가와다쿠보꾸의 생가와 바람고개에 세워진 한 무명 청년의 문학비를 끌어안고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는 등 철학적 방황을 하게 된다.
1950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6·25가 발발하고 학생들과 선생들이 모두 흩어져 있는 혼미와 혼돈의 시절, 무미건조함을 달래기 위해 밤이면 술을 마시는 대신 습작으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달랬던 것이다. 발표지면을 주로 <대한공론> <자유신문><민주신보> <산업신문> (뒤에 국제신문) 등에 시론과 산문을 주로 실었고 1956년 5월 수상과 단편집<저 산이 아직도>를 자비 출판함으로써 문단에 첫 발을 딛게 된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혼미한 상태였고 부산은 온통 피난민들로 들끓었다고 한다. 첫 작품집을 1956년에 내고, 다시 13년 후 1969년도에 종교를 소재로 한 단편집 <성소>를 펴낸 후, 1970년도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문단에 적을 두고 계속 글을 써 오다 현직 교장으로 있던 1983년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란 수필집을 펴낸다. 그 동안 그는 수필부산동인회, 목필 회원으로 동인 활동을 해왔으며 그 후로 한국전쟁문학회 이사, 부산카톨릭문인협회 창립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신문예협회,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을 맡아 창작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문단의 원로로서 후배 문인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3. 수필관과 文體的 特性
수필에 대한 작가의 수필관을 알아봄으로써 작품의 특성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필은 그 이론적인 연구가 다른 genre와는 달리 1930년대부터 연구되고 발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현재 수필문학에 대한 이론이나 槪念이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연유로 해서 수필문학은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나름대로 수필을 정의해 왔다.
이들의 정의를 종합해 보면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요, 일정한 구성의 원칙이 없는 무구성의 문학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이 없다는 말은 작가 나름대로 독특한 형식을 자유로이 취할 수 있는 것이지 형식이 무시되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무형식의 형식>이란 말 대신 <형식의 자재성> 또는 <형식의 다양성>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작가의 수필관에 대한 조명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黃井煥이 수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는 곧 그의 수필관이 된다. 한마디로 그는 ‘수필은 정신문학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수필은 자신의 생각과 새로운 삶의 방향과 비판과 경과와 더불어 따가운 지정과 바람(희망)까지도 아울러서 형상화하는 문학입니다. 그러기에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그런 산문이거나 단순한 작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모두가 다릅니다. 사상과 인생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지성까지도 모두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 같은 모든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는 정신문학이 수필인 것입니다.
<강천형의 문학>에서
수필은 원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아낌없이, 송두리째, 대담하게 드러내 놓는 일이 앞서야 합니다.
<강천형의 문학>에서
이상의 세계와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숨김이 없는 참모습을 분석하고 진실의 방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탐색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막연히 바라보는 사물은 때로 직선도 굽어보이는 가상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눈과 영성의 사유로 바라보게 된 사물은 비로소 그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신문학으로서의 수필의 요체이다. 그러니까 수필은 자신을 탐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통하여 남을 바라보고 자신을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를 포착하려는 문학이다.
<93 부산수필문학계>에서
황정환은 수필이 정신문학임을 내세워 수필은 작가가 이성의 눈과 영성의 思惟로 인간의 참모습을 분석하는 문학이라고 다소 철학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먼저 알고 자신을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를 포착하는 행위가 바로 수필작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솔직하게, 대담하게 드러내어 놓는 일이 앞서야 됨을 들어 원고지 앞에서의 진솔한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黃井煥 수필의 문체적 특성은 독특하다. 그는 항상 소설적 구성을 갖는 콩트식으로 수필을 쓰고 있다. 일례로 그의 첫 수필집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 속에 있는 56편의 수필 중 11편을 제외한 45편의 수필 속에 325개의 대화체가 들어 있다. 평균 작품 한 편당 일곱 개의 대화체가 들어 있는 셈이 된다. 이는 어떤 다른 분의 수필들과도 구별되는 점이다. 수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명 소설과 다르다. 수필은 작가 자신이 글의 主體가 되나, 소설은 작가 자신이 주체가 아니다. 수필 문장은 주체가 되는 작가의 품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이것이 표현에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되는 소설과 다른 점이다. 소설도 일정한 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고 혹자는 수필을 무형식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수필도 수필의 형식을 갖고 있다. 소설과도 콩트와도 시와도 희곡과도 분명 구별된다. 황정환은 수필의 틀 속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수필의 맛과 소설을 맛을 동시에 내는 데 기교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윤오영의 말대로 수필의 여러 요소를 자유자재로 활용해가며 자기의 독특한 문체와 표현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가장 원숙한 글일지도 모른다. 元亨甲도 수필의 문학적 가능성은 어떠한 장르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모든 장르가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문학성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다라서 때로 수필은 그 주제적 효과를 위해서 도는 작가의 개성에 의해 소설적 구성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황정환 수필의 特徵은 전체적으로 소설적인 구성의 수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소설적’이란 말은 단순히 대화체의 도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은 아니나 소설 같은 수필, 다시 말해 수필의 틀 속에서 스토리를 소설과 같이 효율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구성이 그의 수필에 있어서 주조를 이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 가지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수필을 쓰기 이전에 소설(단편)에 관심을 갖고 1956년 단편 <전산이 아직도>를 <대한 공론>에 발표했고 그해 단편과 수상을 묶어 <전산이 아직도>란 단편 수상집을 펴냈다는 사실에서 하나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하겠다. 다른 하나는 수필 작업을 해 오면서, 여러 학자들이 말해 오는 수필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목일 씨는 ‘수필은 마치 고해성사를 보는 거와 같다.’는 말을 했어요. 인간 앞에 자기의 체험 또는 상상의 모든 진실을 하나도 남김없이 고백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아마 많은 수필들에 약간의 허구가 끼어 있을 것으로 봐요. 그런데 허구가 끼이면 수필이 아니다. 수필은 진실해야 한다 하니까 수필창작이 벽에 부딪히는 수가 많아요. 그러니까 회고조의 수필이 범람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허구성의 도입을 가능하다고 봅니다. 허구가 있으면 수필이 아니다라는 극단론은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계간 <문예시대>에서
위의 구술은 계간 <문예시대>의 작가 탐방 코너에서 직접 그가 들려 준 얘기다. 뉘앙스로 볼 때, 명확한 한계는 없지만 주제를 형상화시키기 위해서나 문학적 효과를 위해서 약간의 허구가 수필에 가미돼도 관계없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내가 볼 때 수필전문가들이 쓰는 수필은 일반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여기에 문제점이 많다고 봅니다. 뭔가 결함이 있을 겁니다. 나는 수필에 허구를 도입하자는 게 아니라 허구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쉽게 말하면 허구적 성질을 가미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콩트 식으로 수필을 쓰고 있어요. 이 문제는 우리 수필을 쓰는 사람 모두가 시야를 넓혀야 된다고 봅니다.
계간 <문예시대>에서
위의 진술을 토대로 종합해 보면, 황정환은 일반 수필가들이 허구적 성질은 물론 허구도 도입해서 수필을 쓰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고 허구의 도입에 약간 긍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고 보인다. 문학가의 진정한 사명은 그가 피력했듯이 자기만족의 차원에서 벗어나 독자를 구원하는 일이다. 독자들이 외면하는 글을 굳이 고집하며 매달릴 필요가 관연 있을까? 그는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회고조의 수필 내지는 관찰 묘사 위주의 수필로는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대화체를 많이 활용한다. 마치 소설처럼 대화가 이어져 나오기도 한다. 그 이어가는 솜씨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소설적 구성은 크게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엄마. 가슴이 답답해 심장이, 내 심장이 멎으려나 봐. 제발 살려줘. 제발…….”
“뭣? 시장이……. 오, 하느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엄마.살려 줘…….”
심장 판막증의 소녀가 느닷없이 심장이 멎으려 한다며 살려달란다. 그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새파랗게 질려간다.
만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소녀는 싸늘하게 식어 갈 것이다.
<S修女의 呼訴> 중에서
위의 글은 <S修女의 呼訴>의 서두 부분이다. 죽어 가는 한 소녀의 고통스런 아픔과 삶의 집착 그리고 수녀의 안타까워하는 마음, 시한부의 삶에 대한 본능적 집착을 대화체로 잘 나타내면서 글에 생명성과 문장의 생동감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있다.
“잘 가게 친구.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여기로 오게.”
“알았네. 나도 곧 여기로 옴세. 그동안 조용히 잠들어 있게.”
“……”
B의 목소리는 차츰 멀어져 갔고 이제는 세찬 빗줄기 속을 영구차만이 들녘을 뚫고 아스팔트길을 마구 달려 나갔다.
<고향의 들녘> 중에서
위의 인용은 <고향의 들녘>에 나오는 결구 부분이다. 갑작스런 친구 B의 부고를 받고 친구가 묻힐 묘지까지 영구차를 타고 갔다가 고향의 들녘을 내려오다가 굵직한 빗방울이 영구차의 차창을 후려치자 잠시 죽은 치구와 나누는 자문자답 형식의 대화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이 많은 노인들의 심정이 자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영상을 짧은 대화체의 문장 속에 잘 보여 주고 있어 수필의 맛을 더 한층 향기롭게 내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나도 우리 교회의 사목위원인 탓으로 가끔은 연보함을 정리할 때가 있다.
“……”
그것은 분명히 토큰이었다. 구화 오원짜리 비슷하게 생긴 버스의 어른용 토큰이 딱 한 닢, 연보함의 맨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오죽하면 토큰 한 닢을 연보로 바쳤을까? 아마 가난한 사람이 제사에 바칠 예물마저 준비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제사에는 참여를 해야겠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호주머니 속의 마지막 남은 토큰 한 닢으로 정성을 모았던 것이 아닐는지, 왠지 나는 코끝이 시큰해 왔다. 처절한 신앙의 고백 같은 것을 적나라하게 마주 대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어디 몸이라도……?”
“아니오. 아무것도 아니오.”
주위에서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토큰을 조용히 앞으로 내밀었다.
<연보와 토큰> 중에서
<연보와 토큰>에 있는 중간 부분이다. 연보로 나온 토큰 한 닢에 충격을 받고 있는 순간을 단 두 줄의 대화체로 적나라하게 그려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대화체는 적재적소에 적절한 표현으로 문장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호흡하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적재적소의 대화체는 문맥의 지루함을 들어주고 문장의 흐름에 생동감과 활기를 준다. 문장이 살아 있음은 우선 독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친밀감을 준다.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이 정겨움을 준다. 때로 이미지가 선명하고 아주 재미있어 산 언어를 접한 듯 한 느낌을 준다.
황정환이 지문에 의한 풀어쓰기식의 간접화법보다 직접화법의 대화체를 즐겨 쓰는 이유는 자신의 개성적 스타일에 따른 무의식적인 데 있다기보다 소위 수필전문가 들이란 등단 수필가들의 글을 싫어하는 독자들을 의식하는 작가적 인식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수필관과 수필의 특성에 관해서 본장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다음 장에서는 작품 분석을 통해 그의 문학 정신과 세계를 조명해 보겠다.
4.作品分析
본고에 다룰 작품은 그의 저서인 수상집 <화려한 모퉁이>(1978), 수필집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1983), 수상집<노을 속의 젊은 사도>(1986>, 수상집<사랑의 철학>(1989), 수필집 <황령산>(1983) 등 5권 중에서 그가 수필집이라 명한 1983년 9월 5일 발행한 수필집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와 그로부터 꼭 10년 후 1993년 8월 12일 발행한 <황령산> 2권이다. 그의 작품은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의 수록분 56편, <황령산>의 수록분 72편 도합 128편이다.
이 두 수필집은 수록된 작품들이 그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즉 1983년도 발행의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 소재나 내용이 신앙생활 가운데서 얻은 체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쓴 글들로 사랑의 진수가 어디에 있는가를 성찰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10년 뒤의 작품집 <황령산>은 제목 자체가 이미 암시하듯이 10년 전의 내용과 좀 달라진다. 72편 중 7편 정도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고 나머지 65편은 여행, 산행 등을 통해 느끼는 자연 친화와 토속적 향토서정을 그리는 수필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실은 10년을 사이에 두고 작품의 내용과 소재가 많이 바뀌었다는 데도 있지만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 속의 수필과 그의 나이 73세 때에 쓴 <황령산>의 수필은 작품의 주제나 소재도 많이 다르지만 수필의 밀도나 구성, 치열성에 있어서 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황령산>의 수필들은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의 수필들보다 문장의 표현에 있어서 더욱 솔직하고 수식어가 적다.
수필은 체험자체를 아무렇게나 늘어놓는다고 해서 좋은 수필이 될 수 없다. 체험한 이야기를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짜맞추어야 하고 하나의 맥을 형성해야 한다. 즉 구성화 과정이 삶의 깊이와 조화를 이룰 때, 문학적 수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3년 발행한 황정환의 수필집<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는 교장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시간 속에서 작품이 재구성되고 재음미되는 아픔의 창작과정이 필연적으로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작품의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완성기에 나온 수작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황령산>의 수필들이 平明性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면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는 치열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무게가 더 한층 많이 나가는 것 같다.
<황령산>의 수필이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의 수필보다 무게가 적게 나간다고 보다 평명하다고 해서 문학수필이 아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문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평명성이 더욱 독자를 어트렉트하는 요인이 됨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마력이 바로 문학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수필가 황정환은 이미 구순을 넘긴 원로다. 그는 퇴직 후에도 문단활동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활동도 쉼 없이 하고 있다. 그는 또 일 주일에 두세 번은 산행을 한다. 산이라면 무슨 산을 가릴 것 없이 좋아한다. 움직임이 곧 수필이 될 정도로 그는 고희를 넘기고도 수많은 수필을 계속적으로 쓰고 발표하였다. 그의 글은 물의 흐름처럼 독자들에게 수필의 빛과 향기에 인격을 실어 보내준다. 황정환 수필의 이런 평명성은 황정환 수필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근년에 와서 발표한 수필들은 거의 산행 또는 여행을 통해서 보고 겪은 것들이지만 모두가 그의 고매한 인품과 여유에서 나온 진솔한 언어들의 향연이기에 <황령산>의 수필 역시 잘 익은 술처럼 은은한 향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1) 沒我的 사랑의 力說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는 인간이 동경하는 영원성과 삶의 고뇌를 크리스찬의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작품 전체가 온통 사랑의 진수가 무엇이냐고 자문자답하는 철학적 사유가 짙게 깔려 있다.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통하는 인간존재의 내적 성찰이 수필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다소 종교적이면서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수필들이 대종을 이룬다.
문학은 삶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꿈의 소산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바람과 또 무엇이 행복인가를 분석하고 사색과 사랑은 영혼과의 대화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이미 그가 밝힌 ‘수필은 정신문학이다.’는 자신의 수필관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내 영혼과 사랑의 대화>에 수록된 작품을 모두 읽은 후 받는 첫 번째 느낌은 그의 수필은 메마른 인간세계의 사랑부재를 질타하며, 오직 몰아적인 사랑이 이 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로서 고통 받는 이웃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한 어조로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만 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노? 수녀들처럼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바치고 몰아적인 희생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어야할 게 아니겠느냐 말이다. 정말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삶이 무엇이기에 그녀들은 희생과 봉사 속에서 살며 우리들은 아귀다툼의 사파에서 험악하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사랑으로 말하게 하자>에서
농아학교에 걸린 ‘사랑으로 말하게 하자.’ ‘하면 된다.’는 굉장히 자극적인 슬로건을 보고 인간인 이상 누구나 마음먹기 하나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풀어 나갈 수 있는 존재들임을 전제로 말 못하고 못 듣는 농아들에게 단순한 연민으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출임을 느낀다. 결국 믿음을 뒤따르는 몰아적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그는 살아 있는 하느님같이 보이는 신부와 수녀의 너무나 헌신적이고 몰아적인 사랑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자신도 그 느낌대로 몰아적인 사랑을 펼칠 수 없는가에 절망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인간이란 존재의 회의에서 절망하고 마는 안타까움이 표출되는 작품들이 많다.
이처럼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理想과 낭만에 싸인 사랑에의 호소문이 작품의 요소요소에 스며 있어, 글을 읽은 독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몰아적인 사랑을 호소하나 보통의 범인들로서는 힘든 일이기에, 우리는 필자와 같은 공감대에 서서, 우선 자신의 마음을 정돈해 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진화론이 어떻든 유전인자의 자연도태가 가능하건 말건 그런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생명력이 심장판막증으로 하여 바람창 앞에 놓인 촛불과 같은 현상임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도우려는 따스한 손길은 드물었고, 세상의 인심은 차갑기만 하다.
처절한 죽음의 벼랑에까지 몰린 불우한 이웃을 뻔히 바라다보면서도 시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무딘 감정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S수녀의 호소>에서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인간의 정신세계는 거칠어지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은 서구문명의 이입으로 예전 같지 않는 요즘인 것 같다. 그는 <S수녀의 호소>에서 한 심장판막증 환자를 몰아적인 사랑으로 돌보는 수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접하고, 잠시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면서 종교인으로서, 작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작은 목소리를 던져 주고 있다. 깊이 잠든 자, 깨어 있지 않는 자를 위해 누가 관용과 사랑과 정을 뿌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그 하나의 해답으로 가정과 종교 그리고 교육을 들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며 절실한가를 강도 높게 역설하고 있다.
그의 사랑에 대한 호소와 역설은 <논두렁>, <심상의 그림자>, <자애의 변수>, <연막소독>, <산청>, <모성애>, <의인>, <세찬바람이>, <사각지대>, <성모의 밤>, <약한 자여>, <주일학교>, <하느님 사랑의 법>, <聖家庭>, <기다림>, <마돈나>, <부활의 현의>, <새로운 형제들이여>, <서품>, <나의 성구> 등에서 사랑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황정환의 몰아적인 사랑의 역설은 10년 후에까지 연장되고 있음을 <황령산>의 수필에서 볼 수 있다. <백목련>은 장애자들의 백일장에 나가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처절한 장애자들은 보고 육신이 멀쩡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지금껏 은연 중 자랑삼아 떠들어 왔던 불우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부끄러워하는 글이다.
<장애자들>에서 그는 ‘그들 나름대로의 작은 가슴에다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갸륵함과 스스로의 운명의 굴레에 얽매 일려는 순응이 깔려 있음을 알고 창밖에서 전개되고 있는 자연의 봄이 연출하는 축제처럼 언제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사랑으로 바뀌어 이들이 환한 표정으로 봄을 노래할 수 있게 될까?’를 아쉬워하며 또다시 몰아적인 사랑의 실천을 호소한다. 그는 또 <생각하는 삶>에서 다시 급격한 변화와 혼미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병들어 가는 우리 사회의 온갖 사회악과 범죄로 인하여 인간의 실존적인 갈등이 심화됨을 안타까워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믿음 앞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지 않았던가.’하며 또다시 묵상 끝에 몰아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올린다.
(2) 謙虛한 고백의 自責
황정환 수필의 특징적 요소 중에 또 하나의 부각되는 부류는 꾸밈없는 겸허한 솔직성과 평민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가가 자기의 인품이 탁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동기를 따라서 글을 쓸 때, 그 작품은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성현 군자연한 글 뿐 아니라 자신의 박식이나 견문을 과시한 글은 독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자신의 결함 또는 실패담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꾸밈없이 다룸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황정환은 평생을 교육자로서 살아 온 사람이며,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최고의 지성인에 속한다. 몇몇 문학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며, 대학에도 출강하는 외래 교수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어떤 가식이나 권위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수필이 된 사람의 글이라 할 때, 이분의 수필은 분명 수필다운 수필에 속할 수 있다. 글과 인격이 정말 부합된다는 것을 시시각각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수백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고백해 놓았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결정적 약점을 나상으로 드러내 놓고 있다는 데서 필자는 깊은 감동을 경험한 바 있다. 자신의 비열함, 비겁함, 지식인으로서의 비양심을 거침없이 표백하고 있는 것이다.
수필은 자칫하면 작가 자신의 현시욕이나 그야말로 자랑의 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글이다. 그러나 황정환의 수필 어디에도 현시욕이나 자랑의 변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weakpoint를 적시하며 늘 소탈하고 진솔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독자를 구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수필에 대해 ‘수필은 원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아낌없이, 송두리째, 대담하게 드러내 놓는 일이 앞서야 합니다.’하고 말했듯이, 그는 자신의 수필관이 그대로 반영되는 수필을 써왔다는 데서 언행이 일치하는 작가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분배 정의가 실현되는 평등 세계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인간존재에 대한 계급의식을 거부하며, 물량주의, 권위주의를 질타하고 칸트의 도덕률과 고다마의 자명 등을 비교하고 오카스디누스의 교회 은총중개론과 카빈의 믿음의 직접성을 비교하면서 인간이 지닌 지칠 술 모르는 욕망과 집착과 편견과 권위의식을 헤쳐 보길 좋아한다.
그는 ‘수필은 자신을 탐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통하여 남을 바라보고 자신을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를 포착하려는 문학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그가 원고지 앞에서 얼마나 진실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아마도 신부가 되려했다가 중도에서 좌절한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톨릭 신자로서 ‘고해성사’하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가식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선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악’에 속하는 위선 따위를 드러내는 데 이르러서는 주저하기 일쑤가 아닌가.
지금까지 말로써 모든 것을 얻으려고 무진 애를 써 왔어도 한 가지를 얻지도 못했는데 B교수의 솔선수범들은 새삼스럽게 내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이치야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면 무엇을 하나 한 가지 일이라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으니 얼마나 우둔했던가 싶어진다.
<훈화>에서
청년퇴직도 했겠다. 학구적으로도 종파도 초월해서 분석할 수도 있을뿐더러 이제는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이 나를 내세울 수가 있지를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변의 눈치만 살피다니 학장의 신념과 비교해서 내가 왜소한가. 신앙도 하느님이 나에게 직접 주신 은혜인데 그리고 그것은 나의 내면적 진수인데 누구를 의식하고 눈치만 살피는가.
<동명불원의 종소리>에서
이처럼 그의 수필들은 일상의 체험 속에서 내면의 성찰과 관조, 반성과 고백을 통한 여과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에게 공감과 진한 감동을 준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그는 <H형에게>에서 수녀들의 차가운 눈초리, 비정함을 용기 있게 고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종교인으로서 종교인 특히 성직자들을 향한 단호한 어조의 비판정신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강한 현실고발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다. 현세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겠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린 그녀들이 보여 준 뜻밖의 오만과 증오, 질시와 권위에 작가는 몸서리치며, 성직자들의 언행과 물량주의에 물들어 가는 세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사랑의 기적>에서는 ‘정녕 오늘의 교회는 신랄한 비평을 받아야 마땅할 것 같다. 그것은 처자식을 거느린 교육자는 말할 것도 없고 혈혈단신 사제들까지도 휩쓸려 들고 있음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고 교회의 현세주의와 이기주의로의 타락을 과감히 말하고 있다.
그의 자책에 대한 반성은 여러 작품에서 더 발견된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몰아적인 사랑의 실천과 남을 위한 희생과 이웃을 위한 자그마한 사랑마저도 실행으로 옮겨 본 적이 없는 차가운 사람인데도 촛불은 나를 환하게 비춰준 것이다.’ <황령산>의 <그림자>에서 빛과 사랑의 함수관계를 깨닫는 도중에 나오는 자책의 단면이다. <봄이 오는 뜨락에서>에서 그는 觀相을 통한 자연의 신비는 생명의 소중함과 불우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깨우쳐 주었으나 나는 아직 그 같은 정을 모른 채 살아왔다‘며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봄의 생명력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암시하며 또다시 자신의 아웃 사랑에 대한 무관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어지는 수필<夜雨>에서 그는 ’그런데도 아버지께서는 그 친구 분을 탓하는 원망의 말씀을 입 밖에 내지를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우정과 신의의 중함과 흥망성쇠는 하늘의 뜻이라며 조용히 따르려는 뜻으로 여겨져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 나 같았으면 틀림없이 버림을 받은 자식처럼 온갖 광관을 벌였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삭발>에서는 ’거기에다 말기에 가서는 師道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떠드는 아이들과 따지는 선생님들의 눈치만 살피며 그들의 비위나 맞추려고 소신을 잃었던 일, 일이 이렇게 서글프고 오래까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소신으로 교육을 하지 못했던 긴 세월의 시행착오를 자책하고 있다.
나처럼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은 촌놈이 공민 선생님이라니 될 법이나 한 짓인가. 진실을 가르쳐(?), 큰 일 날 소리다 훈장은 무슨 놈의 훈장, 적당히 그들의 비위나 맞추다가 말래지.
“그래도 네가 교육자의 한 사람이냐?”
차라리 뒤져라, 뒤져. 하지만 20대에 나는 몇 번인가 바른말을 했다가 단단히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때부터 항상 겁에 질린 채 살아왔다. 누가 조금만 큰소리를 쳐도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뜨거운 물에 덴 놈은 냉수에도 델까 봐 지레 겁부터 먹기 마련이다. 결국 나는 앵무새마냥 시키는 대로 흉내를 내며 살아온 비겁한 놈이다.
나는 항상 침묵만을 지켜왔다. 비겁한 놈. 그렇다. 나는 한마디로 비겁한 놈이다.
<스승의 날>에서
처절하리만큼 아프게 자신을 꾸짖는 독백이 아닐 수 없다. 비밀이 절대 보장 된다는 고해성사에서나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잘못된 사고와 행동을 만인에게 말하는 원고지 앞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쏟아 부을 수 있다면, 그는 진실한 사람이며, 情이 가득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적 성찰을 통한 자아관조를 통해 그는 수필이 정신문학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 頑强한 어둠의 吟味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거부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시기의 早晩만 다를 뿐 어느 누구에게나 필지적인 것임에도 자기에게 다가서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의 설정은 유한성에 대한 심리보상의 가정일 뿐이다. 하루의 태양에서도, 4계절의 순환에서도 세상은 돌고 도는 이치에 놓여 있다. 인간의 수명은 그러나 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바로 죽음이란 어휘만큼 인간의 완강한 어둠도 없을 것이다.
그는 몰아적 사랑의 역설과 겸허한 자책으로 수필을 情으로 형상화시키면서 특히 죽음의 문제에 순간순간 자주 접근하고 있는데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이며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연함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물음을 곳곳에서 던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음미는 곧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가장 보람된 삶인가, 나의 근본적 바람은 무엇인가, 본래의 나와 앞으로의 나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며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보다 나은 현재를 추구하려는 깨달음의 정신세계라 아니 할 수 없다.
정말 생각할수록 을씨년스러운 날씨마냥, 침울해지는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더욱 사무치도록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보람찬 일이라고는 하나도 이루어 본적이 없는 내 시간들이 자꾸만 흘러가 버리는 안타까움이다. 거기에다 시간이 다정하게 기다려 주지를 아니하고 매몰스럽게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다음에 가서야 비로소 허우적거리며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이것이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원숙으로 접근하는 과정의 하나일지라도 동시에 소멸해 가는 노쇠의 시작임을 느끼게 되면, 아무래도 허탈에 빠지고 만다.
<사각지대>에서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은 단절과 어두움과 無의 영겁이 아니라 새로운 또 하나의 삶과 끝임을 모르는 인식과 사랑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 그 자체가 열어 줄 수 있는 영원한 세계일 것이다.’라는 <죽음 다음에 오는 것>에서 피력한 죽어서 영원히 산다는 내세관과 그 같은 믿음이 영원한 생명을 성취하려는 욕구와 맞물려서 어쩌면 자신이 지독한 <에고>가 아니냐 하는 회의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런 작가의 모습이 <사각지대>, <저 어둠이>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나이 63세 때 쓴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에 나오는 수필들이 그가 정년퇴임을 하고 펴낸 <황령산>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를 준다. 분명 그는 환갑을 전후로, 정년을 전으로 죽음에 대한 문제에 밀도 있게 매달려 왔음이 곧 감지된다.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보다 10년 뒤에 출판된 <황령산>은 오히려 ‘죽음’이란 어휘보다 제목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희망적인 어휘들이 많이 보인다. <봄이 오는 뜨락에서>, <다시 쏟아지는 햇빛>, <금빛의 너울>, <사랑의 기적>, <큰 나무들>, <웅비>, <빛의 숲>, <희망의 빛은>, <웅비하는 나래>, <생명의 월계관>, <금련산의 까치들,> <자명등>, <무릉도원>, <동명불원의 종소리>, <팔일오의 감격>, <생각하는 삶>, <새아침의 생각들>, <하느님! 보소서> 등 제목에서 벌써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와 다른 분위기가 나타난다. 반면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에 나오는 제목들을 보면 <눈보라 고개>, <油紙>, <鬼面>, <S수녀의 호소>, <심상의 그림자>, <雲海>, <煙幕消瀆>, <村老의 목소리>, <續 흙탕길>, <樹海>, <擬人>, <세찬 비바람이>, <殘照>, <回想>, <사각지대>, <죽음 다음에 오는 것>, <修士와 水死>, <저 어둠이>, <약한 자여> 등 무겁고 어두운 단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황령산>에서 보이는 빛, 새아침, 생명, 종소리, 봄, 금빛 등의 맑고 가볍고 환한 어휘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停年이란 평생의 직장을 그만두게 만드는 어쩌면 사형선고처럼 차가운 현실을 절감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곧 죽음이 가까워 있다는 의식을 일깨워 주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는 죽음을 음미하는 어둡고 무거운 단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모처럼 눈 내리는 백야(白夜)인데, 아침에 닿으면 어떠리. 하는 느슨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파 따라 알량한 지성마저도 좁아졌고 삶의 의욕마저도 다분히 흔들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눈보라 고개>에서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라든지 사자(死者)로 인한 갖가지 공포를 느낄 때가 더러 있기 때문에 덮어놓고 신령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하기야 귀신들에게는 처음부터 발 따위는 없었다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고 슬픈 것이므로 수명이 다하게 되면 누구나 별 수 없이 죽게 마련이다.
<귀면>에서
나는 생각하기를 죽음의 부활을 믿는 신앙과는 달리 순전히 심장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인간의 비상한 노력은 적극적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쏟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S수녀의 호소>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음미는 이어지는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심상의 그림자>에서는 ‘악에 물들기는 순간이요, 변신은 몹시도 충격적이기 때문에 누구든 장담은 못한다.’며 극악범을 두고 ‘공개처형하라’고 외치는 자들의 마비된 이성을 어떻게 일깨워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고, <自愛의 변수>에서는 주머니 속에 수많은 돈을 간직한 채 굶어 죽은 한 수전노의 얘기를 통해 삶과 죽음, 가치와 신앙을 되새긴다. <나래>에서는 체중을 줄이려고 노력하다 다리가 흔들거리고 눈앞이 침침해 지는 것을 경험하고, 人命이 在天임을 느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얻은 결론은 마음을 느슨하게 먹고 유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세운다. 그리고 <모성애>란 수필을 통해서 죽음을 몰아적인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간다. ‘자신을 먹이로 삼아 기꺼이 죽음을 택함으로써 새끼를 살리는’ 살모사, ‘자신의 가슴을 쪼아 새끼의 먹이를 마련해 주는’ 페리칸, ‘자기 몸을 몽땅 불살라 빨간 사랑의 불꽃으로 승화시켜주는’ 하얀 촛불의 심지처럼 필사적인 희생이 몰아적인 사랑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죽음의 美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人命은 在天에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가 저지른 죄의 값이라면 죽음을 수용해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히 구조적인 결함에 불과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하며, 우리는 그런자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종교적 해석으로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을 어두움이 아니라 영원한 삶과 사랑과 안식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 그 자체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말해 줌으로써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영겁의 세계에로의 연결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4) 향토의 자연과 交好
모름지기 지방문학의 발전은 자연을 형상화 하는 데 있다. 지방의 자연에 대한 형상화가 풍부하고 다양하면 그만큼 지방 문학은 풍성하게 된다. 地方의 발견, 향토의 발견, 고향의 발견으로 형상화되는 비방문학은 곧 한국 민족 문학의 양적 축적과 질적 성숙을 동시에 이룩하게 하는 動因이 된다. 자연과 고향은 원형의 것이요, 원초의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성과 통하는 것이다. 지방 문학인의 가장 가까운 곳,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데 있는 자연과 고향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향토주의의 본령이다.
황정환은 최근의 수필집 <황령산>에서 산행을 통해 얻은 소재를 中心으로 토착서정과 자연정취를 되새기며 인간의 자연사랑 부족에서 오는 공해와 오염을 적시하면서 아쉬움과 위기감을 美學的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황정환은 자연 중에서도 산과의 친화를 강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산행을 할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산이면 어떤 산이나 다 좋다. 용마산, 황령산, 천마산 등등 가까운 모든 산이 언제 보아도 정답게 느껴진다.’고 쓰고 있다. 산 속에서 사색과 자아 관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자연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고 산행을 하면서 만나지는 꽃, 나무들이 베푸는 오묘한 자연의 향연을 관상하면서 불우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깨닫기도 하고 삶의 준엄한 교훈을 얻기도 한다. 지리산의 황량한 고원지대에 말라 죽어 가고 있는 고목들을 보며 죽음과 산의 역학관계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의 향토적 관심은 두 개의 고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 사천에 대한 유년 시절의 회상과 그리움이며, 또 하나는 현재 살고 있는 황령산 기슭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고향에 대한 모성적 그리움을 통해 부모에 대한 효심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고향을 찾고 있다.
산을 내려 올 때는 탁 트인 들녘과 들판을 둘러싼 천마산과 마금산이 온 천정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산세에 여기가 우리 고향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 것일까 불현듯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지> 중에서
그는 고향도 아닌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도 고향에 대한 생각 끝에 불행한 운명으로 살아온 부모님을 모시고 K처럼 극진한 효도로 기름종이에 이름 석 자라도 한번 올려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러나 흘러간 시공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그의 가슴 속에 고향과 부모님은 아련한 그림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작가의 심상에 각인됨으로써, 그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자연 친화와 사랑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은 유난히 아련한 고향의 들녘이 떠오른다. 나는 하는 일 없이 추석에도 고향으로 내려가지를 못했다. 그런데 지금쯤 추수들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지난번의 엄청난 폭우와 홍수로 낙동강 유역의 논과 밭들은 몽땅 흙탕물로 쓸어가 버렸을까?
가난한 농부들이 봄에서 여름에 걸쳐 땀 흘려 가꾸어 온 곡식들인데 제발 풍성하게 영글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리고 집집마다의 지붕 위에는 올해도 변함없이 빨간 고추가 널려지고 마루에도 고구마 하며 호박들이 말려졌으면 하고 눈을 감아 본다.
<고향의 들녘> 중에서
주목될 만한 사실은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 속에는 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 많고, <황령산>에는 현재 살고 있는 부산 특히 집이 위치하고 있는 산에 대한 글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령산>에는 산행에서 얻은 소재를 중심으로 글을 썼으며, 산행의 출발에서 서두를 이끌어 가는 수필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역시 10년이란 시차를 두고 생겨난 의식과 시각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란 수필집의 글을 여는 첫 장을 <고향의 들녘>이라 장식한 것은 우연이 아닌 의식적 배치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타향에서 살아온 그에게 고향은 정신적 지주였음이 분명해진다 하겠다. 고향은 뿌리와 관계하며 인간의 존재에 대한 출발을 의미한다.
그의 수필에 나타나는 思鄕性이 애향으로 끝나고 있음은 현실적으로 회향할 수 없음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이같이 교직된 고향에의 그리움은 <골망태>, <연막소독>, <촌로들의 목소리> 등에도 나타나 있다. 그리고 경남 일대의 산이나 계곡을 찾아 자연정취를 되새기면서 그 자연에도 문명사회의 공해로 美的 또는 味的 가치를 잃고 마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는 <회상>이란 수필에서 자연친화를 믿음과 결부시키며 더 나아가 경천애인의 사상과 접맥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의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신비롭고 경이로운 흠모의 대상으로써 신의 은총이며, 그 속에 신의 존재를 각인해 놓는 등 자연을 신성시하고 있다.
황정환은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좁은 마당에 마구 묘목을 심어 집이 숲속에 파묻혀 있다. 나무와 우거진 숲속에 사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봄이 오는 뜨락>에서 쓰고 있다.
하지만 여기는 메마른 도시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세상은 황폐해지고 도덕은 허물어 내리고만 있으니 희생의 길은 하나밖에 더 있으랴. 서둘러 황폐해진 우리들 마음에다 산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인간은 본래 善하고 착한 존재이므로 선의 나무들이 무성해지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 나갈 때는 얼어붙었던 마음들도 봄의 시기처럼 풀어지고 무너져 내린 도덕성도 회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봄이 오는 뜨락에서> 중에서
그는 나무로 우거진 숲을 황폐해진 마음을 회복하고 무너진 도덕성을 되세울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자연을 치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삶의 궁극적 가치인 행복도 생명의 신비가 숨 쉬는 대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자연과 함께 하며, 자연을 흠모하며 그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나무들과 사람들이 전부 말라 죽고 나면 거기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거라.”
그러나 다만 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인 것인가. 비록 싱싱한 나무에 둘러싸여 나 혼자 말라가기 시작하나고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만 같다.
<죽어가는 나무들> 중에서
그는 종교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그의 수필세계를 존재와 자연 즉 인간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물과의 교직을 시도하는데, 그 근원적 대상은 생명의 모태인 흙이 아니라 그 흙 속에서 흙의 생명으로 커가는 나무인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즉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소극적인 삶으로 머무르는데서 끝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 인식이라면, 종교인이자 지식인인 자기의 삶은 인생 순응적으로 자연의 모태인 흙으로 돌라가는 데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죽어가는 나무를 통해 깨닫고 있다. 어찌 그냥 죽어갈 수 있느냐는 깨우침이, 우리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결국 나무는 그에게 사유의 始原으로써, 종교인 것이다.
어떻든 정년으로 교단을 물러난 지도 벌써 사오년이 지났으나 새벽이면 빠짐없이 맑은 물을 구하러 집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새벽에 산으로 오르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산수를 얻기 위해서인 것 같다.
<황령산 약수터>에서
물론 이 글에서도 ‘새벽에 황령산 약수터에 올라 산수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면서’를 서두로 행복의 조건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자기 발견에의 인식을 깨닫고 죽는 날까지 어떤 보람 속에 살고 싶은 의지와 다짐을 다진다.
우리 집뒤로 돌아서 조금 더 가게 되면 장대골 성지라는 성역으로 꾸며진 곳이 나온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 같은 정신이 흐린 사람이 그 시대에 살고 있었고 그리고 그들처럼 갇힌 몸이 되었다면 그들 장한 순교자들처럼 혹독한 고문을 잠시나마 견딜 수가 있었겠는가 싶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역사의 현장, 장대골의 노송들도 사라져 가고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도 덮개가 씌워져서 지금은 그 위로 아이들이 뛰어 놀기도 하고 자동차도 지나다니지만 산은 언제까지나 산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강은 언제나 강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장대골>에서
장대는 군사조련과 무과 고시뿐 아니라 형장으로도 쓰여졌는데 병인 천주교 박해 때에는 배교를 강요하는 혹독한 고문도 이곳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그 국문 효수는 장대골 노송들의 나뭇가지여서, 바람이 부는 깊은 밤 조용히 눈을 감으면 혹형의 비명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여 잠을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순교자들이 죽어간 노송들이 집가에 아직도 남아있어, 매일 그 나무를 통해 순교자의 일을 마음속에 심어나가기 때문에 <하느님 보소서>와 같은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따끔한 패러독스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정환은 연륜과 더불어 생기를 더해가고 아름다운 꽃을 피어나게 하는 꽃나무의 관상을 통해 그 반대로 나아가는 인간의 몰골을 안타까워한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인간의 덕을 배운다. 그럼으로써 그는 끊임없이 깨닫고 사유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5. 結論
이상의 조명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수필관은 ‘수필은 정신문학이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가 쓴 수필들은 한결같이 이성과 영성의 사유로 대상을 관상하고 자신을 통하여 남을 바라보고, 자신을 초월하여 인간 존재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의 수필세계는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 아니며 현실세계를 떠나 이상의 세계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는 현대 수필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직시하여 콩트식의 소설적 구성을 갖는 수필을 쓰며, 적재적소에 대화체를 도입하여 문장을 생명감 있게 이끌어 글에 재미와 활기를 주는 게 특징이다. 그의 글은 말기에 가서 더욱 표현이 간결해지고 솔직하여 독자들의 거부감을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수필적 특성은 네 가지 부류로 모아 볼 수 있다.
첫째, 그의 수필은 몰아적인 사랑을 호소하는 종교적인 분위기의 글들이며, 둘째, 그의 수필은 겸허함과 진솔성이 흠뻑 묻어나는 고백과 자책의 나상들이 그의 수필에 향기를 준다는 것이며, 셋째, 그의 수필 속에는 죽음에 대한 문제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어 무거움과 엄숙함을 주며, 인간의 본질과 존재 등의 철학적 사유가 깔려 있어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아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을 해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수필은 진정한 향토애와 자연친화의식을 보여준다. 이런 의식의 근저를 모성적 그리움과 안태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수필의 기필이 생명의 원천인 부모로부터, 그리고 뿌리인 고향으로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그의 수필세계는 그 진솔성으로 향기를 내고 있고 사랑에의 동참을 호소하는 역설을 통해서 미각을 내고, 죽음과 자연에 대한 관상과 사유를 통해 수필에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현직 교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도에 펴낸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가 체험의 재구성을 통해 쓰여진 수필들이라면 <황령산>은 붓 가는 대로 쓰여진 수필들이라는 데 있다. 우선 문체가 <황령산>에 와서 더 간결해지고 문장의 흐름도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이 특색이라 하겠다.
비록 고희를 넘기고 쓴 글들인 <황령산>의 수록 자품은 화석인류를 타귀하면서도 <봄이 오는 뜨락에서>와 <다시 쏟아지는 햇빛>, <강심> 등에서 낡은 구각(區殼)을 벗어 던지는 더욱 강렬해진 깨달음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더 가까이 와 있으면서도 10년 전의 <내 사랑과 영혼의 대화>에서 보여 준 죽음에 대한 언급이 <황령산>에서 별로 없는 것은 작가의 의식과 자아 인식이 확고부동해 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그리워하는 애정과 동심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뒤랑(G. Durand)은 ‘신이란 우리들 속에 잇는 유년이며, 이 유년기의 神적인 현현은 우리를, 이미 말라버린 꽃이 풍기는 향기로 유도하는 유년기의 내음’이라고 한 바 있다. 이런 동심의 복원은 어둠의 공포와 삶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작가의식의 변화와 밀접히 관계한다 하겠다. 이처럼 어느새 노숙으로 접어든 작가로서 수필세계가 의식의 변화와 같이 변모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느님 보소서>와 같은 수필에서 교회와 성직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의식의 약화가 아니라 강렬한 팽창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변화의 폭이 10년의 흐름 뒤에 얼마나 넓혀졌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두 수필집을 비교해 보면 <황령산>의 수필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귀납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려는 태도가 더욱 뚜렷해 보인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아주 쉽게, 평이한 언어로 형상화하면서 그 속에 인생의 선배로서, 종교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때문에 죽음에 대한 언급도 <황령산>에는 없었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는 결국 그냥 흙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며, 죽는 순간까지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하겠다는 것이어서 독자를 더욱 숙연한 감동으로 이끌어 낸다 하겠다.
여러 가지 변화 중에서도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선명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애썼음이 극명하게 엿보이는 것은 그가 ‘현대수필의 문제점’에서 피력한 자신의 주장을 적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자신의 隨筆論과 밀착된 수필의 창작은 우리 수필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저작권은 권대근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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