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야구

[홍익]

그러고보면 참 오랫동안 국제경기를 지켜봤다. 굳이 80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예외로 해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태국, 홍콩, 대만을 차례대로 콜드로 이기며 비교적 쉽게 준결에 안착했다. 대만은 이미 예선에서 우리에게 콜드패를 한 팀이지만 만만하게 볼 팀은 아니다. 이유는, 허구연이 누누이 말한 대로 야구는 전력이 7대3 또는 8대2가 되지 않는 한에는 언제든 약팀이 이길 수가 있는 스포츠기 때문. 특히 단판은 더 하다. 상대에 대한 데이터가 없거나 부실한 것도 한 이유지만 또 데이터가 있어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투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스포츠기 때문이다. 야구의 매력은 그런 의외성에도 있다.

궈진린

1회 초를 보며 아주 쉽게 경기를 이끌 줄 알았으나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노아웃에 주자 만류였기에 아주 쉽게 경기를 가져가나 했던 것. 그러나 주축인 4,5번이 차례대로 대만 투수 약관의 22세 궈진린에게 농락당하며 무사 1회만이 아니라 무려 5회까지 끌려가게 된다. 패넌트레이스에서 궈진린보다 훨씬 강한 투수들의 볼을 감당했을 선수들인데도 뚫지를 못했다.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에 궈진린은 직구가 140킬로 초중반이라 돼 있었는데 놀라지 마라, 이날 구속이 무려 156을 찍었다.

찬스 뒤에 위기가 온다고 1회 말 바로 우리 팀은 실점했다. 김광현이 1번 타자에게 우중월 3루타를 맞고 뒤이은 타자들에게 실점을 했다. 김광현이 류현진과 함께 한동안 부동의 대한민국 원투펀치였던 때를 비교하면 요즘은 기력이 많이 꺾인 건 확실하다.

결론으로 말해 우리가 6대3으로 이겼지만 3번의 리드, 3번의 동점, 4번의 역전을 오가는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경기다. 예선에서 무려 8회 콜드로 이긴 전례가 있는 대만을 상대로 이렇게 고전하다니 야구는 참 모를 스포츠다. 재차 말하지만 야구란 원래 그런 스포츠다. 아무튼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야구는 이런 스포츠다. 실력 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란 거. 멘탈이 좌우하는 경기라는 거. 야구는 신사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술수가 횡행한다. 그게 야구의 묘미기도 하지만. 사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봐도 그런 경기 외적인 요소들이 게임의 승패를 크게 좌우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

이겼지만 아쉬운 선수들이 있다. 강민호가 특히 아쉽다. 올해 fa가 되며 75억이란 잭팟을 터뜨린 그는 올해 죽을 쑤고 있다. 초구와 2구는 무방비하게 스트라이크 잡힌 뒤 유인구에 마구 휘둘러 자멸한다. 평소 선구안이 안 좋다는 건 알지만 이번 대회에선 특히 두드러졌다. 한 시즌 홈런을 30개 가까이 때려내던 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스윙도 무지 큼. 다음은 손아섭.

손아섭군, 눈에 힘 좀 빼.

이 친구는 진짜 대책없는 '치고잡이'다. 거의 모든 볼에 다 배트를 돌려대니까 말이다. 그런데 배트 컨트롤이 너무 좋아 어지간히 빠지는 볼도 다 걸려든다. 앞선 대만 전에도 15구가 넘어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결국 바깥쪽 높은 볼을 밀어 안타를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대책없이 돌려대는데도 3할 3,4푼을 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어쨌든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별로인 걸로 낙찰ㅜㅜ. 이 선수 멘탈을 '기어코' 안타를 쳐서 나갈 게 아니라 '우짜든동' 진루한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악발이기질이나 근성은 a매치에선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오재원도 많이 아쉬움.ㅜㅜ; 뭥미?? 방망이의 아쉬움을 수비로 메움.

클린업 트리오 박병호, 강정호도 마찬가지. 앞 경기까지 3,4번 둘 다 홈런을 두 방씩 때려줬지만 오늘은 철저히 투수의 구위에 눌렸다. 강정호는 정말 박찬호 다저스 시절 4번 게리 셰필드의 스윙과 닮았다. 임팩트 순간 강한 파워를 싣는 그런 스윙. 컨트롤이 되는 22세 대학생 투수 궈진린의 포심과 체인지업에 우리 선수들이 철저히 놀아났다.

유독 한국에 강한 천관위가 나타나니 역시 우리 타자들 주춤거렸다. 그래도 우리에겐 문제의 8회가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늘 8회에서 쐐기 또는 역전을 했었으므로. 민병헌이 천관위를 상대로 귀중한 안타를 얻어 출루, 그러나 손아섭은 투지를 불태우다 아웃됐다. 3번 김현수-국제대회 4할 타자 김현수에게 다시 안타를 허용해 노아웃 1,3루를 만들자 대만은 곧바로 강속구 투수 뤄지아런을 올린다.

 1,3루, 바뀐 투수 뤄지아런이 다시 박병호에게 4구 허용, 만루를 자처한다.

역시나 천관위의 구위는 이번에도 좋았다. 낮게 코너웍 되면서 철저하게 타자들의 배트 궤적을 거슬렀다. 거기다 투구 동작에서 엄청난 신축성을 발휘했다. 투구 동작의 강약 조절이 굉장히 유효했다. 민병헌과 김현수가 노리고 있던 몸쪽 볼들을 기가 막히게 걷어내 타구를 외야로 보냈다. 내가 보는 최고의 타자는 김현수다. 매번 느끼는데, 어떤 구질 어떤 로케이션의 볼도 결대로 때려낼 줄 아는 타고난 타자가 김현수다.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8회 4점을 내어 대만을 이겼다. 굳이 황재균이 2점 적시타를 때렸단 말 안 해도 다들 알고들 계시겠지? ㅋㅋㅋ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마의 이닝이 1회였다면 대만의 머피한 이닝은 7회였다. 양현종이 거푸 타자들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노아웃 1,3루를 허용했는데 안지만이 나와 3타자를 차례대로 잡아 불을 껐던 것이 승리의 큰 요인이었다.

사실은 이번 드림팀이 내겐 종합선물세트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들을 한 게임에 압축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론 지난 올림픽이나 wbc만큼은 긴장감도 덜했고 기쁨도 덜했다. 그만큼 한국에 비해 타 팀들의 전력이 약세였다. 대만으로선 이런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돼 한국 팀과 이 정도로 백중했다는 것은 사실 무척 고무적이다. 오늘만 야구하는 거 아니잖아.

어쨌든 우리는 이기면 당연한 거고 자칫 지기라도 하는 날엔 욕을 바가지로 들을 판이었다. 우리로선 은메달을 따도 실패한 대회가 되는 것이다.

[선바위]

공이 자동으로 쓕쓕 나오면 야구 방망이로 치는 그 게임 있잖아요? 저는 그것만 보면 치던 때가 있었어요. 치고 싶어서 ㅎ '치고잡이'라시니 생각나네요.

[홍익]

그러고보니 그거 해본지도 꽤 오래됐네요 저 그거 좀 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