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살이 넘으면, 타인의 인정과 체면이라는 허상에서 과감히 벗어나라!>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하길, "우리의 모든 불행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내면이 텅 비어 있고 또 빈약할수록 외부의 평가와 물질적인 껍데기를 통해 그 결핍을 채우려 발버둥 치는 존재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역활극을 훌륭히 소화해내기 위해 타인의 박수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승진을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는 그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는 어느 정도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60살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타인의 박수갈채를 갈구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코미디에 불과하다. 이젠 비교하는 삶에서 관조하는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회적 직함이나 재산이라는 무대의상을 하나둘씩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서의 맨 몸뚱이를 마주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남들이 나를 우러러보기를 바라고 체면이 깎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면 그 삶은 영원히 타인의 시선에 갇힌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노예로 타인의 삶을 내가 대신 살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샤르트르가 말했듯이, '타인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즉 타인의 시선에서 빠져 나와 내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면 무한한 힘과 에너지를 얻어 스스로 나의 존재를 창조하게 만든다. 독립된 자아로서의 몰입도 내 삶의 가치도 저절로 만들어지고 갖추게 된다.
*우리는 다들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양 착각하지만 사실 남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그들 또한 각자의 삶의 무게에 짓눌러 자신의 상처를 핥기에 바쁜 연약한 인간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들이 나를 무시할까봐, 외로워질까봐 괴로워한다. 결국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손에 쥐여주는 어리석은 자다" 60살이라는 나이는 이제 그 통제권을 온전히 내 손으로 되찾아 와야 할 때다. 체면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져버려라. 질투에 부러워할 필요도, 못난 자식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인생의 해질녘에 이르러 중요한 것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내 마음이 얼마나 평온한가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모임에 나가서 무리하게 밥값을 계산하지 마라. 진정한 친구라면 밥값의 액수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눈빛의 깊이로 우정을 평가할 것이다. 화려한 옷으로 늙어가는 육신을 억지로 감추려 애쓰지도 마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주름진 얼굴 그 자체가 그 어떤 장신구보다 훈장처럼 빛나는 당신의 역사다.
누군가 당신의 삶을 섣불리 평가하거나 조언하려 든다면 그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떡여 주고 한 귀로 흘러보내라. 변명하거나 해명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인생은 오직 당신의 것이며 그 누구도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그 누구든 관계를 끊어라. 남은 여생동안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만 만나라. 그러한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도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 색바래고 너덜너덜해진 관계는 더 이상의 우정도 발전도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까뿐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모닝 차를 한잔 마시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오늘 하루 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나, 또한 혼자서도 즐길 줄 알고 혼자만의 루틴이 있고, 게다가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취미 봉사 등등)이 있다면 그게 행복이자,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결국 우리네 인생은 자신을 옭아맨 "체면을 버리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자유의 날개를 달게 된다." 남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감옥에서 걸어나와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그 가벼움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것이 60살 이후 주인 된 삶을 눈부시게 만드는 첫번째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