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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관을 쓰신 예수
본문<요19:1~6>중 1~3절..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주님의 머리에 왜 하필 날카로운 가시로 역은 관을 씌우셨을까요? 성경에 나온 사건이나 스토리는 우연이 없습니다. 다 어떤 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시 면류관 뿐만 아니라 두 손과 두 발에 커다란 대못이 박히셨고 마지막에는 창으로 옆구리까지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처참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누구의 죽음이어야 했습니까? 바로 나 자신이 죄의 저주를 받아 육신이 난도질을 당해 죽어야했을 내 주검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흠이 없는 어린양의 가죽이 벗겨지고 살덩이가 각이 떠져서 맹렬히 타오르는 제단 불에 소각되어지는 번제물로 모형화 되었던 것입니다.
삶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속하기 위해 소나 양을 끌고 성전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우양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고 짐승을 죽여 번제단에서 대속의 번제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심령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죄 없는 소나 양이 피 흘리며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그 짐승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내 죄를 대신 용서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불태워지는 흠 없는 우양의 실제가 바로 IX(예수 그리스도)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속죄제사의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제사 드리는 목적이 ㅎ님께 복을 받으려고 아까운 재산을 드리는 뇌물로 변질되었습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나아가 각종 명목으로 돈이나 금은보화를 드리고 헌신하면서 신을 섬기는 모습처럼 제사의 의도가 변질된 것입니다. 죄는 상실되고 세상에서 여하히 ㅎ님을 이용하여 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국도 가겠다는 발상에서 속죄 제사가 변질된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 죽으시는 모습은 우리 인간의 죄악상이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창6장에서는 사람의 모든 계획과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할 뿐이라고 고발합니다. 시51편에서는 다윗이 고백하기를 자신이 모친의 태로부터 죄악 가운데서 잉태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님도 마23:25절에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경건하게 살고자 애쓰고 힘쓰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너희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질타를 하십니다. 이것이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겉은 각종 종교적 행함으로 거룩하게 포장할 수 있어도 속은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 탐심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죄를 짓고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막지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러한 비참한 상태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기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마음속의 탐욕과 방탕을 이루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손과 발의 죄를 속하기 위해 수족에 대못이 박히셨고, 뱀처럼 땅의 것만 탐하며 배로 기어다는 삶을 살기에 창으로 옆구리가 뚫려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피흘림의 용서가 없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지옥에 가야할 운명입니다. 그야말로 죄와 허물로 죽어 ㅎ님이 바라시는 그 어떠한 선과 의를 행할 수 없는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하지만 ㅎ님은 그런 죄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창세전에 미리 독생자 아들 예수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실 것을 ‘메시야 언약’으로 작정하시고 구속사를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약의 율법과 상막 제사 속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즉 율법 속에 복음을 감추어 두셨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는 비밀에 속한 것이었기에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율법 행함으로의 구원이 아니라 십자가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의 구원에 대해 깨닫게 된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엡1:3~14> 잘 아시는 내용이나 인치는 뜻에서 다시 봅니다(봉독..)
‘3절~찬송하리로다.. 어느 때에 찬송이 나옵니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때에..3절부터 나오는 모든 내용이 죄인들 입장에서는 너무도 귀하고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의 진수를 증거 합니다.
즉 구원의 내막에 대한 상세한 내용으로 구원의 방편(택하심), 선택하심의 근거(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목적(은혜의 영광을 찬송케 하심) 등에 대한 창세전 예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구원은 오직 메시야이신 아들 IX의 십자가 피 흘리심으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감추어 두셨다가 인간의 실패가 완전하게 드러난 구약이 마감된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취되는 것을 9절에서 ‘때가 찬 경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바울 자신에게 계시로 알게 해 주셨다고 3장에서 언급합니다.
<엡3:2~6/11~12>
‘2절~은혜의 경륜..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이루는 게 아니라 IX의 십자가 공로로 주어지기에 은혜의 경륜이라고 합니다. 경륜(하나님이 일하시는 높은 차원의 구원 섭리를 말함). 그 은혜의 경륜은 다른 게 아니라 복음입니다.
‘3,4절~1장에서 살펴본 것을 언급하고 있네요. 즉 창세전 메시야를 통한 구원에 대한 예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계시로 알게 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엡1장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이 ㅎ님의 구원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함 아닙니까? 그 핵심이 1장에 있다는 것이니까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5절~이 계시를 어떤 방법으로 알게 하셨다고요?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다른 세대)에서는 알지 못했었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어렴풋이나마 은혜의 구원에 대해 알게 하셨습니다. 가령 사53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언 등 많은 예들이 있습니다만 수건에 가려진 것처럼 명확히 알지는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6~ 특히 이 구절의 말씀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차원입니다. 행전을 보면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마저도 고넬료 사건으로 아주 당황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부정한 것을 먹어라..거부함)
‘11,12~복음의 핵심 내용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IX의 십자가로 주어진다는 ㅎ님의 영원 전에 예정하신 뜻대로 된다는 말이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담대하고 당당하게 ㅎ님께 나아가게 된다고 역설 합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내용인가요? 이러한 ㅎ님의 구원의 경륜을 깨닫고 믿게 된다면 바울처럼 ’찬송하리로다!‘가 터져 나오게 되겠지요.
감격에 찬 이러한 찬송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출된다고 말합니다.
<벧전1:8~9> 8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나 사랑하고 있으며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표준 새번역)
왜 보지도 못한 예수님을 사랑하며 영광에 찬 즐거움으로 기뻐합니까? 이유는 믿음의 결국, 즉 믿음의 열매로 주어지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정답을 말합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주어지는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이기에 즐겁고 기쁘고 찬송하는 거지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1:10~12>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며 연구하고 살폈던 내용이 ㅎ님의 구원의 내막이었다는 거지요. 과연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언제 어떻게 성취될지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알기를 원했었지만, 심지어는 천사들도 알기를 원했었지만 아직 주님의 십자가 사건 전인 구약에서는 어렴풋이만 계시하시고 구체적인 것은 베일에 가려졌다가 이제야 너희에게 전한 복음으로 나타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구약의 이스라엘은 아직 성령이 오시기 전임으로 복음에 대한 비밀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ㅎ님의 뜻을 모르면 이방인처럼 육신의 본성에 의한 정욕대로 ㅎ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의 목적이 복 받는 방편으로 변질되어 ㅎ님을 우상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사1장입니다.
<사1:10-15>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하나님이 무서운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소돔 고모라 백성이라고 합니다. 소돔 고모라 백성들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으로부터 유황 불 벼락을 맞아 죽는 자들이잖아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황 불 벼락을 맞아 죽을 놈들이란 말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소돔 고모라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럽니까? 한마디로 헛된 제물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말은 제물을 드리는 근본 마음이 틀렸다는 말입니다. 자기 욕심을 챙기고자 하나님과 거래하고자 가지고 온 제물이란 말이에요. 요즘 말로 복 받기 위해서 충성한단 말입니다.
이걸 하나님이 허락하겠어요? 허락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다시는 내 앞에 그런 제물을 들고 오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안 받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꼴도 보기 싫다는 겁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차라리 교회 오지 말고 예수 믿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는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와 흥정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통해 하신 말씀이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이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여호와께 제물을 잘못 드렸다고 제사장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인데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고 율법의 말씀대로 흠이 없는 것으로 잘 드리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눈으로 보기에 흠이 없는 제물을 드렸다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더러운 떡이라고 이어지는 7절은 말합니다.
<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더러운 떡을 드렸다는 말 역시 영적인 비유의 말씀입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빗대서 떡을 드린다고 하는데, 이 때 더러운 떡을 드렸다는 것은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비진리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람의 율법 행함을 가치로 여기도록 백성들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말1:8~9>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바치는 제물이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바쳤다는 말은 우양의 상태가 그러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 드려지는 우양을 병든 것으로 드리겠습니까? 게다가 율법신앙으로 훈련된 유대인들이 문자에 적힌 대로 흠 있는 것을 드리지는 아니 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반듯하고 좋은 것으로 드렸겠지요. 그렇기에 제사장들이 반문하며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했고 어떻게 주의 상을 더럽게 했냐?’고 따진 것입니다.
흠이 있는 짐승으로 드렸다는 것은, 목적에서 벗어난 제사와 제물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렸지만, 제사의 목적성이 벗어났기에 아무리 좋은 제물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려도 그것이 열납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열심과 정성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거들떠보시지 않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기각, 아벨의 제사는 열납)
핵심은 제사하는 자의 마음이 죄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이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지요. ㅎ님은 제사를 즐겨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을 보십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죄 없는 우양이 피 흘리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짐승이지만 자신 때문에 처참하게 각이 떠져서 불태워지는 모습에 안쓰럽고 미안해서 다시는 죄를 안 짓겠다고 회개하며 다짐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시고자 싶은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죄를 미워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다시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수록 인간 자신이 죄에 대해 무기력하고 죄 앞에서 무능과 무가치함을 알게 되니까 점차 교만한 마음이 깨뜨려지고 겸비한 마음으로 조성되게 되는 것이지요. ㅎ님은 이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신에 대해 절망하며 죄를 용서하시는 ㅎ님만을 소망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더불어 죄에 무력한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도 관용하는 시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나 지금 죄 지은 그 사람이나 오십 보 백보니까 마음으로 정죄하고 손가락질 하는 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볼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ㅎ님 백성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소경들인지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수없이 목청껏 외치면서 너희가 지금 엉터리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을 해도 귀를 막고 하는 말들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거냐? 우리는 율법대로 너무도 ㅎ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대로 ㅎ님이 보낸 선지자들이 핍박받고 순교까지 당했던 피의 역사가 구약입니다.
<말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제사를 드림으로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침공을 허락하심으로 유다가 망하게 되어 성전마저 파괴됨으로 강제적으로 성전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눈으로 보이는 성전을 청소하시고 마음의 성전을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요2장 15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우양과 비둘기를 성전에서 내쫓고, 환전상의 돈궤를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호통 하시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 하십니다.
구약의 성전에서 드려지던 제사는 다 그림자였습니다. 실제는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택한 백성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심 것에 대한 모형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이 건물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 안에 부활하심으로 죄사함이 이루어진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사 마음의 성전을 세워 ㅎ님과 한 영이 되게 하시겠다는 비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흠이 없는 제물을 드리라는 것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제물이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었던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심으로 감옥에 있는 바라바와 같은 저와 여러분이 감옥에서 놓임을 받는다고 전번에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바라바는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 날짜만 기다리며 감옥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셔야 했던 구약의 예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웠다는 것은 출애굽기 28장 36~38절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번역하고 있는 표준 새번역으로 봅니다.
<출28:36~38> 36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서, 그 위에, 인장 반지를 새기듯이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라. 37 이것을 청색 실로 꼰 끈에 매어서 제사장이 쓰는 관에 달되 그것이 관 앞쪽으로 오게 하여라. 38 이것을 아론의 이마에 달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한 예물을 드릴 때에, 그 거룩한 봉헌물을 잘못 드려서 지은 죄를 그가 담당하도록 하여라. 그는 그것을 늘 이마에 달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가 바치는 예물을 나 주가 기꺼이 받아 줄 것이다.
대제사장의 머리에 쓰는 관을 말하는데 그곳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쓴 패를 만들어 이마에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이 잘못되었을 때 모든 책임을 대제사장이 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말라기의 말씀을 통하여 알아보았듯이 병든 것, 저는 것을 여호와께 드리면서도 제사장들은 봉헌물을 잘못 드리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제사장들이 봉헌물을 잘못 드려 지은 죄를 제사장들은 담당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죄를 사함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저와 여러분이) 봉헌물을 잘못 드린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로 향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제사의 목적이 상실된 채 종교적 관행으로 봉헌물을 잘못 드려 백성이 죄를 사함받지 못하므로,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대신 그 죄를 담당하여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쓴 패가 아닌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서 제사장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께 봉헌물을 잘 드릴 수 있도록 다시 찾아오셔서 마음의 성전을 세워 주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게 하여 하나님이 기꺼이 그 예배를 받으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는 다른복음인 율법으로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지만 성령이 오심으로 십자가에서 밝히 드러낸 복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원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18:38)을 보면 빌라도가 말하기를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3번이나 말합니다(3번: 확증의 의미). 이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잡기에 적합하다는 뜻이며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잘못 드린 봉헌물에 대한 죄를 담당하신다는 뜻이며 이 일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교회의 왕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본 유대인들이 6~7절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임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를 대속해 주셔서 구원해 주시려고 예수님은 아무 말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신 것입니다.
<사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셨던 것인데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심판받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사 지옥불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 십자가의 길을 가시도록 창세전에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아무 말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더 알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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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과 복음교회 | - Daum 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