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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인증)-중함백(인증)-두문동재-금대봉(인증)-매봉산(인증)-낙동정맥 분기점(인증)-삼수령/피재(21.3Km/10시간)
<시간계획>
ㅇ 23:50-03:40 : 화방재 이동(강원 태백시 태백산로 4162 어평재휴게소)
ㅇ 03:40-04:00 : 산행 준비
ㅇ 04:00-14:00 : 산행
ㅇ 14:00-17:00 : 귀경
* 차량 대기장소 : 강원 태백시 적각동 산 61-1 삼수령주차장
시작지점 : 화방재
종료지점 : 삼수령
[화방재] 939m
태백과 영월을 연결하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허리를 넘어간다. 마루금에는 어평휴게소 겸 주유소가 자리한다. 내륙쪽 200m 거리에 만항재에서 내려온 414번 지방도로가 합류한다. '화방'은 '꽃밭'이라는 뜻이다. 진달래 피는 계절에 이곳을 여행해본 종주자에게는 쉽게 납득된다. 봄이 되면 도로변의 밭을 제외하고는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드는 장관이 연출되는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평재라고 부른다.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한다. 어평이란,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재'를 어평재라 불렀다는 유래도 있고,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방화선(防火線)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으며, '정거리재'라고도 한다.
[수리봉]
함백산 구간의 가장 남쪽 봉우리다. 남쪽 건너편으로 태백산이 올려다 보인다. '독수리의 일종인 수리가 살던 봉우리'다. 일견 '솔(松)'이 '수리'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 아름드리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는 지역이다. 그 중에는 수백 년쯤은 족히 먹어 보이는 것도 많다.
[만항재] 1330m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장도로로 고도가 무려 1,330m이다. 그래서 국가대표선수들의 고산 적응 훈련 장소가 있다. 만항재는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재로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리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으로, 1980년대까지 일대에서 캐낸 석탄을 옮기던 운탄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암사 입구를 지나 고개에 오르는 동안 만나게 되는 만항마을은 본래 주변 탄광의 근로자들이 살던 마을이다. 그러나 인근 탄광들 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밭농사에 손을 대 삶을 이어 간다.
만항재의 북쪽 일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이어져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봄부터 야생화 천국을 이룬다. 정제된 느낌이나 향기는 덜하지만 자유와 생명력 만큼은 오히려 정원을 장식하는 관상용 꽃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晩學재의 뜻이라고 하며, 늦은목이재도 비슷한 뜻이라고 한다.
[꼴두바위]
광산마을 상동의 꼴두바위.
상동은 지금이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산촌마을이지만, 한때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정도였다는 엄청난 규모의 중석(텅스텐) 광산인 대한중석이 있던 곳이다. 대한중석은 아시아 최대의 중석광산으로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였다. 중석을 캐던 광부들은 석탄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보다 월급이 50% 정도 높았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설명. 그래서 매일 밤 상동의 술집이며 유흥업소들은 하루 일을 끝낸 광부들로 흥청거렸다고 했다. 광산이 문을 닫은 뒤, 상동은 빈집이 훨씬 더 많다.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마치 시간이 20여년 전에 멈춰진 것처럼 쓸쓸하다.
꼴두바위는 마을 한복판에 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기괴한 바위. 금강산 만물상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바위벼랑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강원감사로 있을 당시, 이 바위를 보고는 목욕재계한 뒤 절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주변 사람들이 '왜 바위에 절을 하냐'고 물었더니 '몇백년 후에 세상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바위'라고 예언했단다. 마을 사람들은 1923년 이곳에서 중석광산이 개광된 것이 바로 '예언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정암사]
대한 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자장(慈藏)이 636년(선덕여왕 5)에 당(唐)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인 산시성[山西省]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한 곳이 이 절이었다고 한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뒷편 함백산에 남아 있는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법당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은 1713년(숙종 39) 중수했는데 낙뢰로 부서져 6년 뒤 중건하였고, 최근에 새로 두세 차례 중건하였다. 신라시대 때 절을 창건한 자장법사가 탑을 쌓기 전 정성껏 기도를 하니 용왕이 감복해 빛이 고운 수마노(석영의 일종)를 하사했고, 이를 받아와서 탑을 쌓았다 한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힌다. 원래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데, '사리'라는 진신이 모셔졌기 때문이다. 정암사에는 그 사리가 산의 위 중턱인 수마노탑에 모셔져 있다. 수마노탑은 용왕이 보내준 마노석을 쌓은 탑으로 알려져 있다.
-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熱目魚 捿息地)
우리나라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상류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하천에서 가장 상류의 시원한 곳에서 살고, 겨울에는 중류지역까지 내려와서 월동한다. 정암사의 열목어서식지는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남쪽지역이며, 숲이 잘 발달하여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닌 지역 가운데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창옥봉]
특이한 점 없는 흙길의 능선봉우리와 이어지는 안부 능선 길. 표지석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옥봉'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함백산] 1572.9m :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는 산.
강원 동부의 최고봉으로 정상에서 태백산, 백운산 등 지역 전체와 동해 일출 전망이 가능하며, 전국 최고 최대의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삼척탄좌 등이 소재하고 있어 석탄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산업선인 태백선 철도가 산의 북쪽 경사면을 지난다.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동·서·남·북으로 뻗친 대간과 지맥의 분포를 살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측량기술을 통해 밝혀낸 높이는 함백산(1,572.9m)이 태백산(1,566m)보다 높지만 옛날에는 두 산 모두 '크게 밝은 산'의 봉우리였음이 틀림없다.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는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岩寺)가 있으며, 함백산 등산로 중 하나인 만항재는 해발 1,313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도로이며 싸리재는 1,268m로 만항재와 버금간다. 이곳에선 매년 8월이면 함백산 야생화축제가 열린다.
[중함백] : 블랙야크 백두대간 인증
중함백 정상엔 인공으로 깍은 듯 자연스레 깎인 넓은 돌 판 쉼터가 있다. 이정표나 표지석이 없으나 동남쪽으로 시야가 열려 있어 황지 시가지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함백산 방송 중계탑과 함백산 스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함백에서 함백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주목군락지가 있다.
[은대봉] 1442.3m
함백산의 봉우리인 상함백산, 중함백산(1,505m), 하함백산(1,527.9m), 창옥봉(1,380m) 중 상함백산을 가리킨다.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 은탑에서 금대봉과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두문동재(예전 이름 싸리재)를 통해 바로 이웃에 있는 금대봉과 이어진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금대봉·비단봉·천의봉, 동쪽으로 태백시와 백병산·면산·묘봉으로 이어진 낙동정맥, 남쪽으로 중함백산, 서쪽으로 백운산·두위봉 등이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로는 죽령터널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로 긴 정암터널(4,505m)이 지나간다.
낙동강의 원류 발생지는 이곳에서 가까운 천의봉의 동쪽계곡에 자리한 너덜계곡으로 공식 인정되었지만,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黃池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산자락에는 태백광업소와 한국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855m)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부근에 정암사, 용연동굴이 있다.
- 낙동강의 발원샘 은대샘(너덜샘)
낙동강의 첫 물방울은,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황지보다 상류에 있는 은대봉의 너덜샘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전문가나 향토사학자들은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샘,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황지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문동재] 싸리재 1268m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를 들추어보니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전설을 따르자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는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고려왕조를 섬기던 신하들이 불사이군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정선 두문동으로 숨어들어 마지막 공양왕을 그리며 읊은 시가 정선아리랑의 시원이라고 한다.
-> 흔히 두문동재의 옛 이름을 싸리재라고도 하지만,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싸리재는 또다른 고개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금대봉] : 블랙야크 백두대간 인증
두문동재 북쪽에 위치한 '양강발원봉'이다. 서쪽 물은 검룡소를 출발해 한강으로 흐르고, 동쪽 물은 용수골에서 시작해 낙동강 천리 물길로 이어진다. 정상부근은 '산상의 야생화원'으로 불린다. 금대봉과 북쪽의 대덕산 일대 126만평은 환경부가 지리산 노고단과 함께 '자연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의 전망도 좋다. 인근의 태백과 고한의 시가지가 산자락 사이로 보인다. 한강과 낙동가의 발원을 표시하는 나무목과 전망시설이 있다. '금대(金臺)'라는 말은 원래 '검대'로 '신(神)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신이 사는 곳이 오늘날 야생화원으로 조성되어 의미가 더해진다.
[양강 발원봉] 1418.1m
"이 봉을 양강 발원봉이라 함은, 북쪽으로는 한강이 남동쪽으로는 낙동강이 비롯하여 흐름이라" 써있는 '양강발원봉'(兩江發源峯) 나무 표지목이 서 있다.
금대봉(1,418m) 북쪽 계곡의 '검룡소'(儉龍沼)는 "한강(漢江)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예전엔 조선 시대에 최상품의 샘물로 인정받던 평창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0년대 정밀측정 결과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길이가 32km나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묻혀 있던 검룡소는 일약 한강의 발원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검룡소는 오랜 세월 동안 솟아 흐른 물살로 인해 깊이 1~1.5m, 넓이 1~2m의 석회암반이 푹 파였는데, 곧바로 20m에 이르는 와폭이 계단을 이루며 용틀임 한다. 원시림이 잘 보존된 이곳에는 고목나무샘, 제당굼샘, 예터굼샘 등지의 물길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다시 검룡소에서 솟아나 520여km에 이르는 남한강의 발원을 이룬다고 한다. 이어 물줄기는 정선을 거쳐 영월까지 아름다운 '동강'으로 굽이치며 흐르고 흘러 단양과 충주, 여주, 양평으로 그 흐름을 계속한다.
또 검룡소에서 솟은 검룡수(儉龍水)는 사계절 내내 9℃를 유지하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주변 바위엔 한겨울에도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물맛 역시 그윽하게 혀끝을 감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오르다가 검룡소에 이르러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용이 되는 수업을 쌓았다고 한다. 이때 이무기가 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검룡소에서 쏟아지는 와폭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검룡소에서 머물며 용이 되는 수업을 쌓던 이무기가 부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을 마시러 오는 소들을 잡아먹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검룡소를 메워버렸고,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검룡소는 1980년대에 복구되었다.
- 검룡소 전설과 관련하여...
국립지리원에서 검룡소를 한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하자, 산판작업 때문에 묻혀있던 못을 복원하고 검룡소라는 이름과 전설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黃池)'는 영남 땅을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 연못으로 유명하다. "낙동강(洛東江) 1,300리의 첫여울"로서, 사시사철은 물론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져도 연못의 물이 줄거나 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굴에서 솟는 폭 20여m의 연못 주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커다란 바윗돌이 놓여 있으며, 물 속의 황금빛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백두대간 은대샘(너덜샘)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줄기는 황지에서 숨을 고른 뒤 낙동강 1,300리를 흘러간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이란 뜻의 천황(天潢). 세월이 지나면서 황지(潢池)라 부르다 나중에 삼수변이 떨어져나가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원래 이 부근은 수만 평의 땅이 질퍽한 늪지대를 이뤄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우거진 천혜의 늪이었다. 여기엔 시주를 청하는 스님에게 쇠똥을 퍼주었다가 집터가 꺼지면서 큰 연못으로 변하는 화를 당한 노랭이 황부자 전설이 전해져온다. 마당늪, 방깐(방앗간)늪, 통시(변소)늪의 세 연못과 굴뚝소가 전설의 흔적이다.
백두대간 분수령을 끼고 자리 잡은 강원도 태백은 '강의 고향'이다. 백두대간 금대봉(1,418m) 기슭의 검룡소(儉龍沼)는 한반도의 젖줄인 한강의 발원지고,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黃池)는 영남 땅을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 연못으로 유명하다.
창죽동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깔나무 빼곡한 널따란 산길을 1.3km 걸어 오르면 검룡소가 나온다.
금대봉의 고목나무샘·물구녕석간수·제당굼샘 등에서 처음 솟은 샘물은 각각 지하로 1~2km쯤 흘러 내려와 검룡소에서 솟구치는데, 웬만한 샘물은 엄두도 못 낼 하루 2,000~3,000톤이나 되는 양이다.
예전엔 조선 시대에 최상품의 샘물로 인정받던 평창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0년대 정밀측정 결과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길이가 32km나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묻혀 있던 검룡소는 일약 한강의 발원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검룡소는 오랜 세월 동안 솟아 흐른 물살로 인해 깊이 1~1.5m, 넓이 1~2m의 석회암반이 푹 파였는데, 곧바로 20m에 이르는 와폭이 계단을 이루며 용틀임한다.
또 검룡소에서 솟은 검룡수(儉龍水)는 사계절 내내 9℃를 유지하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주변 바위엔 한겨울에도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물맛 역시 그윽하게 혀끝을 감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오르다가 검룡소에 이르러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용이 되는 수업을 쌓았다고 한다. 이때 이무기가 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검룡소에서 쏟아지는 와폭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검룡소에서 머물며 용이 되는 수업을 쌓던 이무기가 부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을 마시러 오는 소들을 잡아먹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검룡소를 메워버렸고,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검룡소는 1980년대에 복구되었다.
이렇듯 특별한 전설이 서려있는 검룡소는 어느 계절에 가도 항상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철철 넘친다. 온갖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는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식물 생태계의 보고로 꼽히는 금대봉의 아름다운 풍광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 낙동강 1300리 첫 물인 황지
검룡소 샘물을 마시고 태백산으로 발길을 돌리면 태백 시내에서 황지를 만나게 된다.
백두대간 은대샘(너덜샘)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줄기는 황지에서 숨을 고른 뒤 낙동강 1,300리를 흘러간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이란 뜻의 천황(天潢). 세월이 지나면서 황지(潢池)라 부르다 나중에 삼수변이 떨어져나가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원래 이 부근은 수만 평의 땅이 질퍽한 늪지대를 이뤄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우거진 천혜의 늪이었다.
여기엔 시주를 청하는 스님에게 쇠똥을 퍼주었다가 집터가 꺼지면서 큰 연못으로 변하는 화를 당한 노랭이 황부자 전설이 전해져온다. 마당늪, 방깐(방앗간)늪, 통시(변소)늪의 세 연못과 굴뚝소가 전설의 흔적이다.
검룡소와 황지를 보았다면 태백산(太白山·1,567m)으로 가보자. 태백산 철쭉은 전국의 여러 철쭉 명산 가운데 가장 늦게 피는 편이다.
정상 부근의 철쭉은 보통 6월 초쯤에 만개하는데, 올해엔 최근 계속된 영동지방의 이상저온 현상으로 예년보다 7~10일 가량 늦다. 따라서 천제단과 장군봉 사이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 분수령의 철쭉은 15일을 넘기더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엔 삼국 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천제단(天祭壇, 중요민속자료 288호)이 있다.
한편, 천제단과 망경사 사이에 있는 단종비각에선 억울하게 죽은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된 조선 단종의 슬픈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동해의 용왕신이 거주한다는 망경사 용정(龍井)도 산행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 이 샘물은 '한국의 명수 100선' 가운데 으뜸으로 꼽힐 정도로 물맛이 빼어난데, 개천절에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낼 때 제수(祭水)로 쓰고 있다.
[태백]
천년병화 불입지지(千年兵禍 不入之地)라는 이상향, 태백 160리. 태백(太白)은 정감록에 '이상향'으로 지목될 만큼 첩첩산중의 고원에 자리잡은 곳으로, 사실 내륙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지 않고서는 그곳을 갈 수가 없다. 현재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탄광지대에서 화려한 카지노 업계를 유치하여 경제적 발전을 꾀하고자 애쓰는 태백과 사북, 고한, 정선 지역 주민들의 고난과 모순이 길거리에서도 역력하게 보인다.
태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제 1의 광도(鑛都)이다. 일제 무렵,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조선총독부 보유 탄전의 광업권을 인수하여 장성의 석탄을 캐낸 것이 탄광의 시작이다. 태백의 연감을 들추어보니 1981년의 광부 수가 무려 19,375명에 달했다 한다. 집계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2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 1987년 태백의 석탄 생산량은 640만 톤이나 되어 전국 생산량의 30%에 이르렀다. '지나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태백에 시가지가 형성되고 1981년 장성·황지읍이 삼척군에서 갈라져 나와 태백시로 승격된 것은 오로지 탄광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이제 흉물스럽게 버려진 탄광과 빈집을 뒤로 한 채 저마다 진폐를 쿨룩이며 대처로 떠난 광부들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또한 시내 중심부의 연화산 자락에 세워진 산업전사위령탑에는,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광산노동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쑤아밭령]
노루목이다. 과거에 대간을 넘나들던 고개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는 전혀 아니다. 잡목 사이로 대간길만 반듯하게 지나간다. 단순한 참고점에 불과하다. '쑤아밭'은 지금의 '소나무밭'에 해당한다. '솔(松)밭'이 소리 변화된 말이다. 일부에서는 '사리밭'으로 보기도 한다. 단충나무가 많아서 '축치(?峙)'라고도 부른다.
[비단봉]
추전마을 고랭지채소 단지의 서족 봉우리다. 채소밭의 경계에서 능선길로 들어와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남쪽 아래로 추전역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정상에는 잡목이 많아 전망이 좋지 않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나타나는데 높지는 않다. (멀리서 보기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곡선 형태여서 붙여진 이름같다. 우리말 지명이다.
[매봉산] 1303m : 블랙야크 백두대간 인증
매봉산은 '매(수리의 일종)가 사는 봉우리'인데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음차한 것이다. '봉산(峰山)'은 봉우리의 이중표현이다.
원래 이름은 천의봉,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흘러들도록 물줄기를 만들어 주는 산으로 부산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을 떨구어 내는 산이기도 하다. 산경표에는 '수다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낙동정맥 분기점 : 블랙야크 낙동정맥 인증
[삼수령] 三水嶺, 피재 920m
강원도 태백시 적각동에 있는 한강·낙동강·오십천의 분수령.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三江:한강·낙동강·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해지는데,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긱 때문에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삼수령에서 북류하는 골지천은 정선 아우라지를 거쳐 남한강으로 이루어 황해로 이르게 되고, 남류하는 황지천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천동굴(하천수가 바위를 뚫어 생긴 동굴)인 구문소를 거쳐 낙동강을 이루어 남해에 이르며, 동류하는 오십천은 청정해역 동해에 이른다.
- 빗물의 운명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영으로 빗물 한가족이 대지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삼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 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주고 있다.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하는데,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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