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을 지던 니디(65)
사왓티 거리에서 변소를 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니디(Nidhi, 尼提)라는 사람이 있었다.
더벅머리에 낡고 해진 옷을 걸치고, 온몸에서 악취가 나는 그를 사람들은 손이 닿는 것조차 싫어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다와 함께 걸식하고 일을 때였다. 니디가 인분이 가득한 무거운 통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뒤늦게 부처님을 발견한 니디는 급히 비켜서려다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벽에 부딪힌 똥통이 박살나고 똥물이 사방에 튀었다. 부처님과 아난다의 가사에도 오물이 군데군데 묻어 버렸다. 니디는 오물이 흥건한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비볐다.
“부처님, 제발 용서하십시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니디에게 부처님이 손을 내미셨다.
“어서 일어나라”
어쩔 줄 모르는 니디의 손을 부처님이 잡아 일으키셨다.
“가자, 나와 함께 강으로 가서 씻자.”
“저같이 천한 놈이 어찌 존귀하신 분과 함께 걸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발우를 건네고 말없이 니디의 손을 끄셨다.
니디는 당황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강에 이르러 부처님이 손수 씻어주려 하자 니디가 물러섰다.
“안됩니다. 부처님처럼 성스러운 분이 저처럼 천한 놈의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만지시다니요.”
부처님께서 니디의 팔을 잡아당기셨다.
“니디야, 너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단다. 네 옷은 더러워졌지만 네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구나, 그런 네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난단다. 니디야,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니디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맑은 눈동자로 부처님을 우러러 보았다.
“왜 그리 급하게 피했느냐?”
“오늘 퍼내야 할 똥이 많아 정신이 없었습니다. 통이 하도 무거워 온통 신경을 쏟다보니 부처님이 오시는 줄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아예 돌아갔을 겁니다.”
구석구석 꼼꼼히 씻는 부처님의 손길에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니디가 말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거룩한 가사를 그만 더럽히고 말았네요.”
부처님도 미소를 보이셨다.
“니디야,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니?”
니디는 펄쩍 뛰었다.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미천한 제가 감히 어떻게 사문들과 섞일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맑은 물을 움켜 니디의 정수리에 부어주며 말씀하셨다.
“염려 말아라, 니디야,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너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으리라,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단다.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단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란다.”
니디가 밝게 웃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다.
“부처님, 저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똥을 푸던 니디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사왓티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세존께서는 왜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셨을까?”
“아니 그럼,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면 똥 푸던 그놈도 따라온단 말인가?”
“따라오는 게 대수겠어, 똥 푸던 그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판에.”
투덜거리는 사왓티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부처님은 타고난 종족이나 신분, 가진 재산이나 지식과 능력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도리어 부당한 세상의 잣대로 무시당하고 소외받던 사람들에게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셨다. 부처님의 따뜻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진흙속에 감춰진 보석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사왓티 출신의 쭐라빤타까(Culapanthaka)도 그런 보석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형 마하빤타까(Mahapanthaka)는 뛰어난 지혜로 정사에서 존경받았지만 그는 4개월 동안 게송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이었다. 결국 형은 동생의 게으름과 무지를 꾸짖고 그를 승원에서 쫓아버렸다.
기원정사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던 쭐라빤타까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부처님이셨다.
부처님은 그를 당신의 방으로 데려와 ‘때를 없애라’ 라는 한마디만 가르쳐주셨다.
걸레를 들고 늘 쓸고 닦으며 깨끗해지고 더러워지는 모습들을 관찰한 쭐라빤타까는 남모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였다.
그 후 비구니들에게 설법할 차례가 돌아왔을 때였다. 쭐라빤타까가 자신이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4구의 게송을 읊자 비구니들이 어린애들이나 외우는 게송이라며 비웃었다. 그러자 쭐라빤타까는 하늘로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신통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는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면 아무리 쉽고 간단하더라도 반드시 한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법사였단 꾸마라깟사빠(Kumarakassapa)역시 부처님의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면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잉태한 사실도 모르고 출가한 비구니였다.
비구니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라자가하 승가에 파란이 일었다. 당시 라자가하 승가의 책임자였던 데와닷따는 그녀에게 추방을 명령하였고, 그녀는 부처님이 머무는 사왓티로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처님은 사왓티의 승가를 소집하고, 위사카를 비롯한 사왓티 우바이들의 도움을 얻어 그녀의 임신 시기를 밝히게 하였다.
그녀의 결백은 입증되었고 그녀는 승가에 남도록 허락받았다.
그녀에게서 태어나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의 보살핌속에서 자란 아이가 꾸마라깟사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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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나한전)에 들리면 주리반특가의 환한 웃음이 마치 어린아이마냥 천진스러워 보이며 친근함이
느껴지는 건 이미 스님으로부터 강의시간에 많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