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김장철이 오기 전에 배추 김치 대용으로 만들어 먹는 것 중에 하나가 얼갈이 겉절이일 것입니다. 얼갈이를 김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먹기 보다는 대충 만들어 먹는 방식인 겉절이를 해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갈이는 판매하는 단위가 1단, 2단 그런 식으로 '단', 그러니까 묶음이 단위가 되지요. 배추는 포기가 단위이지만요. 그런데 얼갈이는 씻을때만해도 양이 제법 많은데 그것을 양념을 해서 용기에 넣어두면 오래지 않아서 밑으로 푹 꺼져버리는 것을 알수 있지요. 마치 허풍쟁이같은 모습입니다. 어쩌면 허탈감같은 것을 느끼게도 하고, 사람 같으면 '참 싱거운 사람이네..'하는 느낌을 연상케도 하지요. 실속이 없는듯한 빈강정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얼갈이를 양념을 잘해서 겉절이를 만들어 가지고 보관을 잘 해 두었다가 먹으면 그 맛도 참 일품이지요. 약간 익은듯 할 때가 가장 제 맛을 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요.. 그러니까 볼품없이 보이는 얼갈이도 만들기만 잘하고 알맞는 환경에 보관을 잘만하면 배추김치에 못지않는 명품의 김치 대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인간이 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채소와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9).
그러다가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물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오직 노아의 여덟 식구만 남겨 두셨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려서 부터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악을 행할까 하는 것임을 아시고 이 땅에서 인류가 살아가기에 더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셨지요. 인간의 악한 심성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이 자비가 없으셔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1:22).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서 더 많은 영양의 보충이 필요함을 아시고 육류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채소만 먹을 수 있었지요. 노아에게 그렇게 고기도 먹도록 허락하셨지요. 그 후손들인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2:3).
채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처음 부터 먹게 하신 기본적인 식물이지요. 그래서 채소가 먹거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즈음같이 채소값이 비싸고 기후 환경의 변화로 재배하기도 쉽지 않아 채소를 마음같이 먹을 수가 없어서 걱정거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볼품없어 보이는 얼갈이같은 채소도 우리의 식탁에서는 소중한 손님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채소인 얼갈이가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얼갈이 같은 뜻의 표현이 있지요. 바로 '얼간이'입니다. '아유, 이 얼간이 같은 뭐뭐야!',하는 식의 말을 하기도 합니다.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요. 한 사람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언사이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한글 사전에는 얼간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 된 사람'
그러니까 생긴 모습도 못나 보이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거지, 그리고 사물을 이해하는 수준도 미흡하고 사회성도 미숙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을 일걸어 하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이 보통의 사람 보다 더 나은 것이 분명 있습니다. 순진하다는 것입니다. 속이거나 거짓되지 않은 면이 보통 사람들 보다 오히려 더 나을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더 인간적이고 더 인격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얼간이같이 보이는 사람도 분명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하물며 영혼을 넣어 주신 사람이겠습니까? 얼간이같은 사람도 분명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존재가, 그 인격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더욱 그 인격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형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을 일겉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여기서 '라가'라는 말의 뜻은 '얼간이'와 같은 뜻입니다.(새번역 성경). '미련한 놈'은 '바보'라는 뜻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새번역 성경). 그러니까 두 말의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어느 사람의 인격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는 곧 그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또한 죄인된 인간을 구세주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끝내 믿지 않겠다는 불신의 행동이기 때문이지요.그래서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지옥에까지 떨어지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간이같이 미련하고 덜떨어지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런 사람을 얼간이라고 흉보고 비웃으며 예수를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이 더 복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얼간이같은 사람을 이렇게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3).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가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 부터 비난과 오해와 욕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것이 마치 미련한것 같이, 얼간이같이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음을 알고 믿을 때, 전혀 그런 것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오히려 자랑이되고 기쁨이 될 뿐입니다.
맛있는 얼갈이겉절이처럼 이 세상에 맛을 내는 얼간이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