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창(小倉)과 소창의(小氅衣)
소창은 우리나라에서 1900년경부터 목화로 자아낸 실을 사용해 성근 평직으로 제직한 면직물이다. 재질이 매우 부드럽고, 수분흡수율과 항균성 등이 우수하다. 또한 열전도율이 매우 크면서 피복률이 매우 낮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23수로 제직한다. 이때 ‘수’는 실의 굵기를 나타낸 것으로, 목화솜 1g으로 만드는 길이를 말한다. 즉 23수는 목화솜 1g으로 23m를 만들 정도의 굵기로 제직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면직물보다 가볍고 얇으며 통기성이 좋아서 빨리 마르고 세탁할수록 부드러워지는 특징이 있다. 일반 의복용보다는 속옷·손수건·배냇저고리·행주·이불보·거즈 등 피부와 맞닿는 직물, 즉 위생성이 강조되는 제품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소창의 어원을 찾는 과정에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실록高宗實錄』 등 고문헌에 군복이나 경찰복 등 제복과 바지에 고구라古舊羅 직물을 사용한 점, 고구라는 일본말 고쿠라오리小倉織의 줄임말로 명칭이 유사한 점, 고구라가 현재의 후쿠오카현福岡縣 기타큐슈北九州시에 소재한 소창성小倉城과 관련 있고 당대의 소창 지역을 대표하는 직물인 점,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국내에 고구라 직물 명칭이 등장하는 점 등으로 인해 일본의 고쿠라오리 옷감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의 고쿠라오리는 경사의 밀도를 매우 촘촘하게 제직해서 위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이 효과로 경사에 의한 줄무늬가 뚜렷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런 외관이 우리나라의 소창과 매우 다른 점이다. 이 밖에 소창의 어원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직령포 중 하나인 소창의小氅衣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창직물은 강화·의정부·경기도 광주·이천·대전 등지에서 생산되어 왔으나 현재는 대부분 중단되고 강화도 지역에서만 화문석·인삼과 함께 특산품으로 제직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직물사업 발전계획이 수립된 후 1916년 강화직물조합이 설립되고 1933년 조양방직, 심도직물, 이화직물, 평화직물 등 60여 곳의 크고 작은 직물 공장이 들어섰다.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직물산업이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 특히 조양방직은 소창과 함께 1937년경 인견 직물을 제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이며, 1958년 폐업하였다.
현재 조양방직 공장터는 공장을 개조하여 미술관 및 카페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일부 공간은 강화도 조양방직의 역사를 조명하는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어 강화도 직물 역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명소가 되고 있다. 그리고 강화도에는 1938년에 건축된 한옥과 염색공장이었던 평화직물 터를 2016년에 매입하여 리모델링한 후 소창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소창 체험관은 화문석을 비롯한 강화도의 전통 직물산업 역사를 체험하는 공간으로서 방문객 대상으로 소창 손수건 스탬프 체험, 소창 직조 시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소창 제직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사의 설명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합성섬유가 대규모로 생산되며 대구로 직물산업의 중심이 옮겨 가고 중국산 면직물이 대량 수입되었다. 2019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사한 근현대생활문화 보고서에는 강화도에 9개의 소창 제직공장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동되고 있다고 하였다. 2022년 현재 직물을 제직하는 기술자는 대부분 연로한 상태이며, 7개 공장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화도에서 현재 생산되는 소창은 일반적으로 면사 구입하기, 원사 풀기(작태 짓기), 정련 표백하기, 풀 먹인 후 건조하기, 해사解絲하기(와인딩하기), 정경整經하기(나름하기, 날기), 보빈 감개하기, 통경通經하기(연경하기), 직조하기, 검단하기 등의 과정을 거쳐 제직된다. 면사는 파키스탄·인도·베트남·중국에서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대부분 가격 대비 품질이 가장 우수한 파키스탄의 면사 23수를 구입하여 사용한다.
수입한 면사는 깔때기형 콘에 감겨 있는데 이것을 풀어서 일정 길이로 물레에 감는 공정, 즉 원사를 풀어서 실타래에 감는 공정을 가장 먼저 한다.
다음은 면사에 묻은 먼지와 이물질을 제거하고 실의 신축성을 높이기 위해 실을 삶아서 정련 표백 과정을 실시하는데, 옥수수 전분으로 풀을 쑤어 삶은 실에 먹인 후 계절에 따라 3~10일간 건조시킨다.
정련 표백 후 건조한 실타래를 콘에 되감는 공정인 해사 과정을 마친 후 일정한 길이의 날실을 필요한 수만큼 가지런하게 펴서 빔에 감는 작업인 정경을 한다. 이 과정은 직물의 길이, 폭, 조직, 섬세도를 정해 경사 길이를 계산해서 작업한다.
다음 공정은 보빈 감개 작업으로, 위사로 사용할 실을 보빈bobbin에 감는 공정이다. 경사와 위사가 모두 준비되면 짜다 남은 역직기의 실과 새로 거치한 도투마리 실을 순서대로 연결하는 통경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은 숙련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 모든 직조 준비 과정이 끝나면 직조기를 작동하여 소창을 제직하게 된다. 이후 제직한 소창을 마 단위로 접고 필 단위로 끊어 내는 공정인 검단 과정을 그치면 소창은 동 단위로 묶이게 된다. 한 필 단위의 소창 10개를 한 동이라 하고, 동은 판매의 기본 단위가 된다. 이렇게 생산된 소창에 상표를 붙여서 판매한다.
특징 및 의의
소창은 국내에서 1900년경부터 면방적사를 사용하여 성근 평직으로 제직한 면직물이다. 소창은 기저귀를 비롯한 속옷, 손수건, 배냇저고리, 행주, 이불과 베개의 안감, 거즈 등에 사용된다. 그 외 무속의례 및 불교의례 행사에도 사용되고 있다.
‘사람은 소창을 살아서 한 필, 죽어서 한 필 사용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는 어릴 때 기저귀로 한 필을 사용하고 죽고 난 후에는 관 끈으로 한 필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소창은 일상에서 의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에 가깝게 존재하는 직물이다.
강화도에서 1917년 강화직물조합이 설립되면서 강화도가 우리나라 직물 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되고, 소창은 인견과 함께 1990년대 중반까지 강화 지역에서 성황리에 생산되었다. 그러나 2022년 현재에는 강화도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운영되는 소창 제직공장이 7곳뿐이며, 강화도 특산 면직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강화의 직물 소창(장장식·김나라, 국립민속박물관, 2019), 우리 옷감 이야기 103(강순제 외, 교문사, 2012), 현지조사자료(장현주, 강화소창체험관, 2022.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