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노동자상-돈의문, 전차 381호, 해머링 맨
*문학인신문 기행에세이 23회/차용국
인왕산에서 내려온 한양도성 성곽은 서울시교육청 담벼락에 매달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이내 끊어지고 만다. 원래 이곳에는 도성의 서대문이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대중국 교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서대문은 도성의 8개 문 중에서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가장 왕성했던 문이다.
서대문은 여러 번 고쳐 지었다. 조선 태종이 낡은 문을 전면 개축하여 ‘서전문’이라 했고(1413년), 세종이 또 새로 지어 ‘돈의문’이라 했는데(1422년), 뭇사람은 ‘새문’ 또는 ‘신문’이라 불렀다. 현재 이곳 일대를 ‘신문로’란 지명으로 부르게 된 유래다. 하지만 그 ‘새로운 문’은 1915년 3월 도로 확장공사로 철거되어, 지금은 지명의 이름으로만 남아있고 형체는 없다.
이곳에 조성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조선시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대사의 생활 풍경이다. 만화방이 있고, 한물간 게임방이 있고, 뽑기를 굽는 가게가 있다. 봄과 가을에 이 마을의 작은 마당에서는 축제를 연다. 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막걸리 박물관이다. 온갖 막걸리병이 진열되어 산행을 마치고 들리면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나서 그냥 갈 수 없게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전차 381호’가 서 있다. 서울에서 전차는 1899년 5월 17일 운행을 시작했다. 운행구간은 서대문에서 청량리였다. 1960년대 초반까지 전차는 서울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버스와 자동차가 늘어나자 전차는 오히려 교통의 방해물이 되었다. 결국 서울시는 1968년 11월 전차 운행을 일제히 중단했다. 전시된 ‘전차 381호’는 서울에서 마지막까지 운행했던 전차다.
흥국생명 빌딩 앞에는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 서 있다. 스틸 알루미늄으로 만든 높이 22미터, 무게 50톤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원래 해머링 맨은 미국의 조나단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가 1979년에 발표한 나무조각상으로, ‘워커(Worker, 노동자)’라는 작품이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해머링 맨이 도시의 실외 공공장소에 설치되면서 재질과 크기가 변형되어 미국 시애틀,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 등 11개 도시에 설치됐다. 서울 해머링 맨은 2002년 6월 4일에 설치했다.
서울 해머링 맨의 특징은 동적인 움직임이다. 그는 오른손으로 35초마다 한 번씩 망치질한다. 평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과 휴일에는 쉰다. 해머링 맨은 노동의 숭고함과 가치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저토록 홀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내리치는 망치질이 안쓰럽고, 그 기계적인 울림이 환청처럼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의 단순 반복적 몸짓이 지난 세기 산업사회의 외로운 삶의 이미지로 비치기 때문이다.
1979년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눈에 비친 노동자상과 그로부터 4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도 변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여 보편적인 문화의 이기로 자리 잡아갈 때, 사람의 삶의 방식과 가치와 제도 등에 변화가 생기고, 결국 사람의 삶의 총체인 문화가 바뀐다. 오랜 노동의 주역들이 퇴장하고 낯설어 보이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노동자상은 어떤 모습일까?[차용국의 기행에세이] 새로운 시대의 노동자상 -돈의문, 전차 381호, 해머링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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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렸다가
다시 떨어지고 마는
그래서
다시 밀어 올리는 반복,
그 영원한 형벌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으로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