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아름다웠다고 자정에 알았다 / 송문영
퇴근을 하고 밥을 먹습니다
이른 퇴근이지만 늦은 저녁입니다
밤하늘을 보니 또 무언가
생략되는 것 같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시집을 읽어야 했지만
시는 쓰는 쪽을 더 좋아했고
아침은 바라지 않게 되었기에
노을 얘기를 들을 때는 조금 슬펐습니다
사는 것이 부끄러운 요즈음
돈을 벌겠다면 많이 벌라고 다그칩니다
집으로 가는 걸음이 무거운 것도
주머니가 가벼워서 그런 것 같아
폐차는 며칠 더 미뤄야겠지만
2백만 원짜리 중고차는 주인을 닮아
50킬로미터에도 시름시름 앓습니다
하루를 끝내기도 어려워 술을 따르면
빈 잔이 채워지는 소리로 빈집 그러나고
뱉은 숨이 돌고 돌아
이제는 혼자라는 것도 운명 같습니다
잡념이 끊이지 않아서 다시 시집을 듭니다
읽히지 않아서 쓰려다가 그만둡니다
내일은 일찍 퇴근했으면 하다가 그만둡니다
그만두고 싶은 건 그만둘 수 없어서
노을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둡니다
[알림]전태일문학상·전태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전태일재단과 경향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제32회 전태일문학상 당선자와 제19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자가 선정됐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을 올곧게 그려낸 신인 작가들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제32회 전태일문학상 시 : 송문영 ‘노을이 아름다웠다고 자정에 알았다’ 외 2편 소설 : 최희명 ‘꽃비 내리는 날’ 르포 : 양성민 ‘꿈꾸는 배...
www.khan.co.kr
남서향 집 / 송문영
집이 좁아
가로등 빛이 구석까지 들면
숨을 곳이 없어 움츠렸던
빼앗긴 외로움
폭염은 끝날 줄 모르는데
벌레들은 전기세를 나눈 적이 없고
반짝이던 하늘도 저당 잡혀서
별도 헤아리지 못하는 밤
이불 아래 몸을 묻어도
마침표 찍지 못한 문장들과
창백한 얼굴들이 꿈에 나오면
저항도 못 하고 또 하루를 자란다
여명이 등 떠미는 새벽
살아남은 이슬로 목을 축이고
혼자 살기 딱 좋다던
6평짜리 원룸 월세를 구하러
녹음이 옅은 정글 숲으로
움츠리러 간다
기록적인 폭염 / 송문영
얼음물로 가난을 달래는 사이
여름은 깊어 간다
미처 늙지 못한 몸이 늦잠으로 꾼 꿈은
한 장 복권을 사던 일
숫자 몇 개에 사람들이 메여서
어찌어찌 돌아가는 도시가
아직 자유롭다고 믿는다
태어나 무엇이 되라면
우선 부자가 되겠노라고
은밀하게 읊조리던 목소리는
더 웅장했어야 옳았다
사소한 것에 대가가 커서
무언가 불합리한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고
이미 충분히 피곤해서
그저 5분만 더 잤으면 하는데
늦잠이 길어질수록
여름은 늘어진다
더워지고
가난해진다
기록적인 폭염이 예고되고
사람들은 같은 꿈을 꾼다
카페 게시글
신춘문예 등 문학상 수상작
제32회 전태일문학상 / 송문영 [출처] 제32회 전태일문학상 / 송문영|작성자 ksujin1977
김수엽
추천 0
조회 22
24.12.31 10:05
댓글 0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