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열전(9) 연오랑과 세오녀
황원갑 <한국사인물연구회장>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는 신라 제8대 임금인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때에 동해 바닷가, 오늘의 경북 포항시 영일만의 한 갯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연오랑의 랑은 사내란 뜻이고 세오녀의 녀는 아내란 뜻이니 이름과는 상관이 없고, 이들 부부에게 성씨가 없는 까닭은 그 당시 평민들에게는 성씨가 없었기 때문이다.
때는 아달라이사금 재위 4년, 서기 157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연오는 바닷가에 나가 미역을 따고 있었다. 금실 좋은 부부가 늘 함께 붙어 다니며 일을 했는데, 그날은 마침 세오가 집에서 비단을 짜고 있었기에 연오 혼자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그날 아침에 두 부부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여보야, 나 혼자 두고 오래 있지 말고 퍼뜩 들어와야 한데이, 알았제?”
“하모 하모! 니 혼자 놔두고 우찌 오래 있을끼고? 내 퍼뜩 다녀올끼구마.”
그렇게 아내 세오만 두고 집에서 나온 연오가 부지런히 미역을 따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일어나 숨을 돌리다가 요상한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것은 파도가 출렁댈 때마다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얼핏 보니 집채만큼 커다란 바위였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연오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괴물의 정체가 바위가 아니라 집채처럼 커다란 고래였기 때문이다. 연오가 난데없이 나타난 고래를 보고 놀라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다음 순간 더욱 기절할 일이 벌어졌다. 고래가 연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사람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니는 고래 첨 보나? 그렇게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지 말고 퍼뜩 내 등에 올라타그레이!”
“아니, 고래가 사람의 말을! 니는 도대체 고래가, 귀신이가?”
“우헤헤헤헤! 말하는 고래 첨 봤나? 잔소리 말고 퍼뜩 올라타라카이!” 그러더니 고래는 거대한 꼬리를 철썩 휘둘러 연오를 자기 등위에 태우더니 쏜살같이 파도를 가르며 한바다로 나가 동남쪽으로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오는 그렇게 왜구에게 잡혀가듯 고래에게 납치되어 왜국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무렵 일본열도는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고, 나라라고 부를 만한 번듯한 나라도 없었다. 왜국이니 일본이니 하는 이름은 훨씬 나중에 생긴 것이다. 그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오늘의 일본 북부 여기저기를 개척하고 미개한 원주민들을 복속시켜 저마다 나라를 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소국이 수백 개나 되었다. 나머지 지역은 아직도 미개한 원주민이 씨족이나 부족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오를 태워간 고래는 어느 바닷가 마을 앞에 그를 내던져버리고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다시 깊은 바다로 돌아가고 말았다. 연오가 해변의 백사장에 상륙하자 마침 거기에 나와 있던 키 작은 왜인들이 이상한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이 우하고 몰려들었다.
“히야,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노 처음 보무니다!”
“그렇스무니다. 나 아까부터 집채만큼 커다란 고래가 이 사람이노를 싣고 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스무니다!”
“당신 이상한 사람이노 어디서 왔소까?”
사람마다 연오를 둘러싸고 그렇게 물었다. 사실 연오도 고향에서는 한 가락 하는 사내였다. 그래서 이왕지사 이렇게 요상한 일에 말려든 바에야 한 번 통 크게 나가보자 하는 배짱이 생겨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신라에서 온 연오라카는 사람이구마. 느그들 뭐 고민거리 있음 마카(모두) 털어놔보래이. 내가 화끈하게 해결해주꾸마!”
그때 그 작은 해안국에는 왕이 없었다. 각 씨족 우두머리들의 세력이 고만고만해서 어떤 족장도 모든 주민을 복속시켜 왕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오가 그 땅에 건너갔을 때 그들은 마침 왕을 선출하는 부족대회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그 나라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그만 나라에 대선후보, 아니 국왕후보가 무려 12명이나 나서서 머리가 터져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연오가 도착했을 때 그 가운데 2명은 세 불리하여 도중하차를 했고, 나머지 10명이 왕 자리를 넘보며 한편으론 온갖 말도 되지 않는 공약을 내걸고, 다른 한편으론 다른 후보들을 음해 비방하면서 맹렬히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느그들 오늘 참말로 운수대통한 줄 알그래이!”
연오가 큰소리쳤다.
“대국 신라에서 오신 신인(神人)께서 그 무슨 말씸이시무니까?”
“느그들이 왕을 뽑지 못해 하마(벌써) 여러 날을 두고 후보 간에 온갖 비방전, 모략전을 벌이며 시끄럽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내사 신령님한테 듣지 않았겠노? 그래서 내 그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줄라꼬 왔다 그 말씸이제!”
연오가 이렇게 일장연설을 하자 왜인들은 우두머리끼리 쑥덕쑥덕 공론을 하더니 마침내 연오에게 나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
“신령스러운 고래를 타고 오신 거룩한 신인이시여! 제발 우리의 임금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스무니다!”
“그래 그래, 참말이지 생각 한 번 잘 했구마!”
연오가 승낙하자 수백 명의 주민 모두가 그 자리에 납죽 엎드려 새로운 왕에게 복종을 맹세하며 큰절을 올렸다. 연오는 그렇게 해서 팔자(?)에도 없던 왜 열도 한 소국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본국에 남아 있던 연오의 아내 세오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오는 그날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갈 때까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바닷가로 달려가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남편 연오가 물속에 들어가려고 바닷가에 벗어 놓은 신발을 발견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세오가 남편의 신발을 찾아 들고 혹시 낭군이 실족하여 바다에 빠져 죽기라도 했는가 하여 마구 울부짖으며 정신없이 바닷가를 헤매고 있는데, 전에 연오를 납치해갔던 그 정체불명의 괴물 고래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 신령스러운 고래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세오를 태우고 바다를 건너 왜 열도로 건너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서 연오 왕에게 급히 보고를 했고, 그렇게 해서 금실 좋은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졸지에 낭군을 잃고 청상과부가 될 뻔했던 세오는 팔자가 뒤집어져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귀하신 몸 왕비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연오와 세오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은 것이 이야기의 끝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 그게 아니다. 연오와 세오 부부가 신라 땅에서 왜 열도로 건너가자 갑자기 해와 달이 정기를 잃어 빛이 없어져버리는 괴이한 천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신라는 온 나라가 갑자기 캄캄 지옥으로 변해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나고 말았다. 아달라이사금이 급히 일관에게 이 재앙이 어찌된 영문인가 알아보라고 하명했다. 그러자 일관이 아뢰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는 우리나라에 있던 연오와 세오라는 해와 달의 정기가 왜 땅으로 건너갔기 때문인가 하옵니다.”
“우찌 그런 괴변이! 그럼 빨리 그 부부를 다시 데려오지 않고 뭐 하고 있노, 엉?”
이사금은 급히 왜로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에게 귀국하도록 권했다. 하지만 연오와 세오가 어디 예전의 그 갯마을 촌놈 부부던가. 왕좌에 앉아 사신을 맞은 연오가 말했다.
"어허, 내를 보고 신라로 돌아오라꼬? 그렇게 쉽게는 안 되제! 내가 여기에 와서 임금이 된 건 하늘이 시킨 일이니, 우찌 내 마음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교?“
그리고 연오 왕은 이렇게 덧붙였다.
“보소. 사신 양반! 여기 우리 세오 왕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갖고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보소. 그러면 혹시 하늘이 감동을 먹어서 예전과 같이 일광 월광을 다시 보내줄지 모리는 일이제. 에헤헤헤헤!”
사신이 돌아와서 아뢴 뒤에 연오의 말대로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아달라이사금은 천심인 민심을 안정시켜 나라사람들에게 내쫓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오가 짜서 보낸 그 비단은 황궁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며,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했으니 그곳이 바로 오늘의 영일만 호미곶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러한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에 따라 포항에서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상을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세워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해마다 축제를 벌이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국으로 건너갈 무렵 신라의 사정은 어떠했는가. 당시 임금인 아달라이사금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의 적자로서 키가 7척으로 풍채가 뛰어나고, 코가 크고 얼굴이 기이하게 생겼다고 한다. 한마디로 영웅호걸의 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치세는 별로 태평스럽지 못했다. 재위 3년에 경북 풍기에서 충북 단양으로 통하는 계립령을, 재위 5년에는 죽령의 길을 뚫어 북진의 의지를 보였으나, 재위 8년의 흉년과 재위 12년의 반란 등으로 민심이 흔들리고 정국이 뒤숭숭했다. 게다가 반란의 우두머리 아찬 길선(吉宣)이 백제로 달아나는 바람에 백제와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안으로는 왕비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까지 간통을 하여 다른 사내의 씨를 낳는 일도 벌어졌고, 재위 13년에는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국으로 건너가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러한 일식이나 월식 같이 고대에는 천재지변에 해당하던 대사건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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