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
[내용] 옛날에는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과거를 볼 때가 되면 오로지 급제를 위해 수년동안 공부를 한 양반집 자제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없이 들끓고 떠들어대던 과거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 과거 시험장의 난장에 빗대어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 없이 된 상태를 일컬어 난장판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우리말 유래 사전 >
[참고] 난장(-場) : 시골에서 정한 장날 이외의 특별히 며칠간 터놓은 장, 한국의 장은 18세기 이후 농민의 농업생산에 필요한 미곡·농기구·면화·면포 등이 주요한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발전하여,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천 여 장이 설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5일장 체계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5일장 외에도 특수지역 및 특수산물이 한꺼번에 많이 생산되는 지방에서는 난장이라는 부정기적인 장이 열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난장을 여는 것을 '난장을 튼다'라고 한다. 난장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동안만 열리는 정기적인 장과는 달리 때로는 물자가 생산되는, 또는 집하되는 기간에 따라 짧게는 10일, 길게는 2개월까지 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마을의 흉액을 예방하려고 난장을 트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마을에 흉년·물난리·산사태·화재·호환(虎患)·돌림병 및 지방관의 죽음 등과 같은 흉액이 자주 일어나 마을이 폐촌될 위기에 처할 때 이를 예방하려고 난장을 튼다. 난장을 열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그 기세로 마을의 흉액을 일으키는 나쁜 귀신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밖에도 난장과 비슷한 형태로는 황해도 연평의 조기 파시(波市)와 같이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인 파시, 처음에는 한 해에 봄·가을 두 차례씩 열렸으나 뒤에는 가을 한 차례만 열어 약재만을 다룬 약령시(藥令市)가 있다. 대규모 난장의 경우는 주로 예성강의 고량포, 남한강의 목계, 금강의 강경, 영산강의 영산포, 섬진강의 광양·하동, 낙동강의 초계밤말[草溪栗旨]·안동 등의 포구에서 열렸는데, 쌀·보리·콩 등의 곡물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 지방의 주요 특산물이 함께 거래되었다. 이러한 난장에는 거래 물량이 많은 만큼 각지에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소비와 유흥적 낭비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렴치한 행위가 난무하는 폐해도 심하였다.
[예문] ▷ 그의 아파트에는 가구라고는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깨져 있고 먼지가 쌓여 있으며, 온통 난장판이다. 거실 한가운데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는 원고, 책, 신문, 아내의 바느질거리에서 나온 찢어진 천 조각들, 이가 빠진 찻잔, 더러운 스푼, 칼, 포크, 양초, 잉크병, 유리컵, 파이프, 담뱃재들이 한 테이블 위에 뒤죽박죽으로 놓여 있다.” <2006한겨레--너무나 인간적인 마르크스> ▷ 난장판이 벌어지다 ▷ 난장판을 벌이다 ▷ 회의가 난장판이 되다 ▷ 저녁상에서는 조무래기 애들 여덟이 떠들고 싸우고 울고 웃고 난장판을 쳤다.≪유진오, 구름 위의 만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