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每日, daily)을 마치 그것이 네 최초(最初, initial)의 날인 동시에 네 최후(最後, final)의 날인 것 같이 살아라.“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Gerhart Hauptmann:1862년 ~ 1946년 독일의 극작가/소설가)①의 말입니다.("Live every day as if it were your first day and your last day at the same time.“ Gerhart Hauptmann (1862-1946), German playwright and novelist.)
이 말은 참으로 힘찬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이렇게 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This is a very powerful word. It's easy to say this, but it's really hard to live like this.)
매일 매일을 내 생의 최초의 날인 동시 에 최후의 날처럼 산다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최고도의 성실(最高度의 誠實, the highest level of integrity)과 정열과 감격(情熱과 感激, passion and emotion)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To live each day like the first and last day of my life, Living your life with the highest level of sincerity, passion, and emotion.)
그것은 한없이 진지(眞摯, sincere)한 인생의 자세(人生의 姿勢, the way of life)입니다. 오늘이 나의 인생의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해 봅시다.(It's a very serious attitude in life. Let's say today is the first day of my life.)
우리는 큰 희망과 많은 기대와 진지한 계획과 더할 수 없는 충실감(忠實感, a sense of fulfillment) 속에서 하루의 생활을 시작할 것입니다.(We will begin our day with great hopes, great expectations, serious plans, and a sense of unparalleled fulfillment.)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Everything is new and everything will have an important meaning.)
우리는 실수(失手, error)하지 않으려 고 조심할 것이요 잘해 보려고 애쓸 것입니다.(We'll be careful not to make mistakes. I'll try to do well.)
오늘이 나의 인생의 최후(最後, last)의 날이라고 생각합시다. (Let's think that today is the last day of my life.)
우리는 빈틈없는 마음과 절실한 감정(切實한 感情, a feeling of desperately)과 최선의 노력(最先의 努力, the utmost efforts) 을 다해서 나의 하루를 살 것입니 다.(We will live my day with a shrewd heart, desperate feelings and best efforts.)
우리는 인생의 열애자(熱愛者, a lover of love:이노우에 카즈오 감독, 오카다 마리코 프로듀스/출연. 나카무라 신이치로의 1960년 소설 원작.)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깊은 의미를 찾고 일 분 일 초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We will be lovers of life.I will find deep meaning in everything and not waste every minute and second.)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이 마치 영 원히 계속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 아갑니다. (Many people live with a feeling that their lives will continue forever.)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동시에 마지막인 날입니다.(I'm not coming back today. Today is the first and last day of my life.)
절대로 두 번 있을 수 없는 오늘 입니다. 내일은 내일이지 결코 오늘이 아닙니다.(It's a day that can never happen twice. Tomorrow is tomorrow, not today.)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인 것처럼 성실과 정열(誠實과 情熱, sincerity and passion)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I have to live with sincerity and passion like the first and last day of my life.)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 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Time waits for no man. No one can live my life.)
= 華谷·孝菴의 좋은글 중에서 =
* 주석(註釋, annotation)
①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년~1946년)
[요약(要約, summary)]
o 직업:독일의 극작가·시인·소설가.
o 출생:1862. 11. 15, 프로이센 슐레지엔 바트잘츠브룬
o 사망:1946. 6. 6, 아그네텐도르프
o 국적:독일
[본문(本文, the text)]
19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유행하던 슐레지엔의 한 휴양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그곳 주요 호텔의 소유주였다.
1880~82년 브레슬라우 예술교육원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1882~83년에는 예나대학교에서 과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883~84년 로마에서 조각가로 일하다가 1884~85년 베를린에서 공부를ㅡ 계속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시인과 극작가가 되려는 결심을 했다.
1885년 유복한 마리 티네만과 결혼하 여 베를린 근교의 에르크너에 정착해 정치·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 손을 대는 동시에 자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흥미를 지닌 일군의 과학자·철 학자·전위작가들과 교제했다.
1889년 10월 공연된 사회극 〈해뜨기 전 Vor Sonnenaufgang〉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긴 했지만 하우프트만 을 하룻밤 사이에 유명하게 만들 었다.
강한 사실주의 색채를 띤 이 비극은 19세기의 수사학적이고 고도로 양식화된 독일 드라마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고무되어 하우프트만은 유전이라든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곤경, 개인적 욕구와 사회 제약 사이의 충돌 같은 자연주의 적 주제를 다룬 뛰어난 극들을 빠른 속도로 연속 발표하면서 사회적 현실과 일상언어를 예술적으로 재생산 했다.
가장 주목받은 인간적 작품일 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에도 매우 비판적이었던 〈직조공들 Die Weber〉(1892)은 1844년 슐레지엔 직조공들의 폭동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극화한 작품이다.
〈평화의 축제 Das Friedensfest〉(1890)는 신경증을 보이는 가정 내의 소란스런 관계를 분석하고, 〈고독한 인간들 Einsame Menschen〉(1891)은 아내와 그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젊은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한 불행한 지식인의 비극적 종말을 그렸다.
하우프트만은 〈마부 헨셸 Fuhrmann Henschel〉 (1898)로 프롤레타리아의 비극 을 다시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가정생활의 스트레 스 때문에 병이 악화되는 한 노동자의 밀실공포증을 연구 했다.
그렇지만 비평가들은 그가 〈하넬레의 승천 Hanneles Himmelfahrt〉 (1894)에서 자연주의 신조를 포기했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학대받던 한 구빈원의 소녀가 죽기 얼마 전에 꾼 꿈들을 시적으로 환기시킨다.
풍부한 베를린 사투리로 씌어져 성공한 희극 〈비버 털 코트 Der Biberpelz〉 (1893)는 한 약삭빠른 여자도둑을 중심으로 그녀가 허풍스럽고 우둔한 프로이센 장교들과 대결해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아내와 불화상태에 있다가 1904년 이혼했고, 같은 해 배우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마르가레테 마르샬크와 결혼했다.
마르샬크와는 이미 1901년부터 슐레지엔의 아그네텐도르프에 있는 집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하우프트만은 자주 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여생을 주로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독일 자연주의를 정립했으나 후기 희곡에서는 자연주의 원칙들을 포기했다. 말년의 희곡에는 동화적이고 사가적인 요소들이 신비적 종교성 및 신화적 상징주의와 뒤섞여 있다.
〈카를 대제의 인질 Kaiser Karls Geisel〉(1908)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 개성의 근본적인 힘을 그린 작품과 당대인의 운명을 자연주의적 으로 ㅍ파고든 〈도로테아 앙거만 Dorothea Angermann〉(1926) 같은 작품이 병존한다.
하우프트만의 극작활동에서 마지막 단계는 〈아트리덴 4부작 Die Atriden-Tetralogie〉(1941~48)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이 4부작은 비극적 그리스 신화를 통해 하우프트만 시대의 잔인성에 대한 공포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 사회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하우프트만의 장편·단편 소설, 서사시들 은 극작품들과 마찬가 지로 다양하며 종종 주제면에서 내적으로 얽혀 있다.
〈그리스도 안의 바보, 에마누엘 크빈트 Der Narr in Christo, Emanuel Quint〉(1910)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현대판으로, 경건주의의 황홀경에 사로잡혀 있는 슐레지엔의 어느 목수 아들의 격정을 묘사한다.
그에 대비되는 인물은 하우프트만의 가장 유명한 소설 〈조아나의 이단자 Der Ketzer von Soana〉(1918)에 나오는 배교자 사제인데, 그는 이교적인 에로스 숭배에 빠진다.
초기 작가생활에서 하우프트 만 은 한결같은 노력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후기에 더 많은 작품을 써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고르지 않았다. 예컨대 야심적이며 환상적인 서사시 〈틸 오일렌슈피겔 Till Eulenspiegel〉 (1928)과 〈위대한 꿈 Der grosse Traum〉(1942)은 학술적 구조와 철학적·종교적 사상을 훌륭히 종합시켰지만 문학적 가치는 불확실하다.
만년의 몇 십 년 간은 우주론적 사변으로 인해 무대 위에서나 독자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던 인물들을 창조해내던 타고난 재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독일에서 누린 문학적 명성은 비할 데 없는 것이었고, 나치 정부는 그에게 거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는 독일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망명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순진했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남아 있었고, 슐레지엔 주변지역이 소비에트 적군에게 점령당하고 나서 1년 후 죽었다.
하우프트만은 20세기초 독일의 가장 탁월한 극작가였다. 그의 광대하고 다양한 문학적 생산에 통일적인 요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어린 관심으로, 이는 사회를 비롯한 다른 기초적 힘들에 의해 대개는 수동적으로 희생당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된다.
그의 극작품들, 특히 초기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자주 공연되고 있다. <끝>
첫댓글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m returning to Sambo, the illegal monk.
I pray with utmost heart that the holy and holy Buddha's robe and mercy light will shine on it.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