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쓰는 아이
나는 어디를 가든지 마당을 그리워한다. 꽃과 나무가 있고, 멍석에 콩과 고추 등과 젖은 짚단을 말릴 수 있는 마당 말이다. 밤에는 모깃불을 켜고 멍석에 앉아서 별 하늘을 보며 앞 집 아저씨 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 마당 말이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서 마당에 널려 있는 마른 짚을 묶어 부엌 구덕에 쌓고 싸리비로 싹싹 쓸면 꽃처럼 함박 웃는 그런 마당 말이다.
지금은 주어진 형편대로 살고 있지만 여유가 있으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마루에서 토방에 내려서면 휘영청 밝은 달이 보이고 마당을 기는 호박넝쿨과 호박꽃이 정겨운 초가삼간 집, 손바닥만큼 작은 마당에서 철따라 온갖 꽃이 피는 집. 뒤뜰에 감, 밤, 대추나무 가 있고 상추와 쑥갓, 아욱 몇 포기를 심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무엇보다 마당을 쓸고 닦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여섯 살 정도에 사글세 집에서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이십 평 정도로 작은 초가집이었는데 부엌, 안방과 웃방이 다였고 마루는 절반을 함석으로 막아서 곳간으로 썼다. 부엌 앞에서 대문 옆까지는 긴 네모꼴의 장독대가 있었고 대문 좌측에는 변소가 있었다. 집 우측에는 겨울 내내 밥을 짓고 불을 땔 커다란 짚가리가 항상 있었고 그 앞 조금 떨어진 곳에 닭장과 돼지막이 있었다. 돼지막 가까운 쪽 담장 아래 거름짜리가 있었고 추수가 끝난 후에는 나락 통가리가 곳간 앞쪽에 둥그렇게 만들어 져서 겨울을 났다.
마당이라야 별로 크지 않았지만 그 작은 집 마당은 초등학교 4학년 말까지 마음껏 뛰어놀며 쓸고 닦은 나의 꿈 집이었다.
5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이사 간 집은 마을에서 “새 집” 이라고 불리는 큰 집으로 4칸 겹집이었으며 대지가 300평이 넘었다. 새집 앞뒤마당을 쓸고 대문 입구 앞길까지 쓸려면 족히 한 시간이 걸렸다. 이 때부터 마당 쓸기는 노동이 되었고 운동이 되었다.
우리 옛집 마당은 동네 길보다 낮아서 인지 아니면 물 빠짐이 좋지 않아서 인지 짚가리 아래 쪽 짚단은 늘 물에 젖어 있었다. 젖은 짚은 바로 불을 땔 수가 없기 때문에 엄마는 아침에 짚을 마당에 널고 일하러 가시면서 마르면 걷어서 부엌에 쌓으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이지만 나는 아기를 보면서 틈틈이 짚을 뒤집어 주었고 오후에는 작은 단으로 묶어서 부엌에 쌓았다. 정성을 다해서 아무리 깨끗하게 짚은 거두어도 짚을 널었던 마당에는 검불들이 남기 마련이어서 마당이 지저분하였다. 어린 소견에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어서 큰 검불들은 손으로 줍고 작은 검불들은 싸리비로 쓸어서 거름짜리에 버렸다. 마당을 쓸며 살라는 운명이었을까! 시키지도 않은 마당을 혼자 쓸고 나서 땀을 흘리고 있을 때 아버지가 들어오시면서 “우리 딸이 마당 쓸었어. 마당이 훤해졌다. 잘 했다.” 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어린 내가 공들여서 마당 쓰는 것을 본 아버지는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일하는 기특한 아이라고 대견해 하셨고 사람들에게 내가 보통이 아니라는 말을 가끔 하셨다.
나의 마당 쓸기는 이렇게 젖은 짚을 말리고 거두는 일로 시작되었다. 비 오거나 궂은 날, 파종과 추수 등으로 분주한 날을 빼고 젖은 짚단을 펴서 말리는 일은 1년 내내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마당을 쓰는 아이가 되었다.
봄이면 논밭에 거름을 실어 나르고, 재를 퍼 나르면서 마당이 어지럽혀 졌다. 또한 모판을 만들고 모를 찌는 데 사용할 짚단을 챙겨 가느라 지저분해졌고 닭들이 나와서 똥을 싸고 거름짜리를 파헤치는 일로 소란스러워졌다. 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나오면 독새풀을 뜯어다 가늘게 썰어서 먹이고 병아리 모이를 주느라 열심히 쓸어도 깨끗해질 날이 없었다.
여름에는 보리타작을 하고 난 뒤에 바숴진 보릿대 검불들을 청소하는 일이 늘어났다. 게다가 마당에 나는 잔풀을 뽑아 거름짜리에 던지고 거름짜리에 나는 풀도 뽑아 주어야 했다.
여름방학에는 집 마당을 청소하는 것보다 마을 통학반의 지도로 동네 길을 쓸고 여름 과제물로 학교에 낼 잡초를 베서 건초를 만드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나는 우리 집 뒤에 있는 큰 길과 우측 옆과 앞에 있는 골목길을 쓸었다. 마을 큰 길에는 소들이 싼 똥 무더기가 여기저기에 있었는데 다행히 어른들이 일찌감치 치워 주어서 빗질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이 치지 않은 날에는 소똥을 담아들고 대부둑 둔덕에 버렸다.
가을에는 추수가 끝날 때 까지 마당을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부터 콩대나 깨, 고추 등을 부지런히 말려야 하고, 벼 베기, 벼 등짐하기, 벼 낟가리 쌓기, 홀태질 하기, 짚가리 쌓기, 벼 말리기, 공출하기 등이 연이어 있으므로 마당은 내내 멍석과 볏짚을 이고 살았다. 벼 등짐이 시작되어 홀태질이 끝나고 잘 말린 나락이 가마니에 담겨 공출로 나가게 될 때 까지 마당은 밤낮으로 사람들과 나락가마를 품어야 해서 굳이 애써서 청소할 일이 없었다.
겨울로 들어가기 전, 집집마다 초가지붕을 새 지붕으로 단장하느라 마당에 짚단과 검불들이 가득하였고 이어서 김장이 끝날 때 까지 마당은 김장 쓰레기와 짚단에 덮이어 지냈다.
낙엽이 다 지고 지붕이 바뀌고 김장이 끝나면 비로소 마당을 쓸 수 있었다.
겨울 마당 쓸기는 눈 쓸기였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쓸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쓸지 않은 채로 눈이 녹아서 얼게 되면 마당이 얼음판이 되어서 위험하게 되므로 대문으로 가는 길과 닭장과 돼지막으로 가는 길은 꼭 쓸어야 했다. 이어서 작은 골목길을 쓸고 난 뒤에는 추위도 잊고 눈 뭉치를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는 작은 몸통을 만들고 오빠는 큰 몸통을 만들었다. 재로 얼굴을 그리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후에, 발이 푹푹 빠지는 발자국이 없는 하얀 들판에 누워서 눈 사진도 찍었다. 앞으로 뒤로 구르며 사진을 찍고 강아지처럼 뛰며 놀았다. 함박눈이 내릴 때, 키를 이고 다니며 눈을 받아서 먹기도 하였다. 오후에는 지붕 끝에 달린 수정 고드름을 따서 우둑우둑 씹어 먹으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 어렸을 때는 눈이 유달리 자주 내렸고 무릎까지 쌓였으며 추워서 잘 녹지도 않았다. 그덕분에 마당을 쓸어야 하는 날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손이 곱고 얼어서 마당 쓸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몽당 싸리비에 힘을 주어 쓸다가 빗자루를 놓치며 넘어지기도 하였다.
5학년 때 300평이 넘는 새집으로 이사를 와서 마당 쓸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넓어서 어른의 강요나 야단으로 쓸 수 있는 그런 마당이 아니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았지만 마당 쓸기를 계속 하였다. 마당을 쓸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하얗게 맑아지고 천국에 있는 것 같은 평화와 기쁨이 내 안에 충만하였다.
참으로 놀랍게도 마당 쓸면서 마음의 쓰레기가 청소되었다. 분노와 미움의 쓰레기, 불안과 염려의 쓰레기, 의심과 불신의 쓰레기가 쓸려 나갔고 영혼의 순수가 회복되었다. 비질을 하면서 노래하며 기도하다 보니 마당 쓸기가 기도 시간이 되었다. 몸이 찌뿌듯하고 불편할 때 억지로 움직이며 땀을 흘리다 보니 치유가 되었다. 복잡하고 힘든 일을 묵상하다 보니 단순해졌다.
마당 쓸기가 수련의 시간이 되었고 대화와 묵상의 시간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마당 쓸기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가사 노동이었지만 나에게는 주님을 바라보는 영혼의 정화 시간이 되었다.
인도에서 처음 카다파 지역에 갔을 때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 그 때 사람들이 한국에서 내 직업이 청소부였냐고 물었다. 첸나이 변두리에 나왑하비불라 나가르에 위치한 “희망발전소” 건물에 거주하면서 아침마다 집 앞 거리의 소똥과 쓰레기를 칠 때도 사람들이 전직이 청소부 였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없이 씩 웃지만 속으로 “하나님 나라 마당쇠”라고 대답을 하곤 하였다.
마당을 쓰는 아이로 산 것이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나님은 마당 쓸기를 은혜로 바꾸어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다.
마당 쓸기를 통해서 모든 노동과 고난을 기도와 묵상, 감사와 찬양으로 바꿀 수 있는 영적 깨달음을 얻었음을 누가 알겠는가!
마당 쓸기를 경건의 훈련과 성숙의 시간으로 이끌어주신 성령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참으로 공짜는 없다. 그냥 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나로 하여금 어린 나이에 빗자루를 들게 만들어 주신 엄마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비질을 하며 남북한을 축복하고 싶다.
고아와 과부들, 굶주림이 있는 세상을 축복하고 싶다.
2020.2.1.토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