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미션트립(6), 비텐베르크
베를린에서 출발해서 드디어 종교개혁의 중심에 있는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로 왔습니다.
이곳 역시 루터의 도시(Lutherstadt Wittenberg)라는 공식 명칭이 도시 이름에 붙어 있습니다.
비텐베르크는 전에도 왔었는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 그때와는 분위기도 사뭇 다르고 좀 새롭더라구요..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며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였던 바로 그 유명한 비텐베르크 성교회가 이곳에 있습니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성교회가 공사중이라서 밖에서 설명만 듣고 들어가 보지는 못했었는데,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금방 다시 왔네요.
비텐베르크 성교회의 내부에 들어섭니다.
비텐베르크 성은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궁정이었고, 이 교회는 바로 그곳에 부속된 건물이었습니다.
19세기에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성의 원래적인 특성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교회 만큼은 예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 어떤 교회 안에서도 보지 못했던 특이한 조형물이 이 교회 안에 있더군요.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엎드려서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천정에 매달아 놓은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군요...
성당 안에는 마틴 루터와 필립 멜랑히톤의 무덤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두 아름다운 동지가 죽음 이후에도 함께 나란히 한 곳에 묻혀 있네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뜻을 같이한 친구, 다윗과 요나단처럼 이 두 사람 역시 가장 아름다운 친구의 전형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틴 루터의 무덤.
멜랑히톤의 무덤
루터도 바로 이 설교단에 올라가 설교를 했겠죠.
이곳에서 루터는 면죄부로 죄를 사함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소리 높여 외쳤을 겁니다.
양쪽 벽면으로 여러 사람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역시 그중에서도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던 루터와 그를 도운 멜랑히톤의 동상이 눈에 들어오네요.
오른쪽 동상이 마틴 루터이고, 왼쪽에 있는 동상이 멜랑히톤입니다.
평생토록 이렇게 주님을 위해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겠죠. ^^
비텐베르크 교회의 북편 청동문에는 루터가 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1517년 10월31일, 마틴 루터가 이 교회의 출입문에 이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거대한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죠.
하지만 루터의 반박문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루터는 죄와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정말 엄청난 고민을 했었죠. 하루에도 몇번씩 고해성사를 할 정도로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514년부터 죄와 회개, 구원을 주제로 2년 동안 설교를 했었는데 95개조 반박문은 바로 그러한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를 움직이고 있던 거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그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다가 자신의 목숨으로 그 댓가를 치룬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는데요..
사실 루터도 처음부터 카톨릭을 대항해 개혁을 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동안 아무도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하던 교회의 잘못된 폐단을 드러내놓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 토론해 보자는 거였죠.
어쩌면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그 반박문을 붙이면서도 루터는 그것이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물결을 일으키는 서막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루터가 반박문을 붙일 때 원래 이 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 없어졌고, 이후에 청동으로 다시 만들어서 반박문의 내용을 새겨 넣은 거랍니다.
시청사 앞 마르크트 플라츠 광장에는 역시 종교개혁의 두 인물, 루터와 멜랑히톤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광장은 비텐베르크 성교회와 루터하우스 중간쯤에 있습니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곳에서도 기념행사가 진행중입니다. 우리가 갔던 날도 음악회를 열고 있더군요.
무슨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흰 머리의 연세 좀 들어보이시는데.. 노래를 정말 잘 부르시던데요.
다들 한참을 서서 그분의 노래를 듣다가 갔습니다. ^^
비텐베르크에는 박물관인 루터하우스가 있습니다.
이곳은 1508년 루터가 비텐베르크에 도착한 이후, 처음에는 수로사로서 1525년부터는 가정을 꾸려 직접 살았던 집입니다.
루터하우스는 1883년부터 관광객에게 개방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종교개혁사를 증언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최대의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전시관 안에는 루터의 저작물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1,000여 점의 원본 전시물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루터하우스에 들어서면 마당에 루터의 아내인 카타리나 폰 보라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1499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비록 귀족이었지만 몰락한 집안이었기에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라틴어와 음악 등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수녀가 된 이후에 마틴 루터를 만나게 되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을 접한 후 수도원을 나와 루터가 있는 비텐베르크로 오게 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그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조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농장과 양조장 등을 직접 운영하면서 종교개혁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단절되지 않도록 내조를 했다고 합니다.
박물관 마당에 세워진 카타리나 폰 보라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강인한 종교개혁가의 아내 모습이 보여지네요.
"돈통에서 땡그랑 소리가 들리면 연옥에 있는 당신들의 부모의 죄가 사해지고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면죄부를 판매하는 테첼의 말에 독일에 살던 농민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은 귀가 솔깃했을 겁니다.
면죄부만 사면 죄가 사해지고, 심지어 죽어 연옥에 있는 부모까지도 사면받고 천국에 간다니 말입니다.
면죄부는 11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면죄부가 유효하다'고 선포함으로 면죄부 판매를 부채질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마인츠의 대주교이며 추기경인 알베르트 폰 브란덴부르크가 1515년에 새로운 면죄부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실은 추기경이 푸거 가문으로부터 빌린 부채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빌린 돈으로 로마교황청의 고위 성직을 사 버린 상태였구요.
그리고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이었던 테첼은 온갖 비신학적인 주장으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면죄부를 팔게 되었던 것이죠.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대문에 내걸었던 95개의 반박문 내용들인데, 루터의 비서인 뢰르의 메모가 이 사건을 고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수도사들을 위한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수도원 식당의 벽에 이 <십계명 화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루카스 크라낫흐 흐가 이끄는 화방에 의해 1516년 비텐베르크 시의 요청에 따라 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시청을 장식할 작품으로 기획되었다네요.
시 당국자들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항상 하나님의 법을 직시하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텐베르크 시의 공동금고인데요, 1529년 경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텐베르크의 첫 개혁이 바로 이 '공동금고'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금고에는 세 개의 열쇠가 있어야만 열 수 있었는데, 바로 교회, 시당국, 시민대표의 공동책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금고의 수익은 목사의 월급과 교회건물의 관리비, 또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한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또 '공동금고'는 '스스로 돕는 자를 위한 자선'이란 취지 아래 장인들에게 저금리의 대출을 해 주었고, 가난한 집 아동들이 취학할 수 있도록 지원도 했다고 합니다.
위에 있는 면죄부 돈통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네요. ^^
1524년에 비텐베르크에서 인쇄된 최초의 개신교 찬송가집입니다.
루터는 음악을 참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서론에서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선한 일이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입니다." 라고 음악을 칭송합니다.
실제로 루터는 찬송가를 작사도 하고 작곡도 했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바로 그가 만든 찬송입니다.
찬송가는 종교개혁의 발전과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문맹자들에게 새로운 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일조를 했지요.
독일어로 번역된 루터성경. 1534년에 인쇄된 것입니다.
루터의 업적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성경 번역이었죠. 당시 모든 예배는 라틴어만 사용을 했었는데,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모국어로 성경을 읽고 또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루터성경은 종교개혁 시대의 베스트셀러였답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는데, 루터성경 만큼 독일어의 발전에 기여한 책이 또 없다네요.
루터하우스의 벽에 <카타리나의 대문>이라고 불리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카타리나 폰 보라의 부탁으로 154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루터 시대의 귀중한 건축 유산입니다.
문의 왼편에는 루터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고, 오른편에는 '루터의 장미'라고 불리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텐베르크 마을 입구에는 루터의 떡갈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루터는 교황청에서 보낸 파문 교서를 불태웠다고 하네요.
1502년 처음 문을 연 비텐베르크 대학교. 루터는 이곳에서 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종교개혁을 이끌었습니다.
멜랑히톤 역시 1518년에 이 대학교의 그리스어 교수로 초빙되었는데, 이 학교에서 루터와 만나게 된 것이죠.
1817년에 할레 대학교와 합병하였고, 1933년부터는 현재의 마틴루터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네요.
비텐베르크에서 마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네요...
이렇게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고 저물어가지만, 루터가 남긴 위대한 종교개혁의 정신은 영원히 저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역시 성지다운 다양한 조형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네요.
경건함이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