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선배에게 법흥사 요사채에서 한겨울을 난 얘기를 들었다. 가출로 시작된 선배의 법흥사행이 출가로 바뀔뻔했다는, 그래서 법흥사가 항상 명치 끝에 걸려있는것 같다고 했다.
명치 끝에 걸려있으면 없애버리면 되지, 법흥사에 갑시다. 이상하게 멀쩡하던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고, 시덥지 않은 이유들이 법흥사로의 여행을 막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여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법흥사에 와 있는데 솔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때문에 법흥사를 떠날수가 없다고...
삼세번, 다음해 초파일 법흥사로 향했다. 주천을 지나며 난 술이솟는샘이란 지명 때문에 이백을 떠올렸고, 선배는 가출을 감행했던 그 겨울 가방 하나 들고 수주에서 법흥사까지 걸어간 얘기를 했다. 서울에서 하루에 닿을수 없는 먼곳이라 제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수주까지 왔는데 버스가 없어 칼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걸어도 걸어도 법흥사가 나타나지 않아 몹시 불안했었다고 했다.
동생이 보았던 소나무숲도 새소리도 물소리도 선배의 눈천지 법흥사도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아스팔트 깔린 드넓은 주차장에 빽빽히 들어선 관광버스들, 중창불사로 파헤쳐진 절터와 기계소리, 보낸이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써있는 천박한 화환들.. 주차장에서 잠시 갈등 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하나? 계곡으로 내려와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화단이 아닌 야생의 금낭화를 처음 봤다. 꽃한송이 때문에 괜히 왔단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선배의 법흥사를 만날 차례, 그 아수라장 안에서도 법흥사 극락전은 참으로 의젓했다. 단청이 다 벗겨져 세월을 드러낸 부재들, 법당 안 천정에 드러난 불국토, 극락전을 호위하듯 하늘로 쭉쭉 뻣은 홍송들... 적멸보궁 올라가는 홍송 오솔길에서 선배가 말했다. 줄기가 붉은 법흥사 소나무들은 겨울 쌓인 눈으로 스스로 제 가지를 쳐내며 또 이어질 삶을 준비한다,고. -2002.사월초파일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우리는 다시 법흥사에 갔다. 스스로 가지를 쳐내며 이어질 생을 준비하는 법흥사 소나무紅松를 만나러... 쌓인 욕심의 무게 때문에 부러질지도 모를 우리 안의 가지치기 하는 법을 배우러.... 설국, 적멸보궁 앞 솔바람에 흔들리는 연등의 꽃분홍과 진초록의 어울림이 참으로 고왔다. 순백의 세상, 붉은 소나무가 툭툭 무심하게 가지를 쳐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들은 섶다리를 지나 주막에서 주천을 찾았다.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하늘에 酒星이 없을 것이고, 땅에는 酒泉이 없었을 것이오.-이백
내게 법흥사를 알려준,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는 법흥사 소나무 전설을 말해준 선배. 오래 보고 만나고 살줄 알았는데 어느날 선배는 지금까지 살아온 생, 모든 관계를 부정하고 자기 안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이어서 머릿속이 정리되면 바로 세상으로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십년이 거진 다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선배의 안녕을 빈다.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눈이 왔으니 법흥사 소나무 보러 가요, 라고 무심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빈다.
상대를 향한 가지를 겨우 내 쳐낸 법흥사 소나무들은 허공에서 가지가 서로 엉키지 않고 숲을 이룬다. 법흥사 개울 건너 소나무 숲 묵정밭에 달빛에 왕소금을 뿌려놓은 메밀꽃 같은 하얀 개망초가 적멸에 들었다. -2009.07.09
사자산 법흥사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의 석상 앞에서 7일간의 정진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발우 등을 전수받아 사자산(연화봉)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불보 사찰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다.
본래 사자산 법흥사의 지명 유래는 산세가 불교의 상징 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와 같은 모든 지혈이 한 곳에 모이는 길지 이며, 뒤의 산봉우리가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 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 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승지 중 하나다. 사찰로 들어가는 오솔길의 소나무 숲이 장관이고, 사찰 앞에 줄줄이 이어진 아기자기한 아홉 개의 봉우리(구봉대) 역시 일품인 곳이다. - 법흥사 홈페이지 안내글
첫댓글 우리가 염원하는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을 오랜 벗과 함께 켭켭이 쌓인 번뇌의 컵데기를 서둘지 않고 하나둘씩 벗겨가며 서로를 보듬는 것 같은 따사함을 느끼게 해주어 고마워요^^
잘 읽어 주시고 덕담 나눠 주시어 제가 더 감사~~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