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회 지음 _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모로코, 페스의 카페
서북 아프리카 끝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 모로코. 이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는 카사블랑카, 마라케시, 에사우이라, 페스 등이다. 그 가운데 페스 Fez 는 모로코 천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페스를 대표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천연가죽 무두질 공장인 탄네리와 뜨거운 물에 신선한 민트 잎을 가득 우려낸 후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박하 차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페스의 카페를 추가하고 싶다.
단, 커피 맛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페스의 카페를 추천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는 독특한 풍경 때문이다. 카페의 손님들이 하나같이 밖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경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왜 서로 마주보지 않고 카페 밖을 향해 앉아 있을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라는 조금 허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무슨 큰 재미가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따라해 보니 처음엔 지루하고 무미건조했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옷맵시 그리고 걸음걸이를 관찰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모로코의 커피 맛은 기대할 게 못 된다. 이 역시 눈으로 마시는 커피라고 해야 정확한 것 같다. 페스뿐 아니라 모로코 도시 전역의 카페는 대부분이 우리가 흔히 보는 현대식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오래된 레버형 수동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고 있다. 머리 희끗희끗한 카페 주인이 포터 필터에 커피 가루를 담고 그룹에 장착한 후 손으로 레버를 내려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은 맛을 떠나 그 행위만으로도 멋스럽다.
그러나 볶은 지 오래된 원두를 적절하지 않은 굵기로 분쇄해 추출해서인지 쓰기만 할 뿐 기대했던 크레마와 에스프레소 특유의 풍부한 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카페에 있어야 할 이유 두 가지만으로도 만족할 테니까. 시장 통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와 노년의 카페 주인이 멋스럽게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