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소유의 대상이나 목적의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루카2,22~40)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교회는 성탄 다음주일을 성가정 주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심으로써 아빠, 엄마, 아가로 성가정으로서의 구성요소를
다 갖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나 본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의 시작은
가정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은 혼인을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법칙이며
하느님의 은총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살이는 생존과 활동의 근본이며 생활과 삶의 기본입니다.
가정은 이 사회와 나라가 시작되는 가장 작은 요소의 공동체이며
사회와 교회의 에너지원입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동시에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과 존경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참된 사랑은 존경을 조건으로 하고 참된 존경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결실을 맺습니다. 존경이 없는 사람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사랑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존경은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뿐인 존경이 되고
단순히 딱딱한 위계질서 확립의 도구가 될 뿐이고,
당사자로 하여금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존경 없는 사랑은 상대방을 무시하기 쉽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쉽고,
수치심이 생기게 하기 쉽고, 마음의 상처를 주기 쉬운 일방적인 자기만족이 되기 쉽습니다.
둘째, 부모가 가정교회 안에서 신앙의 모범을 잘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하느님을 참되게 공경하면 자녀가 그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을 보고 배웁니다.
신앙과 생활을 이중적으로 살면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식은 외모뿐 아니라 신앙생활까지도 붕어빵입니다.
부모가 하느님을 무시하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지 않으면
그 자녀들도 하느님과 자기 부모를 무시하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역시 그렇게 보고 들으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잘 공경하고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성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가정기도를 성실히 잘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믿는 가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나 셋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당신 친히 그곳에 머무시겠다고 하셨는데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엔 주님이 머무시지 않습니다.
성가정을 가는 지름길은 기도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기도에서 나옵니다.
셋째, 우리가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함께 지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는 집집마다 십자고상이 다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고백으로
거실이나 방의 한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십자가를 모셔놓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십자가는 종종 잊혀지고 외면당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짐과 멍에를 나누어지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가정 안에서는 방관자나 구경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성원 가족 모두가 노력하고 각자의 십자가는 각자가 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은 소유의 대상이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족 상호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내 내 아들 내 마음대로 되기를 요구하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가족을 내 목적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면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여기지 않고 내 목적을 이루는 방법으로 생각할 때
서로 소중한 마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상호 인격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서로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가정의 윤활유는 인내와 감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 비벼질 때 우리가 갈구(渴求)하는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가정은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성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