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꿈을 펼쳐 봐 / 박명숙
작년에 우리 집에서 가장 한가하던 딸이 올해는 숨 고를 틈도 없이 제일 바쁘다. 시립합창단에 들어 가는 게 꿈인데 자리가 생기지 않아 개인 노래 지도와 민간 합창단 활동만 하며 지냈다. 그런데, 단원 중에 출산 휴가를 가는 사람이 있어서 대체 인원으로 객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시험을 치러 당당하게 합격해서 10개월 계약직으로 그곳에서 함께 노래하게 됐다. 꿈에도 그리던 기회가 온 거다. 노래 한번 불러 주라고 사정해도 못 듣는 척하더니 시키지 않아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어둡던 집안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 싶게 환해진다. 활짝 핀 벚꽃처럼 딸의 얼굴이 화사하다. 아침마다 꽃길을 걸으며 출근한다. 대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오늘 행복하게 보내. 축복한다.”라고 응원하며 내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아버지의 장례 마지막 날 저녁에 합창단 정기 연주회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딸의 공연을 볼 기회가 드무니 다 모였을 때 같이 보자고 해서 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다행히 예매해 둔 표 수가 여유가 있어서 조카들까지도 무대가 잘 보이는 좌석에 앉아서 볼 수 있었다. 주제가 ‘오메, 봄이어라.’였다. 구수한 사투리가 공연을 더 기대하게 했다. 긴 겨울을 지나 꽃이 피는 봄을 걷고 있는 딸을 만날 것 같은 제목이다.
잔잔한 곡으로 서서히 연주가 시작되다가 중간쯤에 신나는 음악으로 흘러갔다. 지휘자의 손길에 따라 노래가 조용해졌다가 춤을 추기도 했다. 전날 저녁에 잠을 못 잔 터라 처음에 뻣뻣하게 서서 부르니 눈꺼풀이 무거웠다.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사이에 소년 소녀 시립합창단이 나와서 춤추며 노래했다. 작은 몸짓으로 살짝살짝 흔들어도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들의 깜찍한 재롱에 정신이 번쩍, 잠이 멀리 확 달아나 버렸다.
다음 무대는 설레며 기다리던 합창단 차례다. 긴 드레스를 밟지 않으려고 앞을 살짝 들어 올리며 사푼사푼 걸어 나온 딸이 가장 중앙 자리에 선다. 그 옆에는 올해 객원으로 딸과 같이하는, 한 살 어린 동생이다. 두 사람을 빼고는 멀리서 봐도 대부분 나이가 많아 보이고, 노래하는 자세만큼은 누가 봐도 훨씬 경험자답다.
공연 중간부터 아껴 두었던 춤을 한 번씩 보여 주다가 끝날 무렵에는 절정의 무대가 펼쳐진다. 표정이나 동선으로 연기하는 안무는 노래를 맛있게 요리하는 기술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감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래만 하면 밋밋한데 춤이 들어가면 생동감이 있어 공연에 더 깊이 빠져든다.
이날, 딸은 신나게 춤을 췄다, 흉내도 못 낼만큼 내 눈에는 동작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무대 위에서 마음껏 즐겼다. 표정이 살아 있다. 얼마 만에 맛보는 행복인지. 박치, 음치, 몸치 셋 다 가진 내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다. 장례와 날짜가 겹쳤지만 이 무대가 친정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 드리는 환송식이 된 셈이다.
“아버지! 외손녀가 준비한 공연을 즐겁게 보셨지요?”
첫댓글 하하, 선생님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딸을 보면서 행복하셨겠네요.
네, 선생님. 요즘 딸 덕을 조금 보니 행복합니다하하.
그러네요.
외할아버지가 손녀의 공연을 흐뭇하게 지켜 봤을 것 같아요.
올해는 정식 단원으로 활동했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응원대로 되길 저도 기도하고 있답니다.
예술하는 사람 부러워요. 딸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읽는 사람도 기분 좋습니다.
네, 선생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