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회복제 / 박명숙
요즘은 어린아이까지도 상처 받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상처가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느냐고 물으니 ‘다쳐서 난 흔적’이란다. 상처받은 경험을 들어 본다. “아빠, 엄마가 최신 핸드폰을 안 사줘요.” “친구가 따돌려요.” “학교 선생님이 내 말 안 들어줘요. 무시당했어요.” “엄마 잔소리가 싫어요.” “친척에게 받은 용돈을 엄마에게 다 뺏겼어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이런 것도 상처라고?’ 할 정도인 것도 있다. 그래도 당사자가 그렇다면 인정해 줘야지 별수가 없다. 각자의 감정이니까. 응원할 수는 있겠다. 더 단단한 사람이 돼서 상처 따윈 쫓아내 버리라고.
내가 만나는 서비스 이용자 중에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아이가 있다. 흔적을 씻어 내려는 의지가 보여 반갑다. 자기 기분을 알아주라는 신호를 보내는 건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관심을 보이면 위로가 되어 안 좋은 감정이 눈 녹듯 사라져 표정도 밝아진다.
하지만,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 아동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는 미술이 딱이다. 종이와 연필만 있어도 닫힌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어젖힐 수 있다.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림으로 상황을 그리는 건 좀 더 쉽다. 자신도 모르게 그림에서 유난히 강조해서 표현한 게 있다. 그것으로 대화를 이어 가며 객관적인 눈으로 그림 속의 자신을 본다. 다양한 방향으로 상처를 이해하며 다가간다.
상처 받은 일을 차곡차곡 쌓아 두고 되새김질하는 어른이 더러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를 보면 망각도 축복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당장 닥치는 일만 해도 버거울 텐데 오래된 것까지 다 품고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다. 뇌가 충격을 받아 절대 안 지워지는 걸까? 그걸 잊을 만큼 큰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
마음이 건강하면 비수 같은 말도 흡수를 잘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튕겨 나온다. 상처는 자존감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스스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말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내면에 이미 좋은 감정으로 꽉 차 있어서 나쁜 게 들어갈 틈이 없다. 상처를 회복하는 지름길은 결국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일 텐데 나부터도 어렵다.
딸이 예민해졌다. 계속되는 공연으로 피곤한지 짜증이 늘어간다. 딸의 말에 상처 받아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싶어 오늘은 입을 닫았다. 소리에 민감한 아이라 이해는 가지만 도가 지나친 것 같아 화가 났다. 베란다에 잠깐 나가면서 금방 들어올 거라 문을 열어 놓고 일을 봤다. 단 3초도 안 되는 그사이에 순간적으로 바람이 세게 불어와 문이 꽝 하며 닫혀 버렸다. 딸이 놀랐다며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다고 하란다. 난 왜 그게 내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바람이 그런 거지.
“나, 마트에 갈 건데, 엄마 뭐 먹고 싶은 것 있어요?” 아까 일이 미안했던지 딸이 먼저 말을 건넨다. 역시 사랑이 상처 회복제다. 상처 받은 일은 없었던 걸로. 다시 웃음이 번진다.
첫댓글 맞아요. 사랑이 상처 회복제네요.
예민한 딸내미들, 진짜 답이 없네요. 딸의 말에 상처 받고 나서, 저는 엄마에게 다정한가 반추해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딸 있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맨날 딸들 흉보게 되네요 요즘은요.
요즘 엄마들은 사과도 잘 해야 되는가 봅니다. 딸과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오래 끌지 않고 바로 풀어버리는 따님의 성격이 좋아 보입니다. 딸 마음 헤아려 가만히 계시는 선생님도 멋지시구요.
요즘 아이들과 생각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누가 정상인지 모를 때가 가끔 있더라구요하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사니 사소한 일로 맘 상하는 일이 저도 많더군요.
이젠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해야지. 마음먹지만 지나고 나면 왜 다투었는지도 기억 안나는 게 현실이네요.
가족이니 그러겠죠?
하하,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밖에 나가면 모두에게 잘하는지 칭찬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가족에게만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