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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왜 갖게 되었는지에 관한 짧은 글이다.
사도 바울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유대인의 성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약성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말이 하나님의 아들의 삶과 가르침을 깊이 다루고 있는 스물일곱 권의 신약성경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정확히 어떻게 성경 저자들을 “감동”하셨는지는 놀라운 신비이며, 종종 뜨거운 논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을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음의 흔들릴 수 없는 명백한 사실에 동의한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천 년 넘게 걸린 긴 과정 전체를 인도하셨으며, 자신이 전한 메시지를 인간이 이해한 것을 몸소 확인하셨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들은 점토판이나 무두질한 양피에 기록하기 전까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고대 정착민이나 유목민들은 모두 타인을 재밌게 하는 재주와 기억에 오래 남게 하는 운율로 자기 공동체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전승할 끼가 넘치는 이야기꾼들을 존경하였다. 청중들은 이야기들에 친숙한 사람들이었으며, 오늘날 부모가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줄 때 똑같이 이야기하는지 감시하고 감독하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들도 대개는 이야기꾼들이 자기 맘대로 자료를 넣거나 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기록 시대가 열리다
히브리인이 맨 처음 펜으로 양피지에 쓰거나 철필로 점토판에 쓴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경이 성경 저자로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모세다. 아마 주전 1400년경일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많은 법들을 기록하였는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신31:9)에 나오는 법들이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모세보다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유대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도 우리가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자기 삶의 극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하였을 수 있다. 그는 페르시아 만 지역 출신인데, 그곳의 기록 역사는 그때 적어도 1000년 정도 되었다. 구약의 나머지 책들 – 이야기, 시, 노래, 연대기, 지혜 모음들, 예언, 그리고 여러 히브리 전통 장르들-도 이와 비슷하게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나중에 서기관들이 수집하여 기록한 것들이다.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주전 1000년경, 이스라엘은 강력한 국가를 형성한 후에 열정적으로 기록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두루마리들이 낡아 해지기 시작하자 서기관들은 조심스럽게 새 두루마리에 본문을 옮겨 적었다.
구약의 저자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책들이 저자를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책은 저자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 유대 전통은 모세를 저자로 보고 있다. 반면에 저자를 분명히 명시한 책들도 있으며, 많은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책들을 기록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고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일부 본문들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익힌 것과 비슷한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지역을 점령한 지 20년쯤 지나자, 헬라어가 가장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후로 약 1세기 안에, 이집트의 왕은 알렉산드리아에 새 도서관을 짓기로 결정한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모세오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최고의 학자 70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나온 것 – 최초의 번역 성경–이 70인역(Septuagint, ‘70’이라는 의미)이다. 그 후 수백년에 걸쳐 나머지 히브리어 성경이 번역되었다. 후에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이 헬라어 번역본을 인용하였다. 주후 70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유대인들은 제사와 제물을 드릴 성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거룩한 책들을 읽음으로써 찬미와 기도의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경외하는 책들이 너무 방대하고 일부 책들의 번역본은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이라고 부르는 책들을 성경으로 결정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율법서로 알려진 모세오경은 아마도 널리 인정받아온 첫 책들이었을 것이다. 선지서들이 그 뒤를 잇고 맨 마지막에 성문서들 – 시편, 잠언, 그리고 기타 책들-이 성경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결국 대중적인 헬라어로 출간된 많은 책들 – 그것들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 이 성경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것들을 외경(Apocrypha) - ‘부차적인’ 혹은 ‘숨겨진’ 책들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외경은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 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많은 책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 39권은 구약이고 27권은 신약이다.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옆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가령 구약의 선지서들은 대선지서(분량이 더 많다는 뜻)부터 시작하여 소선지서까지 한데 모여 있다. 이런 배열은 성경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가진 교파들과는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주전 200년경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책인 70인역(Septuagint)에 들어 있는 외경을 자신들의 성경에 포함 시키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후에 이 책들을 자신들의 성경에 넣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 최신 복음들
신약성경이 우리 손에 오는 과정 역시 그 시간 틀은 짧지만 구약과 매우 비슷하다. 구약처럼 1000년 이상은 걸리지 않았지만 기록이 구전 이야기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결국 인정받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약 한 세기 정도는 걸렸다. 예수님을 가장 먼저 따랐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하였기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곧바로 기록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전파하는 데 그쳤다. 신약의 첫 책들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아니라, 선교사의 마음으로 순회하며 말씀을 전한 바울이 기록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자신이 세운 어린 교회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바울의 가장 초기의 서신들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20년 쯤 지나서 기록된 것으로 평가한다. 나머지 신약 성경들은 주후 50년부터 100년까지 1세기의 후반부 기간 내내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래도록 존중해왔다. 그들은 또한 복음서와 다른 기록들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인류에게 준 하나님 계시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공식적으로 신약성경에 어떤 책을 포함시켜야 하는지를 결정한 것은 주후 100년경 기독교 지도자였던 말시온(Marcion)이 간략한 신약 목록을 제시한 후였다. 그는 바울의 서신들과 누가복음만을 신약성경에 포함시켰으며, 그것마저도 예수는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실제로는 고통을 겪으실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반영하기 위해 편집하였다. 이후 2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책이 신약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의문시 되는 본문과 저자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왔다. 367년에 이르러서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본 제자들과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썼다고 믿는 스물일곱 권의 책만을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했다. 이집트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그 해에 자기 교회들에게 보낸 부활절 서신에 처음으로 이 책들의 목록이 등장한다. 그는 정경(canon)-원래는 ‘표준’(measure)이란 뜻이었다-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공적으로 안정된 성경의 책들을 묘사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 정경에 다른 어떤 책들도 더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 번역, 위험한 예술
로마인들이 선호한 언어인 라틴어는 결국 제국 전체로 퍼졌다. 기독교 학자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을 몇몇 라틴 번역본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382년 교황 다마스쿠스는 교회에는 단 하나의 권위 있는 라틴 번역본이 필요 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당대 뛰어난 성경학자였던 제롬(Jerome)에게 이 힘겨운 과업을 맡겼다. 제롬은 라틴어와 헬라어를 잘 알았지만 히브리어에는 능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구약을 번역할 때는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이 아니라 히브리어 원문을 사용하기로 결심하고는 베들레헴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유대 학자들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웠다. 그가 번역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서 기념비적인 번역이 완성되었다. 그 번역본은 ‘공동’(common)이란 뜻의 ‘벌게이트’(Vulgate)로 알려졌다. 이는 그가 당시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의 번역본은 약간의 저항에 부딪쳤다. 한 회중이 그의 요나서 번역본을 듣고 난 후, 예배하는 대신에 폭등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간 듣고 암송하는 데 익숙했던 이전 번역본을 더 선호했던 것이다. 언어가 변하면서 최신의 역본들은 종종 이전 번역본과는 극적으로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고대 본문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늘 분명하지 않다. 가령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다. 우리가 영어를 그런 식으로 쓴다면, “Once upon a time”(옛날에)이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NC PN TM. 하지만 이 똑같은 글자를 다음과 같이 읽을 수도 있다. “Nice Pun, Tom”(재밌는 말이구나, 톰). 이야기를 잘 알고 있던 고대 독자들은 읽는데 그렇게 애를 먹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본문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문맥상의 실마리들을 찾아야 했다. 한 단어가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면 그것이 다음 단어를 해석하는 실마리가 된다. 많은 단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그것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아내기가 더 쉬워진다.
제롬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무렵 울필라스(Ufilas)라는 한 선교사가 게르만 족속들을 위한 알파벳을 고안해냄으로써 성경을 고트어(Gothic lan-guage)로 번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되풀이되었다.
기독교가 성장하면서 성경 역본의 수도 늘어났다. 성경은 너무 비싸서 일반 사람들이 소유할 수 없었다. 성경을 필사하는 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1300년대에 성경은 사제의 1년 치 월급을 주고서야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56년경 갖고 다닐 수 있는 형태로 성경이 처음으로 인쇄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15세기 말에는 아주 다양한 성경 역본을 출간하느라 250개가 넘는 유럽 도시들의 인쇄업자들은 매우 분주하였다. 놀랍게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 언어로 번역한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평신도들은 성경이 아니라 사역자들에게서 성경을 배워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지도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당시엔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의 학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는 처음으로 영어 성경을 펴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렸고, 그가 번역한 영어 성경은 영국에서 금서가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43년 후에 교회 지도자들은 그의 시신을 다시 파서 불태운 후 재를 강에다 갖다 버리기까지 하였다. 월리엄 틴티일(William Tyndale)은 1500년대 초에 좀더 개선된 영어 번역본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그는 공적으로 밧줄에 목이 매여 죽임을 당한 후 불태워졌다. 그는 죽어가면서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말을 남겼다. 2년 후에 왕은 전 영국 교회에 영어 성경을 두도록 명령하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어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이다. 영국에서는 공인 역본(Authorized Version)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역본은 셰익스피어 시대로부터 약 300년 동안 영어권 개신교인들의 주요 성경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제임스 왕은 50명의 가장 저명한 학자들에게 이 번역본을 내놓도록 임무를 맡겼으며, 1611년에 이 성경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에서 번역에 몰두한 그들은 약 7년 만에 이 과업을 완수하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였다. 대중이 이 역본에 호의를 갖고, 50년 앞서 번역되어 미국 청교도들이 사용해온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에 대한 대안으로 이 성경을 인정하기까지는 4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 오늘날의 성경
제임스 왕이 걸작 번역본을 내놓도록 명령한 이후, 고고학자들은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약 1000년 정도 이른-사본들을 발굴하였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사해 근처의 건조한 동굴에서 보존된 그 유명한 사해 두루마리에서 나온 일부 구약성경 본문들의 연대는 주전 2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본간의 차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소했다. 이런 데는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필사한 필사자들의 공이 크다.
지금까지 성경 원본은 단 한 편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번역자들은 그동안 발견된 고대의 사본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고, 최첨단 기술로 그것들 간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상하고 깨진 가죽 두루마리 조각들을 이어 맞추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DNA 실험을 통해 어떤 부분들이 서로 관련이 있는지 결정하기도 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성경이 각 가정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또 지금도 성경의 일부분에 대한 번역은 진행 중이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열 가정 중 아홉 가정은 적어도 한 권의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평균 한 가정에 여섯 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인쇄된 성경들이다. 사람들이 이제 컴퓨터나 전자 디스크, 온라인 서비스, 인터넷을 통해 엄청나게 다양한 고대와 현대의 번역본들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또한 낭독해주는 성경을 들을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흥미롭게 편집된 성경 이야기들과 나이에 맞게 제작한 다양한 역본들이 있다. 좋은 책에 푹 빠지는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못해 본 아이들을 위해 성경 이야기 만화책과 드라마들, 그리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성경 비디오 게임들이 있다. 어른들도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성경을 고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픈 부모들을 위한 이야기 성경이 있으며, 독신들을 위해서는 영감 가득한 글들을 담은 묵상 성경들이 있다. 각 성경 구절의 문화적 배경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가장 최근의 학계의 연구 결과인 15,000개의 해설 각주를 담은 Nelson Study Bible 같은 두꺼운 성경을 구입할 수 있다. 이보다는 덜 학문적이지만 성경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디어에 능한 현대의 독자들을 위해 기획한 Word in Life Study Bible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성경지도와 도표는 물론이고, 성경 시대의 직업과 지리와 문화, 인물들에 대한 정보들을 포함하여 수백 편의 논문과 읽을거리들을 담고 있다.
성경은 550년 전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출판업자들은 가장 좁은 시장의 영적인 필요까지 충족시켜줄 틈새본들(niche edi-tions)까지 제작함으로써, 성경은 여전히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 하나가 되고 있다.
※ 성경에서 유래한 격언들
흔히들 사용하고 있는 격언들이 실은 성경에서 나온 것들이다. 여기에 그중 몇 개만 소개한다.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마5:41).
나는 벽에 손으로 쓴 글씨를 보았다(단5:5).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다(렘13:23).
그녀는 자기가 당신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한다(사65:5).
내게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다(욥19:20).
그녀는 내 눈동자다(신32:10).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삼상13:14).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꼴이다(마15:14).
여기는 강도의 소굴이다(마21:13).
이 사람은 내 육체에 가시다(고후12:7).
※ Did You Know?
⁕ 기념식에서 서약할 때 성경을 사용하는 풍습은, 어떤 약속을 한 후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신다”(창31:50)고 하신 말씀을 서로 상기시킨 고대 유대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나 성경, 한때 성인의 소유라고 믿었던 성물에 입맞춤하거나 손을 댐으로써 서약을 하였다.
⁕ 가장 오래된 구약 본문은 주전 225년경에 기록된 사해 사본 파편이다. 그 사본은 구약의 사무엘서 중 일부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은 요한복음 18:31-33의 단편이다. 이 사본에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빌라도가 예수께 묻는 질문이 들어 있다. 이 단편의 연대는 주후 약 125년경이며, 원본이 기록된 지 약 한 세대가 지난 후에 필사된 사본이다.
⁕ 성경 오식(誤植)은 몇몇 역본에 별명 아닌 별명을 붙여주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라는 명령과 함께 모든 중요한 “하지 말라”라는 말을 생략한 “행음자들의 성경” 혹은 “사악한 성경”. 이 성경을 인쇄한 사람은 과중한 벌금을 물어야 했다.
⁕ 성경(Bible)이란 용어는 종이 만드는 데 썼던 식물인 파피루스의 헬라어 단어(비블리오스, biblios)에서 나왔다.
⁕ 복음(Gospel)이란 용어는 옛 영어 단어 갓스펠(godspell)에서 나왔다. 영어권 학자들은 헬라어 단어 에반겔리온(evangelion)을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썼다. ‘에반겔리온’은 ‘좋은 소식’(good news)이란 뜻이며, 여기서 전도자(evangelist)란 말도 나왔다.
⁕ 가장 널리 번역된 성경은 마가복음이다. 복음서 중에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가장 짧은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90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 그리스도인들은 3000년 동안이나 사용한 두루마리를 버린 첫 번째 사람들이다. 그 대신 그들은 책 형태로 된 고문서(codex)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후 2세기 이래로 지금껏 현존하는 기독교 문서의 단편들은 모두 책들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870개 비기독교 작품 중 14개만이 책이다. 앞뒤로 인쇄한 책들은 더 저렴했으며 사용하기도 쉬웠다.
⁕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400년대 중반에 인쇄기를 개발한 후 처음으로 인쇄한 책이 성경이다. 첫 인쇄 때 180부를 인쇄하였는데, 인쇄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다 팔렸다. 이 걸작 중 48권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 성경에는 본래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다. 학자들이 1231년에 장을 넣었고, 1551년에 절을 추가하였다.
♡ 핵심 이야기들 ♡
하나님 아버지
첫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기 전, 하나님이 계셨다. 성경은 이 사실로 문을 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마지막 별이 사라지고 피조개가 천상계로 사라질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기 계실 것이다. 성경은 요한이 본 미래의 환상을 통해 이 사실과 함께 문을 닫는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3-5).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사이에는 1000년 넘게 걸려 기록된 성서가 있다. 이는 역사와 전기, 법과 기도와 노래, 잠언과 예언과 비유, 편지와 환상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욥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욥11:7-8)고 묻는다. 창세기를 보면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그렇게 빨리 계시하셨는지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목가적인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을 두셨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죄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오염시켰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그 순간부터 지금껏 하나님은 피조세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하시고 노아처럼 순종하는 사람들 안에서 그 약속을 성취하심으로써, 그리고 악한 사람을 벌하심으로써 자신에 관해 사람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러고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통찰과 법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주의 길로 인도하게 하기 위해 한 민족을 선택하여 세우신다. 하나님은 또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 선민들-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인간의 마음에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좀더 분명히 계시하셨다. 성경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 분이 어떻게 한 분처럼 연합해 계시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성경은 단순히 이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하고, 이것을 증명할 만한 놀라운 기적들과 증언들을 전하고 있윽ㄹ 뿐이다. 가령, 하나님 외에 누가 폭풍을 잠잠케 할 수 있겠는가?(막4:39)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세밀하고도 복잡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묘사들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묘사가 가장 탁월하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복음은 이 사랑이 인류에게 주어졌으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 영원히 우리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다(창1:27-31 2:7)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후, 인간 창조로 창조 사역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즉 “그분처럼” 지음받았다.
하와가 금지된 과실을 먹다(창3:1-24)
낙원이던 에덴동산에서 오직 한 가지 규정만이 아담과 하와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한 가지 특정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아야 하고, 먹으면 죽는다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하와가 그것을 먹었으며, 아담도 설득하여 먹게 하였다. 죄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을 나쁘게 바꾸었다.
홍수가 땅 위의 생명을 파괴하다(창6-9장)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하나님은 혼자 남은 유일한의인 노아에게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땅에 홍수를 보내실 것이니 노아는 큰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모든 종류의 새와 짐승과 기는 것이 그 종류 대로 각기 둘씩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다(창15:1-21)
죄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 부분으로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을 유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언약을 인치면서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린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의 모범이 되는 자리에 서 있다.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75세가 되었지만 아이도 없고 아내는 불임인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가나안(지금의 이스라엘)으로 떠나라고 요구하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12:2).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은 페르시아 만 근처에 있는, 문화적으로 발달한 도시 우르에서 나고 자랐다. 이 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지역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만을 경배했으며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한 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명령으로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셨다. 깊이 슬퍼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충성심을 가진 아브라함은 명령대로 제단을 쌓고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들었다. 그때 한 천사가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고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고 말한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화를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시는 사건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라고 보았다. 아브라함의 양과 가죽은 가나안에서 갈수록 늘어났다. 그의 증손자들인 야곱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알려진 더 큰 가족들을 이루었다.
야곱이 신적인 존재와 씨름하다(창32:22-32)
잠 못 이루는 어느 날 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신비한 사람과 대면한다. 야곱은 그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붙잡고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한다. 둘은 동이 터서 그 사람이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면서 축복해줄 때까지 씨름을 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스라엘의 아들들)은 후에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민족의 기초가 된다.
모세가 꺼지지 않고 계속 불에 타는 떨기나무를 보다(출3:1-10)
시내산 근처에서 양들을 지켜보던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본다. 하지만 그 나무는 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떨기나무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으며, 하나님은 모세가 두려워 떨게 할 만한 일을 맡기신다.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노예들을 해방하라고 왕에게 명령하라. 모세는 가고 싶지 않았으며,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다.
모세
구약성경에서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사람 모세보다 더 영웅적이고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그는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였으며, 그들을 한 나라로 조직하였고, 여전히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인도하고 있는 십계명과 다른 율법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며, 교회는 성경의 첫 다섯권의 저자를 모세로 보고 있다. 모세는 야곱의 가정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지 400년이 지난 후, 애굽에서 이스라엘 노예로 태어났다. 그가 아기였을 때 새로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기는 모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피하기 위해 갈대 상자 안에 담겨 나일강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왕의 딸이 그를 발견하고는 데려다 키웠다. 그러나 40세가 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애굽인을 죽이고는 그 나라에서 도망하였다. 그는 애굽 동쪽에 정착하여 결혼을 하고 양치기로 산다. 어느 날 양들을 돌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 왕에게 이스라엘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라고 명령하신다. 모세는 마지못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랐다. 애굽에 내린 열 재앙, 홍해를 둘로 가른 사건, 하늘에서 내린 만나, 바위에서 물이 쏟아진 일 등 깜짝 놀랄 만한 수많은 기적들을 동반한 이스라엘의 구원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다. 이는 유대 역사상 가장 성대하게 기념한 사건이며, 지금도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다(출14:1-31)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라.” 천상적 존재가 모든 애굽의 가정의 장자들을 죽인 후, 왕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떠나자, 왕의 마음은 바뀐다. 그의 군대가 도망하는 이스라엘을 홍해 앞까지 추격하여 곤경에 빠뜨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도망하게 하셨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하셨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다(출20:1-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했으며, 거기서 하나님은 그에게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주셨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믿음을 위한 헌법이었다. 산을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본다. 분노한 모세는 돌판을 던져 산산이 부숴버렸다.
약속의 땅을 향한 광야의 여정(민10:11-36)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 기둥이 성소 위에 떠올라 움직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장막을 걷고 따라야 한다는 신호였다.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앞서갔다. 그 궤 안에는 두 번째 십계명이 들어 있었다(첫 번째 것은 모세가 깨뜨렸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다(수6:1-27)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의 보호를 받고 있던 첫 번째 가나안 민족들을 만났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6일 동안 성 주위를 한번씩 돌았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그 성을 일곱 번 돈 후 제사장이 나팔을 불고 군사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여리고 성벽은 무너져 내렸다.
사무엘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사사들(Judges)이 이끄는 느슨한 연방제 형태를 유지했다. 이 사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무엘일 것이다. 사무엘에게도 가족이 있었지만, 그는 어머니 한나가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의 예배 처소에서 제사장과 함께 살았다. 불임이던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다시 드리겠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지혜롭고 의로운 자로 자라서 큰 역량을 발휘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소년이었을 때부터 그는 하나님께 메시지를 받은 선지자로서 백성들에게 알리는 사역을 하였다. 그는 또한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사로서 나라 이곳저곳을 순회하면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사실상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발전하기 전 그 시대의 마지막 사사였다. 사무엘이 나이 들어 늙자 이스라엘은 그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였다. 사무엘은 백성들은하나님만을 자신들의 왕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거부로 여기셨음에도 들어주셨다. 사무엘은 사울을 선택하였다. 후에 사울이 죄를 짓고 지도자 자격을 잃게 되자, 비밀리에 다윗을 미래의 왕으로 기름 붓는다. 사무엘이 나이 들어 죽자, 이스라엘 전체가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다(삼상17:1-57)
약속의 땅에 들어간 지 400년이 지났는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블레셋이 살고 있는 해안 지방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히브리 군사들에게 싸움을 걸어오자 , 한 목동이 앞으로 나와 물맷돌로 그를 맞혀 넘어뜨렸다. 그 목동 다윗은 훗날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전설적인 왕이 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다(왕상6:1-38)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유대인들이 역사상 가졌던 세 성전 가운데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한다. 7년 동안 15만 역군들이 고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을 짓는다. 이는 천장과 벽과 바닥을 황금으로 칠한 예배의 중심지였다. 이 성전은 400년 동안 유지되었다.
다윗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출발은 소박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양치기 가족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소년 때부터 심상치 않은 사람이 될 기미를 보여주었다. 양 떼를 습격한 곰들과 사자들을 죽였으며 물맷돌 하나만으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기까지 하였다. 사울의 왕궁에서 살도록 초청을 받은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여 변덕스런 사울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다윗이 점점 인기를 얻어가는 것에 분노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사울을 피해 도망자로 살게 된다. 다윗은 곧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로 군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자, 이스라엘은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는 거인 살해자 주변에 모였으며,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국가의 경계를 확장했으며, 자기 시대뿐아니라 아들 솔로몬 때까지 이어진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열었다. 하지만 다윗에게도 허물이 있었다. 밧세바와 간음을 하였고 이를 감추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이다. 또한 그의 가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기능장애 가정이었다. 다윗의 아들 하나가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회개하지 않을 만큼 교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왕국은 주전 1000년에 시작하여 거의 5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왕국이 다윗의 가문과 고향에서 나실 것이라고 약속된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다시 복원되었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분열하다(왕상12:1-33)
솔로몬이 죽자, 성과 항구, 왕궁을 짓는 데 너무 무거운 세금을 납부하는 데 지쳐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후계자인 아들에게 세금 경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북쪽 지파들이 떨어져 나가 자신들만의 국가(북이스라엘)를 세운다. 남쪽의 유다 지파만 다윗의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충성하였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하다(왕상18:1-46)
우상숭배는 두 히브리 국가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이세벨 여왕은 가나안 신들을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을 후원하였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야는 그 무리에 도전하여 겨루기를 제안한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에 불을 붙이는 신이 이스라엘의 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이기셨으며,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이사야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750년 전에 살았지만, 메시아에 관한 그의 예언들-이스라엘을 건져낼 구원자-은 마치 그가 예수에 관한 목격자인 것처럼 읽힌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사53:5, 8). 이사야는 예루살렘 귀족 가문에서 교육을 잘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다 그의 나이 스무 살에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된다. 그는 이 환상 중에 유대 민족에게 경고와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할 선지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이사야는 이 사역을 40년 동안 감당하였다. 이사야서에 나온 대로 그의 예언 전달 방식은 극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그는 애굽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 위해 벗은 몸으로 3년 동안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맞서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만을 신뢰하라고 도전하였다. 이아야가 활동하던 때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하였다. 이사야는 그의 동족 남유다에게도 비슷한 운명이 기다린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며 소망을 주기도 하였다. 신약성경은 이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선고 : 70년의 포로 생활(렘25:1-14)
고집스럽게도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하도록 자기 백성에게 촉구하셨지만, 순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명시된 자신의 권리에 호소하신다.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위기26:33).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맹세하신다.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예루살렘이 멸망하다(왕하25:1-21)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남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끌고 가고, 자국민들을 그 땅에 정착시켰다. 150년 후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정복하여 400년 동안 지속된 솔로몬 성전과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대부분의 생존자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순식간에 유대 왕국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다니엘
다니엘은 자기 이름을 딴 선지서의 주인공이며, 굶주린 사자 굴에서 살아남은 일화로 유명한 선지자다. 그가 어떻게 거기 들어갔으며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 졌는지는 그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해준다. 주전 597년 바벨론이 남유다를 점령하고 도시들을 파괴하기 10년 전에, 바벨론은 이스라엘 사회의 상류층들-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추려서 바벨론으로 데려가 자기 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지혜롭고 교양 있는 사람 다니엘도 이 무리 가운데 속해 있었다. 그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되어 왕궁에서 섬기도록 선발되었으며, 그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들은 우상 숭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셔서 살아남게 하셨다. 다니엘은 재능 있는 지혜자였으며,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선지자였다. 왕은 다니엘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고 나라의 모든 지혜자들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훗날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른 왕이 등극하자 다니엘을 시기하던 자들이 꾀를 내어 30일 동안 모든 백성이 오직 왕에게만 기도하도록 하는 칙령을 반포하게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걸 그들이 다니엘을 사자 굴 속에 집어넣었다.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다니엘은 제국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애곡할 때(시137:1-9)
자기 땅과 성전에서 쫓겨나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쓰디쓴 슬픔을 감내해야 했다. 가장 동정심을 자아내는 히브리 노래 중 일부가 이 무렵에 쓰였다. 한 노래에는 유대인들의 애끊는 포로 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예루살렘을 재건하다(스1-6 느2-4장 6:15-16)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포로들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며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후에 귀환한 유대인들이 도와 그 일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성벽 재건 작업이 이어졌다. 이 작업은 지방의 비유대인 유력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기도 하였지만, 불과 52일 만에 완공되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기로 약속하시다(사11:1-16)
이사야는 다른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에서 난 한 통치자를 통해 백성들을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심으로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언을 예수님과 그분의 왕국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였다.
목자들이 갓 태어난 예수님을 방문하다(눅2:1-20)
목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하늘이 광채로 빛나는 것과 그 하늘에 가득 찬 천사들을 보았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한 천사가 말하기를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겸손한 목자들은 곧장 다윗의 가문에서 난 약속된 통치자인 아기 예수님을 보기 위해 근처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중심인물이다. 요한은 세상이 창조될 때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한다. 그는 선지자들이 메시아에게서 기대하던 희망이었다. 즉 그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구원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다. 그는 신약, 특히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대로 그 소망의 성취다. 그의 칭호인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나왔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로서 나사렛 출신 목수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다. 요셉은 정혼한 여인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그녀를 떠날 생각을 했지만, 천사는 그 아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요셉이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라, 부부는 인구조사를 위해 조상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은 다윗 왕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이었다. 예수께서 태어난 곳이 바로 그 베들레헴의 구유였다.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심지어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의 출생지가 구체적으로 베들레헴이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다(미5:2). 아기 예수님은 자라면서 요셉과 함께 일을 하였다. 열두 살이 되자,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남다른 영적 통찰력으로 서기관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성경은 예수님이 대략 30세가 되어 공적인 사역을 시작할 때까지는 그분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사역 또한 한 중동 나라의 심장부에서 약 3년 동안만 진행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역은 모든 세대, 전 세계 사람들의 가치와 삶을 변화시켰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셨든지, 말 한마디로 폭풍을 잠잠케 하셨든지, 긍휼에 대해 가르치셨든지 그분은 인류에게 능력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초상을 보여주고 계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세상 앞에 자신의 신성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가장 큰 증거를 주셨다. 부활 후 40일 동안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만나서 자신의 메시지를 모든 이들에게 전하도록 촉구하셨다. 그리고는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성경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위대한 소망으로 끝을 맺는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산상수훈(마5:1-7:29)
어느 시골 언덕에서 무리에 둘러싸인 예수님은 자신의 통치를 출범시키는 연설을 시작하신다. 그것이 산상수훈이다. 그분의 주요 가르침의 핵심 요약인 이 설교는 그분의 형명적인 왕국에서의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다(마14:13-21)
너무 많은 사역으로 지친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무리를 떠나 배를 타고 강 건너로 가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변을 따라 거기까지 따라온다. 예수님은 지쳐 있었지만,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모든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 그때 예수님은 한 소년이 점심으로 가져온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모든 사람을 먹이셨다. 이런 극적인 기적을 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확신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마27:33-66)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한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비난하였다. 빌라도는 이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즉시 그를 처형하도록 명령한다. 이 처형으로 지도자들은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십자가는 옛 예언을 성취하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
예수님의 무덤 가에 있던 여인들(막16:1-20)
주일 아침,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그분의 무덤으로 갔다. 하지만 그들은 시신을 찾는 대신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하는 천사를 만난다. 이후 몇 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사도 바울은 후에 그리스도인들도 언젠가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고전15).
성령
성령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Trinity)라고 부른 삼위(three per-sons)-성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가운데 한 분이다. 성경엔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없지만, 이 용어는 분명히 구분되지만 모두 같은 하나님이신 세 분의 신적인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 중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회심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이 있다(마28:19). 지상에서의 성령의 역할은 역사에 걸쳐 변해왔다. 우주에 흑암이 가득하고 생명이 없을 때,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시면서(창1:2) 창조의 기적에 참여하셨다. (구약성경 기자는 때로는 ‘성령’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대개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렀다.) 구약시대 내내 성령은 이스라엘의 영웅들과 지도자들에게 능럭을 부여하셨다. 가령,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장래 왕으로 기름 부을 때,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16:13)고 말한다. 당시엔 성령의 사역은 특정한 지도자들과 특별한 사건만으로 제한되었다. 하지만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면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욜2:28)라고 약속하였다. 그 순간이 봄철에 기념했던 유대 절기인 오순절에 극적인 기적과 함께 도래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은 떠나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러고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5-26)고 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가르치셨다. 제자들이 기다리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행2:2). 성령이 오셔서 영적인 생기를 제자들에게 가득 채워주었으며, 이에 제자들은 용기를 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기적을 행함으로써 그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증명하였다. 수천 명이 기독교로 회심하고 성령을 받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은 훗날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3:16)라고 설명하였다. 더 나아가 바울은 성령으로 인도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함으로 옷 입고 죄된 방식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갈5:22).
베드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려다 가라앉은 일로 유명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를 베드로로 새롭게 부르시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다. 재미있게도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농담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이름의 변화는 훗날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바위처럼 견고한 헌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실 때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어부였다. 대담하고 마음이 강직한 베드로는 스스로 지도자가 되어 다른 제자들을 대신해서 예수께 말하기도 하고, 죽기까지 예수님을 좇겠다고 맹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드로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비겁함이다. 예수께서 재판 받으실 때, 베드로는 밖에서 기다리다가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다시 기운을 차린 베드로는 새로 출범한 교회를 감독하였다. 그의 첫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 회심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예수님을 재판한 바로 그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변호하였다. 베드로를 저자로 언급하고 있는 두 권의 신약 서신이 있으며,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의 설교가 마가복음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저술가들은 베드로는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지금의 로마 바티칸이 서있는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제자들이 성령에 충만해지다(행2:1-3)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자신을 대신할 때까지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약 10일 후에 강력한 바람 소리와 함께 성령께서 방에 충만하게 임재하셨으며, 제자들을 용기로 충만하게 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오순절에 삼천 명이 믿었으며, 처음으로 기독교 교회가 탄생하였다.
바울이 회심하고 선교사가 되다(행9:1-19 13-14장 16:16-40)
그리스도를 믿는 “이단들을” 잡으려고 가는 중에 바울은 그의 눈을 멀게 하는 빛을 보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체험으로 그도 믿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 여행하는 삶을 떠나 기독교를 확장하기 위한 선교사로 여행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는 비유대인들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확신한 바울은 로마제국 전역을 다니면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다.
바울이 비유대인들에게 유대교 율법을 따르게 하려는 자들과 논쟁하다(행15:1-21)
비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 특히 할례와 음식법을 지키게 하는 문제를 두고 교회에 첫 번째 큰 논쟁이 벌어진다. 바울과 베드로는 공회로 모인 지도자들에게 구원은 유대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함으로써 임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먼저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고보가 교회의 지도자가 되다(약1-5장)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는 자기 이름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편지를 써서 거룩함과 긍휼의 삶을 권면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다.” 1세기 한 교회사가는 유대 당국이 야고보를 처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
예수님 다음으로 기독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가지고 16,000킬로미터 넘게 여행하였고 신약의 사분의 일 이상을 기록한 이 열정적인 유대인이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 유대인들로 가득 찬 종교를 비유대인들의 종교로 바꾼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처음 교회가 시작되던 때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먼저 유대인으로 회심하고 성인 남자들이 꼭 치러야 하는 고통스런 의식인 할례를 포함하여 모든 구약의 율법을 지키기로 동의해야 했다. 바울은 비유대인들이 유대법에 순종할 필요 없이도 온전한 교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교회 지도자들을 확신시켰디. 그는 구약의 법은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옛 협약 중 일부였다고 주장하였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시작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 바울은 자주 폭행과 체포를 당했다. 결국 로마에서 마지막으로 붙잡혀 처형을 당하였다. 로마 시민인 바울에게는 신속한 죽음을 요청할 권리가 있었기에, 아마 근 참수를 당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구금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하다(행8:17-31)
바울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마지막 체포를 당한 후 로마로 압송되었으며, 거기서 재판을 받기까지 2년을 기다렸다. 그는 로마에서 지속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자유롭게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에게 편지를 썼다. 성경은 바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언급하지 않지만,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가 로마에서 참수를 당했다고 전한다.
요한의 하늘 환상(요한계시록)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마지막으로 남은 제자인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고 있던 중에 미래에 대한 환상을 기록한다. 그는 예수께서 약속대로 재림하실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상의 도시에 모이게 하실 것, 그리고 죄와 악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 “그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더 이상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계실 때, 그분은 열두 제자 중 가장 사랑한 제자-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한이라고 생각한다-곁에 서 있는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내려다보신다. “또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요19:27).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어부였으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아마 그들의 불같은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시기를 요청한 적도 있지만 예수께서는 이 요청을 거절하셨다. 하지만 베드로와 함께 그들은 예수님의 가장 친구들이었다. 제자들 중에서도 핵심 측근들이었다. 그들만 예수께서 천상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으며(마17:1-2)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에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는 모습도 그들만 목격하였다(막14:33).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에베소(터키 서부)에 정착하여 신약성경의 다섯 권의 책-요한복음과 요한 1,2,3서,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말한다.
첫댓글 분별못해 이상야릇한 글이나 종교 미혹에 빠진 분을 흔히 봅니다 .
분별할줄 아시는 이재기 집사님 감사드리구요
많은 양의 작업을 하다보면 하늘꿈 회원은 많지 않지만 이재기 성도님이나 열정집사님께서 올려주신 글은 믿고 시간있을때 감상합니다 .
외부에서 올라오는 글은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출처가 어딘가를 검색하고 찿아 아닌것은 사정없이 자르는 이유중에 하나는 건강한 카페를 운영하고져 하는 제 심중의 기도죠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
나만 사는 세상아닌 다같이 사는세상 저 하나의 실수로 하늘꿈이름이 있어 조심을 해야하고
저한사람으로 모든분들의 얼굴에 흠집을 남길까 조심스러워 목숨을 담보합니다 .
가진것은 하나님과 제 목숨밖에 없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