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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형용形容. (2)
우리가 여행할 때, 장가계의 무릉도원이나 그랜드케년 앞에 섰을 때..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날 때.. 우리는, 아~!, 어어, ...아니면, 그림같다 고 말합니다. 그림 같다.. 여기에 내포된 뜻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는 그림은 아릅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말로, 언어로 표현 할수 없는 뭔가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림같다 라고, 대신 말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는 명제에 도달하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시를 그림같이 형용할 수 있을 까요.. 이것이 형용의 주제입니다.
형용이란 한자어의 본의에서 세기면 말과 글이 사물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창작상의 기법을 말하는데요. 어쩌면 시의 풍격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의 미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든 좋은 시와 휼륭한 시, 대중에게 인기 있는 시는 형용의 미학이 빠질수 없죠. 시품의 여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시는 형용의 미학이 탁월하다고 보면 맞겠죠.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떻게 하면 형용을 잘 할수 있을까의 문제 이겠네요. 이 문제를 뿔어가는데.. 주목할만한 시론을 펼친 시인이 있습니다.
18세기 시인 신경준은 이런 말을 햇는데요..수많은 좋은 시가 있지만 .. 시의 작법은 영묘影描와 포진鋪陳이 있을 뿐이다 . 그럼 영묘와 포진은 무엇인가요? 영묘는 물속의 그림자를 묘사하듯 대상에서 나타나는 감흥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 속의 그림자를 묘사하기 어렵듯이 대상에서 느끼는 시인의 감정은 실은 꼬집어 내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즉 시는 그 무엇이라 꼬집내어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힘의 발현이라 하겠습니다.
박물지에 나오는 고사를 예로 들면요...유포라는 사람이 운한도 라는 그림을 그렸는데..그 그림을 본 사람이 덥다고 느끼고, 북풍도를 그리자 사람들이 추위에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의 묘사가 사람의 감각과 심령을 움직일 만큼 되어야 영묘를 제대로 한 것이라는 것이죠. 시의 글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용의 미학을..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속에 시가 있다.. 라는 말을 인용하여 그림처럼 묘사해야 형용이 잘된 시라고 정의하고 , 그 사례로 이백과 두보의 시를 화가의 신성한 솜씨를 뛰어넘어 거의 조물주가 사물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영묘와 포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모든 좋은 시에 함께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편의상 굳이 따로 분리해서 말하면, 포진鋪陳은 개진해서 펼친다는 것입니다.. 기승전결, 시의구성이나, 특정 시어의 배치, 시작과 결말을 여떻게 생경하게 전개할 것인가.. 시인이 바라보는 대상에서 이론을 세워 자신의 주의, 주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에도 시대에 따라 다양한 사조가 있는데요. 긴 서사시, 서정시, 성리학이나 불교의 선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송시나 이지적인 철학시, 현대철학의 구조주의적 사조에 영향을 받은 현대시들은 포진도 많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죠. 하여튼 영묘와 포진은 하나의 몸 속에 조화하고 서로 소통하는 부부라 할수 있죠
현대시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대상이 외재적이든 내재적이든간에 시인의 개별성이나 개성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깊이 침잠하거나 천착하여 자기 생각을 개진하여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각종 상징적인 부호를 남발하여 자신의 생각을 개진해 놓고서는 한 번 맞추어 볼래? 하는 것처럼요..현대시의 결함은 바로 여기에 있죠. 먼저 듣고 보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는데..독자가 이해하든 안하든 상관없죠. 언젠가 시인들 모임에 간적이 있는데요.. 누군가가 낭송가가 보는 좋은 시와 시인이 보는 좋은 시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속으로 나는 웃었지요... 낭송가는 관중이 듣고 이해하고 감동하는 시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지 않고 현대시를 왜 낭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더군요. 우선 감흥을 주지않는 시는 외우는 것 자체가 싫찮아요. 시를 쓴 작가가 스스로 설명해도 잘 이해되지 않은 시를 누가 낭송 할까요? 구조주의적 현대시는 긴 세월를 지배할 사조는 아니죠.. 모든 시의 백두대간은 역시 서정시이고 어떤 다양한 경향의 시가 부침하더라도 결국 복고적 전통의 서정시로 곧 회귀하라 예단해봅니다
자, 그럼 영묘와 포진를 어떻게 해야 잘 할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일단 평범해서는 안되죠. 시어가 일반이 쓰는 상용어로는 독자의 주목을 받을 수 없죠. 시의 기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인의 주문이나 기도가 시의 뿌리라고 합니다. 주문과 기도는 일상어에서 벗어나 있죠. 좋은 시는 일상적 상투어를 벗어나는데서 탄생합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일상어를 정교하게 다듬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생취가 나게,생경하게 , 싱그러우면서 낯설게 , 문장을 비틀기도하죠.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예를 들면..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줄 아는 까닭에.. 이 구절을 보면 좌우 문장과 매우 생경하지요. 이런 낯 설른 문장은 , 타고르의 시 가던이스트로를 읽고, 에서도 보이지요..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 바람은 말합니다. 그러나 로 연결하죠, 문맥상 그러면 하면 되는데, 역접으로 그러나로 연결한 것은 시 전체를 생취나게 하는 기법이라고 보아야죠. 혹자는 오자로 보지만, 저는 작자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는듯 안되는 듯한 생경함이 있지요. 그래서 시인은 모래알처럼 수많은 일상어를 뚫고 들어가 언어의 동굴에서 싱그러운 진주를 발굴하는 사람이죠.
좋은 시를 쓰려면,
거의 미쳐야 합니다. 좀 심한 말을 햇나요? 수정하죠. 기인이 되고, 광인이 되어야 합니다. 풀라톤이 말했죠.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셰익스피어도 비슷한 말을 햇는데요.. "사랑에 빠진 사람, 시인, 미친 놈은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자신의 내면 깊숙히 들어가서 광부가 땅속에서 광맥을 찾듯 동굴을 파야합니다.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하고 삶을 고민하고 정의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죽움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탐색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 답을 산속에서 또는 여행에서 또는 사랑속에서 섬광처럼 찾아 올 수도 있겠죠...말이야 쉽지만 실은 그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 시인은 왜 언어의 동굴로 들어가서 신음하며 싱그러운 시어를 찾아 헤맬까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젖은 마음을, 사랑의 진실을 일상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상대가 감동하지 않으니까요..나라를 잃은 시인은 조국의 소중함을 평상어로는 대중에 알려 각성시킬 수 없으니까요..삶과 죽음을 탐색하는 시인은 진부한 언어로는 삶과 죽음의 참 진실을 알려서 민중에게 생의 기쁨을 알려줄 수 없으니까요..
세계의 모든 유명시인을 관찰해 보면..편안하게 유복하게 일생을 보낸 사람 중에는 뛰어난 시인이 없죠. 동서양이 모두 그렇습니다. 왕이나 학문이 높은 학자나 지배층 계층에서 유명한 시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미칠 이유가 거의 없잖아요? 고통과 시련, 패배와 좌절, 죽음 앞에 빛나는 시어들이 나타는 것이겠죠. 그래서 시인을 무당, 접신하는 사람 , 광인이라 부르는 것이겠죠.
그러나 일상어를 사용하면서도 좋은 시를 쓴 이도 있습니다. 조건이 있조. 시각이, 관점이 남 다르고 특별해야 합니다. 역발상으로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은 시각으르 바라보아야죠. 갑자기 떠오르는 시가 없어 제시로 예를 들게요...우리가 절에서 보는 풍경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 어머니 그리움 깨달음 고독.. 많은 시상이 떠오르겠죠. 저는 목어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경각에서 눈 안감고 저렇게 경전을 읽는다고 부처가 되나? 눈 한번 감아보지.. 그래서 쓴 시가 저의 풍경입니다. 한 두달 전에 밤 세워쓴 시.. 초고를 이 벌판에 올린 적 있는데요. 뭔가를 고민하며 자다가 깨어나, 이러면 되겠구나 하고 밤새워 셨죠. 우리는 대상을, 세상을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죠. 내가 선 곳이 중심이고, 여기서 세계을, 우주를 관망하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구에서 우리민족사를 보고 남에서 역사를 보죠. 김부식도 그렇게 삼국사기를 셨겠죠. 우리민족사의 전개는 만주에서 대구 부산쪽으로 흘러들어왔죠. 자, 송화강에서, 흑룡강 강가에, 북에 앉아, 남으로 우리 민족사를 읽어보면.. 바라보면..지도를 그려 본다면.. 어떨까? 우리 역사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고구려가 혼란을 격고 있는 대륙으로 진출하지 않고 압록강을 건너는 지도자의 마음을 알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시가, 이 시 입니다
아, 고구려 조선이여 !
최재용
지도를 펼쳐라
왜 우리는 남에서 북을 보고 그리는가
시베리아에 우뚝 서서,
아무르 강뚝에 앉아서,
세계 지도를 그려보자
도도히 흘러가는 물길을 보아라
백두대간을 왼팔에 대흥안령을 오른팔에 안고 앉은
이 만주 벌에
태양이 저 지평선을 차고 오를 때
백두는 학춤으로 하늘에 깃을 펼치고
요하와 압록은 시퍼런 물살 출렁이며 뜻깊은 황해로 귀향하듯 달려가는구나
예맥과 구려를 만나고 싶거던
저 허접한 역사책은 덮어라
예리하다, 우쭐대는 신역사도 나서지말라
진실은 하늘과 땅, 산수에 비치어 숨쉬지 않느냐
오직 여기 수천 기의 석총에 향기를 맡아라
고구려는 요하를 건너 영원성을 넘는
대륙은 홀기고 냉소하며
대동강 능라도를 바라보고 압록을 뒤로 하지않았던가
태양으로 활활 타올라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문명은 말고
압록강 건너는 초생달 꼬리 잡고, 토끼가 방아 찍고 은도끼 금도끼로 장작 패며 오손도손 잘 살자고 아침의 나라에 왔지 않느냐
흰두루마기에 갓을 쓴 무사巫師를 보아라
지석묘와 장군총, 그 원형의 재생이 아닌가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을 보라라
저것이 솟대의 모습이 아니던가
저 구천에서 수혈신 모시고 와
대왕의 능묘위 전각에서 올리는 제천의식의 원융이 아닌가
숨가쁘게 달려온 영웅과 혼령들이 여기 성황당 솟대에 모여 다시 숨결을 고르고 있다
이제 서로 멀어지는 통일은 왜 말하나
이웃이 되자 나를 사랑하듯 너를 인정하자
솔갈비솔가지 타닥타닥 가마숱에 시뻘건 불 훨훨 타오르고,
" 동무레 ~ 낼모레 평양냉면 한 사발 하러 오시라요~"
자주 보고 오고 가며, 찬공기도 숨도 나누워 가지자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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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문학, 부산 문장21에 등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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