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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부메랑이다
이 홍사
-천 년 간,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비겁당의 저명인사가 뻔뻔당의 누구의 면전에 대놓고 날카로운 분노의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 방송에 출연하여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다. 홍랑이 그런 말을 퍼부었다는 사실을 미얀마에서 뉴스를 접하고 알았다. 정계가 상당히 달아올랐다. 막말에 막말이 꼬리를 물고 있다. 막말? 이젠 비난이 아니고 비판이다. 비판과 비난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게 홍랑의 생각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였지만 그렇게, 고객님이라는 존칭이 꼬리를 물면 반가울 수가 없고, 이거? 어떻게 거절하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게 마련이다.
건강보험 공단입니다. 지금 내시는 건강보험료를 자동납부를 신청하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홍랑이 귀국하고 공항에서 처음 받은 전화였다. 이것 또한 막말이다. 입국장 로비를 빠져나오면서 꺼두었던 전화를 켜고 곧바로 받은 전화였다. 기분이 팍 상했다. 건강보험? 이런 거 누가 만들었어? 그렇더라도 전화를 받았으니 대답은 해야 한다. 사실이지 대답조차도 귀찮고 끊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조금도 없는데요.
인력이 남아도나?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이런 전화를 다하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구미에 도착하고 또 전화로 욕을 먹었다.
사무실의 경리부장인 막내여동생은 또 홍랑이 비를 몰고 왔다고 투덜거렸다.
미얀마는 지금 우기의 절정이다. 매일 비가 한두 차례 내린다. 안 오는 날이 없다. 비가 오다가 잠시 햇빛이 나고 햇빛이 났나 싶으면 금세 또 스콜이 쏟아지는 날씨의 연속이라 일기예보 같은 건 아예 없는 나라다. 기상청이라고 있나? 모르겠다. 홍랑은 미얀마의 기상청이라고 들어본 적이 없다.
우기가 우리나라 장마처럼 한 달에 끝나는 게 아니라, 오월부터 시월까지 거의 오륙 개월 간 지속된다. 그게 열대다우림의 특징이다. 그런 나라에 머물며 비를 탕진하다가 오니 또 일주일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단다.
토요일 저녁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밤차를 타고 내려왔음으로 아직 여동생은 만나보지 못했다.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니 반갑다는 말의 역설적 표현인지 홍랑에게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처서가 지나갔나?
한 달이 넘게 나가 있다가 왔더니 날짜가 가는 줄을 모르겠다.
비는 며칠째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여독은 하루 만에 깔끔하게 풀리지 않았다.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몸은 가뿐하지가 않은데 조국이 돌아가는 꼴이 꽤나 거슬리는 것이었다.
새벽비가 오고 있다.
추적추적. 아래층 부품가게 출입구 위의 플라스틱 재질의 차양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청승맞게 들렸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고 또 태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많은 비를 몰고 온다는 십이 호 태풍 링링이란다. 링링? 기분이 참담해서 그런지 태풍의 이름조차도 더럽게 여겨졌다.
다음 주에 추석이니, 연휴를 빼면 이번 달도 이미 반은 공치고 들어간다. 그렇게 작정하고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게 정신건강상 이롭겠다. 중기대여업이란 본디 하늘과 동업으로 하는 장사인데 그렇잖아도 일이 없는 판국인데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이번 달도 얼마나 손해나는 장사가 될지? 짚어보니 참담한 심정.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은 목포 서쪽 해상을 통과하고 있다고 했으며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태풍이 올라온단다. 언제부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매스컴은 오로지 일기예보뿐이다.
세상이 바뀌고 건설은 완전히 전처가 데려온 자식이다. 전처는 이미 죽었다. 그 자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건설? 건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오로지 복지, 복지! 그놈의 복지, 정말이지 복지가 발에 걷어차일 정도로 복지공해다. 오로지 복지뿐이다.
건설을 살려야 한다? 뭔 소리야? 왜 뜨신 밥 처먹고 쉬어터진 소리를 하고 있어?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난리들이고 홍랑역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를 당하고 있다. 사십 년 중기 인생에 이렇게 참담하고 처참한 경우는 처음이다.
경리부장인 여동생보다 중장비기사들이 더 난리다.
월급받기가 미안할 정도란다. 많이 미안해해라. 그런 말들이 기사들 입에서 나오는 실정이니 돌아가는 살림은 알만하다. 이미 망하는 집구석 머슴들 밥이나 많이 주라고 했다.
-아무소리 말고 그냥 주는 월급이나 받아가!
아무리 일이 줄었다지만 고정 거래처에 추석이라고 선물은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선물은 비싼 걸로 많이 하라고 했다. 선물을 뭐로 할 거냐고 미얀마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 달갑잖은 소리에 들어가서 결정하자고 하고 끊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는 미주알고주알 선물에 대해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미얀마공사는 한 현장이 막바지공사라라 엄청 바쁘게 공정을 체크하며 설치다가 들어왔다. 들어오는 시간까지 현장을 돌아보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작업의 순서와 미진한 부분에 대해 다시 손질을 하라고 시키며 잔소리를 하다가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탄 것이다. 공사업자라는 작자에게 나머지 공사를 뭐, 뭐는 필히 꼼꼼하게 체크하라고 수차례 일러주었지만 못 미덥기는 여전하다.
기사들은 투표를 잘못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다.
홍랑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분명히 불편한 진실이다. 이 놈의 세태는 어떻게 된 건지 불편한 진실을 말하면 막말이 되는 것이다. 헌데 막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은 건 분명히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거다.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면 가짜뉴스란다. 그렇게 치부하는 부류들은 다 철 밥통 월급쟁이들이다. 제 날짜에 월급이 나오니 이 처절할 정도의 불경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재정이 고갈되어 월급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어도 가짜뉴스를 운운할 것인가?
막말, 아니다. 막말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재야의 어떤 인사의 말을 들으면 속이 오히려 후련할 때가 있다. 거기다가 홍랑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로 덮어씌우기를 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막말프레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틀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멀쩡한 입에서 욕이 나오는 세상으로 변한 건 사실이다.
말?
요즘 선생님들은 참 애를 먹겠구나, 문득 그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탑승수속을 하기 위해 공항에서 줄을 선 어린 학생의 말을 듣고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하며 교사란 직업이 참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홍랑은 일로 다니니 미얀마를 갈 적에 어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게 좀 싸다고 들었지만 가급적이면 직항을 탄다. 그래야 한국에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스케줄을 조정하고 그곳의 일이 늦으면 간단하게 연장시켜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게 직항의 이점이다. 자주 들락거리니 항공료가 부담이 되긴 하지만 무조건 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헌데, 이번에는 한국의 휴가철이고 미얀마엔 우기고 해서 베트남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다. 찬스다. 기회를 결코 유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하여, 갈 적에는 하노이에서 이틀간 스톱오브를 하고 올 때에는 호찌민에서 이틀간 스톱오브를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경비를 들여서 갔다가 오는 게 아니라 들락거리면서 공짜로 베트남을 둘러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직항을 타면 우수여객에게 주는 혜택이 있어 홍랑은 줄을 많이 서지 않고 바로 탑승수속을 하는데 이번엔 베트남항공이라 줄을 서서 지루하게 기다려 탑승수속을 해야만 했다.
뒤에 선 학생인데 중학생쯤 되어 보였다. 모양새가 가족여행이었다. 얼른 보아도 다문화가정인데 베트남의 외갓집에 가는 모양인가? 엄마라는 사람이 베트남사람인데 한국말이 상당히 서툴렀다. 그 부부로 보이는 사람은 나이차이가 꽤나 나는지 아버지라는 작자는 홍랑과 나이가 얼추 비슷해보였다.
-무슨 개소리야?
줄 옆에 삐져나온 아버지라는 작자가 카운터에 영어로 쓰인 문구를 보고 무슨 말을 하니 아이가 한 대꾸였다.
홍랑은 또렷이 들었고 순간적으로 숨통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말이 개소리야?
다혈질인 홍랑이 끼어들어 나무라고 싶었으나 한 손으로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제 아버지가 버젓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 말을 기화로 뒤에 선 아주머니가 학생에게 따지고 들었다. 호리하고 키가 자그마한 사십대였는데 상당히 세련되어 보였다.
-학생! 말버릇 참 고약하네?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어요? 찐년이 뭐예요? 찐년이?
줄을 서기 전에 조금의 혼잡이 있었다. 항상 줄이 형성되기 전에는 그런 혼잡이 있게 마련이다. 캐리어로 줄을 세우고 모여서 노닥거리다가 아주머니가 캐리어 앞에 줄을 서자, 그 때 학생이 제 캐리어가 있던 줄을 끼어들며 했던 말인 모양인데, 찐년?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미친년의 속어인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상당히 분했는지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지간히 참다가 입을 뗀 모양이다. 그렇게 시비가 불거지자 아이의 엄마인 베트남여자가 어눌한 말로 뭐라고 사과를 하고 아이를 나무랐다. 사과를 하는 여자와 사과를 받는 여자에게서 풍기는 품격과 세련미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헛기침을 한 홍랑은 남의 일이지만 불쾌했고 줄을 선 자리가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개소리?
요즘 선생님들 참 애를 먹겠구나.
학생의 인권은 있어도 선생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제 아버지 말에 개소리라고 하는데 선생의 말에는 개소리라고 하지 않을까?
그 아이 입버릇대로라면, 선생님이 하시는 개소리를 듣고 배운다?
뭐 이런 어폐가 다 있어?
이제 교권은 어디에도 없다.
반에 저런 놈 하나 끼어 있으면 선생노릇도 할 짓이 못되겠구나!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을까? 체크를 해보아야겠다. 어쩌다 이렇게 막 가는 사회가 되었나? 그 놈의 말, 말, 말! 홍랑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논리를 싫어하는 지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고 뭔지 모르지만 엉망진창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그런 걸 보면 논리적으로 나무라야지?
그대! 예리하고 날카로운 논리로 나의 언어를 조롱하지 말라. 나에겐 논리가 없다. 그대가 지닌 준엄한 논리로 내 구멍이 숭숭한 언어를 비판하지 말라.
홍랑은 줄을 선 내내 그런 말을 곱씹었다. 그리곤 그 아이와 눈을 맞추지 않고 애써 외면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좀 참았다가 추석연휴에 오면 좋으련만.
이 시간이면 조간이 왔을 것이다.
홍랑은 시계를 힐끔 보고 현관에 나가 던져둔 신문을 들고 들어왔다.
비에 젖지는 않았지만 신문은 눅눅했다.
조간을 회의용 탁자에 펼치고 대충 훑어보니 반가운 소식은 하나도 없다.
좌파는 뻔뻔하고 보수는 비겁하다.
신문을 타이틀을 대충 훑어보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말이다. 어느 재야의 인사가 했던 말인데 공감하지만 그 또한 막말이다. 요즘은 신문도 잘 골라서 봐야 한다,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할 언론이 분명히 그렇지를 못하다. 텔레비전은 안 본 지가 오래 되었다. 이유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방바닥이 기울었으니 텔레비전이 기우는 거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속어로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합성어인데 이런 단어가 공공연히 떠도는 세상이 되도록 언론은 뭘 했을까?
홍랑은 뉴스가 주는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한다.
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 한국에서 날아온 따끈한 신문을 제공한다. 탑승객이 골라서 들고 들어가도록 탑승구 입구에 진열해놓는데 그 타이틀만 훑어보면 뒷머리가 뻐근하다. 한국의 뉴스가 주는 스트레스 엄청나다. 홍랑은 신문을 기내에 잘 들고 들어가질 않는다. 돋보기 없이는 읽지도 못할뿐더러 기레기들이 주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가 않은 마음에서다.
내 입에 베이컨이 물려있는데 대통령이 어느 놈인지 알 게 뭐야?
유명한 말이다. 홍랑도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입에 베이컨이 물려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지금은 그 베이컨을 누군가가 빼갔다. 베이컨이 없는 맨입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누구인지, 무슨 사단을 내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엊그제 국회에서 인사 청문회가 있었다.
괴뢰부인지 박무부인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였다.
비겁당에서는 말을 꼬아서 무엇을 캐내려고 하고 뻔뻔당에서는 낯이 간지러운, 교사로 일관하며 허울을 덮으려 했다. 청문을 받는 후보자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고 불리한 질문에서는, 자신은 몰랐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걸 속어로 모르쇠 화법이라고 한단다. 고품격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머저리인 홍랑이 보기에는 청문회가 아니라 저질스러운 말장난에 불과했다.
말, 말, 말!
비겁당 국회의원은 생중계하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질문이 무슨 요지인지도 모르게, 길게 하고 대답은 짧게 하라고 했다. 텔레비전에 많이 나와서 얼굴을 국민께 알리고 싶은 거겠지. 뻔뻔당에서 추천한 인물이라 그런지 청문을 받는 후보자는 참으로 뻔뻔했다. 자녀 입시문제부터 재산 증식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나는가?
어느 비겁당 인사는 질문에 앞서 그런 원론적인 말을 하면서 혀를 찼다.
-그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나우?
-이걸 공직의 끝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뻔뻔했다. 잠시 본 지나가면서 본 텔레비전에서 홍랑도 그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게 핑계를 둘러댈 수도 있겠구나.
마지막으로 그 자리를 차고앉아서 또 무슨 짓을 얼마나 해서 이젠 자산가가 아니라 재벌이 되려고 하는가?
반문하며 얼른 텔레비전을 껐다. 저런 데 눈길이 빠지면 정신이 혼탁해져서 다른 일을 못한다. 뉘우칠 줄 모름이 진짜 허물!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분명하리라. 뉘우치기는커녕, 자기 합리화에 세치의 혀가 바쁜 지경이었다. 아서라!
청문회는 하나도 검증된 것이 없이 말잔치로 끝이 났다.
끝으로 한 말은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했다. 이미 따놓은 당상자리인데?
그 한 마디를 들으려고 세금으로 녹을 받아먹는 자들은 그렇게 열을 올렸던 것이다. 홍랑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이건 아니다.
청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 한쪽에선 조사기관들은 저 자가 임명되어도 상관이 없겠느냐는 여론조사를 벌였단다. 툭하면 여론조사인데 홍랑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여론조사기관이라는 데서 전화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홍랑은 의견은 한번도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하는 사람만 하는가? 그 여론조사란 것도 홍랑은 신뢰가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청문을 받은 후보자는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알고 있는 듯했다.
Crisis is Occasion!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지만 위기는 기회다. 그 말을 알고, 단지 의혹만 가지고 임명에서 제외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되받았다. 잘 포장된 말이지만 이 또한 까뒤집어보면 막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참 멋진 말인데, 정말 기회가 균등한가? 정말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가? 관심 밖에 두고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들리는 걸 우짜노? 귀에는 껄끄럽게 들리며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전혀 아니다. 그렇게 들리는 걸 우짜라고? 드디어 내가 미쳤군!
홍랑은 허공에 대고 혼자 지껄인 것을 알고 미쳤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두가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될 수는 없다.
개구리, 가재로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유명한 말을 했는데 제 자식은 용이 되도록 각종 편법을 썼던 게 탄로가 나서 의혹으로 불거진 것이다, 그 언어가 예리한 양날을 지닌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슴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러. 나.
본인은 제외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해야 할 그 말은 당연히 생략되었다.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말은 부메랑이다. 특히나 뻔뻔한 위선자의 말은 항상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슴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너무 뻔뻔해서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개구리 가재로 살아야할 대상들이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연일 대학가에서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있다. 개구리와 가재들의 반란이다. 퇴진을 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지껄여라. 나는 한다. 청문회에 관계없이 바로 다음날 괴뢰부인지 박무부인지 수장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당연하지.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한 점의 악수惡手를 두었다. 자충수를 두고 있는 건 아닌가? 바둑돌을 던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실상 국민과의 전쟁은 그로써 선포된 것이다.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격노해야 마땅하지만 국민들은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된 지 오래되었다. 냄비 속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있지만 물은 이미 슬슬 끓고 있다. 그러나 개구리는 느끼지 못한다.
괴뢰부인지 박무부인지, 거기서 자기 자식의 비리와 자신의 재산증식과정을 수사하는데 그 수장으로 발탁되다니. 세상에 못 뚫는 방패가 없는 창과. 세상에서 못 막는 창이 없는 방패를 양손에 쥔 것이다.
나를 구속시켜?
어림이 서푼어치도 없는 소리!
임명장을 받자, 그날부터 바로 자신을 수사하는 팀의 모가지 옥죄기 작전에 돌입했다. 개혁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내부권력과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사를 진행하던 팀들은 그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둘 다 큰칼을 빼어 들었다. 한판 진검승부가 남았지만 누가 죽어도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몰락이 서막을 올린 셈이다.
왜? 이런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을까?
피해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이해할 수가 없군!
홍랑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 가운데서 홍랑은 자기생각만 했다. 본디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법인 모양이다. 사회주의 권력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될 것이 아니라 팔리지 않는 미얀마의 주택을 팔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미얀마로 살짝 옮겨 앉아? 여기서는 농협에 가면 VIP대접을 받는 채무자에 불과하지만 거기 건너가면 갑부다. 주택이 거의 스무 채가 있으니 물가가 비교적 싼 거기에 가서 산다면 평생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건데?
헌데, 자유주의자와 동시에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괴뢰부인지 박무부인지 수장으로 임명받은 자가 그런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양립은 모순되지 않는다? 거듭 곱씹어보지만 홍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회의 이득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쯤이야 짓밟아도 되는 논리가 팽배하는 게 사회주의 이론인데 그렇게 말로만 한다고 그게 양립할 수가 있나?
말, 말, 말!
말로 떡을 하면 오천만 국민이 먹고도 한 시루가 남는다고 했다. 괴뢰부인지 뭣인지 수장으로 임명되는 순간, 떡 쪄먹고 시루 엎은 꼴이 되었다. 얼마나 수사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일단은 두고 보자!
두고 보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인상이 탁했다.
탁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 모양인데 그게 눈에 엄청 거슬렸다. 초식동물처럼 선한 눈동자를 지닌 것이 아니라 하이에나의 눈동자라고 할까?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불통의 아줌마다. 첫 인상이 그랬다.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나?
괴뢰부인지 박무부인지 수장인 된 그의 여편네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딸을 의전에 넣기 위해서 총장의 표창장을 위조한 대학교수라는 그 여편네의 인상은 분명히 탁했다. 결코 맑은 영혼의 소유자는 아니라, 이문에 혈안이 된 복부인 인상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장관 마누라! 정경부인의 인상은 아니었다. 저 얼굴에 정경부인이 된다면 그것 또한 조국에 대한 모독이다. 이것 또한 막말이 분명하지? 한 마디 하고 싶다. 돈을 쌓지 말고 덕을 쌓아라, 이 여편네야!
아서라!
막말 프레임에서 좀 벗어나자. 해장부터 이건 멀티 막말이다. 스스로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새벽부터 이게 무슨 난리인가? 벗어나자! 맑은 정신으로 정서를 좀 회복시키자.
아침을 먹고 동생이 나오면 추석 선물을 어떤 걸로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재를 해 줄 곳도 얼마가 되는지 파악하고 자금을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지난 설에는 홍삼세트로 했지 싶은데 기억하기로는 엄청 비쌌다. 거래처 직원들이 명절이라고 하나씩 들고 가도록 해야 하니, 양이 엄청나다. 매번 해보지만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이런 경기에는 그렇게 비싼 걸로 할 수가 없다.
줄여야 한다. 개수를 줄이는 게 아니라 단가를 줄여야 한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한 번 훑어볼까?
마땅한 것이 있으려나?
홍랑은 인터넷 쇼핑을 할 줄 모른다. 그러나 들어가서 시세정도는 파악할 수가 있다. 마땅한 게 있으면 찜을 해두었다가 동생이 오면 보여주고 구매를 해야 할 것이다. 일단 가격이나 알아보고.
인터넷을 켜니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난리다. 쇼핑몰에 들어가기 전에 눈에 띄는 뉴스였다. 자주 들어가는 포털 사이트, 메인화면에 큼직하게 실려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나? 절망적인 뉴스다.
-이것도 심각하지!
남의 일이 아니다.
좌우논리를 떠나 정치적인 편향 없이 공감하는 바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 결혼을 해서 둘이서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둘이서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 세상!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고 있나?
오늘 새벽에는 왜 이렇게 골머리 아픈 사안에 사유가 정박하는 걸까?
닻을 올리자!
헌데, 사실이지 아이를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너무 적게 낳는 남을 나무랄 일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셈치고 아이를 하나 만들어봐? 옛날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산파노릇을 하고 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산파노릇을 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옛날 말에 쉰둥이도 낳고 검둥이도 낳는다는 말이 있다. 결코 오래 전의 얘기가 아니다.
홍랑이 어릴 적에 듣고 자란 말이다.
친구들 중에서 어느 집 막내는 엄마의 젖이 말라 그 젖을 먹지 않고 형수님의 젖가슴을 만지며 젖을 빨고 자랐다는 친구도 더러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시간이 많은데 그런 거사를 기획해 봐?
추석날 보름달이 떠오르면 그 기운을 받아 아내의 자궁에 달의 씨앗을 뿌려 봐?
달의 기운을 받아 음기가 동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혼자 마음먹는다고 될 일은 아니지. 사회에 기여하자고 아내를 구워삶아 동의를 구해 봐?
지금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홍랑이 살 수 있을까? 그 새로 만든 아이를 책임질 자신이 있는 걸까? 아니다. 옛날 말에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고 했다. 낳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고마운 일이지. 요즘 늦둥이를 낳는 게 유행이라던데,
하나를 낳는데 성공을 하면 아내에겐 새로운 소일거리가 생기는 셈이니 집에서 되지도 않은 개새끼를 키우는 것보다는 보람이 있겠지. 심심해서 개를 키우는 건 생산성이 없다. 차라리 늦둥이를 하나 낳는 게 낫지.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그 생각을 왜 여태 못했지?
헌데, 홍랑은 자신이 있는데 아내에게 생산능력이 있나 모르겠다. 없다면 밖에서 하나 낳아오는 게 어때? 헐! 어쩌다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렀군.
아내에게 물어나 볼까?
생산능력이 있나 물어보고 없다면 밖에서 하나 낳아 올 터이니 키워달라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하면 먹혀들려나?
아내가 막말이라고, 잡아먹으려고 달려들겠지?
말은 부메랑이라고 했다. 진심이 그렇더라도 함부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걸 우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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