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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9-20)
9 Well then, are we Jews in any better condition than the Gentiles? Not at all![a] I have already shown that Jews and Gentiles alike are all under the power of sin. 10 As the Scriptures say:
“There is no one who is righteous,
11 no one who is wise
or who worships God.
12 All have turned away from God;
they have all gone wrong;
no one does what is right, not even one.
13 Their words are full of deadly deceit;
wicked lies roll off their tongues,
and dangerous threats, like snake's poison, from their lips;
14 their speech is filled with bitter curses.
15 They are quick to hurt and kill;
16 they leave ruin and destruction wherever they go.
17 They have not known the path of peace,
18 nor have they learned reverence for God.”
19 Now we know that everything in the Law applies to those who live under the Law, in order to stop all human excuses and bring the whole world under God's judgment. 20 For no one is put right in God's sight by doing what the Law requires; what the Law does is to make us know that we have sinned.
9.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9 Well then, are we Jews in any better condition than the Gentiles? Not at all![a] I have already shown that Jews and Gentiles alike are all under the power of sin.
*놀라움들
종교란 무엇인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것인가?
6일 동안 경험했던 세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러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일까?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면 적이 칼 들고 쳐들어와도 그대로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적이 목에 칼을 겨누어도 저항없이 죽음을 택해버렸다니까요!
로마인들은 이런 유대인들을 징병할 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히 바리새인 사두개인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비판하는데.......
저는 목사라도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신앙도 일단 살고 봐야지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신앙을 처음 접할 때 저는 이 말씀에 놀랐습니다.
24.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눅6:24)
세상에서는 제일로 쳐주는 재물 복을 재앙의 원인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
성경에서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하셨습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제자들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6:20)
현재의 가난이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삶은 그냥 개고생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난이 마치 나사로처럼 미래의 아브라함 품을 보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불의와 싸우다가 물고문당해 죽은 사람을 두고 개죽음당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순교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최고로 대접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제가 이 땅을 보는 제 시각을 180°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전제가 제 삶은 들었다가 놔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을 교회에서 발견했습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을 그것도 교회가 마태복음의 말씀으로 무력화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겁을 한 것입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3)
강대상의 목사님 주장은 누가가 잠깐 졸다가 마음이라는 단어를 빼먹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태껏 누가복음 6장의 본문을 들어서 설교하는 목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영육간의 복이라나?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교회의 태도에 놀란 것이 두 번째입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을 일점일획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동시에 인정한다면 영육간의 가난을 언급해야 옳은 것입니다.
저는 성경의 말씀이 역사 현실로 드러나야 한다는 완전한 보수주의자입니다.
아니라면 내가 왜 하나님은 믿어?
그런데 종말의 1분 전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로 의심이 드는 성경 구절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4.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사2:3-5)
종말을 두고 하신 예언의 말씀이 분명한데 갈수록 태산입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미얀마, 이스라엘, 우리나라도 피바다 될 뻔 했고.......
우리나라는 쟁기의 보습으로 탱크를 잘도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로 수출하고.......
원로 목사들이 성경을 앞장서서 곡해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성경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서 부자가 복이 있다고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내란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대로 된 말씀이 땅 끝에 이르고 또 제대로 된 말씀이 우리 심령 깊이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짝뚱 말씀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복되다는 엉터리가 땅 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 이래서 종말인데도 쟁기의 보습으로 탱크를 만드는구나!
그리고 두고두고 놀랐던 것은 바로 이 바울의 이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의인 중에 바울도 있고 프란시스코 또 손양원 목사님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웃기는 이야기지만 내 목구멍이 열린 무덤인 줄 정말로 몰랐습니다.
내가 그 정도 죄인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내가 일생을 미자립 시골 교회에서 사례를 제대로 받기나 했나? 십일조도 그런 데로 잘 했고.......
*복음
그런데 이 죄인이 이방인과 유대교 회당에 국한 되는가?
교회 집단은 아닌가?
이 일에 대해 요한은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눅3:8)
열매도 없는 주제에 자신을 두고 무슨 아브라함의 후손 운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선민의식에 젖어있는 사람을 위해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로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마7:19,20)
특별히 그 짝뚱 열매에 주의해야 합니다.
엉뚱한 짓을 열매로 착각한 사람들의 운명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3)
그 마지막 심판 자리에는 예수님께 짝뚱을 내밀며 진짜라고 우기는 자들이 허다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0 As the Scriptures say:
“There is no one who is righteous,
*바울의 선언
물론 성경이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이 말씀을 이미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말씀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써 다시 선언했던 것입니다.
10.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0 “There is no one who is righteous,
유대인들은 그들만이 하나님의 법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엄청난 특혜입니다.
그를 통해서 그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보장되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무리라는 같은 확신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또한 의인이 될 수 있는 길도 막혀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백은 진짜고 유대인의 고백은 가짜입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 그 고백 행위에도 가짜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마치 사형틀 위에 서 있는 사형수와 같습니다.
그가 밟고 서 있던 발판이 철커덩하면서 쑥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대롱대롱 허공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고백이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통해 의로움을 얻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 의를 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어디 흠잡을 구석이 없는 부러운 삶을 산 것입니다.
그의 죽음조차 믿음을 따라 살다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로 인해 제대로 십자가에 달릴 자격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거꾸로 달아달라고 로마 군병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자신이 당장 악질적인 죄인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의인이라는 신앙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이런 역설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가 고백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중심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의인 반열 안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사람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
또한 익숙한 종교적인 고백은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아닌 자신의 고백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에 대해 요한이 지적한 것입니다.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눅3:8)
예수님의 첫 번째의 설교의 내용입니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 지방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깨끗함을 받았다."(눅4:25-27)
예수님께서는 그 고향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버리셨습니다.
이 고발을 들었던 고향 사람들이 참을 수 없어서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격정적인 이 고발을 하셨던 것은 그들의 이 말 때문이었습니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눅4:22)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함께 아멘 할렐루야를 외쳤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 은혜의 고백에 스스로 놀라서 예수님을 보니 그는 이웃집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별볼일이 없는 출신이었습니다.
돈 없어서 마구간에서 아들을 낳은 집안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가짜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의 생일을 기억하듯이 이런 가벼운 지식들은 신앙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어야 합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비로소 그 말씀의 경험을 했습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9:4,5)
아주 짧은 말씀이었는데 바울도 그 말씀에 그대로 꼬꾸라졌던 것입니다.
아주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땅을 기어다녔습니다.
여러분도 단 한 말씀에 앞으로 그대로 꼬꾸라질 주의 말씀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충격으로 아주 딴사람이 만들어져 버리는 말씀입니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1 no one who is wise
or who worships God.
*깨닫는 사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지하도에 들어가면 방향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남쪽인지 북쪽인지......
언제인가는 약속 시간에 쫓겨서 지하도를 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헐레벌떡 지하도에서 길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길 건너 엉뚱한 장소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그 땀나는 달리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더 늦은 것입니다.
남쪽인지 북쪽인지 알고 뛰어야지 깨달음이 없는 열심은 하나님과 더 멀리 떨어지게 합니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2 All have turned away from God;
they have all gone wrong;
no one does what is right, not even one.
*곁길로 빠져서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바를 깨달음이 없이 곁길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당장 우리가 기독교 이단들에게 그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 죽이고
노름하고
강간하고
내란의 핵심 역할을 하고
정치인에게 뇌물 주고.......
그런데 저는 기독교 이단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 세력이 역사적으로도 아프리카 흑인을 데려다가 짐승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성경을 통해 정당화했던 것입니다.
25. 이렇게 말하였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장 천한 종이 되어서, 저의 형제들을 섬길 것이다."(창9:25)
600만을 죽이고 그것은 예수님을 죽인 것을 결과라는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한 적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전함에 무수한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흰 비단에 그려진 십자가 깃발이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을 통치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뜻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 십자가의 깃발 아래 가장 잔인하게 학살당한 것입니다.
십자가 들고 사람 죽이면 그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로 목사가 기도하면 그것이 거룩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 있습니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3 Their words are full of deadly deceit;
wicked lies roll off their tongues,
and dangerous threats, like snake's poison, from their lips;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4 their speech is filled with bitter curses.
*열린 무덤
사람의 죄는 먼저 언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제 목구멍이 열린 무덤인 것을 성경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바울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이니 껍데기에 제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시체가 있는 이상 목구멍에서는 시체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독사의 독이 저주와 독설이 내 안에 시체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향수로도 그 냄새를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선한 말을 골라서 했는가!
그러나 거기에 같잖은 향수가 범벅이 된 시체 냄새가 진동했던 것입니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5 They are quick to hurt and kill;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6 they leave ruin and destruction wherever they go.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7 They have not known the path of peace,
*평화의 길
이제 말에 이은 그 행실입니다.
사람의 길과 반대의 평화의 길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피흘리기에 바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북한 군이 쳐들어 올 뻔 했습니다.
5.18 여의도 항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그 인간이 저녁 시간에 나타나더니 피 흘리기에 바쁜 자들이 우루루 몰고 왔던 것입니다.
거기에 유명 목사들이 끼어들어서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강대상에서 피를 부르는 내란지지 설교를 할 줄이야!
예수님께서 평화의 길을 말씀하셨을 때 그 길을 막은 사람을 베드로였습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마16:21,22)
정말로 엉뚱한 사람이 사탄짓을 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를 하더니 그 자리에서 마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8 nor have they learned reverence for God.”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을 거부하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을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걸이로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양쪽 귀볼에 걸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동차 앞에 대롱대롱 걸고 다니고.......
교회는 지붕 꼭대기마다 그것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밤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라고 붉은 레온등으로 밝힙니다.
하지만 만인이 아는 그 십자가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십자가를 말하면 아주 바보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을 믿어도 십자가는 아닙니다.
교회조차 돈 없으면 되냐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도 예배드리고 나서 교회 마당에 세워둔 k2 k9 kf21 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탱크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찰떡 같이 믿고 그것을 그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겟세마네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보이신 길입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그 길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19 Now we know that everything in the Law applies to those who live under the Law, in order to stop all human excuses and bring the whole world under God's judgment.
*율법
지금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이 바울의 말을 비교적 쉽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제 죄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지적당해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무언 줄 아느냐고 반문합니다.
이 율법이 자신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내세우면서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19 in order to stop all human excuses and bring the whole world under God's judgment.
율법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이 법을 지켰다고 입을 여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는 율법으로 의를 세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율법은 바로 그 입을 틀어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20 For no one is put right in God's sight by doing what the Law requires; what the Law does is to make us know that we have sinned.
*사람
바울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사람이고 둘째는 율법입니다.
먼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딱 한 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동산 중앙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주신 그 금지 명령을 줄줄 외우고 있었습니다.
에덴에서 뱀이 그 이브에게 몇 마디 던지고 지나 갔습니다.
그런데 뱀의 이 말에 이브의 상상력이 발동한 것입니다.
그것은 먹음직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그 분의 지식을 감추시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것을 먹으면 나도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겠구나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냉큼 먹은 것입니다.
남편에게도 들고 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율법
그러면 지킬 수 없는 사람에게 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미적분을 풀겠습니까?
그들은 죽음의 늪에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뱀이 던지고 간 몇 마디에 그들의 줄줄 외우던 하나님의 말씀이 헛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법의 의미는 이제 그리스도께 가는 길 외에 살길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이정표가 된 것입니다.
율법은 이제 그리스도께로 가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려 달려들었다면 당치도 않는 소리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