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당이 소재한 승곡리는
- 승곡리(升谷里) 원래 장천면 지역이며 勝長寺가 있었으므로 "승장골" 승장곡(勝長谷) 또는 "승장"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언상(言上), 언중(言中), 언하(言下), 제동(齊洞), 요포(繞浦), 통사(通仕), 옥곡(玉谷), 송천(松川), 승상(升上), 승중(升中), 승하(升下) 등 여러 마을을 병합하고 승곡이라 개칭하였다.
- 양진당(養眞堂), 요포(繞浦)
처음은 요포라 했으나 인조 4년(1626)에 건립한 지방문화재 85호인 양진당을 짓고 나서 마을 이름도 양진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 옥가실, 옥곡(玉谷)
이 마을은 청주한씨가 임란 때 이곳에 후 그대로 정착 한 마을로 마을 뒷산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바위 사이로 항상 맑은 물이 있으며 마을이 들어서 있는 터에도 옥같이 생긴 바위들이 많이 깔려 있다.
- 퉁사동, 통사동(通仕洞)
이 마을에는 일제 초엽 용포오리원의 관아를 뜯어 와서 영효재란 재실을 지었는데 그때부터 마을이 이루어졌고 마을사람들 은 양진당의 선비들과 잘 통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이 통사동(通仕洞)이 되었다.
- 승장(勝粧)
고려 말기에 승장사(勝粧寺)란 절이 있었기 때문에 승장으로 불러지게 되었으며 윗 승장과 아래 승장이 있다.
참나무진
일제 때 상산김씨가 은거하여 살면서 개척한 마을로 일대에 참나무가 잘 자라고 참나무 그늘이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그늘을 정자삼아 모여 논다 하여 마을 이름이 참나무 정이 되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