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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잔인하다.
내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미안하다'라고 한 마디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야 너에게 말한다.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웨스턴 샷건 100제] No.82. 인형놀이
The last Episode - 10 years together with her...(part.2)
파티장을 나선 후, 셰릴의 방까지 다다른 나는 그제야 셰릴의 손을 거칠게 놓아주며 언성을 높였다.
"너 바보냐!?
그 놈이 그렇게까지 추근덕 대면 소리라도 지르던지 스팅이나 나한테 도움을 청하면 될걸 병신같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어!?
그런 쓰레기만도 못한 녀석이 정중하게 거절한다고 '네, 알겠습니다~'하면서 곱게 물러날 것 같냐고!"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그때의 난 알 수 없었다.
다만 너무나 화가나서..
그녀의 야무지지 못한 거절 방법이나 도움을 청하지 않은 태도에 대해 나는 너무나 화가 나있었다.
그 분노의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하지도 않은채..
미친듯이 역정을 내는 내 모습에 셰릴도 조금 당황했는지 놀란 눈이 되어 날 바라봤지만 그녀는 이내 평소와 다름 없는, 침착한 표정으로 나에게 오히려 진정하라는 말까지 했었다.
"주인님..그런 험한말은 품위 없습니다. 귀족으로서 좀더 기품있는 언어를.."
"제길..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딴 기품이 더 중요하다 이거냐!? 좋다..! 그렇게 기품있는게 좋다면 기품없는 네 주인님은 이만 사라져 주지..! 자, 어서 네 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아!..주인..!"
콰앙-!!
나는 셰릴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고는 그대로 그녀를 방 안으로 던지다 시피 하며 거칠게 들여 보냈고 내 완력에 저만치 내동댕이쳐져 버린 그녀는 나를 부르려 했지만 곧 그녀를 밀어 넣을때 보다 더 거칠게 닫아버린 방문소리로 인해 내 귀까지 달하지 못했다.
"젠장..최악의 생일이군..!!"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친 나는 그대로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뒤, 방으로 향하던 나와 복도에서 마주친 스팅은 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걸 알아차렸는지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뒷일은 내가 해결할테니 넌 그냥 머리나 식혀라..이거 원 남의 파티까지 내가 정리해줘야하니..'라는 말을 하며 다시 파티장으로 향했다.
정말이지 기분이 더러운 날이 아닐수 없다.
남작가의 영식(令息: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나 되면서 그런 지저분한 행동을 한것도 마음에 안들었고, 나에게 변태라느니 어쩌느니 한 발언도 짜증났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좀처럼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셰릴조차 싫은 내색이 가득한 얼굴로 정중하게 거절했건만 노골적으로 지저분한 시선을 던지며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녀석의 눈빛이었다.
셰릴에게 접근했을 때부터 내 시야에 고정되었던 그 녀석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뇌리에 각인되어 한층더 기분을 더럽게 만들어 주었다.
셰릴에게 추근덕 대던 그 행동도..
창녀를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셰릴을 바라보던 시선도..
온갖 지저분한 말을 내뱉어 대던 뻥 뚫린 입도..
그리고..
그런 녀석의 행동을 완고하게 뿌리치지 못했던 셰릴의 안일한 행동 모두에 분노가 치밀었다.
'내것'에 허락없이 손을 댄 것에 대한 유치할 정도로 치졸한 소유욕이었다고...그날의 나는 스스로를 납득 시켰다.
허락없이 남의 '인형'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라고..
'나' 이외의 남자와는 신체접촉을 하는건 안됀다고..
좋은 장난감을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유치한 소유욕 때문이라고 그때의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변명해버렸다.
그리고..그것이 나와 셰릴 사이에 벌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
다음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셰릴은 날 깨우기 위해 내 방으로 찾아들었다.
눈을 감고 주변에 신경을 세워야 들릴 정도로 가볍고 조용한, 고양이같은 그녀의 발자국 소리도.. 혹시라도 내가 깰까봐 최대한 살며시 방문을 열고는 바깥 바람이라도 새어 들어올까 서둘러 조용히 문을 닫고는 변함없는 고요한 발걸음으로 내가 누워 있는 침대에 다가와서는 작지만 부드럽고 다정한 음성으로 나의 아침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그녀..
그녀는 '인형'..
사람도 아니고 애완동물도 아닌...감정이 있고 숨을 쉬며 나와 똑같은 온기를 지닌 나의 '인형'...
어제의 그 일이 있었음에도..날 찾아오지 말라고 거칠게 내뱉었던 나의 말에도 아랑곳 없이 지난 5년간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날 깨우기 위해 내 방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 5년동안 그랬듯 그녀가 오기 전, 이미 깨어있던 나는 그녀가 내 방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의 발소리를..
그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느덧 잠에서 깨었지만 아닌척, 모르는척 눈을 감고 있는 내 곁에 다가오는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자는척 뒤척이다가 이내 '일어나세요, 주인님. 아침입니다'라고..그 작고 붉은 입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일부러 힘겹게 눈을 뜨는 척하며 부서지는 햇살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금안을 바라보는 것을...나는 가장 좋아했다.
어머니의 모닝키스 만큼이나 달콤하고 부드러웠지만 이미 내곁에 없는 어머니 대신 나의 아침을 깨워주는 그녀의 음성에 어쩌면 마법이 있을 것이라고 언제나의 아침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그녀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가지지 않았던 나였지만...나는 나를 깨우기 위해 매일 아침 내 방에 찾아오는 셰릴의 모습만 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발소리나 기척, 목소리 모든걸 느끼고 싶어서 그녀가 날 깨우러 오기 전부터 잠에서 깨어 그 모든걸 보고,듣고,느꼈다.
햇살에 반짝이는 블론드도, 마치 날개처럼 부서지는 햇살을 등진 그 모습도, 이 세상에서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는 작지만 부드러운 그 비밀스러운 미소도..그녀가 나만을 위한 존재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리라...
철없던 14살의 나는...
지난 5년간의 그 행복하고도 포근했던 그녀의 아침인사를 '그 날'을 끝으로 작별을 고했다.
"앞으로는 내 방에 날 깨우러 오지 마.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누가 깨우러 오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니까.. 그리고 내가 먼저 찾을 때까진 방에서 나오지 말고..얘긴 이걸로 끝이다 꺼.져."
그말을 끝으로 나는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채, 아무말도 없이 서있던 그녀를 차갑게 지나 거칠게 방을 나섰다.
그것은 유치할 만큼 치졸한 소유욕이 '사랑'인줄 몰랐던..
14살의 어리석은 내가 버린 빛 바랜 사진첩같은 기억의 조각..
그리고..
다음날 아침, 버릇이 되어 언제나처럼 셰릴이 오기 전에 잠이 깨어있던 내 귓가엔 조용히 내 방을 밝혀주는 햇살의 방문 소리 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금빛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는 끝까지 들리지 않은채....나와 그녀의 아침인사는 홧김에 내뱉은 나의 한 마디로...
그렇게 조용한 이별을 맞았다...
키스케 - 18살>
내 나이 18살.
말이 남작 후계이지 이미 대부분의 집안일에 대한것은 나에게 일임하신 아버지 덕에 나는 이전의 자유로운 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적응해야했다.
아니...이미 그 무렵의 난 자유가 제한된 그 답답한 생활에 이미 질려버릴 정도로 적응이 되어있었다.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하는 언행, 여성들에 대한 에티켓, 악성 루머가 생기지 않기 위한 사교계의 방문..
그 모든것에 너무나도 빨리 적응해 버린 나에겐 이전같은 자유로움도 '속박'을 거부하는 일도 모두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약혼녀가 생긴 탓도 있었다.
15살에 백작가의 영애와 약혼을 한 나는..의무적으로도 그녀와 자주 만남을 가져야 했고 특별히 그녀가 좋다거나 싫지 않아서 그녀와 약혼식도 올린 후였다.
아마도 그녀는 여러가지에 속박된 내가 유일하고도 작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존재였던 것 같다.
활발한 성격의 로미는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울 정도로 우아하며 기품있는 여성이었다.
마치...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그녀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만큼...
그렇게 로미와 의무적이면서 또 내 나름대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 교제하기 시작한게 3년..
이미 그때의 내 머릿속에선 '그녀'의 존재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고 아련한 기억의 파편이 되어버려 있었다.
나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희미해진 '그녀'라는 존재가...나의 머릿속에서 소리없이 지워져가고 있었다...
희미하게..천천히..천천히..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17살이 되던 해에..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원인은 과로.
남작가라지만 유서가 깊은 가문에 남작 자리를 이어받아 그 방대한 업무를 홀로 처리하시던 아버님이 결국 과로로 쓰러지셨던 것.
연세탓도 한 몫 한것 같다고 의사는 내게 말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본격적으로 남작가의 일을 부담하게 된 나는 언제부터인가 '도련님'이 아닌 '남작님'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불리우는게 익숙치도 않았고 또한 아버님 귀에라도 들어가면 안그래도 좋지 않은 분, 노기로 더 몸 상하시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아버지의 한마디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뭐 어떠냐, 어차피 네가 내 뒤를 이어 남작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침대에만 누워있는 애비가 현역이라고 말하기엔 늙은이 주책 아니겠느냐, 하하. 지금 당장 어색할지라도 금세 익숙해 질거다. 이제 이 애비도 쉬어야 할 때가 온것 뿐이니 그리 서운한 표정 짓지 말고..'
언제나 위엄있고 근엄있는 모습으로 대쪽같던 아버지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내가 커감에 따라 아버지도 늙어가시며 예전의 그 강인한 모습은 어딘가 지쳐있고 힘들어 보여 그날의 나는 .... 사실 아주 잠시동안 목이 메였다.
언제까지나 그 위엄 어린 뒷모습이 내 앞에서 날 이끌어 주실거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이젠 아버지를 이끌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주름살이 늘어난 것 같아 보이던 그 날의 아버지의 얼굴은 후에도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렇게도 싫어하던 '속박'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게 한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모든것에 '속박'된 나는 하루하루를 정신 없이 보내었다.
하루는 파티에 초대되고..
하루는 왕실에 폐하를 알현하고...
또 하루는 남작가를 돌보고...
그 모든것이 반복되어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속에 아버지의 건강은 나빠지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약혼녀인 로미와의 결혼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어느날 말씀하셨다.
"벌써 3년이나 교제하지 않았느냐. 이제 혼인을 하는게 좋을것 같구나."
"..손주라도 안아보시고 싶어지셨습니까?..."
"후후..손주를 볼 때까지 숨이 붙어있을까.. 자식이라곤 너 하나 뿐인데 죽기 전에 아들녀석 장가가는 건 봐야할 것 아니냐.."
"..농담 하시는 모습 뵈니 백년은 더 사실것 같은데요?..아직은 결혼 생각 없습니다.."
"로미가 싫으냐?"
"싫지 않습니다."
"그래..넌 로미를 싫어하지 않지. 그건 내가 잘 안다. 오히려 그 아이의 밝은 모습이 맘에 든다고 했으니까.."
"..제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요?"
"굳이 말을 해야 아는건 아니지. 아들인데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지..그렇지?"
"..그냥 좋습니다. 이 정도는 안 되는 겁니까?"
"그걸 나에게 물어서 어쩌겠다는 거냐? 다 늙은 애비랑 결혼이라도 하게?"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허허 이 녀석! 알았다, 알았어. 토라지지 말거라. 농담도 못하게..."
부전자전이라고..
아버지의 무뚝뚝한 말투를 그대로 닮은 나와 아버지의 대화는 무뚝뚝한 듯 농담과 장난이 섞인채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그 날 아버지와의 대화로 나는 로미와 2년 후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20세에 결혼하는건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스팅이 물었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하면 된다. 싫어하지만 않으면 어차피 살아가면서 사랑하기전에 정이 들고 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이기적인 대답인지.
18살의 나'는 그때까지도 철이 들지 못한 채였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품고...로미와 결혼을 약속한 어리석은 나.
나처럼 사랑하지 않고 단지 좋아하는 감정만 품고 있던 그녀라도...상처를 받는 다는걸 왜 몰랐었는지..
2년 뒤 결혼을 하기로 로미의 집안과 이야기도 끝마치고 그날로 나는 저택의 하인들 일부를 교체했다.
내 나름대로 로미를 고려해 그녀가 결혼 후 남작가에서 살며 낯설지 않도록 백작가의 하인들 몇몇을 결혼 전부터 우리집에서 함께 살면서 남작가에 하인이 될 수 있도록...
로미는 그런 나의 행동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마워, 키스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치만 나도 노력을 해야하니까.. 자주 남작가에 와서 저택 지리라던가 하인들 얼굴정도 익혀두는게 좋겠지?"
"아아..."
그녀 나름대로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자기 스스로도 결혼전에 노력을 해보겠다며 나에게 그렇게 묻던 그녀를 향해 듣는둥 마는 둥 건성한 대답을 해준 나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활발한 그녀.
잘 웃고 밝은 성격에 인간관계도 좋고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좋아'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
그녀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다만 좋아할 뿐..
나도 그녀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사랑하지 않아도..얼마든지 결혼 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정말...철없고 어리석기 그지 없는 생각들...
하인들의 절반이 로미 집안의 하인들로 교체되면서 남작가는 한동안 수선스러운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증조부께서 나라에 세운 공으로 우리 집안보다 더 높은 계급의 귀족들 보다도 더 큰 저택에 살고 있던 남작가였다.
공작가까지는 아니라도 백작가 못지 않게 넓은 저택안엔 수백개의 방이 있었고 쓰지 않은 방이라도 날마다 청소를 하고 지리를 익히기 위해 하인들은 날마다 분주했고, 새로 들어온 하인들은 새로운 저택에 지리를 익히느라 혼이 빠져나갈 것 같다고 종종 말했다.
로미 역시 스스로 저택 안을 탐험하겠다고 돌아다니다가 이내 지쳐서는 '너무 넓어 키스케. 우리 저택보다도 더 넓은것 같애' 라는 푸념섞인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 나름대로에 재미를 느꼈는지 저택에 방문할 때마다 나에게 '오늘은 2층 방엘 한번 가봤는데 말이지~'라며 자신의 탐험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곤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난 나름대로 밝고 기분좋아 보여서 좋아했었고 자신의 말에 귀를 귀울여주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는지 그녀는 더 신나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나조차 모르고 있었던 저택 내의 모습들이..로미의 시야에서 재해석 되며 마치 다른 세상의 모습인양 그녀의 재밌는 어휘력으로 표현되는 것이 마치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동화처럼 재미있어서 드물게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 안에서만은 자유로이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탐험 얘기를 해주던 로미가 어느날엔간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이 되어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저기, 키스케~ 어제 3층 방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맨 끝방에 가봤거든. 아니 정확히는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앨리(키스케 저택에서 종사하는 어린 하녀)가 그 방엔 들어가면 안됀다고..유령이 있다고 그러던데..진짜야? 키스케도 본 적 있어?"
"뭐? 유령?"
금시초문이었다.
유령이라니..
저택이 오래돼긴 했지만 이 저택보다도 더 오래된 고성에서 사는 귀족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고작 3대째 밖에 안된 이 저택에 유령이라니..어불성설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서 '3층 맨 끝쪽 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유령이라는 말에 이미 방의 위치에선 관심이 멀어졌다고 한게 정확했다.
결국 나는 '유령은 무슨..맨 윗층 끝방이라 거의 쓰질 않으니까 아마 창고로 쓰니까 지저분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한 거겠지... 하인들이 말하는거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괜히 들어갔다가 고생하지 마.' 라고 로미를 타이르는 것으로 그 이야기를 일단락 지었다.
나는...
왜 그 때 로미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3층 맨 끝방에서..문이 열리기 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고 금세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처럼 '그녀'의 존재를..잊고 살 수 있었을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로미의 말처럼 '유령'이라도 되는 것 처럼 새하얗게 잊고...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나의 20살 생일이 가까워 올 무렵이자 결혼식까지 한 달 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키스케- 20살>
결혼 한 달 전, 로미는 드레스와 부케를 맞추느라 나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도...여자에게 있어 결혼식이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로 하여금 잘 느낄 수 있었다.
'키스케, 드레스 색은 어떤게 좋을까?'
'부케는 역시 빅토리안 포지가 좋을까? 대신 하얀 장미가 좋을것 같아..!'
'머리는 묶는게 좋으려나? 어때, 키스케?'
'그러니까 이건~~'
1달 내내 결혼식 준비를 하며 들떠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들이 가기전에 들뜬 어린애처럼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런 로미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라고...무뚝뚝한 나와 달리 조리있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는 활발한 그녀가 내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들으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고싶다는 대로 해주었다.
부케의 꽃을 고르고, 손님들에게 보낼 청첩장을 마련하고, 예복을 맞추고...
결혼 전 1달은 마치 내 18년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축시킨 듯 정신없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결혼 일주일 전, 주문했던 로미의 웨딩 드레스가 도착했다.
로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붉은색의 실크로 만든 그리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드레스라고 했다.
붉은색 드레스..
언뜻 그녀의 말에 누군가의 인영(人影)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그건...
"..케..키스케? 듣고 있어!?"
"! 아아..듣고 있어. 벌써 갈아 입었어?"
"뭐야..아까부터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헤헷. 다 갈아입었으니까.. 얼른 들어와서 봐줘..잘 어울리는지."
"네네.."
그녀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나는 그녀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어 어떤 방 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문을 열고 문을 열면....그녀가....
나는..
이 광경을... 본 기억이.. 있다...
아니..몇 번이나..몇 년이나 이렇게 걷고 걸어서..어떤 방문 앞에 다가서서 크지 않은 방문을 천천히..조용히 열면 문 너머에서 햇살을 등진채 기다리는....
"..아..!?"
나는... 몽롱한 기억속을 더듬으며 기억속, 몇년 전인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 과거의 나와 함께 동시에 문을 열었다.
천천히..조용히...
그리고 문이 열리며..
내 눈앞에는 햇살을 등지고, 내가 문을 열기 전까지 언제나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방향으로..똑같은 자세로 서서는 눈을 살짝 감은채 나를 기다리던 '그녀'가...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셰릴.....!"
"..뭐? 키스케??"
"..!..아...로..미?"
아니..그건 '그녀'가 아니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양손엔 빅토리안 포지를 든채 '그녀'와 똑같은 모습으로..똑같이 햇살을 등진채 서있던 로미였다.
하지만 나는..로미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뒤늦게 그녀의 그림자를...
그녀에 대한 잃어가던 기억의 한 조각을 찾아내었다.
"..바보같이..어떻게..잊고 있었지? 거짓말처럼..."
"키..키스케..우는 거야? 갑자기 왜..?"
"가야해...!"
그 때의 나는.. 울고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로미의 놀라움 가득한 얼굴과 그녀의 놀란 듯한 눈동자만이 흐릿하게 기억이 날 뿐..
그때..
현실의 내가 본 것은 로미와 오버랩 되어 보인...기억속 문너머의 '그녀'.
그녀는 나의....그러니까 나의..
"키스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급히 내 이름을 외치는 로미를 남겨둔채..나는 미친듯이 3층으로 향하는 층계를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눈 깜짝할 새에 3층 복도에 도착한 나는... 숨가쁘게 뛰어 올라온 탓인지.. 그게 아니라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나는 지난 6년간 거짓말처럼 새하얗게 잊고 있었다.
잔인한 나.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었을까?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유치한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홧김에 내뱉었던 그 한 마디로 나는... 그녀를 잊고..그녀를 버려두었다.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나를 증오하고 있겠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아....하아....후우~"
가파른 숨을 진정시키고 꿀꺽 침을 삼키며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내버려 둬놓고... 이런 꼴사나온 모습으로 찾아간다면 그녀가 웃겠지?
나는 금세 진정된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제야 천천히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끝이 없이 이어진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
그녀가 늘 입고 있던 그 드레스만큼이나 붉은 카펫이 깔린..
증조부 이전부터 남작가를 지켜온 조상님들의 초상화가 일정하게 걸려 있는 복도의 벽과...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서서히 걸어가던 나.
나는..아주 오래전에도 지금처럼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붉은 카펫 위를 걸어갔다.
그 끝없이 이어진 붉은 카펫위를 걷고 또 걸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 그 카펫의 끝에 다다르면 카펫의 끝에 함께 자리잡은 그리 크지 않은 나무문 하나와 마주섰다.
메시아가 조각된 나무 문과 마주하면 나는 무엇 때문인지 아주 잠깐 동안 망설였었다.
문에 세겨진 메시아가 너무 고귀하고 성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그 방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에 취해서였을까...
바보같은 나.
이제야 기억을 하고..이렇게 너를 맞이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문앞에서...메시아를 바라보고 있어..
넌..날 원망할까?
왜 이제야 찾아왔느냐고...화를 낼까?
화를 낸적도 눈물을 흘린적도 없는 너는...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두렵다.
차라리..화를 내면 좋을거라고..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부디...부디....
끼이이익-
조용히 문 손잡이를 당겼다.
하지만 예전처럼 문은 조용히 열리는게 아닌 마치 아주 오래되어 녹슨 것 처럼 낡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 문이 활짝 열리고 나면..너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 해 줄지...
시간이 미쳐버린 것 처럼...
문을 여는 그 순간 나와 서서히 열리는 문과 문을 열고 있는 나 이외의 모든 것은 시간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서서히 열리던 문은 몇 년만의 손님을 알아보기라도 하듯 방안의 햇살이 살짝 문밖으로 새어나올 정도로 열렸을때, 마치자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양 절로 활짝 열려졌다.
그것은 방의 주인인 그녀 의지였을까?
아니면 정말 몇년 동안 그 누구도 찾아 오지 않은 방에 찾아든 장난꾸러기 유령의 소행이었을까..?
활짝 열려진 문 안쪽으로 내눈에 보여진건 거짓말처럼 먼지하나 없이 말끔한 방안과 4년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창문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등지고 붉은색의 퐁파두르 드레스를 입은채 6년전과 다름없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살짝 눈을 감고 서있는...
"....셰릴..."
나도 모르게..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심장은..다시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녀는 6년전 내가 자신을 맞이하러 올때와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햇살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눈부신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의 천사처럼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워서...
손이 닿으면....부서질 것 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의 부름을 듣지 못한 듯 미동이 없었다.
'그래...
6년전 처럼..아니.. 이번엔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6년이나 기다려 줬는데..
안그래?'
셰릴은 6년전, 14살의 셰릴인채 변함 없었다.
뚜벅-뚜벅-뚜벅--
쭈욱..나를 기다려 준거니?
이 문이 열리고 내가 '가자'라고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기다려 준거야?
바보같이.. 나같은 녀석을 뭐하러 기다렸어..?
홧김에 멋대로 내뱉은 말도 기억 못해서..이제야 널 찾아왔어.. 이런 나라도 너는....상관없다면....
우뚝-!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 앞에는 이제 내가 손만 뻗으면 셰릴을 안아줄 수 있을 만큼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 나는 멈춰섰다.
14살의 셰릴은 나보다 한참 작아서 정말 '인형' 같았다.
아니..그녀는 '인형'.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살아있는' 인형.
그리고 나의 8살 생일 선물로 우리 집에 오게된 나의 여동생이자....나의...그러니까 나의...
"셰릴.. 나..왔어. 날..잊어버린 거야?"
..목이... 메여왔다.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도 살짝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신이시여..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제발...
내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주세요... 그녀가 나를 원망해도 좋으니까..
천천히.. 셰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늘 입고 있던 붉은색 퐁파두르 드레스가 유난히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문을 열었을 때 보였던 방안의 풍경은...6년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이 방은 그런 더러움과 상관 없는 다른 세상인 듯..눈부신 햇살만이 가득해서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그것은 아마 그녀도, 그녀의 방도 모두 '잊혀졌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존재를 잊혀진 그녀와 그 방은 시간에게도 잊혀져 자연스레 먼지가 쌓이지 않은채 6년전과 변함 없는 모습을 간직한 것...나는..그렇게 생각한다.
잊혀진다는건...지워진다는 것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부정당한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잊고 유령처럼 아득한 시간속을 헤매이다가 누군가의 기억에서 되살아 나면서 비로소 다시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거늘...
어머니의 그 말씀이 20살이 되어야 가슴이 아리도록 이해되었다.
먼지도 티끌도 그녀의 존재를 잊었기 때문에...이 방의 존재를 잊어서 이 방엔 '더러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
시간에게 조차 잊혀진 그녀는 14살인채 6년동안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던 '주인'인 나를 기다려 왔던 것..
눈물이 흘렀다.....
"셰릴...."
다시 한 번...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눈을..
눈을 떠 봐, 셰릴.
나..
이렇게 네 앞에 서있는데...이렇게 너를 부르고 있어.
눈물을 닦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눈을 떠주기만을 바랄 뿐..
그리고 세상에게는 찰나였겠지만 나에겐 1년과도 같은 잠깐의 시간이 그녀와 나 사이에 흘렀을 때...그녀는 조용히..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천천히 부드럽게 열리는 눈꺼풀 너머로 그녀의 예쁜 금안이 세상에 드러나기 사작했고...곧..그 금안 속에는 내가 있었다.
그녀는 20살의 나를 한껏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주 잠시동안 나를 올려다 보던 셰릴은....나와 함께 했던 지난 6년과 함께하지 못했던 6년 동안 한 번도 지어본 적 없었던..
..그녀의 등뒤로 비춰지는 눈부신 햇살 만큼이나 아름답고...눈부신 미소를 지은채 6년간의 나의 아침을 깨워주었던 그 그리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침입니다. 일어나세요.."
6년만에 듣는....그녀의 아침 인사에...내 눈에서는 눈물이 솟구쳤다.
"...아....하..!..하하..!.."
아침이라니..
셰릴....
6년만에 눈을 뜬 너는 6년전처럼 아침인사를 하는구나...아침이라고..어서 일어나라고..
오후가 되어 그림자가 짧기만 한 지금이 ..너에겐 지금 이 시간이 6년만의 아침이 되어버리다니..!
바보같은 나..
어리석은 나..
나는..흐르는 눈물과 상관없이 울음 섞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14살의 셰릴 앞에서 울며 웃고 있는 20살의 내 모습은...그녀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그녀도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자신이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훌쩍 커버린 주인님이 종잡을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으니까..그렇지 셰릴?
"아...하하...하...하..... ..큭..!..우윽..!"
어느새부턴가..그녀 앞에서 나는...흐느끼고 있었다.
나의 어리석음과 철없는 말 한마디로 그녀가 자신의 시간도 잃은채 보낸 지난 6년의 시간이 내 삶의 죄의 무게가 되어 하염없이 내 가슴을 죄여왔다.
이런 나를..기다려준 거야? 셰릴..
바보같이..화를 내야지..원망 해야지..왜 오지 않았느냐고 따져야지..
어째서..어..째서..?
그녀의 아침 인사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그녀의 미소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을 난도질 한다.
나는...너의 미소를 볼 자격도 없는 놈인데..
셰릴은...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셰릴은 주인님과의 약속을 지켰어요."
「약속」..
나의 그 생각없이 홧김에 던졌던 그 한 마디가..너에겐 '약속'이 되어 줄곧 6년동안 이 방에서 나오지 못한...
나는..이제 흐느낌을 멈추고 셰릴을 바라보았다.
눈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최대한 눈물을 삼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응... 응....좋은..아침이야.. 그렇지?...그런...그런 말도 안돼는 약속을 지켜줘서....고마워.."
나의 이 대답에 셰릴은 아까보다도 더 눈부시고...부서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꾸...왜 미소를 짓는거야 셰릴..?
왜 그렇게...그런..슬픈 듯한 미소를... 그건 마치....
나의 대답에 미소짓는 셰릴의 얼굴로 나는 천천히 손을 옮겼다.
예쁘다...셰릴..
내가..너에게..예쁘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항상 곁에 있었던 너에게 나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해 준 적이 없었는데..그런 내 곁에서 묵묵히 날 돌봐주던 너의 존재가 이제야 커다랗게 느껴진다.
"셰릴...예쁘네.."
신이시여..
제발..나의 이 불안한 예감이 단지 예감일 뿐이라고...
아니라고..
제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한 마디를 할 시간만이라도...
그리고 내 손이 새하얗고 작은 너의 얼굴에 닿았다.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짓고 있던 너의 얼굴에 내 손 끝이 닿았고...그리고..
샤아아아----
너무나도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던 셰릴은...
그렇게..드레스 처럼 붉은 색과 너의 금발과 같은 금빛 재가 되어 내려앉아 버렸다...
한줌의 금빛, 붉은빛 재가 되어...
그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만을 지어주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세월의 마법이 풀린 셰릴의 방에는 조금 전까지의 그 모든 광경이 꿈이라도 되는 듯 재가 되어 버린 셰릴처럼 낡고 삵은 가구들과 거미줄이 신기루처럼 생겨났다.
6년의 시간은...너무도 길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셰릴에게도..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잊었던..그녀를 알고 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재가 되어 가라앉은..셰릴'이었던' 것 위로...참아왔던 나의 눈물이 떨어졌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내 눈에선..한동안 눈물이 끊임 없이 흘러내렸다.
재가 되어버린 셰릴과 그녀의 방에서 변하지 않은것은 눈이 시릴정도로 쏟아지는.. 6년전처럼 아무 소리없이 쏟아지는 햇살 뿐...
재가 되어서도 햇살을 느끼고 있는 그녀와 나 사이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며 나는 이제 주인을 잃은 그 방을 조용히 나섰다.
「사람이란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그것이 바로 진짜 죽는 것이란다.
사람 뿐만이 아니야. 무엇이든 누군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면 죽어가는 것이고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그것이 바로 죽는 것이란다...
그러니 키스케는 키스케의 주변을 감싸주었던 이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돼요..알겠니?」
사람 뿐만이 아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20살의 나는 다시금 새기며 그녀와 함께 마법이 풀려 열려져있는 문을 지나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로미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나의 아름다운 '인형'.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형'
감정이 있으며, 체온을 지녔고, 나와 함께 나이를 먹는 인형.
그리고 이것은 나와 그녀의 아름답고 슬픈 인형극..
And that'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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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옥주입니닷!>ㅂ<//
실로 오래간만의 소설이 아닐 수 없네요..;ㅁ;
실은 친구집에서 외장하드 연결해서 편집까지 다 해먹고 있다는..(쿨럭!)
3편이나 써서 100제 하나 완결 지었군요..아아..눈물이..ㅠㅠ;;
사실 말이 인형놀이지 이걸 쓰게 된건 '로젠 메이든'이란 만화때문입니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전~~혀 Never! 상관 없습니다..)
일러스트에서 주인공 인형이 입고 있는 드레스를 보고 '셰릴도 저런거 입으면 예쁘지 않을까? 인형같을 것 같은데.'하는 생각에 처음엔 일러스트로 생각하다가 100제 중 '인형놀이' 가 있길래 쓰게 되었달 까요..
오히려 내용적인 모티브는 고3때 배웠던 시 한 편이었습니다.
서정주 선생님의 '신부'라는 시인데요..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 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마지막 '초록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저 부분에 당시 시를 배우고 있던 옥주의 가슴이 뭉클해졌었죠..
무려 50년 가까이 변하지 않는..새색시의 모습으로 신랑을 기다려온 신부가 50년만에 찾아온 신랑의 손길에 재가 되어 내려 앉았다니... 제 멋대로 오해하고 나가버린 신랑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 없었죠..
슬프고도 아름다운 기다림이라는게 상당히 강하게 남아서였을 까요..
비슷하게 '인형'인 셰릴이 키스케를 기다리고.. 그녀의 존재를 6년간 잊고 지내던 키스케가 다시 찾아가 그녀에게 사과하며 그녀를 보듬어 주려했지만 셰릴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기 때문에..
쥴리아 부인의 말처럼 '잊혀지는게 죽는 것이다' 라는 말이 사실이였다..랄까요.
그녀의 존재를 기억해낸 키스케는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그 말이 떠올랐고 그 자신도 사실 마음속 어딘가에선 그녀가 이미 죽어있을 것이다라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고 그 때문에 6년이나 그녀를 내버려둔 자신의 잔혹함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뭐..대충 내용은 이래요..<-건방져!!
내용에 대한 이야기까지 덧붙여야만 하는 못난 작가 옥주입니다만..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감사할 따름이죠..에에.ㅠㅠ
연재 소설들은 언제 올릴지 모르겠습니다만....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기다려만 주신다면..ㅠㅠ)
아무튼 인형놀이 라스트 에피소드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키스를~~(퍽!!)
p.s> 진녹색 돋움 글씨체는 현재의 키스케(나이는 미상)의 독백입니다. (무능한 작가의 한계..ㅠㅠ)
첫댓글 셰릴이 불쌍해 ㅡ_ㅠ 또 다시 눈물이 주체할수 없이 흐른다...언제나 언니의 소설은 세드인가요??
언제나 세드는 아니에요..오히려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다만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니 시처럼 세드 엔딩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ㅜㅜ 그치만 종말 멋진 소설입니다 ~ 우엥 셰릴~ 네가 웃고 있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아, 옥주님꼐서 쓰신 신부라는 시 저도 배웠는데, 정말 이소설을 읽을때 오버랩이 되면서 더욱 가슴이 찡했어요//
시를 알고 계셨다니 다행이네요..사실 시 제목이 생각이 안나서 찾는데 한참 걸렸다는..;; 더 잘 감상하셨다니 기쁩니다..^^
도대체 오버랩이 뭡니까??알수없는말..
그러니까 서로 다른 두가지가 겹쳐진다는 얘기예요...
흐아아아, 너무너무 슬퍼어!!!
헛..;; 시가 슬프게 끝나는 만큼 어쨌든 새드엔딩으로 해야해서요..슬퍼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