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절 나병이 나은 나아만은 곧장 아람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인정하고 그분께만 경배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는 몸만 나은 것이 아니라 영혼도 살아났습니다. 아람에게 쩔쩔매는 약소국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이고 강한 자기 나라의 신이 거짓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이스라엘 왕과 백성도 갖지 못한 참 신앙이었습니다(마 8:10).
16-19절 나아만은 답례 예물을 받으라고 강권했지만 엘리사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강경하게 거절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은혜에 대한 보답은 그분을 진정으로 섬기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화답하여 나아만은 제단을 위한 흙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불가피한 상황을 참작해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고충은 아합 시대 오바댜의 시련과 다르지 않습니다(왕상 18:4).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살지만 마음만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탄압과 감시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0-23,27절 게하시는 방금 스승이 거절한 예물을 스승을 빙자하여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값을 매기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 합니다. 나아만의 어린 여종은 주인의 나병을 치유하기 위해 엘리사를 소개했지만 게하시는 자신의 주인을 속이다가 나병에 걸립니다. 이방인 나아만은 충절을 다짐하는데 게하시는 선민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변절도 서슴지 않습니다. 혹시 나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과 바꿀 만한 것이 있는 듯 살고 있지 않습니까?
24-27절 엘리사가 책망한 것은 게하시의 착복만이 아닙니다. 안으로는 흉년이고 밖으로는 아람과의 긴장 관계(5:7; 6:8)에 있는 나라 사정은 뒷전인 채(26절, “지금이…때냐?”)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있는 악한 ‘이기심’, 선지자 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여태 보고도 탐욕에 눈이 먼 ‘무지몽매함’입니다. 세상을 살려야 할 복음의 공공성을 거세하고, 세상이 어떻든 나만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은 복음도, 교회도, 성도도 아닙니다.
첫댓글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 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엘리사는 게하시의 욕심을 책망합니다
개인적인 탐욕과 이기심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이방인 나아만은 깨끗함을 얻었고 게하시는 더러운 욕심으로 몸까지 나병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아버지 탐욕에 물들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청지기로 보내심을 바로 알게 하시고 주신 재물은 아버지 나라위해 쓰이게 도와주옵소서 나와 함께하시는 아버지께 감사 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