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2장 8 - 9절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멀리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감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빚을 받으러 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찾아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설사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야구 선수인 박찬호 선수가 지금 아내가 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 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박찬호 선수에 대해서 비호감이라서 거절을 했는데 세 번씩이나 찾아와서 구애를 하는 탓에 결국은 승낙을 했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오게 되면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도 사랑하게 되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마음 때문에 크고 작은 산이라는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서 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사랑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신랑 되신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크고 작은 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문 밖에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그 분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얼른 문을 열고 그와 더불어 먹고 즐기는 것을 어찌 마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깊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말구유에 내려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런 간절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여자들은 남자가 감동적인 사랑의 이벤트를 몇 번 보여주면 저 사람을 평생 의지하면서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극진하신 사랑을 보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쉬지 않고 뛰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이 벅찬 사랑인지, 또 우리가 받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절실하게 깨달아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 존귀하고 소중한 사랑입니다.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복되게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다고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지켜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보다 친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벽 뒤에 서서 창이나 창살 틈으로 자신을 엿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늘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는 헛된 생각으로 실망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피해서 바람을 피고 외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남 몰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오늘도 쉬지 않고 지켜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그 눈을 피해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생각을 품고 다른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만 사랑하는 하루가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더욱 좋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서 그 사랑으로 인해 더욱 기뻐할 수 있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