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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전쟁
‘관념상의 전쟁’은 온갖 유형의 ‘현실적 전쟁’을 설명하기에 부족
전쟁은 ‘이성·감성·우연 및 확률’의 3요소와 관련된 전체적 현상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제1편, 전쟁의 본질에서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전쟁을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대상을 설명할 때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확장시키는 그의 독특한 연구방법에 따라 전쟁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쟁의 정의에 대한 전체적인 논리 전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1편 1장에서 전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양자 결투를 통해 ‘관념상의 전쟁’을 정의했다. 그리고
그 형상을 추론한 후에, 관념적인 전쟁의 형상을 실제 전쟁의 모습에 비춰 비판하고 수정함으로써 ‘현실상의 전쟁’을 정의했다. 이렇게 도출된
현실적 전쟁의 정의를 기초로 전쟁의 변하지 않는 속성, 즉 그 본질을 제시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의하기 위해 양자 결투에서
출발해 무수한 양자 결투의 통일체인 전쟁으로 그의 사유를 확대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전쟁은 우리의 의지 구현을 위해 적에게 강요하는 폭력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이론적으로는 전쟁의 목적은 의지의 강요이고, 수단은 물리적 폭력이며, 목표는 적의 무장해제여야 한다고
추론했다.
이어서 이러한 전쟁의 관념적 정의에 기초해 전쟁의 형상을 추론했다. 전쟁은 쌍방 간의 수단·목표·노력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제한적 상호작용으로 적의 완전한 타도를 추구하는 극단, 즉 절대전쟁의 모습을 띤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상의 전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정치와는 관계없이 완전히 독립된 행동이어야 하고, 단일 또는 일련의 동시적 결전으로 구성돼야 하며, 정치적 상황이나
계산이 전쟁 과정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실제적인 전쟁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 때문에 클라우제비츠는
관념상의 전쟁은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며 현실적인 전쟁을 고찰하기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관념상의 전쟁이 관념의 유희에
불과한 이유는 실제 전쟁과 비교해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현실적인 전쟁은 돌연히 발발하지도 않고 한순간 확대되지도 않는다.
또 모든 전투력이 동시에 효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항상 정치적 계산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무제한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관념적 전쟁의 극단성이 상호 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현실상의 개연성으로 대체됐을 때,
전쟁의 실제 모습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적의 완전한 타도를 추구하는 전쟁으로부터 아주 사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전쟁까지 온갖 유형이 존재할 수
있다.
또 현실적인 전쟁은 단일 또는 동시적 결전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과 계산에 따라 빈번하게 정지되는 일련의 연속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구성되며, 우연의 요소가 개입되는 일종의 도박과 같다. 그 때문에 현실적인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으로서 정치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도구이고,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적 교류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클라우제비츠는 정의했다.
전쟁철학자로서
클라우제비츠의 위대성은 각각의 전쟁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전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개별 전쟁의 모습을 결정짓는 본질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규명했다는 점에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매 순간 모습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다름없지만, 모든 전쟁은 이성, 감성, 우연 및
확률이라는 3가지 지배적인 성향과 관련된 전체적 현상”이라고 정리했다.
결국 개별적인 전쟁의 모습은 이성, 감성, 우연 및
확률이라는 3가지 본질적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조금씩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은 전쟁이 정치적 도구로서 정치에 종속된
본성을, 감성은 적대감정과 적대 의도에서 비롯된 폭력성을, 우연 및 확률은 전쟁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으로 만드는 개연성을 의미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러한 3가지 지배적 성향을 현실 세계에 투영해 보면 이성은 주로 정부, 감성은 주로 국민, 우연 및 확률은 군대와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전쟁이 3가지 지배적 성향과 관련된 전체적 모습이라면 전쟁이론 역시 이 3가지 지배적 성향에 대한 균형 잡힌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론 정립은 3가지 성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하며, 어떤 성향을 무시하거나 자의적 관계를
성립시키고자 한다면 그 이론은 이미 파괴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전쟁을 정확히 정의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전덕종 교수 / 합동군사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