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삼선교역)에서 걸어가면 약30분 정도 버스로 가면 금방가는 거리다. 이곳에는 간송미술관이 있고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 있고 이태준 고택이 있다.
이 부근의 동네가 1977년에 작고한 김광섭시인의 대표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 동네다.
김광섭시인은 뇌출혈로 쓰러져 성북동집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쉬고 있으면서 아침마다 하늘을 휘익 돌아 나는 비둘기떼를 보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성북동이 개발되면서 산이 파 헤쳐지고 착암기 소리가 나고 초가 집들은 모두 흘리면서 비둘기들은 성북동 마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비둘기” 들이란 개발에 동네를 떠나는 “가난한 사람” 들을 의미한다.
아직도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양쪽 동네에는 정말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들이 산허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이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동네다.
또 대조적으로 건너편에 어마어마한 고급주택들이 있다
이곳에는 성북동 성당(가톨릭)이 있다.
법정스님이 간혹 가시는 길상사(불교)가 있다.
덕수교회(개신교)가 부근에 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던 2008년 가을 간송미술관에서 추사전과 혜원 신윤복전의 가을전시회가 있어 친구들과 같이 갔었다. 간송미술관을 수리한후 첫 전시회고 또 드라마에서 <혜원 신윤복>이 방영되던때라 미술관앞에는 관람객이 새끼줄을 늘어떠린 것처럼 길게 줄을 이었다. 신문보도에는 10만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술관앞 성북초등학교에서는 성당과 절 교회 신자들이 공동으로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잠깐 생각으로는 서로 미워하는 종교인들끼리 공동 바자회는 “참 보기 드문 광경”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제 한 일간지에서 이 공동 바자회에 대한 글이 실려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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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성북동성당 길상사 덕수교회
이곳에는 성북동성당(가톨릭) 길상사(불교) 덕수교회(개신교)가 지척에 모여 있다.
단풍이 절정이던 지난해 10월 세 종교단체의 신부, 스님, 목사와 신자들이 어울려 공동 바자회를 열었다. 장소는 성북초등학교 운동장. 고미술 전시회가 열리면 장사진을 이루는 간송미술관 바로 옆이다.
지난여름은 이명박 정부와 특정종교 간 대립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의 도가니였다. 비슷한 시점에 열린 이 바자회는 당시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흥미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1000여 명이 참여해 종교 간 벽을 넘어 이웃처럼 친구처럼 행사를 치렀다. 소장품도 함께 진열했다. 바자회를 마친 후엔 함께 덕담하며 행사장을 말끔히 청소했다.
이날 참여한 한 신자는 “행사 시작 이전보다 더 깨끗해진 모습에 마음까지 정갈해진 느낌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수익금은 불우학생 장학금 등으로 ‘뜻 깊게’ 쓰였다. 호응이 좋자 세 종교단체는 이 행사를 매년 열자고 뜻을 모았다.
이 동네엔 천주교 수도원도 여럿 있다. 크지 않은 사찰도 꽤 많다. 한 동네에 여러 종교단체가 몰려 있지만 두루두루 ‘믿음과 상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 격려하는 행사가 자주 열린다.
성탄절 즈음에는 길상사 등 사찰 앞에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부처님오신날에는 성북동성당과 덕수교회 인근에 석가탄신 축하 현수막이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다. 서로 꽃을 보내기도 하고 축하방문도 이어진다.
성북동성당의 정복근 총회장(평신도회장)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애정 어린 손길을 내밀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이 같은 ‘성북동 화합’의 뒤안에는 얼마 전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의 발자취가 선명하다. 추기경은 길상사 개원법회(1997년)에 이어 2005년 이 사찰에서 열린 ‘사랑과 화합을 위한 음악회’에 축하의 메신저로 자리를 함께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정 스님을 명동성당으로 초대해 법문을 청하는 등 일찌감치 종교 간 우의의 씨앗을 뿌렸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 물결이 한창이던 19일. 무언가에 이끌려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끝 모를 조문대열에 섰다. 실제로 새치기 소란 짜증이 없는 3무(無)대열이었다. 성인(聖人)이 따로 없었다. 그 대열엔 스님도 적지 않았다. 원불교 고유의 복장도 눈에 띄었다.
그날 명동성당 내 추모미사에서 기자의 시선을 한참 붙잡은 것은 여승으로 보이는 스님의 하염없는 눈물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내 종교, 너희 종교가 따로 없었다.
설익은 고구마처럼 우리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톨레랑스(다름을 인정하는 것)가 더욱 절실한 때다. 김 추기경이 자주 불렀다는 대중가요 ‘애모’가 훌륭한 성가(聖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나브로 깨닫는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성북동 바이러스’와 ‘추기경 신드롬’이 봄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동아일보 김동원 국제부 차장
-농월-